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붕(李起鵬) 일가가 남기고 간 참회와 교훈(敎訓) 國事를 팽개치고 黨力을 방탄국회와 공직자 탄핵에 쏟아붓는 국회의원들은 민심의 총성과 탄환이 무섭지 않은가? 문무대왕(회원)
1960년 4월28일 새벽 5시 20분. 경무대(景武臺) 비서동 36호실에서 들려온 몇발의 총성은 권력에 대한 탐욕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후세에 전하는 경고의 총성(銃聲)이었다. 3·15 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된 자유당 후보 이기붕(李起鵬)을 비롯, 부인 박마리아, 장남 이강석, 차남 이강욱 등 일가 4명이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참회(懺悔)의 현장이요, 권력에 대한 집요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교훈을 역사에 기록한 총성이었다. 부정선거를 획책한 자유당 정권과 당선자 이기붕을 규탄하는 민심의 분노 폭발이 4·19 의거였고 혁명이었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민심의 명령에 따라 하야(下野)했고 이기붕도 동반 퇴장하면서 자유당 정권은 종말을 고(告)했다. 이기붕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국회의장 등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탐욕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민심을 외면, 역사의 죄인이 된 것이다. 이렇게 비참한 경지에 다다른 이기붕의 처지를 바라본 장남 이강석이 권총으로 일가를 사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슴을 끊었다는 것이 전해오는 기록이다. 당시 이강석은 고려대와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가 육사 14기로 졸업하여 육군 소위가 되었다. 이기붕의 사저(私邸)는 4·19 혁명 기념도서관이 되었다. 정치가 이기붕의 정치인생은 군인이었던 장남 이강석의 극단적 선택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비록 이기붕이 저지른 정치적 과오가 컸다고 하더라도 일가족 몰살이란 처참한 방법으로 국민에게 사죄(謝罪)한 것에 대해 일말의 연민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요즘 일부 빗나간 정치인들이 경거망동하고 철면피한 수법으로 국민과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파렴치한 불법·위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사과 한 마디 없는 것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상황이다. 더더구나 특정 정치인의 개인적 범죄 혐의를 막으려고 국사(國事)를 팽개치고 당력(黨力)을 방탄국회와 공직자 탄핵에 쏟아붓는 것은 권력탐욕의 정도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 보인다. 특정 당대표의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담당 검사를 탄핵으로 몰아넣고 공수처에 고발까지 하는 사법방해는 입법만행(立法蠻行)의 극치다. 이기붕 일가는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일가족 몰살이라는 결단과 용기라도 있었건만 파렴치한 입법만행 폭도들은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노무현은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릴 양심이라도 있었고 노회찬도 극단적 선택을 할 줄 알았다. 박원순은 성추행 혐의가 문제되자 대통령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불귀(不歸)의 객(客)을 선택했다. 그런데 요즘 대통령병 환자처럼 보이는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자신의 범죄혐의에 대해 수사하는 담당 차장검사에 대해 사법방해를 하고 탄핵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재명은 자신과 관련된 범죄혐의 수사 과정에서 성남시 산하 공기업 고위직과 관련자 5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모른다'와 '알지 못한다'로 발뺌을 하고 있다. 정말 모르는가? 알지 못하는가? 과연 이런 국회의원 나부랭이들이 이기붕보다 나은 것이 있는가? 개혁은커녕 x같은 딸들의 앞잡이가 되어 날뛰는 늑대처럼 보이지 않는가? 과연 더불어민주당이 자유당을 욕하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민심의 총성과 탄환이 무섭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