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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돌또기는 제주를 대표하는 민요로, 목만중이 지은 『김복수전』에 이야기가 전한다. 과거를 보러 가던 제주 청년 김복수가 폭풍에 휘말려 안남(베트남)에 표류하고, 거기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이들까지 낳게 되지만, 혼자 돌아온다. 제주 바닷가에서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부른 노래가 오돌또기라고 한다. 오돌또기의 사설에는 김복수의 가족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지와 함께 잘 표현되어 있다.
제주 대표 민요 오돌또기
오돌또기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흥을 즐길 때 불렀던 제주를 대표하는 민요이며, 현재 무형문화재 9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 오돌또기가 불렸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목만중(睦萬中)이 지은 『김복수전』(1793)에 "제주에 살았던 김복수가 안남에 표류하였고, 유구에서 표류한 여인과 결혼하였다.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게 된 김복수는 안남에 두고 온 처자식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라는 내용이 있어 오돌또기는 17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돌또기의 사설에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김복수의 애절한 마음이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지와 함께 표현되어 있다.
제주 청년 김복수의 베트남 표류기
옛날 제주 어느 마을에 김복수라는 청년이 살았다. 복수는 가난했지만, 홀어미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효자였고, 열심히 글공부하여 과거 시험을 준비했다. 어느 날, 복수가 과거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한양으로 가는 중 큰 폭풍을 만나 일행은 모두 죽고 복수만 안남[현재 베트남 중부지역]에 표류하게 되었다. 안남에서 외롭게 지내던 복수는 유구[현재 오키나와 열도]에서 왔다는 임춘향과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금슬이 좋았던지라 자식을 삼남 삼녀나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남에 일본 사신을 태운 배가 왔다. 복수는 사신에게 부탁하여 배를 탈 수 있었지만, 당시 여자는 배에 태우지 않는다는 관행이 있어 혼자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일본에 도착한 복수는 임춘양의 오빠 임춘영을 만났고, 임춘영과 함께 아내와 자식을 데리러 안남으로 떠났다. 안남으로 가는 길에 멀리 한라산이 보였는데, 복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우리 저 섬에서 먹을 물이나 채울 겸 잠시 쉬었다 갑시다.”라고 했다. 복수는 배에서 내려 바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다시 배에 오르려 했지만, 이미 배는 떠나고 없었다. 배를 놓친 복수는 부두에서 한없이 서럽게 울었다. 그날부터 복수는 아내와 자식이 보고 싶어지면 바닷가를 찾았고,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가 ‘오돌또기’였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한라산 중허리에 실안개 든 듯 만 듯 /서귀포 앞바다엔 해녀가 든 듯 만 듯/
제주야 한라산에 고사리 밭도 좋구요 /산지포 저 돛배의 뱃고동 소리도 좋구나/
산엔 가며는 목동이 놀고요 /
바다에 가며는 잠수들이 논단다/
성산포 일출봉 해 뜨는 구경도 좋고 좋고 /제주시 사라봉 해 지는 구경도 좋구나/
돌아진 뱅뱅 물든 섬에 물질하며 살아도 /에루화 님을 만나 둥그데 당실 좋구나/
서방님 보고서 에리화 인사를 못 해서 /치마 끝 입에 물고 입만 방긋한단다/
청사초롱에 불 밝혀 들고 /
춘향의 방으로 감돌아든다/
가면 가고요 말면 말았지 /
짚신을 신고서 아이구 시집을 갈소냐/
오라고 헌 디는 야밤에 가고요 /
동네야 술집엔 얼화 대낮에 가는구나/
나 홀로 앉아서 탕건을 할랴 허니 /
님 생각 그리워서 눈물만 글랑글랑/
(후렴)
둥그대 당실 둥그대 당실 여도 당실 연자 버리고 / 달도 밝고 내가 앞으로 갈까나
복수가 부른 오돌또기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고, 이후 오돌또기는 제주도 전역으로 퍼졌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오돌또기
오돌또기에 얽힌 이야기는 안남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김복수의 그리움이 담긴 설화이다. 현재 노래에 얽힌 사연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지만, 노래로서의 오돌또기는 아직도 남아 있어 김복수의 가족에 대한 애달픈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한편 목만중이 지은 『김복수전』(1793)이 알려지기 전까지 오돌또기는 본토에서 유입되어 형성된 민요로 보았지만, 『김복수전』(1793)을 통해 오돌또기가 본토에서 유입된 것이 아닌 제주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민요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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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설화
잘 읽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