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윌리엄스, 우리에게 그렇게 웃음주고 홀로 울었나
안녕 미세스 다웃파이어, 그리고 키팅 선생님!
한국 시각 12일 아침 날아온 로빈 윌리엄스의 사망 소식은 그 어느 할리우드 스타의 부음보다 큰 놀라움을 안겼다.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웃음을 안기며, 늘 경쾌하고 익살맞아 보이던 배우가 무엇을 그토록 비관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그것도 겨우 63세에. 외신 보도에 따르면 로빈 윌리엄스는 최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왔으며, 20년 동안 끊었던 술까지 다시 입에 댔다고 한다. 우리는 그를 ‘마음 좋은 아저씨’나 ‘코미디 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자연인 로빈 윌리엄스는 우리가 아무도 모르고 있는 동안 여러 번민과 외로움과 슬픔에 빠져 혼자 아파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삶에 대한 통찰의 깊이가 느껴지는 코믹 연기를 보여줬던 로빈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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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극 배우의 비극적 최후를 보니 여러해 전에 듣고 흘렸던 그의 말들을 새삼 곱씹어 보게 된다. 9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당신 연기에 페이소스가 묻어 있다”고 하자 “나는 내 삶을 살 듯 배역을 연기할 뿐”이라고 답했다.지금 음미해 보니 자신의 삶 자체가 그리 밝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의 가정 생활에 관해서는 “아내가 집안 일의 많은 결정을 도맡으며 모든 수입도 아내가 관리한다. 나는 돈 벌어다 주는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었다. 조크처럼 들린 말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으로서의 제몫 찾기 같은 것 못하고 사는 사람의 안타까운 넋두리였는지도 모른다. 로빈 윌리엄스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명 코미디 배우다. 그는 1997년 미국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선정한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 50명’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코믹 연기의 정상에 올랐던 사람이다. ‘굿모닝 베트남’(1987년작)에서 미군 라디오 DJ 에드리언 역할을 맡아 피투성이 전쟁에 지쳐버린 영혼들을 속사포 같은 수다와 조크로 다독이던 엄청난 입담으로부터, ‘쥬만지(1995년 작)‘, ‘플러버(1997년 작)’같은 코믹한 활극에서 온 몸으로 가족 관객을 웃긴 그의 원맨쇼는 코믹 연기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확인하게 해 준다. 하지만 로빈 윌리엄스는 짐 캐리 처럼 대책없이 웃음샘을 건드려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배우는 아니다. 그는 그렇게 한눈에 우습거나 화려하게 보이는 외모를 갖지도 않았다. 수수한 외모에 아담한 체격을 가졌기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인간의 표정을 담아내는지 모른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여장을 하고 자기집에 가정부로 들어간 남자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로빈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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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기 속에는, 심지어 코믹 연기라 하더라도 사람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고 때론 눈시울 붉어지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찡그린 듯 웃는 듯 오묘한 표정은 찰리 채플린 연기의 페이소스를 떠올리게 한다. 가령 채플린 작 ‘시티라이트(City Light, 1931년작)’의 라스트 신에서 앞 못 보다 비로소 눈을 뜬 소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꽃 한송이와 동전 한푼을 쥐어 주려 할때 어쩔줄 몰라 하는 찰리의 표정을 제대로 재현해 낼 배우로 로빈 윌리엄스 이외의 배우를 떠올릴 수 없다. 흔히 한국 관객들에게 가장 기억나는 로빈 윌리엄스 영화로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년작)’가 꼽힌다. 명문 고등학교에 부임했으면서도 일류대 입학만 강조하는 교육을 거부하고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이라 말하며 진짜 가르침을 준 참스승 존 키팅 선생의 모습은 큰 감동을 안겼다. 하지만 로빈 윌리엄스는 ’훌륭한 선생님‘ 같은 인물보다는 약점 많고 내면도 상처 투성이인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배우가 아닌가 한다. 그런 로빈 윌리엄스의 진면목을 만난 영화로 테리 길리엄 감독 ‘피셔 킹(The Fisher King, 1991년작)’을 잊을 수 없다. 삶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주변부 인생을 연기할 때 더 능력을 발휘하는 로빈 윌리엄스에게 ‘피셔킹’ 만큼 딱 맞는 옷도 드물었다고 생각한다. 로빈 윌리엄스는 ‘피셔킹’에서 부랑자처럼 떠도는 전직 역사학 교수 패리가 된다. 광기 가득한 눈빛으로 잃어버린 성배(聖杯)를 찾아 헤매는 패리는 뉴욕 뒷골목에서 역시 폐인처럼 뒹구는 전직 유명 라디오 DJ 루카스(제프 브리지스)를 만나 친구처럼 뒤엉키며 버텨간다. 영화는 두 남자 사이의 충격적인 인연을 드러내며 상처받은 인간의 구원과 사랑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눈물 고인 듯한 눈망울로 ”쓰레기에도 아름다움이란 게 있어요“ ”나는 6월의 뉴욕과 거쉬인의 음악, 달빛을 좋아하는데 당신은 어떠세요?“라고 말하는 몽상가 같은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현실과 백일몽을 오가는 듯 몽롱한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려 오래도록 기억될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피셔 킹'에서의 로빈 윌리엄스. 인간의 상처와 치유의 문제를 파고든 이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뉴욕 뒷골목에서 거지꼴로 뒹굴며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하는 전직 역사학 교수가 되어 스크린 가득 광기를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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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냥 깔깔대고 한참을 웃었던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 1993년작)는 또 어땠을까. 아내와 별거하게 된 사내가 아이들을 그리워한 끝에 나이든 여성으로 분장을 하고 자기 집에 가정부로 취직한다는 영화의 뼈대는 전형적인 배꼽잡기 소동 영화 같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쓸쓸해도 이렇게 쓸쓸한 이야기가 없다.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아무리 떨치려 해도 떨치지 못해 그렇게라도 아이들 가까이에 있고 싶었던 한 아빠의 눈물겨운 부정(父情)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로빈 윌리엄스의 실제 삶에도 그런 외로움의 흔적이 보인다. 1951년 시카고에서 포드자동차 회사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그리 어렵지 않게 살았지만 부모가 너무 바빠 외롭게 성장했다. 최근엔 몇 차례 이혼을 겪었고 경제적으로도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로빈 윌리엄스의 그 눈물 젖은 웃음이란 연기력으로 지어낸 게 아니라 어쩌면 그 자신의 내면에 축적된 슬픔의 표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로빈 윌리엄스 삶의 슬픈 라스트 신은 엔터테이너의 숙명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990년대까지 활동하며 '미국 코미디의 황제'라는 말을 들었던 밥 호프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사내에게 한 손님이 다가가 “그렇게 사는게 힘들면 밥 호프의 코미디를 보시오”라고 권하자 사내가 고개를 들며 “내가 바로 밥 호프요”라고 했다는 일화다. 로빈 윌리엄스가 남긴 마지막 SNS메시지는 딸에게 보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7월 31일 "젤다 윌리엄스 생일 축하한다! 오늘 25살이 됐지만 언제나 나의 아가인 젤다 윌리엄스."라는 글과 함께 어린 시절의 딸을 안은 사진을 올렸다고 한다.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 속에서 변장을 하고 아이들 곁에 갔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대배우의 사망 소식을 듣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중 가장 귀에 남는 대목은 "그는 정말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표현이다. 많은 배우들의 연기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대신해 줄 배우들을 꼽을 수 있는데 로빈 윌리엄스를 대체할 배우는 정말로 떠올릴 수 없다. 그래서 안타까울 뿐이다. 로빈, 잘 가시고 편히 잠드시길.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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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안타까운 일이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