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판에 자리한 담마얀지는 외곽으로 사각의 담장이 있다. 네 곳의 각 면마다 출입구가 있지만 요즘에는 거의 북쪽 문만 이용한다.
이 사원을 건축하게 한 나라투 왕(1167~1170년)은 격하고 잔인한 성격의 왕이었다. 아버지인 알라웅시투 왕을 베게로 눌러 질식시켜 죽였으며, 왕위를 이을 형을 교활하게 유인하여 독살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맺어준 자신의 부인과 그녀의 오빠 그리고 자신의 아들까지도 처형했다. 그의 많은 부인들 가운데 인도의 칼라왕이 그의 아버지에게 준 딸이 있었다. 어느날 그가 몸을 씻지 않고 그녀의 잠자리에 들자 그녀는 잠자리를 피했고, 분노한 왕은 직접 칼을 들고 그녀를 죽였다. 칼라 왕은 분노했고, 8명의 자객을 브라만 승려로 변장해 그에게 보냈다. 그는 이 자객들에게 죽었고, 이후 그에게는 칼라지아민(인도인에게 죽임을 당한 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연대기는 기록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포악한 왕은 벽돌 사이에 접착제를 쓰지 않고 바늘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이 작업하도록 무리하게 명령하고,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그 자리에서 처형했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죽었을때, 작업했던 인부들의 복수심으로 안쪽 통로를 깨진 벽돌로 채웠다고 한다. 어쩌면 이 건물이 완성된 뒤 윗부분의 하중을 고려해서 건설자들이 채웠는지도 모른다.
연대기에는 "백성들은 그의 공덕을 위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조심성 있고 꼼꼼하게 일을 해서 담마얀지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주건물 위로 올라간 두 개의 경사진 지붕과 지붕 위에 4단으로 줄어들며 올라가는 테라스 역시 아난다 사원과 비슷하다. 대신 지붕의 모서리에는 마녹띠하가 아닌 중앙탑을 축소한 장식이 있고, 테라스는 접착제를 쓰지 않고 서로 맞물리게 쌓아 올렸다.
테라스 위에 세워진 탑의 본체는 훼손되었다. 훼손된 밑부분에 남아있는 양식을 보면, 아난다 사원같이 사각형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위로 모아지는 형태로, 탑 모서리에는 리텐트식 변화를, 탑의 상하로는 요철을 준 흔적이 보인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경사진 지붕과 테라스, 붕괴된 탑으로 인해 멀리서 바라보면 피라미드 같이 보인다.
벽돌의 질감이 그대로 들어 나는 담마양지
저 대좌 뒤에 손목을 잘랐던곳이 있다
24일날 이라서 호텔직원들이 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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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슬픈 사연이 깃든 담마양지.
미완성 사원은 피를 토해내 듯 붉었다.
한 줄기 빛이 촘촘히 쌓은 벽돌에
싸늘함을 감쌌다.
광기에 휩싸인 나라뚜왕!
진정으로 참회하고 싶었던 걸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