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월)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두려움을 말로 이기라.
사진작가 박원식(강릉중앙고44회 동기회) 친우가 직접 촬영하여 보내준 덕유산 설경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의 뇌는
못하는 이유를 열심히 찾는다.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어도 그쪽으로는
생각하지도 않고 할 수 없는 자료만 찾아낸다.
그 결과 '안 된다', '불가능하다'고 확정한다.
가능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말부터 하자.
'잘 풀린다'는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낙천적인 말로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면
뇌는 차차 긍정적인 말을 찾으려고 한다.
이어서 자신감이 솟아나면 자기도 모르게
어려움이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나에게 도움이 된다."
"노력하면 내가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
이렇게 말을 하면 두려움이
물러날 뿐 아니라 말하는 대로 이루어 진다.
실례를 들어보자.
미국에 슈퍼마켓 체인점을 2,000개나 갖고 있는
페니(J.C.Penney)에게 그의 아버지는 임종자리에서
"너는 반드시 해낼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그에겐 유형 자산이나 현금이 없었으며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처지였지만,
그 순간부터 페니는
왠지 어떻게든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페니의 체인점은 수많은
불가능한 상황과 낙담의 순간을 딛고 태어났다.
페니는 의기소침 할 때면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리곤 했으며,그러면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든
돌파해 나갈 수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큰 재산을 모은 후 그는 대부분의
동년배들이 이미 오래 전에 퇴직했을
나이인 58세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한창 때가 지나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다시 희망을 걸어
볼 만큼의 재산마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렸고,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승리감을 이내 되찾았다.
그는 다시 재산을 모았으며, 불과 몇 년 사이에
이전보다 더 많은 점포를 운영하게 되었다.
페니는 자아 이미지에 자신이 성공할 사람이라는
심오하고 굳건한 신념을 새겨 넣어
그것을 든든한 기반으로 삼았던 것이다.
- 좋은글 중에서 -
캐시 페니(James Cash Penney)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JC 페니 백화점을 알지만 그 회사를 설립한 사람에 대해 아는 이는 드물다. 제임스 캐시 페니 James Cash Penny는 1875년 미주리주 해밀턴 근방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1902년에 그는 와이오밍의 케머러에서 첫 가게인 포목점을 열었다. 깊은 기독교신앙과 도덕적 확신을 지닌 사람이었던 페니는 가게 이름을 '골든룰 스토어(황금률 가게)'라고 지었다. 황금률은 그의 삶을 이끄는 원리였다.
사업은 너무나 성공적이라서,10년 내에 점포수가 30개로 늘어났고 연간 매출액은 200만 달러를 넘겼다. 사업 초창기부터 페니는 십일조를 드렸는데, 그의 사업과 수입이 증가하면서 헌금도 자연히 늘어났다. 1971년 페니가 작고할 즈음에는 수입의 90%를 하나님께 바치고 있었다. J.C. 페니는 일생동안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실패도 많이 겪었고 역경으로 인해 심각한 시험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인내의 힘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삶이었다.
1910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페니는 뼈져린 상실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신앙에 의지하고 일에 몰두함으로써 그 깊은 슬픔을 이겨냈다. 1913년에는 J.C. 페니 컴퍼니를 설립했고, 골든룰이라는 명칭을 서서히 없애기 시작했다. 그러던 1923년, 그의 두번째 아내마저 출산중에 사망하자 페니는 다시금 비통한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이번에는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에 매달림으로써 슬픔을 이겨나갔다.
1929년초, 전국에 세워진 J.C. 페니 백화점은 무려 1,400개에 달했다. 미래는 밝았다. 하지만 1929년 10월말에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세계 대공황이 찾아왔다. 페니는 하루만에 4,000만 달러를 잃었고, 채무를 청산하기 위해 거의 모든 자산을 매각해야 했다. 54세의 페니는 무일푼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J.C. 페니 점포들은 영업을 계속했지만 시기적으로 힘든 때였고 소매업은 불안정했다. 페니는 근심과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신경안정제를 먹어도 별 효력이 없었다. 죽을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한 페니는 미시간의 배틀 크리크에 있는 요양소로 들어갔다. 곡물업계의 거물인 존 하비 켈로그에 의해 설립된 이곳은 홀리스틱HOLISTIC치료로 유명한 요양소였다. 어느 날 밤, 페니는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편지를 써놓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병원 예배당에서 들리는 찬송소리에 잠이 깼다. 너 근심 걱정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페니는 일어나 예배당으로 갔다. 뒷좌석에 앉아 그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몸과 영혼이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후에 그는 요양소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믿음과 소망의 회복과 함께, 페니는 대공황의 역경을 견뎌 내고 미국최고의 백화점 J.C. PENNY를 재건했다.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속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인내했던 J.C. PENNY! 그는 인생人生을 진정 인내하고 참아내는 참 인생忍生으로 산 사람이였다.
- 오스힐먼'하나님의 타이밍'에서 -
페니 팜스(Penney Farms)
미국 플로리다주 북동쪽에 있으며, 1927년 공식적인 타운으로 지정되었다. 그레이터 잭슨빌 메트로폴리탄 지구(Greater Jacksonville Metropolitan area)에 속한다. 동쪽으로 약 13km 거리에 클레이카운티의 행정중심지인 그린 코브 스프링스(Green Cove Springs)가 있고, 북서쪽으로 약 243km 떨어진 곳에는 플로리다 주의 주도인 탤러해시(Tallahassee)가 있다.
북동쪽으로 약 40km 거리에는 플로리다 주 최대 도시 잭슨빌이 있다. 16번 주립도로와 218번 카운티도로가 지나고, 인근에 95번, 295번 주간고속도로와 17번 US고속도로, 21번 주립도로, 315번 카운티도로가 있다. 북동쪽으로 약 58km 거리에 잭슨빌 국제공항 (Jacksonville International Airport)이 있다. 총 면적은 3.6km²이며, 1926년 미국의 사업가이자 개척자였던 제임스 캐시 페니(James Cash Penney)가 농촌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이 지역에 페니 팜스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지명은 페니의 농장을 뜻하는 영어의 페니 팜스에서 유래했다. 주변 관광지로는 벨모어 주립 숲 공원(Belmore State Forest), 블랙 크리크 협곡 보호구역(Black Creek Ravines Conservation Area), 로니 밴 잔트 공원(Ronnie Van Zant Park) 등이 있다.
잊울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지난밤 이야기)
교적을 용산에서 세검정 성당으로 옮겼기에 오늘미사는 세검정 성당으로 갔습니다. 그날은 특히 세검정 성당에 곧 다음주 새신부님이 탄생하시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성당의 분위기가 너무도 엄숙한 가운데 기쁨이 충만한 성당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사후에는 모처럼 일요일이지만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서 집에서 쉬다가 오후 늦은 시각, 마나님과 함께 옛 용산성당의 형제분인 박바오로 님의 장모님 喪에 문상을 갔습니다. 멀리 경기도 광명이라서 약 1시간 이상이 걸렸지만 조문을 마치고 귀가 길에는 혹시 딸과 사위가 아들이 개설한 만화 cafe를 축하해 주기 위해 간 것 같아 영등포로 방향을 돌렸으나, 너무 늦은 시각이라 집에 귀가한다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고는 그냥 집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경기도 광명에서 영등포 앞을 경유하여 성산대교 그리고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야심한 밤 귀가 차량이 밀리는 가운데 생각보다 일찍인 MBC 인기 TV드라마 "내딸 금사월"이 방영되기 전,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 어떻든 오늘은 온종일 마나님과 함께 일요일을 뜻있게 보냈기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