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기록에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신라 최치원이 당나라 관리에게 말하기를,"고구려.백제가 강성할 때는 100만 대군으로 지나대륙를 휩쓰니 지나국의 좀이 되었습니다"
이 때가 바로 백제는 근초고대왕-동성대왕시기이고, 고구려는 광개토태왕-문자명태왕시기다.
[광개토태왕비문]에 보면 고구려인들은 스스로를 '맥'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고구려인들이 기마수렵족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맥=>매구이=>매쿠이=>매쿠리=>머쿠리=>무쿠리=무쿨=마쿨=마칼=말칼=말갈=모쿨=모골=몽골=무굴(몽골에서 나온 인도제국)
만주지역의 수렵족을 지나인들은 숙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쥬신.조선하는 말이 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한반도에서 시베리아 산악지역에 분포하며 수렵을 하던 해민족을 흔히 말갈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극 근초고왕에도 말갈족 추장이 근초고왕의 신하가 되어 백제를 위해 고구려와 싸우다 죽는 장면이 나왔다. 말갈은 말+칼에서 온 말이라고 본다. 고추모세력이 부여에서 나와 환인지역의 토착세력을 흡수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만주지역의 토착세력이 바로 수렵족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인들이 용맹하고 드셀 수 밖에 없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고추모세력이 토착세력의 무덤양식과 문화를 그대로 수용해서 고구려화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에는 광개토태왕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고 이로써 고구려 발전의 비약적인 전기가 마련된다.
광개토태왕이 즉위함으로써 고구려는 민족사상 최대의 영토를 개척해 나가며 대제국의 기틀을 쌓게 된다.
광개토태왕은 즉위하자 마자, 동서남북 전방위 공략정책을 취하여 고구려의 영토를 북으로는 시베리아, 서로는 요하를 넘어 몽골과 만리장성 이남, 남으로는 일본열도, 동으로는 연해주까지 확장시켰다.
광개토태왕은 374년에 태어나 고구려 18대 임금 고국양왕 3년(386) 태자로 책봉되고, 18세되는 391년 고구려 제19대 태왕으로 오르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태왕은 "태어날 때부터 체격이 웅위하고 기상이 늠름했으며, 뜻이 고상하고 성인의 풍모를 지녔다", "허우대가 매우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 "어렸을 때의 모습이 체격이 옹위하고 뜻이 높았다" 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태왕은 선천적으로 왕기(王器)이면서 정복군주로 태어났던 것으로 알 수 있다.
고대국가에서는 임금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아가 선봉에 서야했기 때문에 국왕이면서 동시에 무장다운 면모를 갖춰야 했다. 그런면에서 광개토태왕은 고대국가 왕의 조건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군사능력 면에서 매우 탁월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내치에도 힘써 고구려 역사에서 가장 부유하고 태평한 시대를 열었던 '호태왕'으로 기록되었다.
고구려말기 고대 전쟁사에서 세계 최대규모인 100-300만 수.당나라 침략을 격파한 고구려의 저력
이 말칼족을 해민족의 원시적인 수렵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유라시아-아메리카 초원세력이 모두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수렵족(숙신=말갈=맥)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말갈족은 고대 한반인들의 꿩털이나 구슬장식을 하고 있어 한반도을 야마토(머리땅)로 하여 시베리아까지 넓게 분포하였고, 유라시아 초원세력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해민족을 낳은 본향으로써 한반도를 '해머리땅'으로 칭하는 것이다.
돌궐(터키) 카한의 비문을 보면, 돌궐 칸의 장례식에 "해가 뜨는 곳"으로부터 온 "매쿠리"국의 사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돌궐 쪽에서 "해가 뜨는 곳"이라면 동쪽이다. 이 동쪽에는 고구려가 있었다. 그런데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로 고구려를 돌궐이 "매쿠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왜 돌궐은 고구려를 매쿠리라고 불렀을까?
여기서 우리는, 고구려의 지배민족이 맥貊 족이라고 불렸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高句麗에서 고씨 나라라는 의미에서 고高를 수식어로 보아 빼버리고, 단군조선의 봉후국의 명칭인 '고리(구려)句麗'라는 말을 보면, 고구려말로 성城이나 담을 '구루'라고 했다는 기록과 상통한다. 또, 고구려의 후예로 보이는 만주족의 말에서, 나라(국國)를 '구루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구려'는 '나라', '도성'이라는 뜻으로 풀 수 있다.
그렇다면 고꾸리(고구려)라는 이름은 주로 지나쪽에서 부른 이름이고, 원래는 맥貊 구루, 맥고리, 맥굴리라고 불렸을 수 있다. 그걸 시사해 주는 것이 동로마의 역사가 데오필라스 - 시모카테스가 거론하고 있는 '모으쿠리'나 '무쿠리'라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동방에 투르크(돌궐)족 못지 않은 용맹한 민족이 산다고 했는데, 해뜨는 곳에 살며 이름을 '무쿠리' 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맥족의 나라'라는 뜻에서 맥구루, 맥코리 라고 한 것이 무쿠리, 모으쿠리라고 발음이 다듬어져서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 어째 말갈이라는 말의 발음과 비슷하지 않은가? 말갈이라는 말은 발음만 따온 이두문일 수도 있다!
무쿠리, 무구릭, 무구루, 무굴, 물길, 말갈 하는 식으로.
또, 티베트 문서에서도 '무그릭'이라는 동방민족에 대한 기록이 전해 내려 오고, [범어잡명梵語雜名]이라는 기록에서는 '모쿠리'라는 민족의 이름이 나오는 만큼, 똑같은 한 나라가 지나국에는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고 유목민 세계나 티베트, 서역, 동로마에는 맥족의 나라라는 뜻인 무쿠리,무그릭, 모쿠리, 모으쿠리로 알려 졌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말갈이라는 말도 이 무쿠리를 한문으로(발음만) 옮긴 것이 아닐까?
따라서 말갈인 = 고구려인 이라는 필자의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로 말갈과 고구려를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구려는 숙신(쥬신=조선=말갈)을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결론 = 역사서에 나오는 '말갈인'은 고구려인이었다. 고구려라는 말도 한자를 쓸 때에나 들어간 말이고, 실제로는 매쿠리(고리), 무구루(= 말갈, 물길)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말갈이 이민족이었다는 주장은 이제 고쳐 져야 한다. 그런 건 모두 고대 지나인들이 지역별로 해민족을 구분하여 표현한 명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동방최강 고구려와 서방최강 로마가 전쟁했다면 누가 과연 승자가 되었을까?
로마군은 전투할 때에 매우 부자유스러운 갑옷과 말을 탈 때 전투의 안정감을 주는 등자(그림속 빨간라인)가 없었다.그러나,고구려는 적의 날아 오는 화살이 갑옷에 닿았을 때 속력을 죽이면서 인명살상을 막아 주는 탄력있고 단단하며 전투시에 움직임이 매우 자유스러운 찰갑옷이 있었고,말을 타고 달리면서 안정감을 주는 등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등자는 아시아 기마유목세력이 유럽과 로마를 굴복시키는 핵심이였다고 할 수 있다.서양의 경우에는 로마가 멸망하고 중세가 도래하면서 기사가 군의 주력으로 발전하면서부터 겨우 등자가 유럽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마의 전쟁-로마는 보병 위주로 싸웠다-그래서 아시아 기마유목세력에게 굴복당한 것이다
서양의 경우에 굉장히 등자가 늦게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서양은 철저한 보병중심 체제였기 때문이다. 처음 등자를 구경한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를 정벌할 당시였는데 이 당시 인도에서는 코끼리를 몰기 위해 등자를 사용했다.
따라서 광개토태왕 당시 동방의 최강국 고구려와 서방의 최강국 로마가 전쟁을 했다면 고구려가 충분히 로마군를 격퇴시키고도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증거는 한나라와 선비족에게 격퇴당한 후에 몽골초원에서 서쪽으로 말을 달려 유럽과 로마를 굴복시킨 훈족(아시아초원지역에서 도망 온 흉노잔당에 불과)을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
[관련동영상]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jYQvR81In3E$
고대에는 철제기술이 최첨단 기술에 해당했다. 고구려가 동방의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세계최고의 철제기술을 보유한데 있었다.그리고 지나문헌에 따르면 부여는 철이 많이 생산되고 집집마다 철제무기류를 보유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번.진조선으로 분할통치되어 온 단군3조선연방이 47대 고열가 단군천황을 마지막으로 통제력이 상실되고 붕괴된 배경도 당시 철제무기를 통하여 지나지역을 통일한 진나라와 한나라의 동방진출과 함께 단군조선전역에 보급된 철제기술로 인하여 단군조선연방에 속한 거수국(제후국)들이 우후죽순 패권전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땅히 이러한 민족분열시기를 고추모의 다물정신으로 통합했던 고구려는 단군조선과 부여의 철제기술을 이어받은 것이다.
한반도지역에서 한강을 기준으로 백제와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서울 구의동 아차산 고구려 20여개의 군사유적지에서발견된 화살촉 성분조사결과 탄소가 0.63, 규소가 0.35,망간이0.01, 인이 0.022으로 순도가 높은 강철수준으로 나왔다. 거의 현대 철강 수준(현대수준:탄소량 0.51%)의 철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의 화살촉 재련방법은 쇳물을 녹이고 탄소를 줄이는 과정을 것쳐 초강을 반복하게 두둘겨서 강도를 높힌 단조법.고구려의 부월수의 도끼는 지금의 공구와 같은 강도다.그 만큼 고구려의 철제기술은 (출처:역사스페셜,안학2호분)
활의 경우도 로마는 나무로 만든 목궁이였으나, 고구려는 철궁, 맥궁 등 탄력이 강한 활을 사용했다.고대부터 맥궁은 동북아시아지역의 한민족의 활로 유명했다.유효 사거리을 보면 로마의 목궁은 150m 맥궁은 300m이상 철궁은 1km(17세기 화포사거리)였으니 고구려의 맥궁이 로마의 목궁을 능가하고도 남는다.유라시아초원을 완전히 지배한 몽골의 복합식 활의 사거리가 220m였으니 아시아 기마유목세력의 활이 동북아시아지역의 단군조선.부여.고구려의 맥궁을 모방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KBS사극 제작진들 장난하나..대왕 아니라 <태왕>이다
만주벌판과 지나대륙을 누비는 정복자이기에 앞서 훌륭한 정치가였고,
철학자였던 광개토 태왕. 본능적인 야성으로 영토를 넓히는 것뿐만이 아니라고,
예술가적 섬세함과 학자다운 지성,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동시에 갖추고
백성들의 삶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인물이다.
이런 광개토 태왕이 지금 21세기적으로 되살아 난다면
우리 민족과 세계의 광영이라 할 것이다.
[삼국사기]기록에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신라 최치원이 당나라 관리에게 말하기기를,
"고구려.백제가 강성할 때는 100만 대군으로 지나대륙를 휩쓰니 지나국의 좀이 되었습니다"
이 때가 바로 백제는 근초고대왕-동성대왕시기이고, 고구려는 광개토태왕-문자명태왕
* 광개토태왕역으로 김명민을 추천했으나, 이태곤이 선정되었다. 좀 더 인간적인 광개토태왕!
그리고 당시 무기력한 고구려를 아시아 중심국가로 세우는 열정과 카리스마를 잘 표현해 주기를 바란다.
<광개토태왕비문>에 기록된 공식 명칭은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이런 명칭하나부터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후손된 우리가 광개토태왕을 모독하는 행위다.
광개토태왕이 어떤 인물인가? 해민족사에서 가장 용맹하고 위대한 천자였다.
초원과 지나대륙 북부지역를 포함한 동아시아를 평정한 아시아 최고의 인물이였다.
고구려의 시작은 47대 고열가 단군천황이 문을 닫은 단군조선을 접수한 해모수로부터 시작된다.
1대 고구려 태왕 해모수로부터 시작하여 19대 태왕이였던 고구려의 담덕은
KOREA중심의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대제국 건설이였으며, 그 꿈을 실현하였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의 꿈은 우리 민족의 꿈이다.
좁다란 한반도 울타리를 벗어나, 좁다란 소아를 벗어나, 좁다란 지역주의를 벗어나
광개토태왕과 김대중태왕의 노선을 따라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대동홍익세계를 실현하는 일이다.
이태곤 (광개토태왕)
장신영 (연화)
이인혜 (약연)
김정화 (설지)
김승수 (고운)
조안 (담주)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명확히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기 400년 신라의 요청으로 광개토왕이 내려보낸 5만의 군대가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궤멸시키고, 신라의 수도 금성에 주둔군을 남겼다. 망국의 위기를 벗어난 신라의 왕과 그 일행이 직접 평양에 이르러 고구려왕에게 조공을 바친 것은 물론이다. 광개토태왕이 세상을 떠난 1년 뒤 그 왕릉에서 크게 제사를 지내고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청동 그릇이 신라 중상급 귀족의 무덤인 경주 호우총에서 나온 것이 당시의 국제정치 상황을 증언한다.
서기 495년 만들어진 중원 고구려비에서 신라왕은 ‘동이매금(東夷寐錦)’으로 일컬어진다. ‘매금’이란 신라왕의 고유 칭호였던 ‘마립간’의 다른 표기이고, ‘동이’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신라를 보는 시각을 나타내는 용어다.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세계로, 그 중심을 고구려로 상정한 고구려인의 의식이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윤복현
출처:https://blog.daum.net/damas137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