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묵은 숙제를 하듯 조용히 다녀왔다. 지난 6월 19~28일, 10일간의 일정으로 모라비안 공동체 헤른후트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체코 프라하에서 3일 째 되는 날, 차를 렌트해서 독일 국경을 넘어 두시간 남짓 떨어진 헤른후트, 모라비안 공동체를 방문했다. 사실 그동안 BAM운동을 하면서 모라비안은 여러 곳에서 자주 언급하던 단골 메뉴였다. 심지어 IBA에서 일할 때에 선교사를 위한 BAM스쿨의 이름도 ‘Neo Moravian School’이라 이름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공동체를 방문한 적도 없고, 그저 한국어로 번역된 댕커의 책을 읽었고, 이곳 저곳에서 언급된 단편들을 취합해서 그들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정도였다.
마침 이번에 KMQ 여름호에서 “어거스틴부터 랄프윈터까지 12개의 역사적 선교패러다임”을 다루었는데, 내가 모라비안 선교패러다임에 대해 글을 쓰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모라비안에 대한 관심이 더욱 크게 작동했다. 그리고 또 [일터, 하나님의 디자인], 이번에 내 책을 출간하면서, 역사적 사례로 모라비안 스토리를 책의 결론적 이야기로 썼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책을 탈고한 지난 6월 17일은 모라비안 공동체, 헤른후트가 설립 300주년(1722-2022)을 맞는 날이었다. 책을 인쇄소로 넘기고 서둘러 19일 주일밤 가족들과 함께 체코로 날아갔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케리가 1793년에 침례교 선교회를 세우고 인도로 선교사 파송을 받았으니, 실제로 모라비안 공동체는 서인도제도로 첫 선교사를 보낸 1732년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그보다 정확하게 60년전에 시작된 선교 공동체였다. 실제로 그들이 첫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한 이후로 지도자였던 진젠돌프 백작이 사망한 1760년까지 28년간 226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당시 유럽의 사회-경제적 시대상황과 체코로 부터 신앙의 자유를 위해 이주해 온 난민 공동체였던 모라비안들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한 공동체에서 이룬 파송기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진젠돌프 사후에도 200년동안 서인도제도에서만 3천명의 선교사를 보낸 기록들을 가지고 있으니, 모라비안 신학자 샤츠 슈나이더의 말을 빌리면, 모라비안 교회는 “선교하는 전체교회”(the whole church as mission), 그야말로 선교공동체의 전형이었다.
이번 여정을 다녀온 이후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나는 이 질문으로 주의 깊게 이들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며 정리하고 있다. Post-COVID19의 상황에서 우리들의 길을 얻고자 한다. 우리가 역사적 모라비안의 선교역사와 모범을 살피며 그들의 약함과 실패를 피하고, 그들의 강점을 한국교회의 오늘의 선교에 적용한다면, 많은 내용들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오늘 한국교회 현실에 요긴하게 적용해 볼만한 것들로는 다음의 5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온 성도들에게 경건의 삶을 강조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모라비안은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메마른 정통파와 교리논쟁을 벗어나서 신조가 아니라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 말씀은 살라고 주신 것이라 믿으며 삶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긴다. 루터에 의해 번역된 독일어 성경은 이들의 기초가 되었다. 할레대학 시절부터 진젠돌프의 성경사랑은 극진했다. 이는 모라비안 공동체와 선교사들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오늘날의 묵상운동(QT)은 모라비안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한국교회는 코로나시기를 지나며 언텍트 상황에서 흩어져 존재하는 동안 개인의 신앙이 생존정도였음을 여러 방면에서 확인된다. 이제는 죽은 교조주의가 아니라 살아있는 실천을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경건의 삶을 훈련해야 한다. 선교는 삶에서 시작된다. 말의 선교가 아니라 삶의 선교다. 외치며 전하는 것만큼이나 살아 보여주는 메시지가 필요한 시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2. 오직 기도와 선교로 불타는 성령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교회는 존재적으로 선교적임을 믿었다. 성령께서 그들가운데 역사하자, 그들은 먼저 열방을 위해 기도했다. 24*365 릴레이기도 운동은 이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120년을 지속하며 열방을 위해 기도하였고, 이들은 기도하며 선교가 불이 붙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선교를 위해 가진 힘을 다하며 모든 노력을 선교에 부었다. 호이(Hoy)는 모라비안 교회의 선교를 평가하며, “모라비안 형제단교회는 실로 ‘선교사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임을 표방하는 그 어떤 공동체도 그와 같은 명칭을 주장할 수 없다.” 고 극찬한다. 우리 한국교회도 세계 어떤 교회보다 선교하는 교회요, 선교적 유산을 가진 교회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회의 저성장과 맞물려서 선교적 열심이 식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시 선교에 전력을 다하는 교회로 회복되어야 할 때다.
3. 모든 성도들이 직업을 가진 선교사로 살게하는 것이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자비량 전문인 선교의 효시였다. 또한 BAM의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다. 근대선교의 문을 연 것은 바로 직업을 가진 모라비안 선교사들이었으며, 이들의 선교원리는 “자비량선교”였다. 윌리암 댕커(William J. Danker)는 진젠돌프 백작 자신도 지치지 않는 노동자였으며, 선교사들 스스로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함으로 현지인들에게 노동의 존엄성을 가르치길 원했던 것이라며, “모라비안들은 자비량 선교를 규정으로 삼아 당연시 했다. 이것은 또 다른 사역의 시작이라기보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해오던 사역의 연장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오늘 한국교회 선교에는 목사 선교사가 중심에 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모라비안들처럼 국내에서 일하며, 또 타문화권 어디로 보냄을 받든지 국내에서 하던 삶의 연장으로 일터에서 동일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가 되었다. 댕커는 “모라비안들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여는, 모든 크리스천은 선교사이며, 사업가도 설교자, 교사, 의사와 나란히 세계선교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라비안 선교사들의 사역의 목적은 기독교인 개개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하게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사업가이면서 동시에 선교사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고 했다. 모든 성도들의 변혁적인 삶은 중요해졌다. 총체적 선교의 관점에서 비즈니스 세계의 모든 일터와 영역에서 선교적 변혁이 필요하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모든 성도들이 자신을 부르신 자리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도록 준비시키며 축복하며, 또 부르시는 곳 어디든지 파송해야 할 것이다.
4. 난민-이주민을 환대하고 함께 연합하여 일하는 것이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그야말로 이주민이며, 난민공동체였다. 모라비아의 난민들이 독일 작센의 한 백작의 영지에 이주하게 되었다. 그 땅의 영향력을 가진 공동체와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그곳에 이주민들은 선교적 공동체로서 ‘형제연합’(Unitas Fratrum)을 이루고 선교역사에 기념비적인 놀라운 하나님나라의 시너지(Kingdom Synergy)와 열매를 결과했다. 이미 우리나라는 이주민이 인구5% 250만에 달하는 다문화 다민족 사회다. 이제 우리를 찾아오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우리와 같이 여기며 적극 환대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적극적으로 끌어 안고 더불어 살기로 결정할 때에 그곳은 하나님나라가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집 대문밖에서 선교지를 만나고, 일터와 삶의 전영역에서 땅 끝을 만나고 있다. 이제 그들을 환대하고 사랑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세계선교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시대다.
5. 예수제자로서 순전한 복음과 열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모라비안들의 영성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모라비안 공동체의 로고는 ‘어린양’이었다. 그들은 진젠돌프의 십자가 복음의 경험처럼, 모두 그리스도의 레디컬한 복음을 경험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그들의 삶에는 구원의 기쁨이 살아 있었다. 그 구원의 기쁨은 구령의 열정으로 이어졌다. 모라비안 선교활동의 근본을 이루는 핵심 정신은 ‘주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잃은 자를 위한 사랑’(Love to them Lord, love for the Lost)이었다.
오늘 아침도 매일성경의 히브리서 말씀(히9장)을 묵상하면서, 더 뜨겁게 예수와 그 십자가의 사랑을 향한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워 진다.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종교개혁의 새벽별 체코의 얀 후스가 화형장에서 죽어가며 외쳤던 외마디가 그것이었을까? “O Sancta Simplicitas! 오 거룩한 단순함이여!” 이번 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진젠돌프가 어릴적 복음을 만난이후에 그의 일기에 적어둔 한 마디였다. 오늘 아침 다시 되새긴다. “I have only one passion, and that is Christ 내게는 단 하나의 열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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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9는 모라비안 페이지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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