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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3수련회1 [산 믿음이 가져온 산 소망]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로마서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원하는 것은 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게 하나님이 믿음을 다 주셨기 바란다.
하나님이 구상하셨던 그 신앙이 있기 원한다.
하나님이 오래전에 나를 기억하셨다면, 나를 향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나를 향한 책임으로서 나를 신경써 주셨기를 원한다.
우리 하나님은 빈틈있게, 될 사람만 되라고 하지 않으실 것이다.
정말 신뢰할 수 있는 분이 나를 생각하셨다면, 나에게 그 믿음을 주셨을 것이다.
내가 설령 감당하지 못하고, 그 믿음을 갖는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부인하지 않는 것은 그가 내게 믿음을 주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가 내게 믿음을 가질 기회를 충분히 주셨을 것이다.
나에게만 그랬을까.
오늘 이 순간 여러분이 하나님을 방불케 하는 완벽을 논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최고의 선물, 달려오다가 시들어가는 것이 아닌 선물이 있을 것을 믿는다.
믿음.
하나님이 믿어지는 믿음이다.
하나님과 연결하는 유일한 것.
이 땅에서 여러분을 살려서 하늘로 올리는 진리.
생명이 솟아나는 진리.
예수 죽으심으로 만든 새생명.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셨을 것이다.
생명만 주셨을까.
생명만 주시고, 여러분의 영적 지위는 차별을 두셨을까.
누구는 훌륭하고, 누구는 영적 지위가 낮을까.
그 차별이 가해지도록 부실한 생명을 주셨을까.
생명에도 차별이 있는가.
오늘 받은 생명에 등급이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구원이 있도록 베푸셨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랑받고도 남는 자가 되었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든 회개한 자라면, 침례가 자기에게 너무도 중요한 것을 안다면, 그 돌이킴이 인생을 바꾸는 것임을 알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살아있을 것이다.
누구도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해서, 고개를 돌릴 사람은 없다.
문제는 믿음없는 소망이다.
[믿음 없는 소망]
믿음 없는 소망은 환경에 의해서, 완전치 않은 믿음을 갖도록 영향을 받는다.
믿음이라는 것은 있지만, 진짜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고스란히 주셨는데, 환경에 의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만다.
내 신앙의 위치가 어디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교회 일을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미 세상 영향도 많이 받았다.
내 열심이 상달이 되었는지, 내가 하나님께 맡겨진 자인지, 아직도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 많다.
이것은 기독교 교회의 강단에서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다 부족하다고 해서 그렇다.
성도들의 신앙은 굉장히 모자르고, 최고가 되어야 목사의 50프로나 된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디나 다 그런 것 같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믿음을 주셨는데도, 수준이 낮다고 강요하는 바람에 이건지, 저건지 모르는 사람 많다.
천국 가고 싶은 소원은 있다.
그런데, 이 소원은 확실치 않다.
왜냐면, 자기 믿음이 진짜인지도 확실치 않다.
마음속으로는 그저 잘 되겠지 한다.
믿음이 부실한 소망.
힘이 없는 소망.
이름만 소망에 불과한 것.
기독교 안의 소망은 실질이다.
진짜 일어난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안될 것 같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밖에 안되는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그날 눈부신 의인이 되는 복이다.
그러나, 육신이 있는 동안, 모든 것은 죄로 물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 관습에 거쳐 들어간다.
그래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나님은 차별없는 완벽한 믿음을 주셨는데, 그것을 나누다보면, 온 세계 말씀 전하는 자의 버릇 같은데, 세상의 때가 조금씩이라도 묻어있다.
세상의 권세와 연관시켜서 말을 한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권위로 변환해서 나타낸다.
[권위, 지배욕]
신앙의 좋고 나쁨을 영적 권위로 나타낸다.
세상의 지배의 개념과 영적 수준을 연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직분이 높으면, 영적 수준도 높고, 하나님의 관심도 높다고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신앙의 높고 낮음은 세상의 권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천국에서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인간의 죄성 때문에, 세상의 해석이 묻어나온다.
교회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
겸손하고, 섬기는 것이 진짜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믿음을 받았으면, 그의 마음과 성질과 언어가 맞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믿음을 베푸신 이의 성질을 안다면, 여기서 권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것을 빌려오면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최고 작품은 여러분이 구속받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른다기 보다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작품을 하나님께 드려서, 높아지려고만 한다.
이왕 죽으려면, 스데반처럼 죽으려고 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개인의 작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자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 대해서, 그냥 만족하신다.
자기가 받은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사람에 대해서 만족하신다.
내가 준 구원을 소중히 여기고, 적용되었는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주어졌는가가 하나님의 최고 관심이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내게서 훌륭한 작품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만을 바라신다.
이 세상의 것과 자꾸 연관시켜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다.
과거 구약시대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유대 사회의 규범을 거의 다 지키셨는데, 한가지 다르게 하신 것이 있다.
물론 사람들이 율법을 오해해서 그런 것이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겸손한 자가 높다는 것이다.
오히려 높은 자를 하나님이 나쁘게 보신다는 것이다.
이미 구약에서도 경고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이런 것을 잘 생각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다윗의 모델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셨을 때는 그를 그리스도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
다윗은 지배하는 왕인데, 예수님은 고난받고, 미움받고, 가진 것이 없고, 사회적 지위도 없다.
그런데, 그분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자기 아픔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몰랐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있으면 섬긴다.
가장 가까운 증거다.
섬기는 자가 모름지기 구원이 완성된 것이다.
[우리 성도 모습]
언제 믿음의 수준이 될까 생각하지 말자.
여러가지로 우리 신앙이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한 것을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이 아니다.
요즘 우리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옛날에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이 나타난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거짓 영이 들어와서 교회를 훼파하고, 여러움을 주는데, 곳곳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도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사건도 많고, 하나님이 준비하지 않은 사람도 많아서, 많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성도들이 하나님의 믿음으로 여기 있었다.
총회 준비하면서도, 고생많이 했고, 억울함도 해소되지 않고, 그냥 달려왔다.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 많았다.
그 성도들은 나를 보면서, 용기를 주기 원했다.
나는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기 원한다.
내가 그분들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사정도 다 모르지만, 다 축복한다.
내가 본 영혼들도 다 축복하고,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다 볼 수 없는 분들도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라 믿는다.
실패하지 않고, 빠진 것이 없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시고, 왕이시다.
어떤 성도들은 진짜 내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성도들 간의 기준으로 보면, 개인의 감정 관계가 얽혀 있어서,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손톱만큼의 사적 욕심도 없이, 하늘로 올리는 것을 성도가 돕고 있으면, 강하게 가슴을 친다.
머리에 떠오르는 몇분이 있다.
그런 분을 보면, 사실 나는 무섭다.
하나님이 저 사람 속에 있구나, 저 사람 속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구나.
그 사람은 남들보다 고생도 많이 하고, 속에 남모를 아픔도 있고, 오해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 앞에서 대단하다고 칭찬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권위를 대표할 도구이기 때문에, 아무데나 그렇게 할 수 없다.
칭찬을 과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성도는 감독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떠난 사람도 있다.
감독이 감정 표현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곳에서 하나님이 더 명확히 기억하신다.
나는 그 영혼이 너무 고맙다.
그 영혼을, 하나님을 교회에 불러오는 자라고 부르고 싶다.
감독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풀어서 공식으로 먹이는 자가 아니라, 그런 분은 하나님의 영향으로 교회를 축복받게 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는 길도 길게 봐야 한다.
어려움이 있고, 환난이 있을 때, 참고 인내하는 성도들 포기하지 말라.
여기서는 감독이 주인이 아니라, 누구도 주인이 아니고, 승리도 주인이 아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 곳이다.
하나님이 회개를 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지 보시고,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 영혼을 살리는 것에 집중하신다.
그 영혼에 믿음이 있는 것을 집중하신다.
많은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기를 향한 관심이 많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이제부터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돌리고, 새로운 개념을 세워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예수 믿는 것은 교회 열심히 다니고, 신앙의 패턴을 잘 훌륭하게 하는 것이 우선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 때문에, 자기 속에 감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
어떤 진술, 예수 이름 부르면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표현일 뿐이다.
그 마음 속에 감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으로 흔들어야 한다.
신앙은 감동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내 속에 깊이 인두로 지져져야 한다.
세월이 지나도, 아직 여전히 상처가 있어서, 감각이 느껴져야 한다.
그 사랑으로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절망이 없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뜨겁지 않을 것이다.
감동없이, 어떻게 잘되겠지, 이 많은 사람들과 다 같이 지옥가지 않겠지, 이런 식이면 안된다.
눈으로는 누가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 모른다.
누구 속에는 하나님이 가득하여, 하늘로 올리려고 하는데, 어떤 이는 수준이 낮다고 한다.
나는 사회적으로 볼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는다.
이 세상 다 망가뜨려도, 하나님은 망가뜨리지 않는다.
이 세상 다 하나님을 부인해도, 나는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이다.
그러나, 세상식으로 나를 미워한다.
나는 누구도 미워하거나, 겉모습으로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
신앙의 다른 면으로 나는 엄청 화려하고, 은사가 엄청 뛰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하나님이 주신 내 신앙 때문에 산다.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나보다 더 귀하기 때문에, 신앙으로 산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키고, 이 신앙 때문에, 나도 살려주시기 원한다.
나는 구체적인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실 것이다.
놀라운 영광으로 나를 빛내주실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을 운에 맡기지 말기 바란다.
신앙을 운에 맡기지 말자.
하나님은 내게 뜨거운 감동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내게 뜨거운 감동으로 믿음을 주신다.
천국이 자기 눈앞에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실 유일한 기회다.
이것을 알고 있으면 된다.
하나님은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하나님은 나를 구하실 유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유일한 생명이다.
하나님은 나의 유일한 천국길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소용없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시스템 안에서 하지만, 하나님의 뜨거운 감동으로 신앙을 지켜가는 것이다.
주일마다 성도들을 보면, 우리 성도들 옛날과는 많이 다르게 믿음의 수준이 높다.
자기를 희생하고, 사랑하는 것에 열정을 갖는 것이 너무 기쁘다.
너무 신기하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을 하고 있다고 내게 전달된다.
나는 하나님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부족하지만, 강단에서 정말 하늘의 하나님이 각 사람에 부족함 없이 전해졌기를 바란다.
인간의 언어를 통해, 제대로 통역하기를 바란다.
여러분 자축해도 충분하다. 나는 너무 놀랐다.
우리는 분쟁중이다. 거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믿음이 수준에]
우리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 바란다.
왜 뜨거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뜨겁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자기는 수준이 낮다고 의심하지 말기 바란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산 믿음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는다면, 천국 어떻게 되겠지 생각하는 위험한 것이다.
첫사랑을 잃는 자가 될 수 있다.
항상 수준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부족하지 않다.
예수 믿은 다음 날, 하나님이 최고로 치는 신앙이 될 수 있다.
십자가 밑에 있었다면, 누구도 신앙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진실로 회개하여, 변화되고, 섬기고, 당장 자기를 드려 섬기는 자가 되자.
믿으면 즉시 수준이 올라간다.
일단 하나님께 맡겨진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맡겨진 자다.
이것이 안되면 안된다.
지금껏 목이 터져라 외쳤어도, 이것이 안되면 안된다.
하나님께 맡겨진 자가 되자.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침례 받는 자다.
이제는 주와 함께 죽고 산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사랑을 부어주셨으니, 누구도 그를 부족한 자, 의심할 자로 보지 않는다.
로마서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로마서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의 환난은 인내를 갖게 하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모데후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디모데후서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디모데후서 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7절부터 읽다가, 12절에는 확 쓰러질 것 같은 감동이 온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찬)
그가 지키실 것이다. 맡겨져야 한다.
에베소서 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그가 원하시는대로 배치하여, 한 소망을 주신다.
우리의 소망은 98프로 똑같아야 한다.
그래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천국을 준비한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가 천국을 갈 때, 주님처럼 백프로 깨끗하고, 선하고, 악이 없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렇게 한다.
그것이 하나님과 유니폼을 맞게 입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한 자세다.
구체적인 방법을 주셨으니, 그것이 사랑이다.
요한1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한1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한1서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 깨끗함은 남을 멸시하며, 자기가 깨끗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선한 것이다.
우리가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수련회에 와서, 서로 격려 많이 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구체적으로 펼치고, 내게 있는 믿음이 수준이 낮다고 하지 말기 바란다.
주님이 주신 신앙, 통회하고 주님으로부터 얻은 믿음은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오늘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믿음올 살려내기 바란다.
회개 이상은 없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더 말하겠지만, 그 믿음을 어떻게 나타내는가.
다들 수준이 낮다고, 멸시하지 말고, 섬기자.
잘 섬기며, 기뻐하면, 그 믿음이 잘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일등신자는 섬기는 자다.
일등신자는 사랑하는 자다.
이것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다.
서로 사랑하라, 그래야 그리스도인이다.
수련회 안에서 많은 사랑을 베푸시고, 자기 자랑하지 말고, 섬겨주라.
자기 눈으로 판단하지 말자.
여기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곳임을 알자.
하나님은 성도들 각각을 터치하고, 하나님의 영향력으로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우리는 사무처리 하는데도, 언제까지 참으시겠습니까, 다만 하나님께 불만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할 것이다.
이 모든 환경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늘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더 인내하고, 정금같이 변화되어, 하나님 앞에 나가겠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어느 쪽으로 손들어주실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락인이 백프로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한다.
누구 신앙도 얕보지 말고, 살리라.
엄청난 하나님의 생명이 녹아든 영혼들을 존중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감사하자.
이후에 찬양할 때, 기쁨으로 하자.
속상한 일이 많으니까, 찬양도 속풀이 하듯 하지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찬양하자.
우리의 신앙을 세상개념으로 비교해서 따지지 말고, 영원한 나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것은 백프로 믿음을 주셨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표를 나타내자.
여러분의 믿음이 살아나려면, 섬겨야 한다.
믿음이 충만한 소망을 갖자.
천국 가는 것이 확실한 믿음을 갖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