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4일 막을 올린다. 지난해 여름 도쿄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이어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신종 코로나(COVID 19)의 감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 유력한 메달리스트들이 코로나 확진 판정으로 출전을 포기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개막 직전에 벌어지면서 메달 레이스가 엉켜버릴 우려도 있다.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을 포함해 러시아 동계올림픽 대표단(공식적으로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선수단)은 1일 베이징에 도착, 연습에 들어갔다. '베이징 올림픽' 코너는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러시아 출전 선수들의 선전과 메달 획득. 그 뒷 이야기 등을 다룰 계획이다.(편집자 주)
'신기록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러시아 여자 피겨선수 카밀라 발리예바는 베이징에서 올림픽 최고의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개막을 하루 앞둔 3일에는 발리예바가 동료 언니인 안나 셰르바코바와 함께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Vogue)에 화보 모델로 나선 사진 몇장이 러시아 스포츠 매체에 공개됐다. 깜찍한 10대 두 스타의 화보는 뭇 남성들의 눈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 화보를 찍은 발리예바와 셰르바코바/사진출처:보그
발리예바와 셰르바코바, 보그 잡지의 화보에 참여/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발리예바는 2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첫 훈련을 소화했다. 그녀는 쿼드러플(4회전) 살코, 쿼드러플 토루프 등 고난도 점프 기술을 점검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쿼드러플 플립을 시도하다 넘어지기도 했다.
발리예바는 이번 대회에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공인 세계기록(쇼트프로그램 87.42점, 프리스케이팅 185.29점, 총점 272.71점)에 도전한다.
그러나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경기를 하루 앞둔 3일 발표된 러시아팀의 출전선수 명단에 그녀가 빠졌다(?). 4~7일 열리는 단체전은 남녀 싱글과 아이스댄싱, 페어스케이팅 등 4개 종목을 겨뤄 순위를 정하는 경기다. 러시아 측은 이날 아침까지 발표해야 하는 남자 싱글과 아이스댄싱, 페어스케이팅 3종목 출전 선수만 공개하고, 여자 싱글 부문을 뺐다. 여자 싱글은 5일 아침 5시까지 발표하면 된다.
러시아피겨스케이팅연맹,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출전 명단 확인/얀덱스 캡처
여자 싱글에 '당연히' 발리예바가 나설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갈 수도 있다. 현지 언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여자 싱글 부문에 출전한 3명의 선수 중 성적이 가장 뒤떨어지는 알렉산드라 트루소바를 내세울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명예 감독인 루드밀라 벨리코바는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가 발리예바를 트루소바로 바꿀 것 같다"며 "트루소바가 쇼트 프로그램에서 안정적인 연기가 가능하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장기인 쿼드러플 점프를 5개 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안나 셰르바코바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물론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나란히 금, 은메달을 딴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도 베이징에 왔다. 자기토바는 러시아 국영 채널 '러시아-1'의 방송 해설자로, 메드베데바는 대표팀 홍보대사 자격이다. 또 아이스 에이지(Ice Age) 쇼에도 참가한다.
마이크를 든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금메달리스트 자기토바/사진출처:@아자기토바 인스타그램
두 사람의 인스타그램은 러시아인들에게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자기토바는 2일 '러시아-1 방송'팀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각자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든가, 두사람이 가운데 칸막이를 둔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장면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 적용되는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직접 확인하는 기회라고나 할까?
반면 메드베데바는 자기 방에서 로봇이 배달해온 음식을 제대로 받지 못해 당황하는 동영상을 1일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버튼을 잘못 누른(?) 탓인지 그녀가 음식을 꺼내지도 않은 상태인데, 로봇이 그냥 돌아가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당황한 그녀가 "아, 잠깐 잠깐, 아직 음식 안꺼냈어. 돌아와, 얼론"이라며 애타게 부른다. 그러나 로봇은 들은 채도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버렸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음식을 요청했다.
음식 배달 로봇(위)와 음식을 다 꺼내지 않은 채 문이 닫혀 다시 열리지 않는/사진출처:@j메드베데바j 인스타그램 동영상 캡처
메드베데바, 베이징 올림픽서 (주문한) 음식을 (로봇으로부터) 왜 못받았는지 보여줬다/얀덱스 캡처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대표팀은 1일 도착과 함께 받은 코로나 PCR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숙소에 짐을 풀었다. 하루를 격리한 뒤 자기토바는 방송팀과 경기장을 둘러봤고, 선수들은 훈련에 나섰다.
이때 현장에서 목격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아주 어색한 장면이 화제에 올랐다. 우크라이나 피겨 선수 이반 쉬무라트코가 러시아 기자들의 질문(러시아어)에 영어로 답변하기로 한 것.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을 올림픽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게 현지의 지적.
다만, 러시아의 한 기자가 쉬무라트코에게 "영어로 답변하고 싶은 마음이 우크라이나 체육부의 권고와 관련이 있는지"를 러시아어로 물었고, 그는 영어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일(피겨스케이팅)을 잘하는 것 뿐"이라고 답변했다. 지난 2019년부터 우크라이나 대표로 활동하는 전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아나스타샤 샤보토바는 아예 러시아 언론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올림픽경기장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러시아어를 피하고, 러시아인 옆에는 아예 설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도쿄 올림픽에서 높이뛰기에서 나란히 메달을 딴 러시아-우크라이나 선수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가 우크라이나에서 뭇매를 맞은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에 도착한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들/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사진 촬영과 관련해 SNS에서 시끄러운 일은 또 있었다. 올림픽 선수단을 태우고 온 항공기 조종사들이 여자 피겨 선수인 셰르바코바와 트루소바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조종사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 코로나 확진시 올림픽 출전권이 날아갈 운명의 두 선수 옆에 왜 마스크를 쓰지도 않고 포즈를 취했느냐고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선수단 항공기 조종사 역시 비행 전에 정기적으로 PCR 검사를 받은 상태여서 걱정할 게 없다는 게 현지 언론 보도다.
4일 피겨 단체전이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러시아 대표팀이 상대적으로 너무 늦게 베이징에 도착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러시아 선수들은 중국과 거의 같은 시간대(1시간 차이)에 있는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에 훈련 캠프를 열고 적응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미국이나 캐나다 선수들보다 한참 늦게 도착해도 현지 적응에 문제가 없다는 게 선수단측의 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