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3.9.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본 문 : 사도행전 16 ; 16 - 34
제 목 :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258.261,
할렐루야!! 한량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오늘 이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리는 가족 여러분과 또 은혜를 사모하여 주님 전에 찾아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참 세월이 빠릅니다. 어느덧 3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절기상으로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난주에 지났습니다. 가끔씩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려도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세상을 일컬어 너나 할 것 없이 또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건 불신자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말세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마지막 말세를 당한 이때에 우리가 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하나님의 착하고 충성된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요즘 세계 곳곳에서는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진과 해일이 발생하여 수만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부상을 당하는 일들이 그치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24:8)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런가 하면 세계적인 예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금년 2025년에 세계적인 전무후무한 재앙이 3월달에 또는 5월달에 또는 7월달에 일어날 것이고 일본 같은 나라는 나라전체가 바닷물속으로 잠겨 나라가 없어질 것이라는 끔찍한 말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비가 오지를 않아서 세계적인 곡창지대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여 기근으로 인하여 전 세계가 양식 때문에 초비상 상태입니다.
또 요즘 환경공해로 인하여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오존층의 파괴로 인하여 지구의 온도가 상승됨에 따라 북극과 남극의 빙산들이 녹아서 바다의 해수면이 올라가 태평양 가운데 있는 섬나라들은 머지않아서 나라 전체가 물에 잠겨 나라가 없어져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동해안에서도 백사장들이 점점 침식되어가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분쟁과 테러가 그치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세계 여러 나라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왜 일어나야 합니까? 극도의 이기주의와 국수주의자들 때문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세계의 지도자들은 이 지구상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또 테러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모여서 회의도 많이 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테러와 분쟁은 끝일 줄을 모르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단11:27)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라”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2천 년 전에 오늘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아시고 예언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마24:6-8)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러므로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24:16-18)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러면 우리가 도망하여 피할 수 있는 산이 어디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인을 하고 도피성으로 도망을 하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때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갈 때 서해안에 있는 안면도에 가면 산다고 그곳으로 피난들을 많이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세에는 우리 성도들이 피할 수 있는 곳은 영원한 피난처가 되는 교회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선교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이를 막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지방의 사람이 마게도냐 지방에 와서 복음을 전해 달라는 간절한 청을 하였습니다.
이튿날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마게도냐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항해를 하여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에 닿아서 거기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까닭에 그곳에 가면 굉장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시련을 당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련은 예배할 처소가 없었습니다. 그러든 중에 루디아가 예수를 믿고 영접하여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을 하여 루디아의 집이 복음을 전하는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시련이 닥쳤습니다. 빌립보성에 귀신이 들려서 점을 치는 한 계집종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바울 일행을 보고 계속 그를 따라다니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고 떠들고 다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귀신(사탄)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그 여종은 점을 쳐서 주인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었습니다. 바울과 신라는 이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그가 제정신을 차리니까 더 이상 점을 못 치게 되고 그의 주인은 돈을 벌지 못하게 되자 바울과 신라를 고소하였습니다. 빌립보성의 관원들은 재판도 하지 않고 바울과 신라를 마구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바울과 신라는 옥에 갇혀서도 태연하게 찬송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모두 열리고 쇠고랑이 모두 풀렸습니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간수가 깨어보니 옥문이 모두 열렸습니다. 죄수들이 모두 도망을 친 줄 알고 간수는 칼을 빼어 자결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이 소리쳤습니다. “여보시오 죽지 마시오. 우리는 도망가지 않고 다 여기 있소” 당시의 법에는 죄수가 도망을 치면 죄수들을 지키던 간수가 대신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수는 자결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간수가 등불을 들고 들어가 보니 바울과 신라는 쇠고랑이 모두 풀리고 옥문이 모두 열렸는데도 태연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간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간수 생활 수십 년간 이와 같은 일은 처음입니다. 누구든지 갇히게 되면 어떻게 하든지 빠져나가려고 하고 도망을 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은 본능입니다. 그런데 옥문이 다 열렸는데도 쇠고랑이 다 풀렸는데도 도망을 가지 않았습니다.
<예> 오래 전 흑백 텔레비죤을 보든 시절 TV에서 ‘뿌리’ 라는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쿤타킨테는 백인들에게 잡혀서 노예로 팔려 다니는데 그는 오르지 도망을 하여서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망을 치다가는 붙들려서 매를 맞고 나중에는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발가락을 모두 잘려도 또 도망을 칩니다.
또 ‘빠삐용’ 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 영화의 주인공인 빠삐용은 도망을 치는 것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바다 가운데 무인도의 수용소에서 탈출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바울과 신라는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자결을 하려고 하는 간수를 제지하였습니다. 간수는 이 사람이야말로 보통 사람이 아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전하는 하나님과 그의 전하는 예수가 참된 신앙인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신라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간수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헛된 삶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사회의 부패와, 정치적 부패 등등 모든 것에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 말은 모든 인생들의 질문이며 당면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울과 신라는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2장 37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모든 사람이 마음이 찔려 사도들의 발 앞에 엎드려서 묻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 한 부자 청년이 찾아와서 영생의 길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말씀하시기를 (마19:21)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다릅니다. 간수는 바울의 말씀대로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었고 또 베드로의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을 받고 또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부자 청년은 예수님 앞에까지 와서 영생의 길을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길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신라를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고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 가족이 모두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예화가 아닙니다. 비유도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그 후 이 간수는 루디아와 귀신들렸던 여종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는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간수가 바울에게 물었던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입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 문제는 모든 인류가 해결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종교를 통해서 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에 보면 “큰 재난과 파멸에서 구출 받는 것” 이라고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출해 주는 것 또는 화재가 났을 때 용감한 소방관이 불 속에 들어가서 아이를 구출해 내는 것도 구원입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서 쓰러지기 직전에 좋은 친구가 돈을 대 주어서 사업의 실패에서 구출 받는 것도 구원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육체적인 것, 물질적인 것의 구원보다 가장 시급하고 귀중한 것은 생명의 구원이며 영혼 구원입니다. 이 영혼 구원에 대해서도 각종 종교가 자기네들 나름대로의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도 이 구원의 교리야 말로 그 어떤 교리보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고 또 그 말씀을 통하여 이 시간 은혜 충만하게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때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바울이 간수의 질문에 대답을 하였습니다.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독교의 구원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영생에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한가지의 길이 아닌 오직 한길 유일(唯一)한 길입니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자유주의 사상에 물든 진보적인 신학자들이 “구원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고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여 교계에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2:5-6)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구원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고행이나, 수양이나, 명상, 도덕, 제도, 이런 것으로 얻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던 강도 한사람은 그가 살아오는 중에 아무런 공로가 없었어도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주로 믿었기에 즉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밝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아 멘>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는 말씀을 듣고서 많은 청중들이 어찌하면 되겠느냐고 가슴을 치며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 인류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공범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베드로의 대답은
(행2:38-41)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회개입니다. 회개 없이 청결할 수가 없고 청결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도 요단강에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나니라” 고 외쳤습니다. 더러운 육체, 죄악의 몸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가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아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눅19:9에는 삭개오가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철저히 회개할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라고 인정을 하여 주었습니다. 회개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마3:8-10)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회개는 지난날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잘못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믿었으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3장 1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니고데모라고 하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와서 구원의 길을 물었습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 하시자 니고데모가 다시 말하기를 사람이 어떻게 모태에서 다시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그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난다 하는 것은 변화를 말합니다.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리는 이를 성화(聖化)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하게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지난날의 모든 죄악을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분명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회개를 하고도 변화가 되지 못하였다면 그의 신앙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이 변하고, 믿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생활이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가 자신의 의지, 또는 이성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될 수가 없습니다.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겁하고 겁쟁이며 두려워 떨고 있었는데 오순절에 120명의 신도들과 같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서야 변화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빛을 통한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서야 바울로 변화가 되어 이방 나라에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성령을 받고서야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 주소서” 라고 응답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지식으로 예수를 믿다가 바울이 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19:2) 고 물을 때 저들은 성령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바울이 저들에게 안수를 하니 모두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뜨거운 교회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구원 문제는 모든 인류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천지 만물 중에 오직 교회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이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죄를 회개하여 용서함 받고,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이미 예수를 믿고 나왔으니 이제 철저히 회개하여 성령 받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고후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미 이와 같은 단계에까지 들어간 성도도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제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되어지는 성도가 되어서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영생의 나라에 다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