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바람재들꽃
 
 
 
카페 게시글
산문.수필.독후감.영화평 스크랩 고백 아닌 독백(김동렬과 김동렬)
풀밭 추천 0 조회 139 08.09.03 20:39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대학 4학년, 3월부터 맞선이란 걸 많이 봤다.

미장원에서 우연히 만난 50대로 뵈는 아주머니가 전문 '마담뚜(중매쟁이)'였다.

우연(?)이 아닐 수도 있는…….  그 '뚜아주머니'는 엄마와 내통해

엄연한 학생신분의 나를 줄기차게 맞선 시장에다 내다 놓았다.

엄마의 지론은 '딸내미는 간판 따러 대학 보낸 거고, 좋은데 시집 빨리 가는게 최고'인 분이셨으니  그 '마담뚜'아주머니와 '쿵짝' 맞음은 짐작이가고도 남는다.

어쩌다 친구들과 놀다 늦어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늦었다'는 거짓말도 통하지 않던 우리 집.

"장학생되란말 누가 하드노? 졸업만 하면 되니까, 싸돌아 다니지 말고 퍼뜩 들어와라."

첫 번째 선은 교육자 집안에서 곱디곱게 자란 대학원 졸업반.

키는 크고, 좀 말랐었고, 수줍음 많고, 조용조용한 남자.

미국유학 준비가 끝나고, 결혼과 동시에 같이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

먼 타국 땅 귀한 아들 혼자 보낼 수 없으니,

먹을거리 입을 거리 수발들 마누라 짝지어 맘 편히 보낼 계산이지 싶었다.

두 번째는 구미에서 약국을 하는 약사 아저씨.

머리숱이 살짝 적은 듯도......? 

스테이크에  빨갛고, 파랗게 예쁜 칵테일을 사주며 아쉬워했다.

내 딴에는 얌전하고, 예의바르게 대했지만, 아마 내 마음을 읽은 듯 했다.

그날은 비가 왔었나보다. 우산을 들었던 기억이 흐린 영화장면처럼 지나는걸 보니.

또 그리고 한양대 의대 인턴. 그 어머니 말씀.

'맞선은 약사까지 봤었는데, 외모가 좀 안닌듯 싶어서 00대학까지 보기로 했지요'

정말 헉.... 소리가 절로 나오시는 부모님을 모신 예비 닥털쌤.

나는 그 커트라인에 겨우겨우 턱걸이로 걸렸다.   ㅋㅋ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 맞선 시장판이 

'덜거덕'대며 굴러가고있을 무렵.마지막 물건(?)이나타났다.

선시장에서 만난 남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김동렬'

서울대학 화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의 00화학고분자 연구원으로 재직 중.

유럽(아마 독일이었던 것 같다)으로 유학을 가기로 되어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어머니는 부산에서 교직에 있으셨고.

키는 좀 작고, 얼굴은 통통했으며, 말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고,

표정 변화가 번잡스럽지 않었다고 기억된다.


나는 그 때도 '그'를 잘 몰랐지만, 지금도 그를 모른다.

그냥 나쁜 사람은 아니고, 나름 냉철한 이성을 가진듯 했지만, 살짝 여성비하 성향에

S대 우월의식, 지적 자신감 내지는 우월감 같기 도한 ……. 그런 느낌을 주던.

물론 그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내 지식의 열등감이 착오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

하여간 그랬다는 거다.


감성을 즐기지만, 지성에 약한  나는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물론 사랑 따위의 감정까지 섞이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단계였고.

나와 그의 성격을 봐서는 심상찮은 결혼생활이 그려지는 불리함도 있긴 했다.

기억에 남는 그의 질문들을 보면,

'학력고사 몇 개 나왔었노?'

'내 동료가 결혼을 하니 공간(침실)의 산소가 적어진다는 것을 느꼈다더군.'

'바람 피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공부하는 시간을 빼서 놀아줄 수는 없다'

'많은 시간을 너 혼자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공부하는데 눈이 나빠지면 불편 할 것 같아 어릴 때부터 늘 책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봤다'

안경이 얹혀있지 않은 그의 얼굴을 멍……. 하니 올려다 본 기억.

우습게도 가장 냉정하고도 못된 말을 하는 그가, 가장 내 맘에든 것은 또 무슨 조할꼬?

어쨌든 우리의 결혼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잠시 미국 언니네 다니러 갈 때도 그는 나랑 공항에 배웅을 나갔고,

내 대학 졸업식에도 휴가를 내서 참가했다.

(일편단심 우리 신랑은 아무 능력 없는 학생신분으로

공대 앞 지도 연못에서 눈물의 꽃다발을 혼자 부둥켜안고 있었다. ㅋㅋㅋ)



*그와의 에피소드

- 엄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차편이 여의치 않아 어찌어찌하여 대전에 머물게 됐다. 그는 자기 아파트,

당시는 동료 한명과 함께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내 고집이 어디 갈까. 죽어도 싫다고 했더니

'방 하나 줄 테니 걱정 말고 안에서 잠그고 자면 되잖아' 했다.

그래도 싫다고 우겨서 혼자 여관에 들어갔다.

몹시 화가 난 그가 어쩔 수 없이 따라와 둘러봐주고 갔다.

나는 혼자라는 무서움보다는 피곤함이 너무커 풀썩 침대에 누웠다.

한참 후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세요?' 목소리를 가다듬고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물었다.

그 였다. 화가 안 풀린 얼굴. '문 꼭 잠그고 자, 낼 아침 일어나는 데로 전화 주고'

방을 한번 휘익 둘러보고 갔다.

아침이 오고 햇살에 두려움을 다 씻은 나는 말끔한 단장을 마치고 나가

뜨끈한 곰탕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서점에서 책도 한 권 사고 난 후에야  차표를 끊었다.

그리고 아차……. !! 그에게 전화를 했다.

타지에서의 고독과 자유로움이 나름 괜찮았는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짜고짜 "언제 일어났는데 지금에야 전화를 하냐?" 였다.

치……. 했으면 됐지……. 성깔머리 하고는.

그러던 중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며, 잊어가던 지금의 남편을 극적으로 만난 것이다.

당시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한 오빠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오빠에게 이것저것을 싸서 전해주고 오라는 것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날을 잡아 학교에 갔다.

도서관에서 오빠가 있다는 자리를 겨우 찾아가니 잠시 출타(?)중. 이그.....!!

잠시 자리에 앉았다 일어서는데, 저쪽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헉……. 남편이었다.

이 넓디넓은 도서관, 같은 층, 같은 순간에 우리는 같이 일어나

눈이 마주친 것이다.

지금생각해도 아마 그 순간이 없었다면,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운명'이란 단어를 난생 처음으로 떠올렸던 그 상황.

그리하여, 지금의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같이 대전 그의 집으로 향했다.

늬엇늬엇 석양은 지고, 나는 남편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김동렬)에게 줄

처음이자 마지막의 선물 꽃 한 다발을 샀다.

지난번 그가 알려준 그의 아파트 앞.

용기를 내서 벨을 울렸고,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꽃을 들고 선 나를 놀란 얼굴로 내다보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동료에게 잠시 자리를 비우게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꽃을 주방의 작은 그릇에다 꽂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미안해요."

"...................."

"밖에서 기다려요, 갈게요."

순간, '짝!!'

내 왼쪽 볼에 작은 불이 켜졌다. 아프진 않았다.

"미안해요, 갈게요. 안녕히……."

총총히 걸어 문을 나왔다.

건물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아무 말 없이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정말 별 말없이 돌아왔다.


결혼을 했다.

20년이란 시간이 이리도 빠를까?

얼마 전 '김동렬'이라는 고약하게(?) 똑똑한 이시대의 멋진 논객을 만났다.

칼럼리스트로 냉철한 비판과, 확고한 자신의 이념적 신념에 가득 찬 그.

문득 내 짧은 인연 속 '김동렬'과 오버랩…….

외모든, 내모든 무쟈게도 닮았다.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도 못했던 그를

한번도 그리워해보지도 못한 그를

아련히 끄집어낸 '김동렬'과 꺼내진 '김동렬'

시간이 흐르고,

'그'보다도, '그 시절'이 문득 그립다.

가을인갑다.


 
다음검색
댓글
  • 08.09.03 21:34

    첫댓글 하. 고운 추억이로군요. 근사해요. 20년이란 시간 내내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여전히 가슴이 뛰시나봅니다. ^^ 20여년이란 세월을 보니 동일 세대인 것 같은데 차원이 정말 달라서.....

  • 작성자 08.09.05 16:50

    뛰는 가슴?? 없는데.....요. ^^*

  • 08.09.04 00:39

    좋은 그 시절에 나는 뭘 하고 살았을고..연애도 못해봤고 처음 선 본 사람하고 결혼했으니 그 추억도 없고..그래도 그 시절은 그립습니다.

  • 작성자 08.09.05 16:50

    그래도 그리운 시절.. 맞습니다.

  • 08.09.04 09:29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며 일ㅇㄱ게 될 줄이야!! 아, 운명이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군요. 남편께서 행운아시군요. 축하드린다고 전해 주세염.^^

  • 작성자 08.09.05 16:51

    축하 반납 할껄요. ㅋㅋ

  • 08.09.04 22:04

    재밌다. 근데, 김동렬 그 사람 정말 열 받았겠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지금 노래 '인연'이 흐르네요. 참 인연이란 게,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08.09.05 16:52

    인연이 있긴 있나봐요. 나에게는 세상편한 인연이고, 남편에게는 세상힘든 인연이긴 하지만, 인연은 인연. ㅋㅋ

  • 08.09.06 14:21

    아,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름이다 했더니 김동렬이란 사람이 '노짱토론방'의 그 김동렬? 에구...

  • 08.09.08 15:32

    한사람은 운명이고 또 다른 한사람은 숙명이었네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