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장. 몽골 고원
1. 춘래불사춘
상곡 上谷.
이곳만 지나면 서쪽으로는 이제부터 사막이다.
고비사막이 시작된다,
고비사막은 남서쪽에서 북동쪽까지의 사선 모양의 거리가 1,600Km이며,
북에서 남으로는 800Km에 이르는 광활한 넓이를 자랑한다.
*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漢道初全盛
朝廷足武臣
何須薄命妾
辛苦遠和親
한(漢)나라 국운 처음에는 융성했으니
조정에는 무신도 넉넉했다네
어찌 꼭 박명한 여인이
괴로움을 겪으며 먼 곳까지 화친하러 가야 했던가
掩涕辭丹鳳
銜悲向白龍
單于浪驚喜
無復舊時容
흐르는 눈물 가리고 단봉성을 떠나
슬픔을 삼키며 백룡대로 향하네
선우(單于)는 놀라 기뻐했으나
더 이상 옛날의 그 얼굴 아니었다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
- 동방규 東方虯 〈소군원 昭君怨〉 삼수(三首)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唐)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詩 〈소군원〉에서 ‘춘래불사춘’이란 고사 古事가 유래했다.
* 춘래불사춘의 허구성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과연,
싯구 詩句처럼 오랑캐 땅에는 풀과 꽃이 없었을까?
꽃과 풀이 없다면 유목민들은 그 많은 가축을 어떻게 키우고 길렀을까?
봄철 초원에는 수많은 꽃이 피어난다.
아니,
오히려 관중 關中이나 중원 中原과 비교해 더 많은 봄꽃이 만발한다.
교목 喬木이 없으니 풀들이 제멋대로 벋어 자라며,
이쁘고 다양한 꽃들을 지상 地上에 흐트러지게 마구마구 토해 놓는다.
물론, 척박한 토질과 낮은 기후로 인하여,
꽃의 크기는 중원에 비해 작고, 꽃송이는 화려하진 않지만,
아담하고 탐스러운 수많은 예쁜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봄철에는 꽃을 밟지 않고는 걸음조차 떼기가 곤란하다.
초원 전체가 거대한 화원 花園을 이룬다
그런데 왜?
동방규는 ‘무화초’ 無花草라 표현하였을까?
다만,
고원 高原의 초원은 봄이 오는 시기가 장성 長城 이남 以南보다 늦다.
곳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최소한 보름에서 한 달 이상 늦다.
장성 이남보다 위도가 높고, 고도가 높으니 당연히 봄이 늦게 온다.
아마 동방규는 그 기간에 초원을 보았거나, 아니면 사막만 본 것 같다.
아니면,
말로만 전해 듣고, 초원에는 아예 가보지도 아니한 자일지도 모른다.
아니,
실은 이것도 춘추필법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세외지역 歲外地域을 비하 卑下시키는 표현일 뿐이다.
胡地 無花草 호지 무화초가 아니라,
心志 無花草 심지 무화초다.
그들은 일찌감치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하여 놓았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꽃과 풀이 아예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 호지에는 꽃과 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초원의 꽃과 풀들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쁜 꽃들이 초원에 탐스럽게 많이 피어있어도 보기 싫은 것이다.
초원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기도 싫고, 인정하기도 싫은 것이다.
아름다운 꽃과 푸른 풀들을 보지 않으려고, 부인하고자,
사전에 이미 스스로 작정하고
마음의 문을 닫고,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근 상태다.
사실 여부 확인은 뒷전이고,
상대를 무조건 부정하고자 하는 심리적 양상 樣相이다.
색안경을 착용하고 상대를 응시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
어디선가 본 듯하다.
그렇다.
우리의 고대사가 담겨있는 고서 古書만 나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무조건 위서 僞書로 몰아붙이는 작자들이 많이 있다.
왜?
그 고서의 내용을 인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장했던 내용들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물거품을 지키고자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입으로는 침을 튀겨 가면서,
목숨을 걸고 위서로 몰아간다.
구우일모 九牛一毛의 사소한 것을 트집 잡고는
위서라 주장한다.
중요한 핵심,
노른자위는 “내 몰라라” 하면서
껍질만 보고 또는, 담겨진 그 바구니를 향해 트집을 잡고 있다.
“얼룩이 있네, 실금이 나 있네”하며 극렬 極烈하게 공격하는 것이다.
유구한 세월을
모화사상으로,
근래에는
식민사관으로,
인하여,
포장지는 얼룩이 지고, 껍질은 금이 나 버렸다.
그러면,
포장지의 얼룩은 우리가 지워야 하고,
실금은 전문가가 보수하여야 한다.
그런데 ‘전문가’라 자청하는 그들은
오히려,
얼룩진 포장은 찢어 버리고
실금은 망치로 부숴 버린다.
왜?
지금까지 저들이 저술하고 발간한,
논문이나, 서책에는 기록되지 않았던 사실 史實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 내용들을 부정하고 있었다.
고대사를 연구하고, 사실을 발표하는 재야 사학자들을 폄하시키기에 바빴다.
그러니, 그들은 극구 부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위서라고 주장했던,
그 고서에 서술된 기록들이 사실로 입증되어 버렸다.
고서에서 기록된 유적들이 바깥세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강단 사학자들이 부정하였던 고대의 찬란한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까지 저들은 배달국은 물론, 단군 조선마저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굴된 유물들은 그들의 주장과는 전혀 상반 相反된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학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새롭게 연구하고 출발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딴 소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다.
이제 할 말이 없으니,
가르키는 달은 외면하고,
그 손가락을 보고
짧으니, 휘어졌니, 하며,
생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강단의 사학자들은 처음부터
고서를 올바르게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강단의 사학자들,
그들의 심리 상태와 같다.
동방규가 쓴 시의 허구성을 알면서도
그들은 그 시구 詩句를 찬양하고, 현재도 즐겨 인용하고 있다.
그 허구성 虛構性에 동조하여,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고착 固着화 된 악마적인 심리가 작용한다.
같은 동조자 역할을 자청 自請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꽃을 제대로 바라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 102.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