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저는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는 것을 보았다. 미국은 우리와 다르게 부통령이라는 직위가 존재하는데
사실 대통령이 누구인지만 궁금했지 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직위라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고 며칠 후 우연히 SNS를 하는 도중 미국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의 인생 얘기를 보게 되었다.
단순하게 대단한 사람이겠거니 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최초의 흑인*아시아계*여성 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이상으로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감명을 받아 이번 레포트에 주제로
카멀라 해리스를 쓰게 되었다.
그녀는 1964년 10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이민 2세대 출신이었다. 그녀는 커서 UC헤이스팅스 로스쿨을 나와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부통령이 되기 전, 이전까지의 경력에도 '최초' 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샌프라시스코의 최초의 흑인 여성 지방 검사
샌프라시스코의 최초의 흑인 여성 검사장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흑인 여성 검찰총장*법무장관을 거쳐
두번째 흑인 여성으로써 2016년 미국 상원 의원에 입성하였다.
해리스는 2019년에는 2020년 치러질 대선의 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선거 자금 고갈 등을 이유로 그해 12월 중도 하차를 한 뒤 곧바로 조 바이든 지지 선언을 했다.
마침내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20년 8월 11일 자신의 러닝 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카멀라 해리스를 지명했다. 미국 역사에서 여성이 주요 정당의 부통령 후보가 된 것은 1984년 제럴딘 페라로 전 하원의원(민주당)과 2008년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공화당)에 이어 해리스가 세 번째인데, 특히 흑인 여성으로는 해리스가 처음이다.
이때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엔 플로리다 유세 중 스키니진+스니커즈 차림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사석에서도 자기 동료들과 노래를 틀며 춤도 추기도 하는 친근하고 자유로운 모습도 보여주기도 하였다.
나는 항상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에 있어서 두려움을 많이 느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안정된 선택만을 고집했었다. 예전부터 나는 우리나라 유명한 댄서가 되는 꿈이 있었지만 현실에 맞서 싸우기가 겁이 나 포기하고 안정된 길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댄서라는 직업은 직업 자체가 안정되지 않아 수입이 적고 어디가서 대우도 받지 못하고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엔 더더욱 힘이 드는 직업이다. 불안정된 선택을 피한 나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키기도 했고 아직도 그 꿈에 미련이 남아 계속 춤을 포기하지 않고 학생때 나와 같이 춤췄던 지금은 댄서인 친구들의 영상을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와 반대인 모습의 카멀라 해리스는 흑인, 아시아계, 여성이란 소수의 타이틀을 가지고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나에겐 용기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나의 꿈이 부통령이 되겠다는 큰 꿈도 아닌데 '이 길을 선택하면 내가 나중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제대로 시작도 안해보고 끝냈었지만 카멀라 해리스는 흑인, 아시아계, 여성 으로서 살면서 무시도 많이 당했을거고 포기하고 싶을 떄도 많았을것이다. 하지만 하나 하나 자신이 정한 선택에 부응하고 마침내 이루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은 영감을 얻었다. 지금 나도 춤 학원을 다니며 계속 연습하고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중이다. 최초까지는 아니지만 나중에 내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 댄서로서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멋진 나를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카멀라 해리스처럼 실패에 두려워하지말고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