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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5월 5일 오전 예배설교)
요한일서 5:1-12(신약 393)
오늘은 어린이 날이고 교회에서는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올해가 어린이 날 102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네요. 옛날 우리 문화는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보다는 부모들의 소유 정도로만 여기는 문화였습니다.
그런 문화에서 어린이를 위한 날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연세 드신 분들은 어린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어른들 뜻대로 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인격체이고 하나님 앞에서 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 주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 주일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어린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요한 사도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요한 복음에서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표현을 요한일서에서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의 개념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요한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결국은 세상을 이기는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강한 힘과 능력으로, 아니면 막강한 권력으로, 아니면 돈으로, 아니면 엄청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승리의 조건으로 세상적인 방법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을 이야기 하고, 믿음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들어보면 세상적인 방법을 이야기 하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기준이나 방법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세상적인 관점이 교회에도 들어와서 물량주의로 믿음을 평가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은 힘과 권세와 돈과 물량주의가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근래에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정치적인 힘을 이용하는 것을 자랑하는가 하면 목회자들이 정치에 빠져들어서 정치하는 목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왜 정치를 하려고 하고 왜 정치적인 힘을 동원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영적 승리의 원리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교회는 정치적인 힘이 약해서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정치인들을 국회로 보내고 기독교인들이 정부 요직에서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정치를 하려고 하고, 목회자들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대형 교회의 성도들을 동원해서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정치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세상의 방법을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분들은 믿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기는 즉 승리하는 성경적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요한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에서 난 자를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 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첫 번째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어디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면 세상을 이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세상과 어울려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을 이겨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온 사람이고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요한 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일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는데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지만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하나님에 의해서 기름 부음을 받아서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과 핍박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라는 개념이 강했습니다.
단순히 왕이나 제사장이 아닌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분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다리던 정치적인 구세주가 아닌 영혼의 구세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영혼 구원의 구세주로 오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생명의 주님이시며 구세주로 믿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영혼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해 주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심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란 말은 양자가 된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양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양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에게서 난 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단수’ 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체 문맥으로 보면 단순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비롯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이심을 믿고, 믿음의 공동체인 성도들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 사도를 통해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서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면 나에게서 난 자이며 나의 양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하나님의 양자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2-3절을 보면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반복해서 요한 사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성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되었기에 이제는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이긴다고 말씀했습니다. 4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아니면 세상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자들은 이미 세상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세상과 같은 편이기 때문에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 즉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는 세상과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왕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힘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의 힘이고 왕이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믿음입니다. 4절을 다시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믿음이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을 때 그 이름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게 되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논쟁 중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지금도 일부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일하신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성부 하나님과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 그리고 오순절날 우리에게 오신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고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 세상을 이기는 것이고 이 믿음이 없이는 세상을 이기는 영적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증거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난 자 즉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과 믿음 안에서 하나 된 성도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전하는 것이고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사랑입니다. 또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 승리하신 주님을 믿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증거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증거에 대해서 증언하시는 분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6-9절까지를 보면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5: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5: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6-8절까지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5:6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와 죽음을 눈앞에 두셨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진실하신 성령께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5:7 “그러므로 우리는 세 증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곧 우리 마음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으신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 이 셋입니다. 이 세 음성이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똑같은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현대어 성경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고,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서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즉 피를 흘리실 때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고 요한 사도는 증언했다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부터 성령님이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증언하셨고,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요한과 사도들이 받은 증언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증거가 있고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감동이 있습니다. 이 증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순간 각자의 마음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마음에 있던 감동과 은혜가 각자에게 주어진 증거라고 말한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거짓말로 생각하고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은 진리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12절을 보면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믿는 것이기에 믿는 자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그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마음에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믿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었고, 우리의 믿음과 진정한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세상을 믿음과 사랑으로 이기는 영적 승리자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복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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