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9] 권우삼 (權佑三) -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우며 8. 경남 지역에서의 전도 생활 - 1 1 부산에서 수련회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때는 혼자서 전후 편 강의를 다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2 그곳에 있으면서 제일 먼저 일어나서 범내골 성지에 찾아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지 바위를 세상 사람들이 떼어가려고 해서 학생들과 같이 주위를 돌로 쌓아 못 떼어 가게 해 놓던 일 등 지금은 모두가 새롭게 느껴질 뿐이다. 3 학생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수집하러 다니기도 하였고, 430가정 약혼 시엔 서울에 갈 교통비가 없어 학생들이 푼푼이 모은 돈을 받아가지고 가기도 하였다. 4 뜻 따라 공적으로 11년을 따라오다 보니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나는 약혼을 하러 올라갈 때 약혼 선물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생각하다 나름대로 보람된 것이라 생각한 범내골 성지 바위의 돌조각과 원념, 그리고 부모님께서 사냥하여 잡은 노루 털과 산돼지 털을 준비하여 가지고 올라갔다.
5 그리하여 1967년 11월 19일 0시 45분, 경기 김포 출신 김향회와 약혼을 하게 되었는데, 약혼 축도를 받은 후 새벽에 남산 성지에 올라가서 약혼자와 손을 꽉 잡고 하늘 앞에 일등 가는 충효를 하는 가정이 되자고 기도하였다.
6 축복 후 명령을 받고 찾아간 산청 교회는 전셋집이라고 알고 갔었는데 가보니 월셋집이었다. 그래서 아내의 결혼반지를 판 돈과 집에서 옷 해 입으라고 가지고 온 돈, 경찰서로부터 승공 강의를 해주고 수고료로 받은 돈 등을 합하여 전세로 교회를 얻게 되었는데, 결혼반지를 팔아서 교회를 얻었다는 그 기쁨을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며 생활하고 있다. 7 그런데 교회를 얻어 정도 들기 전에 전국적인 인사이동이 있어 정성들여 얻은 교회에서 며칠 살지도 못하고 또 이동을 해야만 했다. 당시 자신을 희생해 가며 사업을 하여 어려운 때에 교회를 받들었던 정혜숙 식구는 숨은 공로자이다.
8 68년 6월 15일 산청에서 박순종 식구의 초대를 받아 저녁을 함께 먹다가 피를 토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를 한 대접 정도 입과 코로 토하는 내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새로 부임한 신용일 지역장 부부와 식구들은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할 일을 다하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9 새로 부임한 지역장님이 오셨으므로 산청에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죽더라도 임지인 창녕에 가서 죽자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피를 토해가며 아내의 도움을 받아 임지로 향했다. 그러나 반갑게 맞이해 주는 이 없는 아주 강퍅한 도성이었다. 10 병든 남편을 따라 새로운 임지로 향하던 아내의 슬픔을 달래던 나는 아버님께서 피 흘리시면서 찾아오신 노정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도 피를 흘릴 수 있는 은사를 베풀어 주심에 대한 감사함을 돌려드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