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다시 마차가 달려 얼마간 떨어진 곳에 오자. 황칠이 긴장을 풀고 말했다. "바퀴자국을 유심히 살피는 걸로 보아 삼백근 무게가 실린 것인지 확인했던 게 분명해" 보수인이 대꾸했다. "황금250근에 보석 50근이면 황금 500근 가치는 넘으니 당연 발칵 뒤집어졌겠지. 창룡방이 많이 곤란해졌을걸" 무이가 끼어들어 물었다. "금은 제쳐놓더라도 당신네 청향장주는 많은 이득을 챙기겠군?" 보수인이 정색하고 차겁게 말했다. "...우리 장주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용납치 않겠네! 직접 뵌 이후엔 상관없지만" "분명 보형은 장주님이 많이 신뢰하는 일꾼이겠어" 황칠이 중간에 끼어들며 말리듯이 나섰다. "나는 당연 아니지만 우리 아우는 확실히 그러하네" "혹시...둘이 진짜 친형제 사이 아냐?" 황칠과 보수인이 아연해지며 서로를 보고는 심각해졌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생각은 아니고..느낌이.." 보수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황칠은 말문이 막혔다. "난 형제도 없는 천애고아지만 진짜 형이나 동생이라면 이렇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직감이로군. 하긴 처음에 난데없이 금룡표국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네. 어떻게 그런 유추가 가능한 것인지, 큰가게 작은 가게 몇마디만 나누었을 뿐인데 그런 비약을 하다니..시정에서 닳고 닳은 나건만 무이 자넨 적어도 날 찜쪄먹는 빠끔이야" "빠..미라는 것은?" "눈치가 도사 뺨친다는 말야. 그래. 우린 친형제 사이야. 우리가 형제지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서 다섯도 안될 거네" "청향장주는 당연히 알겠고.." "장주님은 함부로 언급할 분이 아니라고 했잖아!" 황칠이 나섰다. "수인아. 이해해라. 갓 하산한 무노제라는 걸 감안해야지. 백지상태인데 억지로 가르치겠다는 것은 무리잖아" "아니아냐. 이제보니 강호에서 십년도 더 굴러먹은 능구렁이..구미호보다 더한....." "네 추측..계산이 어긋나서 열도 나겠지만 무노제 입장도 헤아려줘야지. 넌 지금 내지 않아야 될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다" "내.내가 신경질을..!" "무노제는 우리가 보가인지 황가인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란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보수인이 숨이 막힐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작은 마을 객잔앞에 수레가 서있다. 그안의 탁자에 무이와 황칠이 음식을 먹는데 보수인은 입맛이 없는 표정으로 차만 마셨다. 황칠이 포만감에 배를 두두리고 무이는 담담히 먹는 중이다. 보수인이 차분히 말했다. "좋아. 인정하지. 무현제를 얕보고 쉽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야. 함부로 대한 것도 같고.." "내 동생은 어릴 때부터 머리 좋기로 소문난 인재네. 아니 천재지. 아는 사람은 모두 알아. 그래서 상당한 재벌인 청향전장에서 어릴 때부터 영입해서 중요하게 쓰이는 터라네" 왠지 신경질적으로 변한 보수인이 말을 가로채었다. "하지만 단한마디도 거짓을 말하진 않았네. 난 스스로 떳떳해. 무노제를 순진하게 봤기에 인도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네. 그런데 나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알고 배신감에 울컥했던 것 같아" "보형은 힘든 말을... 황형. 황형이 보기에도 내가 똑똑해?" "아니. 전혀 안 똑똑해. 똑똑이란 무노제에게 쓸말이 아니지. 실제는 무식무지할지도.." 보수인이 발끈했다. "화.황형!"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 무슨 눈가리고 아웅이냐. 무노제의 실체는 나도 장담할 수 없지만..상식밖의 직관이랄지 직감 혹은 예감, 헌데 그런 재능은 수련이 아니라 타고 나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형. 지금 무슨 횡설수설이야?" "내가 뭔 말 하는지도 못 알아먹다니 넌 확실히 흥분상태 같구나" "모두 알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내가 언제 흥분하는 것 봤어?" "못 봤지. 그런데 오늘 보다니 헛것을 보는 것만 같아서 신기할 정도구나" 보수인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갈길이 머니 다 먹었음 이만 출발합시다"
관도를 달리는 수레에 탄 세사람. 마부석의 황칠이 장광설중이었다. "제갈량이 그런 셈이지만 아무리 똑똑하고 계산이 밝아도 하늘의 뜻이 함께 하지는 않지. 반면 사마의는 어떤가? 박한 말이지만 운이. 혹은 재수가 좋아서 천하는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지. 유방을 비롯해 그런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네" "하여 난 주장하네. 실력보다는 재수다. 운이다. 재수야말로 실력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이 따르는 놈에겐 못 당한다. 요령이나 편법을 말하는 게 아니야. 우연일지언정 재수있느냐 없느냐로 승부가 갈려지거든" 보수인은 차분해져 묵묵히 듣고 있고 무이는 다른 생각중인 표정이었다. "천하의 모든 패자는 재수가 없어서고 모든 승자는 재수가 있어서다 그렇다면 재수도 수련하여 터득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닐까? 라고 나는 모색해왔던 참이었네" "비약하자면 오늘 우리들은 엄청 재수가 있었던 것이네. 은자 천만금이야 논외고 우리 형제는 현제 같은 기인을 만나서 그렇고 노제 또한 우리 형제 같은 귀인을 만났으니 이야말로.." 황칠이 보수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우야. 왜 분위기 깨는 논평이 없느냐?" "헛소린 많아도 반쯤은 솔깃해지니 마땅히 깰 의욕이 없네요" "무이..유일무이 둘도 없는 노제는?" "형들의 목적지와 나의 목적지가 다르니 헤어지는 것이 좋겠어" "그, 그게 무슨 재수없는 소린가? 노젠 난계와 항주를 거쳐 소주..개봉까지 간다면서" 보수인도 놀란 얼굴이 되었는데 무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행은 불편하고 번거로움이" "아무 불편함 없게 해주겠네! 우린 벌써 생사를 같이 했을만큼 큰일도 벌인 셈이고 공동의 적을.." 무이가 행낭과 지팡이같은 걸 침착히 챙겨들며. "의무와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어" 다급해지는 표정의 보수인 "무이, 내가 조금 예민하게 굴어서 불편해진 것이라면 사과하네. 허니 공연히" "불편한 것 없고 너무 편한 게 마음에 걸릴 뿐이야. 보형말대로 우연이 아닌 운명의 만남이라면 또 만나지겠지" 하더니 홀연 몸을 날려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무이였다. --이건 내 전쟁이야!--
벌써 뒤로 멀어진 무이를 보며 멍한 표정의 두 형제. "허허헐! 정말 희한한 종자로구나. 편해서 마음에 걸리다니..보다보다.." 보수인이 고개를 저었다. "형은 무이의 이력을 듣고도 그래? 무인도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살았던 무이야.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이 일해야 했을 터인데 우리의 호의가 편할 리가 없잖아. 우리가 어떤 타산인지는 둘째치더라도" "수아야. 무이란 이름대로 녀석은 둘도 없는 특별한 인간이다. 그렇긴 해도 네 중심을 잃어선 안되는 거다" "형! 내 중심은 언제나 잡혀있어. 난 단 한순간도" "그래서 지금 이순간도 형이냐?" "...오, 오빠..오늘 유난한 거 알아?" "그래. 넌 무이가 네가 여자였다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이 될 것 같니? 나이도 한참 어리고 네 잘난 얼굴을 보면 뭐랄 것 같니. 반해서 정신 못차릴 것 같니?" "오~빠!" "듣기 싫어도 들어라. 내말은 결국 너도 여자라는 말이야. 그동안 사내다운 남자를 못 만나다가 이제야 남자가 눈에 들어와 반한 건지 몰라도 내말 더들어! 놈은..아니 무이는 그만큼 대단한 놈이야. 어쩌면 우리 상상이상의 거인일지도 난. 솔직히 장주님을 떠나 무이의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란다" "그러니 무이를 빨리 장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그게 힘들 경우 장주님을 무이쪽으로 끌어들일 방편은 없을까?" "오, 오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얏. 비약도 정도가 있어" 말에 채찍을 가하는 황칠 “하아“ "행로난 부재수 부재산(인생길 험한 것은 물길에도 산길에도 있지 않고)" 마차 멀어지며 ‘只在人情反覆間 지재인정반복간 오직 변하는 사람 마음 안에 있네’
수많은 무사들이 항구의 거선 주변에서 경비하고 있었다. 배안의 사건 현장에 10여명의 전문가들이 시체를 검시하고 분석중이었다. 30대의 의원 같은 무사가 40대의 천기전주 서재명에게 말했다. "탄자결이나 옥로지극기공의 흔적 같기도 하고 헷갈리는군요" 또한 분석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창.?구혼조?..착정겸?" 깡말라서 더욱 예리해보이는 서재명이 수염도 안 기른 턱을 신경질적으로 쓰다듬었다. "어부가 쓰는 작살이고 배에서 두루 쓰는 갈고리다. 광해에서 연락이 왔는데 형가3조가 이름도 없는 어부 놈에게 전멸 당했다" 의원 세명을 비롯 수사조 네명이 경악하는 표정이 되었다. "마. 맙소사!!" "어부 놈이 즉각 육지로 나간 것도 확인했고.." 천안전주 표중선이 끼어들었다. "시기는 맞아도 놈이 어떻게 이번 운송 건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무림맹도 모를 일이었잖은가?" "홀로 무인도에서만 살았다던데 나도 믿어지지가 않네. 분명 우리 내부에서 정보가 유출된 거야. 형가대 뿐 아니라 섭정,전제대도 투입되었지만 놈 혼자라면 모를까 분명 상당한 내통자가 있을 텐데..차칫 골 아파질 가능성이 있네" 30대의 분석조장이 찌푸린 얼굴로 대답했다. "의심 가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만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지를 곳이라곤 통" 서재명이 인상을 더욱 찌그러트리며 말했다. "극소수가 독단으로 저지른 짓이야. 이번 기회에 방 전체를 대대적으로 쇄신할 필요가 있다. 하여간에, 자. 놈은 여기서 물건을 강탈했어. 어느 쪽으로 갈까? 남해로 돌아갈까. 아니면"
"항주를 비롯 수많은 관도나 운하가 있으므로 막막하긴 합니다만 처음에 형가대가 왜 천리독행을 쫓아 먼 남쪽바다까지 간 것인지요?" "그건 기밀이므로 나도 알 수 없다. 천리독행이 무인도에서 죽은 것은 확인되었는데 수급도 곧 볼 수 있을 거다" 표중선이 다시 서재명에게 물었다. "초가는 주로 하남을 주무대로 종횡하던 인물 아닌가? 놈이 초가로부터 뭔가 말을 들었다면" "벌써 따로 여러 곳의 사람들이 투입되었네만. 하여간 놈은 젊은 놈이야. 머리가 길고 무기도 특별한 편이고" "어부놈이 우연히 초가를 만나 얽혔다고 하더라도 놈이 어떤 원한이 있다고 우리 같은 대방파의 급소에 칼을 들이댄 것인지 이해가 안가서" "형가대 손이 거칠잖아. 이웃의 섬마을에 심한 짓을 저질렀던 것 같아. 심한 정도가 아니겠지. 분명 무고한 이를 여럿 살상했을 걸세. 좁은 바닥이니 피해자 일부와 범인이 막역한 사이였을 가능성이 많네" 서재명이 배위로 오르는 계단을 걸으며 말했다. "추후 좀 더 자세한 보고가 오겠지만 그리 신통한 정보는 없을 것 같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이 튀어나온 절정고수라니 황당해서 원" "절정....?" "절정이 아니면? 형가대나 섭정대가 그리 쪽도 못쓰고 깨질 리가 없잖나. 그런데 우린 놈의 무공종류도 모르고 이름마저도 모르는 판이라니" "하긴 아무리 사건이 중차대해도 방의 핵심인 천기전과 천안전 전체가 투입되어 이 난리법석이라는 것은 나도 마음에 안 들어" "우리야 그렇다쳐도 만무전의 마검장도가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군" "클클클 그래도 전체방의 재정을 책임진 천상전보다야 덜하겠지. 방의 반년치 예산을 홀랑 털려버린 셈이니.." "그런 큰 재물을 현금화할 전장이나 표국등의 동태에 눈을 크게 떠야 할 것 같네"
산 아래 상당한 크기의 도시 전경 마방에서 무이가 말을 흥정 중이었다. "전에 발목이 상한 말을 산 일이 있어서 먼저 타보겠다는 건데" "글쎄 보증금을 맡기라잖아. 말을 타고 날라버리면 우린 어쩌라고?" 근방 담의 말뚝에 거지 하나가 등을 기대고 있었다. "내 잘못으로 병이 났다고 한다면" 점원이 두 팔을 벌려보였다. "사실 그런 경우도 많은데 힘없는 날보러 어쩌라고?" 잠시 생각하던 무이가 포기한듯 몸을 돌렸다. "..그냥 걸어가겠어" 무이가 걷는데 근방의 거지가 일어나 따라붙었다. 30대인데 심한 들창코였다. "소형제. 듣자하니 항주에 간다고 혔나?" "귀가 밝네" "항주로 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제. 이 성님은 그런 길을 많이 알고 있고" "말 값보다 싸다면" "상황에 따라 싸기도 하고 비싸기도 헌디..통행증이나 호패는 있는겨?" "...." "표정을 보니 없는 모양인디 참아부러. 시방은 시국이 험악해서 서툴게 움직이다간 큰일난당게. 엄청 큰 사건이 터져서 지금 난리판이란 말씨" "혹시 호성..강가 항구..?" "허헐. 눈치가 보통 아닌걸. 그 사건과 관련있다면 당연한 코치겠지만도" "...." "관련있는겨? 거액을 털었다던디 말한필 선듯 살돈도 없다니 참말로 요상시럽구만" "...." "사방에 깔린 눈깔이 많으니 성을 믿는다면 날래 따라와번지랑게" 앞장서서 걷자 무이가 뒤따랐다. "전에 개방에 대한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 "냉큼 따라붙는 걸 보니 당근 좋은 야그겠구만?" "나는 말이 서툴러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성도 말 많은 거슨 딱 질색여. 그 유명한 개방 난계 분타주 말하는 벙어리 송립방이 바로 성님이란 말시" 잠시 골목을 말없이 걷는 두사람. 골목을 꺾어져 돌아 담에 설치된 작은 문을 열고 좀더 작은 골목길로 걸어갔다. "나가 신분을 밝혔는디도 자기 소개가 없다니 정말 입이 달라붙은겨?" "모르는 것이 편할 거야" "하긴 너무 물어볼 게 많아부러선지 되려 입이 막혀버리는구마잉" 움막을 들추고 들어가자 좀더 작은 미로가 나타났다. "그래도 한가지만 물어봐야 쓰것는디 동상 친구는 뉘기여. 아니 몇명인겨?" "...하나 반..." "헐 듣다듣다...둘이면 둘이제 하나반은 또 뭔겨?" "..." "좋아. 넘어가자고. 물론 광해쪽에서 왔을 티고. 항주는 소주의 옆 동네인데 설마 창룡방까지 쓸어버릴 참인겨?" "볼일이 있어" 무이를 일별한 송이 거적을 들추고 들어가자.
개방의 비밀 근거지인듯한 너저분한 실내가 나타났다. 돌연 방망이로 무이를 모질게 후려치는 송립방인데 무이가 비척하며 피하더니 방망이를 휘어잡았다. "워.웜매나.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나으 선방이 안 멕히다니.." "근디 발재간은 자전신교인겨 번운칠변인겨? 아니 비슷하지만 전혀 틀려. 방망이를 낚아챈 수법은 분뢰섬전? 풍파교하? 아냐 적멸보궁..아니아니 그도 아니지" 방망이를 놓아버리고는 송립방이 거적의자에 허탈히 앉았다. "나가 헛산겨. 헛 살았당게..시상에 이런 괴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거늘.." 무이가 몽둥이를 탁자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강호인들은 참 힘들게 사는 것 같아" "뭐 어째? 고걸 시방 말이라고. 일생을 칼끝위에서 살며 죽기살기인데! 상대의 수법이나 출신을 알아야 되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란 말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태연 담담한 무이였다. "그려 관두제 관둬. 하여간에 우리 개방은 너가 무슨 짓을 하든 무슨 목적이든 놓치지 않고 지켜볼겨. 지켜본 후에 너를 죽이든 도와주든 모른체 하든 결정을 할거란 말여" "항주만 데려다주고 모른체 해줘" 주머니를 뒤지더니 은자 여러개를 탁자위에 내려놓는 무이였다. "은자는 이것뿐이야. 모자라면 나중에 줄게" 어이없이 실소하는 송타주 "허헐헐...이참에 묻것는디 쌔비간 육백만냥은 엇다 숨겨뒀기에 이런 부스러기만 내놓는겨?" "내 것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이 가졌어" "1.5인분인 동상 친구가 말여?" "아깐 말을 실수했어. 친구는 두사람쯤 돼" "두명이면 두명이지. 쯤은 또 뭐야? 헌디 친구들 이름은 안 알려줄거시고 동상 이름은 도대체 뭐여?" "....무이.." "무이라니 듣다듣다 그런 허황한 맹함은 생전 처음인디.....정말 무이가 제목인겨?" "...." "무이가 이름이라...좋아 까짓거 이름이 무신 상관...푹 쉬어둬. 해질무렵 항주로 출발할겅게"
해가 지는데 보름달이 떠올라 밝게 비추었다. 교외의 고개를 넘어가는 두 그림자. 하나는 송립방인데 또한 명의 처절한 몰골의 비렁뱅이는 머리도 까치집이 된 맨발의 무이였다. "보아하니 아주 체질 같은디 개방에 투신할 생각은 없는겨?" "누구에게서 돈도 음식에도 자유한 거지라고 들었어" "그 말은 맞제. 벌써 신선같이 도통했다고나 할까. 생각 있다면 나가 추천해서 잘 키워줄 수 있는디 어띠여?" "이미 컸는데 어떻게 키워? 거지왕초로? 아님 거지도 필요한 게 더 있었나?" "오살할 새끼가 정말..너 진짜 어부 맞어?" "....난 그냥 나야" 송이 희한하게 흘겨보고는 잠시 걷다가 말했다. "나가 거지로 태어나 천하에서 수십년을 빌어먹었건만 세상에 명예나 지위에서 돈에서 진정 자유한 사람이 얼마나 되것냐. 우리방주님마저도 그러진 못할긴데" "무성 염회란 사람은 어떨까?" "어엉? 난데없이 엉뚱한 무성이가 왜 여기서 나와 번지냐?" 다시 생각에 잠겨 잠시 걷던 송립방이 말했다. "물론 그를 비롯해 몇몇이 세속을 초월한 절대초인으로 알려졌제. 헌데 갸들은 일상을 초월한 대신 한 가지에 미쳤다는 약점이 있제. 무공이든 의술이든 부처든 그림이든 글이든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니여. 인간인 이상 불가능한 경지제. 넓게 생각하면 초인들은 장애인일지 모른다 이거여. 사램은 그저 적당히 선하고 악하고 욕심도 부리고 약점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랑게" "...." "왜 입이 붙은겨? 나가 이쯤 풀었으면 아우 인생관도 풀어놔야제" 무이가 머믓하다가 말을 했다. "난 혼자 오래 살아서 누구와 말을 나눠본 적이 없어. 육지로 나와 두사람을 만났는데.....하지만 마땅히 할 말이..오래전 누가 한 말만 떠오르는데..송형을 보니..모든 만남은 몇겹의 이유가 있다..라고 한 것이..생각나" 차분히 듣고만 있던 송립방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려. 누가 그리 말을 혔는지 몰라도 크게 어긋난 방귀는 아닌걸. 인연의 중요성에 대한 약 같은디 사람간의 만남은 그만큼 귀한 것이니 소중하다는..골 아픈 말은 치워번지고 그려서 동상 계획은 뭐여. 창룡방을 때려부수고 무성과 맞장 뜨고 싶다는 거시여뭐여?" "형가대 같이 약한 사람들 함부로 살상하는 자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어" "형가대든 전제대든 예양. 섭정대든...유명자객 이름들을 끌어다 붙여 이용해먹는 인간백정 무리란 거슬 알랑가몰라도 전부터 새끼들이 너무 심혔당게. 원체 배경이 엄청나서 말리지 못했지만 놈들을 지워버리면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칠기여. 그러고 보면 동상과 나의 만남이야말로 필연이 아닌가 싶은디 좋아 이 성님이 가능한 돕제. 방내의 고위층도 아마.." "소란부리고 싶지 않아. 혼자로도 충분해" "무이..아운 이미 천하를 들썩이고 있는 판이여. 창룡방도 시방 혼비백산하는 중일건디?" "..천하가 그리 작을 리가..." 다시 걷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난 동생할 자신이 없어서 형이라고 부를 마음이 없어" "시키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니같은 아우 꿈도 안꿔" 초라하지만 왠지 크게 보이는 무이를 훑어보는 송립방이다. -나으 예감이 안 틀리다면 요 화상은 강호에 둘도 없는 역사를 쓸 놈이여- -누군지 몰라도 한사람반인지 두사람마저 엄청 보고파지다니..요상한 일인걸-
고개를 넘어 평탄한 길로 나오자 거지 한명이 말 두필을 끌고 마중 나왔다. "타주님 여깁니다" "기려. 수고혔당게. 애들이랑 술한잔 하고..입조심 알제?" 거지가 가버리고 말안장과 도구를 점검하는 송립방이 무이에게 말했다. "아. 뭐하는겨 정말 항주까지 걸어갈 거라고 생각한겨? 어여 타라고" 무이가 조심스레 말에 올라탔다. "처음 탈건디 조심혀야혀. 지난번 말도 동상 실수로 잘못되었기 십상이란 말여" "누구말로는 사기당했다던데" "물론 그럴지도 몰제. 허나 잘못 알았을 수도 있어. 말이란 게 엄청 예민혀서 타는 것도 보통 공부가 필요한거시 아니라고" 무이가 말에 올라 어설프게 자리를 잡자. "아녀. 고삐잡는 것부터가 엉터리여. 그리고 무릎..날 보라고 그리 머리가 안돌아가? 글체 바로 그거여. 말과 나가 한 몸이 되어야 말도 편하고 나도 편한 거랑게" "...서둘거 없어. 천천히 가더라고. 근데 아우같은 괴물을 누가 키운겨?" "같이 살았던 사람은 있지만....늘 함께한 건 아니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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