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0. 20. 금요일.
햇볕은 났으나 바람은 드세게 불어서 무척이나 서늘하고, 조금은 춥다.
당뇨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내가 나이가 자꾸만 많아지니까 늦가을 날씨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아내한테 '독감예방 주사를 맞으려 병원에 가자'라고 말했더니만 '내일 아침에 갑시다. 오늘은 아파트 보수공사로 온수물이 공급되지 않아서 샤워를 할 수 없기에 내일 아침에나 갑시다'라고 거절했다.
아파트 출입구에 '10. 19 ~ 20. 낮동안에 온수장치 점검'이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내일은 토요일이기에 오전에 병원에 가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겠다.
눈 어둡고, 귀 어둡고, 행동이 굼뜨고, 등허리뼈가 굽혀져가는 세월에 있는 나는 정년퇴직한 지도 오래되어서 .... 서울에서는 할일이 전혀 없다.
'머저리 등신 바보 멍청이'가 된 나는 오늘 아침에도 빈둥거리면서 컴퓨터를 켰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기에.
<한국국보문학카페> '등단 시인방'에는 김병환 시인의 '짐'이란 시가 올랐다.
내가 아래처럼 댓글 달고는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나한테는 정말로 많은 기억들이 떠오르게 한다.
내 댓글
글 고맙습니다.
1949. 1. 생인 저는 1950년대 초부터 기억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0년대. 산골마을은 정말로 가난했지요. 6·25사변 한국전쟁에서 다친 상이용사들이 떼로 몰려와서 동냥을 구하고, 문둥이들도 찾아오고, 이웃사람들도 아침밥을 달라고 남의 집 싸립문 밖에서 기웃거렸지요.
남의 집에서 일하는 머슴의 품값은 년간 쌀 12가마니. 어린 머슴은 쌀 6가마니가 1년 품삯이었다니...
저는 1960년 봄철에 대전으로 전학 갔는데.. 대전시내 중심에서도 동냥 밥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지요.
구루마/달구지로 솔가루(소나무 잎사귀)를 시내로 들어와서 팔고, 재래식 아궁이에 장작을 괘서 불 때고...
국민학교 수업료를 내지 못해서 국민학교조차 졸업 못했던 학생들...
대전 대흥동 천주교 마당에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강냉이죽/옥수수죽을 끓여서 퍼 주고...
수십년이 지난 뒤인 2020년대인 지금.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많이도 발전했고, 모두들 부자가 되었지요.
아쉽게도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서 점심밥 얻어먹으려고 서울 파고다공원 앞 등 자선센터에 몰려든다고 하대요.
엄지 척!
글 또 기다립니다.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1948년 8월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1949년 1월 말.
나는 충남 보령군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초. 산골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은 정말로 후졌고, 가난했다. 특히나 1950년 6월 6·25사변 막 끝난 직후라서 더욱 그러했을 게다. 정말로 가난한 시대였다.
초가집이었던 내 시골집은 1957년 대전에서 온 목수가 여러 달 걸쳐서 개보수했기에 근동에서는 알아주는 함석집이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뒤라서 그럴까. 팔뚝이 없는 상이용사 몇몇이서 마을에 찾아와서는 동냥 달라고 떼를 썼으며, 밥 얻으러 다니는 거지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며 '밥 좀 주세요'라고 구걸했다. 때로는 이따금씩 얼굴을 헝겊으로 가린 문둥이가 기웃거렸고, 동네아이들도 이따금씩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면 밥 얻어먹으려고 했다.
어머니는 작은 소반에 밥그릇과 국그릇을 올리고 짠지 등 반찬을 조금 덜어서 올렸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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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른 봄철 벚꽃이 필 무렵이었다.
나는 국민학교 4학년이 거의 끝날 무렵에 대전으로 전학 갔다.
대전시 은행동 그 당시에는 왜그리 거지들이 많았는지.
대전 중심지인 선화동, 은행동, 목척교, 중교다리 밑, 인동에는 거지들이 천막을 치고 살았다.
이들은 아침밥 때가 되면 떼거리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밥 동냥을 했다.
내가 기억하는 대전시내 상황은 정말로 가난했다.
다행히도 대전 대흥동에 있는 천주교성당의 너른 광장에서는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는 장작으로 불 때서 강냉이죽(옥수수죽)을 끓였고, 죽을 퍼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퍼 주었다. 정말로 긴 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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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인 1950 ~ 60년대의 과거와 수십 년이 지난 2023년 지금의 현재를 비교하면 나한테는 천지가 개벽한 것만큼이나 달라졌다. 지금은 무척이나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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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들 그럴까?
조금은 아니다.
사회 뉴스에는 이따금씩 밥을 얻어먹으려고 종교기관, 사회복지시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뜬다.
* '노숙자, 노숙인, 거지, 비렁뱅이(거렁뱅이)' 등의 낱말로 검색하면 많은 사진 자료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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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가 고파서, 밥 한끼 얻어먹으려고 남의 집 문 앞에서 기웃거리며서 '밥 좀 주세요'라고 길게 외친 적은 한번도 없다.
학교 교문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무학( 無學)의 아버지 어머니일 망정 두 분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나한테 밥 세 끼니 멕여주셨고, 학비 대어서 학교까지 다니게끔 했다.
나는 군대생활을 마치고, 서울의 직장에 취직해서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했고, 정년퇴직한 뒤로는 연금을 받아서 지금껏 그럭저럭 산다. 즉 나는 어린시절부터 2020년대인 지금껏 동냥이나 구걸을 한 번도 해 적이 없다.
위 김병환 시인의 시 내용과 사진 속의 거지/노숙자 이미지는 나한테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생활에서 건져낸 내용이기에 이 시를 거듭 칭찬한다.
문학-글은 이래야 한다.
문학에는 진실한 삶이 있어야 한다.
뜬 구름이나 잡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땀과 눈물 그리고 희망과 기쁨이 함께 깃들어야 한다.
...
2023. 10. 20. 금요일.
나중에 보탠다.
잠시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