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독일이 항복하자 잠시 미군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아이히만은 신분을 숨겨 재판을 피했고 1946년 미군 수용소에서 탈출했다. 그는
옛 친위대 동료들과 가톨릭교회 및 아르헨티나 페론 정권의 도움을 받아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아르헨티나로 몰래 빠져나가 1950년 6월
17일에 독일을 떠나는 것에 성공했고 그는 7월 14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아이히만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탈출했을 때의 가명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건설사
직원, 물류업체 감독관 등으로 지내며 15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그는
망명지인 아르헨티나에서조차 계속해서 나치 잔당과 모임을 가졌고 독일의 청년 세대에게 새로운 반유대주의 독일인의 사명을 부과하고자 했다. 그곳에서
그는 1960년 옛 친위대 동료이자 출판업자로 활약하던 빌렘 사센(willem sasen)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유대인을 학살한 것에
대해서 자신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아이히만의 이러한 사상을 잘 드러내는 말을 빌렘 사센에게 고백했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나와 내 동료들은 1천만 명의 유대인, 아니 지구상의 모든 유대인을 죽였다면 나와 동료들은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랬어야만
나와 내 동료들이 적을 절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난 단순하게 명령을 수행하는 자가 아니였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난 그저 멍청이에
불과한 놈일 겁니다. 나는 나치당원들과 함께 똑같이 생각했으며 지구상에서 유대인을 없애버리고 싶은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렇게
자신은 죄가 없으며 유대인 학살을 후회하지 않은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의 추적으로
검거되었다.
사실
아이히만은 비교적 잘 숨은 편이었는데, 장남이 1957년 여자친구인 유대계 소녀 실비아 헤르만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유럽에서 '유대인 제거'에
앞장섰다고 자랑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자식이 웬수 실비아의 아버지 로타어부터가 아이히만의 희생자로 부모를 잃고 자기 역시 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던 것. 그는 이스라엘 외무장관에게 즉시 신고했고, 그녀의 고발로 2년에 걸친 추적, 수사 끝에 모사드는 요원 7명으로 아이히만의
자택에서 그를 검거했다. 차에 태워진 아이히만은 체념한 듯 독일어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나. 모사드는 그의 신원을 확인한
뒤, '니 여기서 죽을래, 아니면 이스라엘에서 재판받고 죽을래? 편한 대로 해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증거는 귀였다고 한다. 코나 입은 성형수술로 고치지만 귀까지 고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 가방에 카메라를 숨겨서 촬영한 사진이 모사드가 그가
아이히만임을 확신하게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서 자신이 수행했던 능동적인 역할과 반유대주의 신념을 숨기고 단순히 자신은 국법과 체제에 따른 선량한
시민이자 공무원으로 행세했다. 결국 이와 같은 아이히만의 생애와 광적인 사악함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법정 앞 자기변호와
거짓 진술에 의해 잘못된 생각을 얻게 되었고, 그녀는 신념에 가득찬 인간의 탈을 쓴 마귀인 나치주의자를 단순한 명령에 따랐던 공무원으로 생각한
것이였다. 결국 아이히만은 1961년 4월 11일과 12월 15일 텔아비브의 공개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아 1962년 5월 31일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출처: 엔하위키)
첫댓글 군인불쌍하다는 새기들 보고 정신차려라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 2찍 절반이나 저상태인거같은데 우리나라어떡하냐
군인 불쌍하다고 어린 학생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정신 차리길, 그런 논리라면 홀로코스트에서 면죄될 군인들 수두룩 빽빽임.
오늘의 군인은 군인이 아니라 반란군이다
생각의 무능은 정말 무섭다
밑에 글 진짜야??? 한나 아렌트가 모르고 쓴 글이었다니
천만명의 사람을 죽인 놈도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했다.
계엄군이나 저 나치나 뭐가 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