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권(姜允權) (姜胤權)
[생원시]중종(中宗)5년(1510)경오(庚午)식년시(式年試)[생원]3등(三等)39위(69/100)
1510년 2월 25일
강관(姜琯) 백옥(伯玉) ? ~ ? 진주(晉州) 병과(丙科) 10위
강은(姜㶏) 청로(淸老) 규형(葵亨) 1492 ~ ? 진주(晉州) 3등(三等) 1위
강응신(姜應臣) 명세(名世) ? ~ ? 진주(晉州) 3등(三等) 20위
강세령(姜世寧) 태보(泰甫) ? ~ ? 진주(晉州) 3등(三等) 24위
강윤권(姜允權) 평중(平仲) ? ~ ? 진주(晉州) 3등(三等) 39위
강은(姜㶏) 청로(淸老) 규형(葵亨) 1492 ~ ? 진주(晉州) 3등(三等) 53위
강숙혼(姜叔渾) 자호(子浩) ? ~ ? 진주(晉州) 3등(三等) 58위
[인물요약]
한자명 강윤권(姜允權)【補】(주1)
자(字) 평중(平仲)
본인본관 진주(晉州)
거주지 남양(南陽)【補】(주2)
[관련정보]
[문과]중종(中宗)15년(1520)경진(庚辰)별시(別試)병과(丙科)1위(4/11)
모든 방목에 “별시방”으로 나온다. 그리고 모두 시험실시를 9월에 거행하였다고 적고있다. 실록에 의하면 9월10일에 근정전에서 책문으로 문과를, 모화관에서 무과를 실시하였다. 문무과는 당일에 합격자를 발표하였다.
25일에 권정례로 문무과 방방을 하였다.
중종실록에 송겸(宋㻩)등 11인을 뽑고, 모화관에서 무사를 시험하여 이지(李芝)등 30인을 뽑았다고 나온다.
[이력사항]
선발인원 11명 [甲1‧乙2‧丙8]
전력 생원(生員)
품계 통정대부(通政大夫)
관직 감정(監正)
문과시험답안 책문(策問)
[가족사항]
[부]
성명 : 강달성(姜達成) (주3)
품계 : 선무랑(宣務郞)
관직 : 남부주부(南部主簿)
[조부(祖父)]
성명 : 강○○(姜○○)
[증조부(曾祖父)]
성명 : 강○○(姜○○)
[외조부(外祖父)]
성명 : ○○○(○○○)
본관 : 미상(未詳)
[처부(妻父)]
성명 : ○○○(○○○)
본관 : 미상(未詳)
[가족과거]
자(子) : 강여개(姜汝愷)[文]
[주 1] 한자명 :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고서(I) 353.003 사마 1510]) 내의 합격 기록에는 한자명이 "강윤권(姜允權)"으로 나옴.
[주 2] 거주지 :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고서(I) 353.003 사마 1510]) 내의 합격 기록을 참고하여 거주지를 추가.
[주 3] 부 :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고서(I) 353.003 사마 1510]) 내의 합격 기록에는 부가 "강달성(姜達城)"으로 나옴.
[출전]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연세대학교[고서 (I) 353.003 사마 1510])
2005-11-30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연세대학교)을 저본으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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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40권, 15년(1520 경진/명정덕(正德) 15년) 9월 10일(갑자) 1번째기사
유사에게 책문하여 송겸등 11인을 뽑고 무사를 시험하여 이지등 30인을 뽑다
상이 근정전(勤政殿)10262)에 나아가 친히 유사(儒士)를 책문(策問)10263) 하여 송겸(宋㻩)등 11인을 뽑고,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친히 무사(武士)를 시험하여 이지(李芝)등 30인을 뽑았다.
註10262]근정전(勤政殿): 경복궁(景福宮)의 정전(正殿).註10263]책문(策問): 임금이 경서(經書)의 뜻이나 정치상의 문제를 내어 응시자에게 의견을 묻는 것. 책문에 대하여 응답하는 것을 대책(對策)이라하는데, 대책은 문과전시(文科殿試)에 있어서의 제술(製述)의 하나이다.
○甲子/上御勤政殿, 親策儒士, 取宋㻩等十一人, 幸慕華館, 親試武士, 取李芝等三十人。
중종 40권, 15년(1520 경진/명정덕(正德) 15년) 9월 25일(기묘) 1번째기사
문과·무과의 방을 내다
문과(文科)·무과(武科)의 방(榜)을 냈다.
【송겸(宋濂) 등의 방인데, 권정례(權停例)로 거행하였다.】
○己卯/放文、武科榜。【宋濂等榜也。 以權停例行之。】
강윤권(姜胤權) 평중(平仲) ? ~ ? 진주(晉州) 병과(丙科) 1위
중종 57권, 21년(1526 병술/명가정(嘉靖) 5년) 8월 11일 임술 7번째기사
손중돈, 한형윤, 조옥곤, 박윤경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손중돈(孫仲暾)을 의정부좌참찬으로, 한형윤(韓亨允)을 공조판서로, 조옥곤(趙玉崐)을 대사헌으로, 박윤경(朴閏卿)을 대사간으로, 남세웅(男世雄)을 집의(執義)로, 심사순(沈思順)을 사간(司諫)으로, 허흡(許洽), 심의흠(沈義欽)을 장령으로, 홍석견(洪石堅), 김기(金紀)를 지평(持平)으로, 송염(宋(王廉))을 헌납(獻納)으로, 송순(宋純), 강윤권(姜允權)을 정언(正言)으로 임명하였다.
○以孫仲暾爲議政府左參贊, 韓亨允爲工曹判書, 趙玉崐爲大司憲, 朴閏卿爲大司諫, 南世雄爲執義, 沈思順爲司諫, 許洽、沈義欽爲掌令, 洪石堅、金紀爲持平, 宋염爲獻納, 宋純、姜允權爲正言。
중종 57권, 21년(1526 병술/명가정(嘉靖) 5년) 8월 13일 갑자 1번째기사
사간 심사순의 건의에 따라 대사헌, 정언을 체직시키다
사간 심사순이 아뢰기를,
“대사헌은 진실로 가려서 임명해야 하는데 조옥곤은 명망이 가벼워 합당치 않습니다. 정언 강윤권은 간관(諫官)에 합당치 않습니다. 아울러 체직시키소서.”하니,
전교하기를,
“동료에게 논박받았으니 모두 체직시키도록 하라.”하였다.
○甲子/司諫沈思順啓曰: “大司憲固當擇差, 而趙玉崐望輕不合。 正言姜允權不合諫官, 請竝遞之。” 傳曰: “被論於同僚, 皆可遞也。”
명종 12권, 6년(1551 신해/명가정(嘉靖) 30년) 11월10일(갑오) 4번째기사
삼공이 안현·홍섬·박수량 등 33인을 염근으로 이름을 고쳐뽑다
사인이 삼공의 뜻으로 아뢰기를,
“청간한 사람은 널리 뽑기가 어려우므로 염근(廉謹)으로 이름을 고쳐서 초계하였습니다. 또 수령은 다 알 수가 없으니 감사로 하여금 초출하게 하고 육조에 소속된 각사(各司)는 육조로 하여금 뽑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그리하라고 전교하였다.
뽑힌자는 안현(安玹)·홍섬(洪暹)·박수량(朴守良)·이준경(李浚慶)·조사수(趙士秀 )·이명(李蓂)·임호신(任虎臣)·주세붕(周世鵬)·김수문(金秀文)·이몽필(李夢弼)·이세장(李世璋)·이영(李榮)·김순(金珣)·전팽령(全彭齡)·홍담(洪曇)·성세장(成世章)·윤부(尹釜)·윤현(尹鉉)·윤춘년(尹春年)·정종영(鄭宗榮)·박영준(朴永俊)·오상(吳祥)·이중경(李重慶)·김개(金鎧)·임보신(任輔臣)·이황(李滉)·안종전(安從㙉)·송익수(宋益壽)·김우(金雨)·변훈남(卞勳男)·신사형(辛士衡)·강윤권(姜允權)·우세겸(禹世謙)등 모두 33인이었다.
○舍人以三公意啓曰: “淸簡之人, 難於廣選, 故改以廉謹爲號而抄啓矣。 且守令不能盡知, 令監司抄出, 六曹所屬各司, 令六曹抄之何如?” 傳曰: “可。” 被抄, 安玹、洪暹、朴守良、李浚慶、趙士秀、李蓂、任虎臣、周世鵬、金秀文、李夢弼、李世璋、李榮、金珣、全彭齡、(洪雲)〔洪曇〕、成世章、尹釜、尹鉉、尹春年、鄭宗榮、朴永俊、吳祥、李重慶、金鎧、任輔臣、李滉、安從㙉、宋益壽、金雨、卞勳男、辛士衡、姜允權、禹世謙, 幷三十三人。
명종 13권, 7년(1552 임자/명가정(嘉靖) 31년) 11월 4일(임오) 1번째기사
궐정에서 염근인과 근근인들에게 물건을 차등있게 내리다
궐정(闕庭)에서 염근인(廉謹仁)에게 일등악(一等樂)을 내리라고 명했는데 근근인(勤謹人)들도 참석하였다. 각기 단목(丹木)·호초(胡椒)등의 물건을 차등 있게 내렸고, 저물녘이 되자 각기 백랍촉(白蠟燭) 한 쌍씩을 내렸다. 호조판서 안현(安玹), 우참찬 박수량(朴守良), 평안도관찰사 홍섬(洪暹),【부임하지 않았었다.】형조판서 조사수(助士秀), 대사성(大司成) 이명(李蓂), 예조참의 이몽필(李夢弼), 좌승지 홍담(洪曇), 우승지 성세장(成世章), 대사간 윤춘년(尹春年), 판교(判校) 윤현(尹鉉), 우통례(右通禮) 윤부(尹釜), 장령 유혼(柳渾), 제용감부정(濟用監副正) 우세겸(禹世謙), 사복시정(司僕寺正) 박영준(朴永俊), 사복시부정 임보신(任輔臣), 홍문관교리 정종영(鄭宗榮), 부교리 박민헌(朴民獻), 공조정랑 이증영(李增榮), 내섬시직장(內贍寺直長) 김몽좌(金夢佐) 이상 19인은 염근으로 피선되었다.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김사근(金思謹),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 조용(趙容) 이상 2인은 근근(勤謹)으로 피선되었다.
대사헌 이준경(李浚慶),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임호신(任虎臣)과 주세붕(周世鵬), 동부승지(同副承旨) 김개(金鎧), 전대사성 이황(李滉), 전한(典翰) 송찬(宋贊), 부장(部奬) 허세린(許世麟), 군기시별좌(軍器寺別坐) 안잠(安潛), 행사용(行司容) 김팽령(金彭齡), 사재감정(司宰監正) 강윤권(姜允權) 이상 10인은 염근으로 피선되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참여하지 못하였다.
외임(外任) 염근인(廉謹人)인 회령부사(會寧府使) 이영(李榮), 강계부사(江界府使) 김순(金洵), 나주목사(羅州牧使) 오상(吳祥), 상주목사(尙州牧使) 신잠(申潛), 밀양부사(密陽府使) 김우(金雨), 온양군수(溫陽郡守) 이중경(李重慶), 예천군수(醴泉郡守) 안종전(安從琠), 강릉부사(江陵府使) 김확(金擴), 신계현령(新溪懸令) 유언겸(兪彦謙), 금구현령(金溝懸令) 변훈남(卞勳男), 한산군수(韓山郡守) 김약묵(金若默), 지례현감(知禮縣監) 노진(盧禛), 칠원현감(漆原縣監) 신사형(辛士衡), 선산(善山)에 사는 전군수(郡守) 김취문(金就文) 이상 14인에게는 각기 향표리(鄕表裏) 1습(襲)을 하사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대저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않는 법인데 뽑힌 자들이 모두 자신을 반성해 보아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추천하여 뽑는 것이 정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의가 비웃었을 뿐만 아니라 피선된 자들 가운데도 함께 참여된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한 자가 있었다. 당국자(當國者)인 윤원형(尹元衡)과 심통원(沈通源)은 참여되지 못하였으니 타오르는 불꽃같은 위세로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었던가?
사신은 논한다. 피선된 가운데 몇 명의 염근한 선비가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더러는 권귀(權貴)의 문(門)에 실절(失節)한 자도 있고 더러는 어두운 밤에 뇌물을 받은자도 있는데 이들이 함께 뒤섞여 나와 아름다운 이름을 도둑질하여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었으니, 자신을 반성하여 보아 허물이 없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윤원형은 양양(梁楊)1267)의 권세를 끼고 마음대로 탐욕을 부려 남의 것 빼앗기를 싫증낼 줄 몰랐다.
이런 일로 시랑(豺狼)의 마음을 고쳐 염근의 풍조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나는 옳은 줄 모르겠다.
사신은 논한다. 내수(內需)·사탕(私帑)의 재정(財政)이 매우 급박한데 사연(賜宴)·사물(賜物)하는 것으로 청신(淸愼)한 사람들을 권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랫사람들이 나의 처사를 믿지않는데야 어쩌겠는가? 더구나 피선자(被選者)속에 한두 사람은 합당한자가 있지만, 기타는 소렴곡근(小廉曲謹)1268)일 뿐이어서 진위(眞僞)를 알 수없고 무능한 자들까지 섞였으니, 식자들이 비웃었다. 또 탐욕하지 않음을 보배로 여기고 일처리를 제사(祭祀)처럼 공경히하는 자가 없지않았는데도 시재(時宰)가 살피지 못했으니, 이를 공선(公選)이라 할 수 있겠는가?
註1267]양양(梁楊): 양기(梁冀)와 양국충(楊國忠).註1268]소렴곡근(小廉曲謹) : 작은 청렴과 근신
○壬午/命賜宴廉謹人于闕庭, 賜一等樂, 勤謹人亦參。 各賜丹木、胡椒等物有差, 至昏, 各賜白蠟燭一雙。 戶曹判書安玹、右參贊朴守良、平安道觀察使洪暹、【未赴任。】刑曹判書趙士秀、大司成李眞、禮曹參議李夢弼、左承旨洪曇、右承旨成世章、大司諫尹春年、判校尹鉉、右通禮尹釜、掌令柳渾、濟用監副正禹世謙、司僕寺正朴永俊、司僕寺副正任輔臣、弘文館校理鄭宗榮、副校理朴民獻、工曹正郞李增榮、內贍寺直長金夢佐十九人, 以廉謹被選。 尙衣院直長金思謹、義盈庫直長趙容二人, 以勤謹被選。 大司憲李浚慶、同知中樞府事任虎臣ㆍ周世鵬、同副承旨金鎧、前大司成李滉、典翰宋賛、部將許世麟、軍器寺別坐安潜、行司勇金彭齡、司宰監正姜允權十人, 以廉謹被選, 而因病未參。 外任廉謹人, 會寧府使李榮、江界府使金洵、羅州牧使吳祥、尙州牧使申潛、密陽府使金雨、溫陽郡守李重慶、醴泉郡守安從琠、江陵府使金擴、新溪縣令兪彦謙、金溝縣令卞勳男、韓山郡守金若默、知禮縣監盧禛、柒原縣監辛士衡、善山居前郡守金就文十四人, 各賜鄕表裏一襲。
【史臣曰: “嗚呼! 夫人可欺, 惟天不容僞。 與選者, 其能皆無愧於內省乎? 推選不精, 故非但物議笑之, 被選之中, 亦自有羞與爲比者焉。 然當國之元衡、通源, 不得與焉, 燻灼之威, 亦有所不及乎!”】
【史臣曰: “被選之中, 豈無數三廉謹之士哉? 然或失身於權貴之門, 或受賂於昏夜之間, 混然雜進, 徒竊美名, 飮酒聽樂, 內省無咎者, 幾何人哉? 况尹元衡挾梁、楊之勢, 肆貪濫之慾, 將至於不奪不厭。 此可以革豺狼之心, 而興廉謹之風乎? 臣未知其可也。”】
【史臣曰: “內需、私帑之政方急, 而欲以此聳勤淸愼之人, 其於群下之莫予信, 何哉? 而況被選者, 其間雖有一二可人, 而小廉曲謹, 眞贗莫知, 吹竽之混, 識者笑之。 又況不貪爲寶, 執事如祭者, 不無其人, 而不見省於時宰, 是可謂公選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