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모더니즘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60년대 문학에서 허무주의를 읽을 수 있고, 당대 현실 인식에서 자유의 문제가 개재되어 있는 것은 60년대 모더니즘시의 <순수>를 천착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물론 이런 허무 의식과 자유는 민주화와 산업화 사이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60년대 전반기 4.19세대와 한글세대의 욕망과 그 좌절의식의 반영이다. 정치적 문맥과 관련된 허무주의와 자유의식이 그 정치적 의미가 희석화되면서 시적으로 변용하는 자리에 60년대 모더니즘시의 <순수>가 탄생한다.
<추상>은 모더니즘의 가장 핵심적 성격이다. 60년대 모더니즘시의 <순수>는 <추상>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추상과 동의어로서 순수란 언제나 <무엇을 벗어난다>는 그러니까 현실을 벗어난다는 결성개념이다.이 경우 시란 현실을 박살내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언어란 순수정신에서 빚어지는 창조활동이라 할 때, 그래서 시 쓰기란 언어를 조직하는 정신의 모험이라고 할 때, 이 언어는 일상언어는 물론이고 전통적 시어와 구별된다. 순수시의 언어실험이란 언어의 자율적 기호화다. 여기서 현대성이 확보된다.
언어 규범을 파괴하는 60년대 순수시의 언어실험 또는 형식실험에서 주로 채용되는 시적 장치는 은유다. 여기서의 은유는 전통적 은유와는 달리 사물들의 비동일성에 근거한 추상화의 수단이다. 몽타주 기법 역시 60년대 순수시가 채용한 추상화 수단의 또 하나 주목되는 장치다.
유리컵은 내장으로부터 돋아나는
심해어의 눈이었다.
- 전봉건, <속의 바다> -
인용시는 비동일성의 은유에 의해 비현실적인 추상의 세계를 창조한 전형적인 사례다. 60년대 순수시의 내면 탐구와 언어실험은 한글세대에 의해 다양하게 실천된다. 60년대는 현대시사에 있어서 내면탐구와 언어실험이 가장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다. 인간과 사물의 내면적인 친화성을 추구하는 것이 사물시의 일반적 프로그램이다. 정현종의 초기 시편들은 우울, 비애, 불안, 근심의 정조들로 변주되는 허무주의가 주조를 이룬다. 사물의 재발견과 사랑은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한 방법론이자 그 자체 구원의 의미다. 전체 구도로 보면 그의 초기 시들은 일종의 낭만적 아이러니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그의 내면 탐구 순수시는 60년대 참여시와 대극을 이루면서 개성 있는 신서정을 개발한 자리에 분명히 놓여 있다.
오규원의 형식 실험은 <분명한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언제나 기성 관념을 해체하거나 뒤집는 해체주의적 인식론이 그 바탕이 되어 있다. 60년대 그의 시의 출발점은 내면 탐구시다. 그의 내면 탐구도 세계 상실의 추상적 세계를 지향한다.
당신에게 외면당한 현실의/ 뒤뜰 구석에는
신의 왼쪽 발/ 뒤꿈치가 적발된다 (중략) 천사가 먹다 남긴
추억의 빵이 몇 조각
- 오규원, <현황> 부분 -
인용시는 신이나 천사와 같은 순수한 내면성의 존재, 곧 비인격적 존재로서 추상의 세계를 창출한다. 탈인격화가 추상화의 한 방법론으로 채용되고 있으며 논리적 연관을 떠난 이미지와 장면들을 조립하는 몽타주 기법도 엿보인다. 초기 그의 사물시는 비인간화 내지 탈인격화에 등가되며 여기서 기성 관념을 뒤집는 그 특유의 해체주의를 찾아볼 수 있다.
60년대 정현종과 함께 <사계> 동인이었던 김화영의 <어둠의 중심>은 순수한 존재란 부재 그 자체임을 보인 내면 탐구의 한 규범이다.
우리가 찢어진 얼굴로 돌아왔을 때/ 부재의 속으로 뚫린 어둠의 눈은
가만히 뜨이며/ 문은 차례로 열렸다.
- 김화영, <어둠의 중심> 부분 -
여기서 현실로부터의 해방은 세계 상실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세계성이다. 다시 말하면 낡은 세계의 파괴보다는 새로운 세계(이상)로의 지향에 보다 강조점이 있다. 이런 내면 탐구와 언어 실험은 당대 <현대시> 동인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실천된다.
김영태의 <첼로>는 음악과 미술의 심미적 체험을 표현한 점네서 벌써 순수시의 계열에 들 수밖에 없다. 이 시는 언어 감각의 극치를 보인다. 만약 낯설게 하기를, 자신의 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대상을 창조하는 권한이라고 정의한다면, <첼로>는 이 낯설게 하기의 가장 높은 수준으로서 추상성을 획득하고 있다.
김영태의 언어 감각과 오세영의 날카롭고 깊은 사색과 대조적으로 이수익의 순수시는 매우 서정적이다. 60년대 그의 순수시들은 연가류의 부드럽고 여성적인 어조가 주조를 이룬다. 그의 시어는 형식 실험에는 전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이국적인 이미지들에 의하여 신서정을 창조해낸다.
60년대 순수시에서 세계 상실의 추상화는 이승훈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추상시는 <현대시> 동인들의 시 세계 특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김춘수에게 무의미가 서정 장르의 본질이라면, 그에게 비대상은 서정 장르의 본질이다. 비대상시, 곧 세계 상실의 시는 갈 데 없이 내면탐구의 시가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내면 탐구를 분명히 초현실주의의 한국적 굴절로 기술하면서 비대상시를 60년대의 문제적 시 유형으로 규정한 점이다.김현은 그를 60년대 시인 중에서 정신분석학을 가장 잘 견디어 내는 시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들녘으로 돌아오라
그 숱한 피난 속에서/ (중략)/ 돌아오라.
- 이승훈, <겨울 일몰> 부분 -
그의 60년대 초기 시편들은 시대의 재난으로부터 촉발된 <비극성의 추상>이 주조를 이룬다. 해체나 붕괴의 이미지들이 주선율이 되고 있다. 그가 탐구한 시 세계는 매우 어둡고 캄캄하다. 동시에 이 붕괴 이미지들은 세계 상실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이승훈의 추상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하얀>이라는 색채 표상의 형용사가 압도적으로 많이 채용되고 있는 점이다.
<현대시> 동인들에 의해 주도된 6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은 순수시(또는 주지시, 언어파시)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면서 내면 탐구와 언어 실험을 그 특징으로 했다. 그들의 내면 탐구는 이승훈이 한 극점을 보였듯이 세계 상실의 추상으로 내달았다. 60년대 순수시의 주류화는 당대 좌절의식 내지 허무주의가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