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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부
태양은 도덕적이지도 부도덕하지도 않다.
1. 자료의 전체분석에서의 결과와 세부분석에서의 결과가 상이할 경우 이를 심프슨의 역설이라 한다.
심프슨 역설이란 자료의 전체분석에서의 결과와 세부분석에서의 결과가 상이할 경우 이를 심프슨의 역설이라 한다.
수학 선생 심프슨 (1710-1761)은 영국의 수학자이다. 보스워어드의 가난한 직물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극히 빈곤한 생활 속에서도 수학 연구에 몰두하여 런던으로 나와 수학 교사가 되었다.
그 후에는 육군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중평균은 각 항의 수치에 그 중요도에 비례하는 계수를 곱한 다음 산출한 평균이다.
정밀도나 들어온 양이 같지 않은 물품의 평균 가격처럼 원래의 수치가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
가중치란 일반적으로 평균치를 산출할 때 개별치에 부여되는 중요도를 말한다.
어떤 상품이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해당 상품에 대한 지출액을 총지출액으로 나눈 값에 1,000을 곱하여 구한다.
심프슨의 역설(Simpson's paradox)은 동일하지 않은 가중치를 적용함에 따라 부분에 대한 분석 결과와 전체에 대한 분석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심프슨의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를 보자
{A학과, 응시자수, 합격자수, 합격률}{여자, 50명, 25명, 50%}, {남자, 100명, 50명, 50%}
{B학과. 응시자수, 합격자수, 합격률}
{여자, 100명, 30명, 30%}, {남자, 50명, 15명, 30% }
{전 체 응시자수, 합격자수, 합격률}
{여자, 150명, 55명, 37%}, {남자, 150명, 65명, 43%}
학과별 자료를 보면 남녀의 합격률은 각각 50%로 차이가 전혀 없다.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합격률에 있어 남녀 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부분의 분석과 전체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들의 합격률이 높은 A학과에 여자보다 더 많이 지원했고, 여자들은 합격률이 낮은 B학과에 남자보다 더 많이 지원했다.
그러기 때문에 전체로 볼 때는 남녀 간의 합격률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가중 평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남녀의 합격률은 학과별 지원자 수의 크기를 가중치로 한 가중 평균으로 구한다.
여자의 합격률 = (50/150)(50%) + (100/150)(30%) = 37%
남자의 합격률 = (100/150)(50%) + (50/150)(30%) = 43%
따라서 남녀의 합격률은 A학과와 B학과 합격률의 가중 평균이지만 지원자의 크기가 달라서 서로 다른 가중치를 적용해야 한다.
2. 태양은 도덕적이지도 부도덕하지도 않다. 그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형제들이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는 일이 있지만 외부에서 침략해오면 일치단결해서 외세를 물리친다고 하였다.
벌써 단풍도 몇 개씩 보이는 것으로 보면 내년에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태양인 대통령이 출현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1866~1944)은 이렇게 읊고 있다.
태양은 도덕적이지도 부도덕하지도 않다. 그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어둠을 정복한다. 예술도 그와 마찬가지다.
루소의 저서 「인간불평등기원론」은 1762년 간행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사유재산제가 인간 사이에 불평등을 가져왔으며, 기존의 법·정치제도는 모두 사유재산제를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변혁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당시의 절대왕제를 비판하였다.
절대왕제들은 보편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부만은 지키면서 모든 다른 것들은 순환의 과정을 걸치면서도 재산권보호에 운명을 걸었던 것이다.
그 결과 있는 자의 부는 쌓여만 가서 절대대수의 사람들이 빈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도 부정했었다. 진보주의 개념에 18세기에 야기된 후부터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하지만 지금 가난한 자들은 다음 노래를 부르며 그냥 있으시라.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No matter how high the mountain, it is just a mountain beneath the heavens. Keep climbing and climbing and you can reach the peak. But no one climbs, everyone sighing instead at the mountain's height.
3.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행하고 있는 유아교육 접근법으로 시립 유아서비스 체제이다.
레지오 에밀리아의 교육이란?
활동이 지속된 기간에 상관없이 유아의 관심과 사고방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세상을 알아 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경험을 연결시켜 나가는 것이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이란?
교육과 보육 통합 체제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접근법』은 단순한 유아교육의 방법론적인 교수 체계가 아니라 교육과 보육을 통합하면서 주민이 참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체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이란 이태리 북부 산업도시인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 지방의 레지오 에밀리아 시에서 현재 22개 의 유아학교(Preschool)와 13개의 영유아센터로 구성된 시립유아교육체제가 운영하는 교육과 사회적 서비스의 개념을 연합한 높은 질의 통합프로그램이다.
이 체제는 부모공동조합 형태로 출발하여 지난 30여 년간 프로젝트 중심의 학습, 발현적 교육과정의 운영, 다상징적 교수법, 협동적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 기록화(Documation)의 교육적 활용이다.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행하고 있는 유아교육 접근법으로 시립 유아서비스 체제이다.
약 20여년전부터 유럽에서 그 우수성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미국에서는 10년 전부터 본격 소개되었다.
1992년 뉴스위크에서 세계 최고의 유아프로그램으로 선정된 이후 각광을 받게 되었다.
현재 유럽 및 미국에서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을 알리는 전시회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반응 등을 보면 이 접근법의 가치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레지오 에밀리아 프로그램이란?
창시자는 로리스 말라구찌(Loris Malaguzzi)이다.
레지오 에밀리아 프로그램의 구성요소는 발현적 교육과정, 상징화 주기, 다양한 표상활동 학습,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협력학습, 기록화와 평가, 부모와 지역사회와의 협력체제 구축으로 되어있다.
4. 레지오 에밀리아의 교육은 즉흥적인 발상에 착안하여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 가는 발현적 교육방법이다.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의 특징?
레지오 에밀리아의 교육은 즉흥적인 발상에 착안하여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 가는 발현적 교육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교육목표와 활동을 미리 세우는 계획을 배제하고, 교사가 일반적인 목표는 세우지만 수행하여야할 프로젝트나 세부목표는 세우지 않는다.
발현적 교육은 유아 스스로 학습을 위한 공간과 생각, 상황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과정에서 교사와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으로 사고의 폭이 커진다.
상징적 표상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유아의 지적 발달을 도모하고 있으며 환경을 탐색하고 유아 자신의 자연스러운 언어 또는 표현방식 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도록 유아를 격려한다.
표현방식이란 동작, 그림, 칠하기, 만들기, 조각, 그림자놀이, 콜라주, 상상놀이, 음악 등이다.
소집단의 유아가 특정 주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연구(직접 관찰하기, 전문가에게 질문하기, 관련된 물품 수집하기, 극놀이)를 통해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방법은?
레지오의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프로젝트와 비교할 때 어떤 주제에 관한 소주제를 연속하여 탐색하여 전체 주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기보다는 한번 탐색했던 현상이나 주제를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거듭 탐색, 재탐색하고 재 반문하여 경험하는 순환적 전개를 통해 이해의 수준을 깊게 심화시킨다.
장기 프로젝트의 경우 흔히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목표는 교사와 유아간 협의에 의해 진행되지만 그 전개과정 내의 구체적인 활동의 선정 및 탐색은 유아들의 욕구 및 수준에 따라 조정되어 이루어진다. 각 프로젝트의 지속 기간은 유아의 흥미 및 프로젝트 주제에 따라 달라지며 보통 장․단기의 프로젝트가 섞여서 이루어지고 짧은 경우는 하루, 길면 3〜4개월에 걸쳐 운영하기도 한다.
4. 모든 위대한 인간과 위대한 문화는 권력 의지와 그것에 대한 선한 양심으로부터 성장하고 발달하였던 것이다.
마르틴 부버(1878~1965)는 1878년 빈 태생으로 1938년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인간의 길이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는 고대의 노자 및 니체 등의 영향을 받았다.
부비는 현대 유대인의 사부로서 1865년 향년 87세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글은 인간의 권력 의지에 관한 명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발취했을 따름이다.
인간이란 미래의 인간의 본래적 인간, 본래의 인류의 태아(embryo)인 것이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은 「권력 의지」라고 역설하고 있다.
모든 위대한 인간과 위대한 문화는 권력 의지와 그것에 대한 선한 양심으로부터 성장하고 발달하였던 것이다.
이런 주장에서 삭제될 수 없는 조건은 선한 양심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인간인 필자와 독자는 어떤 문제에 봉착하여 이 늦은 밤에 고민하는가?
부버에 따르면 권력이란 아주 사소한 직위로부터 거대한 강압자의 권력을 포괄적으로 표상한 단어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 권력의지를 갖는 것은 나무랄 필요까지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이른바 권력을 잡아서 권력의 위대한 힘을 보여줄 상대를 찾아야만 할 것인가?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미래적 인간으로써 그의 권력 의지에 대하여 좋은 양심을 부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사람은 나와 너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너와 더불어 현실에 참여한다.
동물인간(animal man)은 다음처럼 묘사되고 있다.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았다. 이 지상의 존재는 아무런 목적도 가지지 않았다. 「인간은 무슨 목적으로라」는 물음은 대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현재의 인간은 과도적 인간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유동적이고 빚어서 만들 수 있는 어떤 성질의 것이다.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현재의 인간은 목표가 아니라, 단지 길이요, 에피소드요, 교량이요, 중요한 약속에 불과하다.(마르틴 부버)
미래의 인간은 현재 인간이 목표로 하는 인간상으로 우리가 창조하고, 길러야할 인간이요, 그 인간을 위해서 우리가 현재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버는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사람은 나와 너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너와 더불어 현실에 참여한다. 나는 너와 더불어 현실을 나눠 가짐으로 말미암아 현실적 존재가 된다. 부버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라고 주장하였다.
나-너 관계에서 학생은 지식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관계할 수 있다. 인간은 나-그것의 관계 안에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지만 의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나-너 관계 안에 나-그것의 관계가 존재하고, 나-그것의 관계 안에 나-너의 관계가 존재할 때, 인간은 사물인 그것과 인격이라는 이중적 긴장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7. 비정한 권력자 진시황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 노인에 진입하였다.
말년이 다가 온 진시황은 불로장생에 몰두하여 방사들을 가까이 했다.
방사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약이나 점복을 생업으로 삼는 무리들이다.
진시황을 위해 불로장생의 영약을 지어주겠다는 명목으로 거대한 금품을 하사받았다.
나중에 후환이 두려워 도망쳐 버렸던 것이다.
BC 212년 진시황이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던 노생과 후생도 갑자기 모습을 감추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진시황은 크게 노하여 전국의 유학자 460여명을 체포하여 함양에서 생매장하였다. 그것이 유명한 갱유사건이다.
당시 승상의 지위에 있던 이사가 그 일의 집행을 맡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BC 210(시황37년), 시황은 차남 호혜, 승상 이사, 환관 조교 등과 함께 다섯 번째 순행을 하다 병을 얻어 사구에서 향년 50세에 죽었다.
시황은 죽기 전에 환관 조고를 불러 장자 부소 앞으로 편지를 쓰게 했다.
‘군은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에 돌아와 내 유해를 맞이하고 장례를 치루어라.’
시황은 자신의 장자 부소에게 후사를 맡기려고 했던 것이다.
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자기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먼저 차남 호혜를 설득하여 제위를 계승하게 한 다음 다시 이사를 포섭하였다.
일단 그들은 시황의 죽음을 숨기고 순행을 계속하여 수도 함양에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시황의 죽음을 공포하였다.
그리고는 장남 부소에게 "함양으로 돌아와서 장례를 치루어라"는 시황의 유서를 "부소는 불효하니 자살하라"는 내용으로 고쳤다.
이것을 진짜로 믿은 부소가 자살하고, 둘째 호혜가 제위에 올라 2 황제가 되었다.
조고는 비서실장의 요직에 취임했고 2세황제의 신임을 얻어 일신에 모아 국정을 맡아보게 되었다.
8. 이사는 함양의 거리에서 자신이 제정한 엄한 법령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을 따름이다.
환관 조고는 2세황제를 농락하여 점차 실권을 장악하였다.
백성들의 반란으로 정세의 급변을 우려한 이사는 2세황제를 알현하길 원했지만 그것은 조고의 저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사는 최후로 조고에 대한 탄핵 상소를 올리게 되었다. 2세시황제는 조고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있었던 터라 이사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를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이사는 모반의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리하여 BC 208년 7월(2세시황 2년) 진나라 최대의 공신이었던 이사는 함양의 거리에서 자신이 제정한 엄한 법령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었다.
이사가 죽은 지 1년 후에 2세황제도 사망했다.
이사는 다섯 가지 대죄로 문책되어 주살되었다.
그런데 이사는 이미 오래전에 죽마고우 한비를 음독시켜 죽였으며 분서갱우의 사건의 실질적인 집행자로 악행을 자행했던 것이다.
함양의 주민들은 허리가 잘리고 머리만 남은 이사를 보면서 악행의 근원이 천혜의 근원과 다르다고 말했다.
사마천은 사기 「이사열전」에서 다음과 같이 이사를 평가하고 있다.
이사는 미천한 출신이지만 제후를 찾아 진나라를 섬겼다. 높은 작록을 받아먹으면서 시황의 뜻을 거슬리지 않고 아첨과 영합을 일삼았다.
족의 사설에 부화하고 적자인 부소를 폐하고 서자인 호혜를 옹립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사를 일러 충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가지 대죄로 문책되어 주살되었다는 동정을 보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다만 이사는 이사가 정한 엄격한 법령에 의하여 보다 엄격한 형벌을 받았을 따름이다.
9. 피아제는 인식의 근원을 주체의 행동으로 본다.
인간의 인식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한 개인(주체)이 대상세계(환경)에 대면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경험론적 인식론은 감각 경험을 지식의 근본으로 본다.
인식의 원천은 대상세계에 대한 감각 경험이다. 경험론에 따르면 모든 지각은 인상과 관념으로 나누어진다.
관념은 복합 관념과 단순 관념으로 분류된다. 단순 관념은 인상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생생한 감각 경험인 인상이 지식의 근원이 된다.
경험론에서는 반복 경험을 인식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본다.
두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마음속에서 두 관념이 결합된다. 그래서 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다른 경험을 연상시키게 된다.
인간은 백지 상태에서 태어나고, 감각 경험이 지식의 근원이고, 경험의 성장은 축적되어 구조화된다.
연습과 훈련은 경험론적 인식론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자극과 반응의 연결로 분석되는 것이다.
10.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명증적 직관과 필연적 연역뿐이다. 정도만 다르다.
합리론적 인식론은 경험은 참된 인식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본다.
이성만이 인간을 진리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순수 자연의 빛인 이성에서 나오는 정신의 명석한 판단이 진리의 기초가 된다.
이성에서 나오는 합리적인 판단을 직관이라 한다.
감각을 통하여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왜래 관념과 이것을 가지고 주체가 만들어 내는 관념 그리고 원래부터 가지고 관념이 있다.
이들 중에서 인간 본연의 개념 즉 생득 개념이 직관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앞의 두 직관은 부정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명증적 직관과 필연적 연역뿐이다. 정도만 다르다.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이 대상에 준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식에 준거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구성적 인식론은 시간적인 순서보다는 공간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끝
[출처] 인간정신의 영광을 위하여 수학을 한다.(한재영교수 출판예정원고)|작성자 영원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