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빗속의 여인
석야 신웅순
“여보, 운동하고 올께요.”
“비도 많이 오는데 오늘은 쉬시지 그래요.”
“우산 쓰고 가면 되요.”
운동이라야 걷는 것이 전부이다. 해가 짧아졌다. 고작 여섯시가 넘었는데 어둑어둑하다.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여인이 비를 쫄쫄 맞고 있다.
“어깨 한쪽 내주면 되는데 어쩌면 좋지?”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잘못 하다간 추행으로 몰릴 판이다. 아버지는 감기를 앓으시다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 비를 맞으면 십중팔구 감기이다.
옷깃 닿지 않게 어깨하나 빌려 주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어둡지, 비가 오지, 검은 모자 썼지, 마스크까지 끼었으니 그 시커먼 모습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감기라도 드시면 어쩌시려고요.”
이 말에 그녀는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오십 후반쯤 보였다. 우산을 딸네 집에 놓고 왔다는 것이다.
“어디 가시는데요.”
“○○아파트요.”
“아이구,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지요?”
네거리를 건너는 짧은 20초 동안이었다. 빨간 옷을 입은 그녀는 아파트 쪽으로 사라졌다.
생면부지인 여자에게 잠깐의 작은 공간을 빌려준 것뿐인데‘은혜’라니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목소리가 떨렸고 두서가 없었다. 분명 감동한 목소리였다.
세상이 여기까지 왔다. 얼마나 험악했으면 친절 아닌 친절인데도 이렇게 고마워할 수 있을까. 시대가 사회가 이 지경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화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친절도 용감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계산도 시원찮고 눈앞도 시원찮다. 마음이 편해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 가는대로 따라가는 게 많다.
내 마음이 순수하면 상대방도 순수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상대방도 내 마음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니 아파트를 돌면서 내내 행복했다. 그냥 나와 그녀의 말투에서 눈빛 교환도 없이 오고간 따뜻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행복했다. 그런데도 마냥 행복해할 수만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친절도 자칫 잘못하면 괴한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한 켠이 아프고 쓰리다.
그날은 생면부지 빗속의, 고마워한 그 순수의 여인이 내게 자비심을 가르쳐주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치한으로 생각할 수 있고 가까이서 보면 정이 많은 노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이율배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이다. 삶이란 앞이 있어도 아름다운 뒤가 있지 않은가.
- 2024.10.29.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참 용기있는 (?) 선행을 하셨습니다. 선행이 선행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세상 속에서.
3~40여년전 시골 길을 가다가 할머니 두 분을 차에 태워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할머니들이 내리시면서 하셨던 인삿말이 떠 오르네요. '자식들 복 받으세 ~~~'
선행도 아닌데 세상이 무섭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은 아찔 했습니다.
그런 세상이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공감해주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