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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국 대구에서 한 통의 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초면에 동포의 인연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 저는 한국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살고 계신 미국 오레곤 주 유진에 저희 큰 이모님이 살고 계십니다. 몇 주 전 암이 신체 전반적으로 전이되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님이 급히 미국으로 병문안을 가려 하는데 전에는 이모님이 직접 유진 공항으로 픽업을 오셔서 걱정없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모님이 병 중에 계셔서 공항 라이더도 부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수 있을지 궁금하여 연락드립니다”.
메일을 읽고 바로 답신을 보냈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모님의 병환으로 얼마나 걱정이 크세요?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래 살아서 대부분의 교민 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연세 드신 교민 한 분이 그저께 병원에 다녀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박 선생님의 이모님일 것 같습니다. 이모님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유진에 어머님께서 도착하시면 제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알려 준 시간에 맟추어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출구에서 나오는 승객들 틈에 칠순이 넘어 보이는 한국 할머니 한 분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시는 박 선생님의 어머니시지요?” “네,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나와 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긴장된 얼굴에 밝은 미소가 찾아왔고 안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두 개의 대형 가방을 차에 싣고 언니의 집으로 갔습니다. 건강하던 언니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받은 후 몇 일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가장 빠른 비행기로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여든을 넘긴 언니는 남편과 사별 후 십 년이 넘도록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마당에 들어섰지만 집은 조용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 참을 기다리자 차고의 문이 열리고 언니가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된 상태였습니다. 한국에서 달려 온 동생의 손을 잡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참 후에 저를 보자 언니는 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렇게 도와 주셔서 참 고마워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이제 한국에서 아우님이 오셨으니 마음 편히 가지시고 이야기 나누세요. 또 들릴께요.”
아내는 준비 해 온 따뜻한 밥과 몇가지 반찬을 전해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심슨 부인은 전에도 여러 번 뵈었던 분이라 낯설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 집의 초인종을 눌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다시 떠 올랐습니다. 그가 열어 준 차고 안에는 자동차 대신에 물건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발을 들여 놓을 틈 조차 없었습니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용기들, 포장도 뜯지 않은 수 많은 박스들, 작고 큰 가방들, 주방 용기등 헬 수도 없이 많은 물건들이 천정에 닿도록 채워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심슨 할머니는 매월 지급되는 연금으로 물건들을 주문하는 것으로 낙을 삼고 살아왔습니다. 주문한 물건들이 차고에 가득히 쌓이자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세 개의 방에도 차곡 차곡 쌓여져 갔습니다. 대부분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이튿 날 아침에 한국에서 온 여동생이 급한 음성으로 전화를 해 왔습니다.
“우리 언니가 지금 숨이 차고 곧 쓰러질 것 같아요. 병원에 급히 가야 되겠어요...” 전화를 끊고 바로 911(응급전화번호)으로 전화했습니다. 심슨 부인의 집 주소를 알리고 급히 응급실로 옮겨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병원에 실려 온 심슨 부인은 의식이 없었습니다. 간호사들이 분준히 움직이는 삼십 분 동안 심슨 부인 옆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눈을 떠 보세요...저를 아시잖아요...”
누워있은 지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심슨 부인은 눈을 떴습니다.
“여기가 어디지요? 선생님은 어떻게 오셨어요?...”
할머니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처럼 보였니다. 한 주간동안 입원 후 심슨 부인은 호스피스 하우스로 옮겨졌습니다. 이곳은 삶의 마지막 종착 역과 같은 곳입니다. 병원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잘 정돈 된 정원 이 건물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건물 뒤로는 공원처럼 넓은 잔디 밭이 연결되어 있어서 환자들이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호스피스에서는 짧게는 하루나 이틀 정도, 길게는 몇 주일 정도 생존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온 동생을 옆 좌석에 태우고 매일 언니를 면회하였습니다. 고국을 떠나 오십년 가까이 떨어져 살던 형제들과의 만남은 심슨 부인에게 큰 위로가 된 듯했습니다. 오랜만에 평안을 찾은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루 하루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눈을 감기 이틀 전에는 놀라울 정도로 의식이 또렷하였고 대화도 밝게 할 수 있었습니다. 갸날픈 심슨 부인의 손을 붙잡고 말하였습니다.
“할머니 힘을 내세요. 한국에서 동생도 찾아왔으니 언니와 함께 쇼핑도 가고 공원에도 함께 놀러가세요...”
오랜만에 활짝 웃었습니다. 그러나 웃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 어두운 그늘이 얼굴을 덮었습니다.
“고맙고 고마워요. 제 동생 잘 도와주세요. 부탁해요...”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미국 오레곤주에서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