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품위 있게, 때로는 편안하게. 요리연구가 메이와 그녀의 숙모이자 차 스승인 안영주 씨의 같은 듯 다른, 차를 즐기는 방법.
요리연구가 메이의 숙모이자 다례사인 안영주 씨가 우리 차에 관심을 갖게된 지는 10년이 넘었다.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영국에서 생활하던 중 한 전시의 오프닝 파티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곳에서 단아한 모시한복을 입은 여인이 차를 따라주는 모습에 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남편도 전시를 열 때가 있는데 한국식 티파티를 오프닝 파티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남편의 전시회가 있을 때면 한쪽에는 와인, 한쪽에는 티 테이블을 만들어 오프닝 파티를 열곤 했어요. 오시는 손님마다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한국 차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개인 선생님은 물론 대학교 차 연합회 등을 통해 차를 배우기 시작했다. 급수가 있는 다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렇게 차를 배운지 10여 년. 이제는 배움에서 멈추지 않고 즐기는 데 더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
“한국에서는 다도인을 다례사라고 칭하기도 해요. 일본의 다도가 형식이 엄격하고 까다롭다면, 한국의 다법은 일본의 다도보다는 다소 편안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한 예절이 다법의 기본이거든요. 하지만 10년 정도 한국 차를 공부하고 나니 다법도 중요하지만 차를 가까이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안영주 씨의 조카이자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메이스테이블의 대표 겸 요리 연구가인 메이의 요즘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차(茶)’다. “다도를 전문적으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숙모님 댁에 가서였어요. 모처럼 많은 친척들이 모인 자리였는데, 숙모님이 한국 전통차를 대접해주셨거든요.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보기 좋더라고요.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차를 음미하니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웃음 또한 이어지고요. 왠지 마음도 정갈해지는 것 같아 자세마저도 바르게 곧추세우게 되더군요.”
메이의 경우 한국 차로 다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평소 일본 요리가 전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차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도 깊어져 갔다. 이에 안국동에 위치한 일본 다도 종가인 우라센케의 한국사무소 문을 두드리게 되었단다.
“처음 우라센케의 수업을 받고는 어리둥절했어요. 차를 우리는 법이나 따르는 법 등을 알려주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 설명은 전혀 없으시고, 무릎을 꿇고 앉아 선배들이 차를 따르는 모습을 지켜보게만 하셨어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죠. 몇 번의 수업을 듣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일본의 다도는 격식을 중요시하는데 그 격식이 한 편의 연극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차를 마시기 전에 하는 인사말과 차를 먹고 난 뒤 내뱉는 감탄사도 개인의 주관적인 잣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차를 마시는 이들이 합을 맞춰 절도 있게 내뱉는데요, 그 합이 맞을 때의 희열감이란 말로 설명이 다 안 됩니다.
일본 차의 격식 즉 다도를 알면 찻상의 정성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다실에 걸린 그림 한 점부터 꽃병에 꽂힌 꽃 한 송이, 다기의 아름다움까지, 차를 대접하는 이의 심미안과 함께 차를 대접하는 이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느껴져요. 또한 반복적인 격식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답니다. 맛있는 차도 중요하지만, 차 세리머니를 통해 나를 갈고닦음은 물론 차로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알게 되었어요.”
찻상의 운치와 맛을 배가해주는 송화다식
“제가 제일 좋아하는 때는 피곤한 하루, 일상을 마치고 들어와 찻상을 마주할 때예요. 차향을 음미하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고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는 시간이지요. 10년 정도 차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격식에 얽매이지 말자는 거예요. 차를 배운 지 5년쯤 되었을까, 다기에 굉장히 욕심이 나더라고요. 찻상도 물론이고요. 한 10년쯤 하니 물욕은내려놓고 정말 차를 즐기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차 생활을 하다 보면 같이 차를 즐기는 다례인끼리 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분들과의 차 생활도 즐겁지만 가족 또 지인과 폭넓고 편안하게 차를 즐겨야겠다는 생각 또한 많이 들더라고요. 한국 차의 매력은 튀지 않으면서 은은하다는 것이에요. 때문에 한번 차를 맛보면 쉽게 빠져들 수 있죠. 제가 좋아하는 우리 차는 녹차와 발효차인데 발효차의 경우 80% 정도 발효된 황차를 즐겨요.
녹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차예요. 좋은 다원에서 농사지은 차를 구해 마시면 가장 좋겠지만, 비용적으로도 그렇고 구하기도 어려워 처음 차를 접하는 이들이라면 오설록과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를 추천하고 싶어요. 대중적인 차 브랜드에서 나는 녹차도 충분히 맛이 깊고 좋은 향을 음미할 수 있어요. 차를 공부하고 알면 알수록 더 맛있게, 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곁에 두고 행복하게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향이 은은한 우리 차는 다식(茶食) 없이 먹어도 되지만, 송홧가루를 이용해 만든 다식을 함께 먹어도 좋아요. 아니면 찐 고구마를 예쁜 모양 틀에 찍어 곁들이거나 혹은 곶감도 예쁘게 말아 잘라내도 좋고요. 준비하기 어려운 음식이 아닌데도 차와 함께 내면 찻상의 운치와 차의 맛을 배가해 주는 기특한 다식이랍니다.”
송화다식
기본 재료 송홧가루 50g, 꿀 1~2큰술
만드는 법
1 송홧가루에 꿀을 조금씩 넣어가며 포실포실하게 반죽한다. 이때 꿀마다 농도가 다르니 양은 상황에 맞게 조절한다.
2 ⓛ의 반죽이 고루 잘 섞였으면 다시 틀에 넣고 꼭꼭 눌러 모양을 낸다. 골고루 잘 섞이면 다시 틀에 넣어 꼭꼭 눌러 모양을 내준다. 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틀에 랩을 깔거나 참기름을 살짝 발라준다.
꽃처럼 어여쁘고 달콤한 와가시와 라쿠간
“일본식 다도는 찻숟가락을 잡는 위치며 차와 사람 사이의 간격까지 모든 것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요. 게다가 손님에게 모든 아름답지 않은 행위를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다완이나 찻잔을 씻는 행위 등은 ‘미즈야’라는 방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만큼 엄격하게 격식을 따지지요. 하지만 그 절제미 속에서 차를 대접하는 이를 배려하는 동시에 나를 갈고닦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일본식 다도의 매력인 것 같아요.
메이스테이블의 한 켠에는 언제든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차를 즐길 수 있는 차탁이 있어요. 남편이 직접 만들어준 차탁으로, 일본에서 사 온 차솥을 올려 끓일 수 있도록 한 특별한 테이블이죠. 필요에 따라서는 다이닝 테이블을 붙여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어요. 차를 마시기 전에는 오래된 녹차나 말린 꽃, 아로마오일 등을 이용해 향을 피우고 다구와 함께 계절 꽃을 올려요. 여기에 차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다식을 곁들이죠. 이때 곁들이는 다식으로는 와가시(화과자)와 라쿠간 등이 있어요.
와가시는 앙금에 찹쌀을 넣어 만든 일본의 대표적인 디저트로 말차와 잘 어울리는 티푸드 중 하나입니다. 라쿠간은 고운 설탕가루에 찹쌀가루 그리고 고급 색소를 섞은 다음 틀에 찍어 만드는데, 일본에서는 매화꽃이 필 무렵에 거둔 쌀가루를 사용해 만들어요. 그래서 일본인들은 쌀가루라는 표현 대신 매화 가루라고 부르죠.
라쿠간 역시 달콤하면서도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아 차와 함께 먹기 좋은 음식 중 하나예요. 요리연구가이다 보니 차는 물론 다식에도 관심이 많아요. 요즘은 일본 차는 물론이고 한국 차에 대한 관심도 많아져 숙모님에게 본격적으로 배울 생각이에요. 차를 마시기 위해 꼭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는만큼 더 즐길 수 있는 것이 차이기도 하니까요.”
와가시(화과자)
기본 재료 흰 앙금 200g, 찹쌀가루·설탕 4g씩, 물 1큰술
만드는 법
1 볼에 찹쌀가루와 물을 넣고 잘 섞은 후에 설탕을 넣어 섞는다.
2 ⓛ에 랩을 씌워 전자레인지에 1분가량 가열해 반죽을 익힌다.
3 수분감이 적당한 앙금에 ②를 넣고 주걱으로 저어가며 식혀 앙금에 남아 있는 수분을 날린다.
4 마른 행주 위에 ③의 앙금을 올리고 골고루 치대서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5 곱게 치댄 앙금은 그대로 행주에서 식힌 후 랩에 싸둔다.
6 ⑤에 색소를 넣어 원하는 색을 낸 다음 모양을 낸다.
라쿠간
기본 재료 와산본(일본 전통설탕) 50g, 볶은 찹쌀가루 1큰술
만드는 법
1 와산본이라는 일본전통 설탕을 고운 찹쌀가루에 고루 섞는다. 색을 내기 원하면 색소를 약간 넣어 섞는다.
2 원하는 틀에 ⓛ을 넣어 모양을 내고 굳힌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