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노력이 아닌 방향이다
다섯 시간 전, 나의 영원한 콤비 문천식이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렸다.
"1999년 8월 5일에 MBC에서 전화가 왔다. 개그맨이 되셨다고 허허. 그 뒤로 나는 대스타가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하는 일마다 애매하게 안 됐다. 차라리 확실하게 안 됐으면 진즉에 딴 길을 알아봤을텐데, 될랑 말랑 아슬아슬 안 되더라! 그래도 버텼다. 당시 집도 반지하였고, 빽도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딱히 할수 있는 게 없으니 그렇게 처맞으면서도 이 악물고 버텼다. 주인공 까여서 조연하고 DJ(라디오) 안돼서 게스트 하고, 그렇게 특별한 재주 없이 25년을 버텼다.
그러다가 눈을 떠보니 오늘이네. 나름대로 알려졌고 나름대로 먹고 살고, 근데 아직도 뭔 일을 시작하면 잘 안 된다. 로또까진 아니더라도, 뭔가 한 방에 터지면 안 되나? 일생 한 방에 터지는 일이 없다! 죽어도 없다! 앞으로도 그러지 싶다. 팔자가 그런 거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안 터진다. 그냥 물렁물렁 굴러간다. 거참. 한숨 자고 일어나면, 내일도 굴러가야지. 설렁설렁 삐뚤빼뚤 앞으로 가야지. 뒤로 가게 생겼는데 앞으로 가는 게 신기하다. 그거면 된 거다. 오늘의 궁시렁"
천식이의 글을 보고 곧바로 [보랏빛 소가 온다]의 한 구절을 보내줬다.
당신은 실패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는가? 당신이 보통의 미국인들과 비슷하다면,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웠을 것이다. 당신은 그때부터 튀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인 것을 알아차린다. 선을 넘지 않게 색칠하고, 수업 시간에는 너무 많이 질문하지 않으며, 주어진 숙제를 잘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이다...[보랏빛 소가온다]96쪽
안전한 길은 위험하다. 우리는 비판을 싫어하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숨어버리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회피한다. 이리하여 성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랏빛 소가 온다]99쪽
문천식도 나도, 처음 일을 시작했던 때 반지하에서 살았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며 똑같은 해에 같이 집을 샀다. 우리 둘 다 수없이 도전했지만 욕을 먹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드라마에 도전했고 적당히 잘하는 선에서 욕먹지 않고 무난하게 연기했다.
문천식과 동업으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느 포장마차에서든 볼 수 있는 계란말이, 닭똥집, 오돌뼈 같은 안주를 다른 가게들과 비슷한 맛으로 만들었다. '독보적으로 친절하게'가 아니라 다른 가게보다는 조금 더 친절한 정도로 손님을 대했다. 역시 결과도 적당히 장사가 됐고, 크지 않은 수익에 우리는 금방 지쳐버려 본업인 방송으로 돌아갔다.
문천식은 이전에 하던 대로 방송과 라디오, 홈쇼핑에서 활동했고 나는 완전히 잊힌 개그맨으로 방송가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잊힌 뒤 나는 책을 읽었다. 2014년, 책이 시키는 대로 메밀국수 식당을 차려 문천식이 앞에서 표현한 것처럼 한 방에 펑! 터졌다.
현재 시선에서 [보랏빛 소가 온다]의 잣대로 보면 무엇이 잘못됐었는지 알 것 같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욕먹는 연기'였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남들과 비슷비슷하게 욕을 먹지 않고 가는 길이 정답이라 믿고 살았다. 그 외의 길을 볼 수 있는 눈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독서를 시작한 후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중에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부지런함을 물려받았다. 이 점은 스스로 잘 안다.
책을 읽으며 남들이 할 수 없는 일, 나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래, 나는 부지런하니까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장사를 하자. 면을 직접 뽑고 육수도 직접 끓이고 모든 걸 손수 하자'고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2014년에 메밀국수 식당을 처음 오픈하며 다른 때보다 유독 더 열심히 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문천식과 밤무대에 오를 때 훨씬 더 열심히 살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방향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적당히, 애매하지만 욕먹지 않을 정도에서 남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달렸다. 하지만 독서를 시작하고부터 달리는 건 똑같은 힘으로 달리되 남들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어떻게 방향을 바꿨는지는 나의 전작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똑같은 노력이지만 방향만 바꿔도 성공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또 다른 방향으로 똑같은 노력을 쏟아보았다. 그 방향이 바로 작가의 길이다. 방송국에 출근하는 대신 대학원과 학원으로 출근해 글쓰기를 배웠고, 방송국에서 아이디어를 뽑는 시간만큼 노력해서 글을 썼다.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를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렸고 다음 책인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는 2년, 바로 직전에 출간한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는 1년이 걸렸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은 2024년 8월 26일에 출간될 예정으로, 역시 1년 만에 완성하는 것이다. 이제 내게는 1년에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매일 아침 긍정 확언을 올리는 나로서도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 건 아니다. 인생의 다른 시절보다 하루에 10분 더 노력했을 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길을 찾았을 뿐이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욕먹을까 걱정하지 않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이게 내가 독서를 통해 알아낸 방법이다.
지금 유튜브 채널 '고명환tv'는 구독자가 5만 명이 넘지만, 처음 일년 동안은 200명 정도에 불과했다. 남들이 닭살 돋는다고 왜 매일 똑같은 영상을 올리냐고 욕해도, 내가 매일 아침 스스로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 좋아 외치고 또 외쳤다. 구독자를 늘린답시고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전략가로 통하는 세스 고딘의 책을 늘 곁에 두고 읽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문제에 부딪혀 답을 찾지 못할 때 찾아 읽는다. 그중에서도 [보랏빛 소가 온다]는 안전한 길을 위험한 길이라며, 보랏빛 소처럼 리마커블(remarkable)해지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나는 '한 번도 비판을 받지 않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은 결국 실패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겼다.
문천식과 나는 '와룡봉추'라는 코너로 이름을 날린 후에 안정적인 방향을 선택했다. 우리는 정말 무난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욕먹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잘못 산 건 아니다. 여러분이 볼 때 문천식이 잘못 살고 있는가? 아니다. 너무도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천식이가 앞의 글을 올린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때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의 전반전을 잘 살아왔다. 누구나 인생의 전반전은 세스 고딘의 말대로 '지시 받는' 삶을 산다. 이제 지시를 받으려고 서 있는 줄에서 뛰쳐나올 때가 됐다.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때가 온 줄은 알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모른다. 그래서 고전이 필요하다. [보랏빛 소가 온다]가 문천식에게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천식아! 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너 충분히 열심히 살았어.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어. 지금처럼 그대로 살면 돼. 방향만 살짝 바꾸자. 그동안 우리가 무모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 그 길!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그 방향으로 첫발만 내딛으면 돼. 두려울 거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책이 도와줄 수 있어. 책을 꾸준히 읽다보면 어느새 네가 가지 않았던 어떤 길로 가고 있는 너를 발견할 거야. 내가 그랬어. 그 길에서 네가 오늘 밤 원하는 한 방에 빵! 하고 터지는 행운들이 얼마든지 널 기다리고 있어. 어떻게 아냐고? 이 모든 기록이 고전에 이미 나와 있더라. 나도 그 길을 따라가며 체험하고 있고. 다시 말하지만 네가 잘못 살아온 게 아니야. 넌 네 속도대로 잘 살아왔어. 이제 방향을 살짝 바꿔야 할 때가 온 것뿐이야. 마흔일곱 살 문천식이 가야 할 인생 후반전의 길을 지금과 똑같은 노력으로 가면 돼. 내가 보낸 책의 어느 한 구절이 네 삶의 방향을 슬쩍 틀어줄 거야. 애매하지 않은, '그래! 이 길이구나' 싶은 너의 길을 발견할 거야. 그때 소주 한잔사라."
고전이 답했다 중에서
고명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