작은 수반 위에 검고 낮은 돌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봉우리가 솟은 기암괴석이나 기세등등한 산악석에 눈길을 주곤 하지만, 이토록 평평하고 낮은 평원석이 나는 좋습니다. 11센티미터 남짓한 이 작은 돌이 품고 있는 세상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벌판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굽은 등처럼 아늑한 고향의 뒷산이기도 합니다.
슬픔이 기쁨의 뿌리라는 싯구가 있습니다. 이 돌의 매끄러운 바닥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이토록 매끄러워지기까지 돌은 얼마나 많은 물살에 제 몸을 깎이고 부딪히며 울었을까요.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강바닥에 엎드려 제 잘난 구석들을 하나둘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돌은 이토록 평화로운 평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상처가 깊은 사람이 타인을 더 깊이 품을 수 있듯, 가장 낮은 자세로 깎여나간 돌만이 제 위에 지평선을 얹어둘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늘 더 높이 오르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타인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봉우리가 되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날카로운 모서리를 들이대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평원석 앞에 서면 그런 마음이 잠시 느슨해집니다. 봉우리가 되어 구름을 찌르는 일보다, 평원이 되어 비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누군가의 발길을 받아주는 일이 어쩌면 더 오래 남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수반에 물을 조금 붓습니다. 마른 갈색이었던 돌은 순식간에 짙은 검은색으로 변하며 생기를 머금습니다. 그것은 마치 고단한 시간을 건너온 무엇이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젖은 돌의 표면 위로 방 안의 빛이 윤슬처럼 맺힙니다. 나는 이 돌을 보며 아름다운 결말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것은 화려한 완성이 아니라, 모든 일을 겪어낸 뒤에 찾아오는 고요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이 돌은 수반이라는 작은 고요 위에 홀로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쓸쓸함이라기보다 충만함에 가깝습니다.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놓일 수 있는 자리, 아무도 머물지 않기에 모든 바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 이 평원석은 그런 빈터 하나를 조용히 내어주고 있습니다.
오늘 밤, 이 작은 평원석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이런 평원이 되어준 적이 있는가. 내 안의 모서리를 조금 덜어내어, 지친 마음 하나가 내려앉을 자리를 남겨둔 적이 있는가.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낮은 자리에 오래 머문 흔적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물기가 마르면 돌은 다시 소박한 회색빛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눈에 들어온 저 넓은 지평선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생이라는 거친 강물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어쩌면 서로의 평원이 되어보기 위해 조금씩 깎여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