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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당시 유행하던 몽골식 이름이 "티무르"보단 아기발도(아지발도)일 것이다.
북원(北元)의 나하추가...이성계를 뱌얀티무르왕이 보낸 젊은 장수(아기?)라 호칭했다.
아기발도란 이름은 왜노들의 역사기록엔 나오질 않는다.
고로,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은 아기발도였으나...이를 가상의 왜노에게 덮어 씌운 것이다.
란 김홍필선생님의 주장에 이의를 다시 제기합니다.
제가 제기한...중앙아 티무르제국의 티무르가 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였을 것이란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황영희선생의 백안첩목아(바얀티무르)설은...김선생님께서 제시한 공민왕과 마찬가지로...기황후의 둘째도 바얀티무르다...
고로,몽골제족들의 작명습관상...맏이의 이름에만 즐겨 사용하던 작명법이 바얀이 아니다..란 주장 십분 참작하겠습니다.
제가 현대의 몽골인들에게 물러본 바론...
바얀은...제 예상대로...하얀, 밝은(뽀얀)의 의미보다는...현재는 부(富)한...이란 뜻이 더 강하다 함도 덧붙입니다.
부자티무르,부티나는 티무르...가 현 몽골어의 "바얀티무르"직역입니다.
고로,바얀티무르(백안첩목아)가 이성계가 바꿔친 자신의 본명일 것이다.란...황영희 선생의 학설은...
중앙아 티무르제국의 티무르는 이성계일 것이다란 주장에서 일단 배제하겠습니다.
그러나,중앙아 티무르 만큼 당대 이성계와 행적이 판박이인 최고 권력자는 아직까진 발견치 못했기에...
이성계가 티무르일 것이다란 제 주장엔 아무런 동요도 없다 하겠습니다.
김선생님께선 제가 제기한 이성계 티무르 관련주장 글들을 읽어 보셨으면서도 ...
티무르 기본정보를 구구한 위키백과 검색내용만 본인께서 첨 제기하신 듯이 검증자료로 올리시나...
이미 그 검색내용들은 제 티무르 관련 인용글에 대부분 올라와 있던 것이니...불필요한 위키검색 나열은 논점을 흐린다 충고도 드립니다.
먼저,
김선생님 항상 옆꾸리에 끼고 다니시는...위키검색에 나오는 중앙아 티무르제국의 티무르 이름... 아미르 티무르"중..
아미르는...당대 몽골계 지방 통치자..우리말로 고을수령이란 뜻입니다.
역시, 정식 명칭이 아닌...우리말론...태무진 사또님...이란 관직명이란 것이져...
랭 티무르(젊름발이)는 양이들과 그의 적들이 붙인 과장돼고 악의적인 별명일 뿐이니...거론할 필요 없겠고여...
엄밀히 보자면 그 후손들이라 주장하는 현재의 중앙아인들..
그리고 그 적이였던 양이들은...티무르의 본명도 모르긴 저와 마찬가지 수준이란 걸 먼저 말씀 드립니다.
자. 제가 전부터 제기한 티무르는 이성계일 것이다"란 주장의 근거를..
쏜꾸락 아프고 저도 이젠 지루해 지지만..대충 읽으신 듯... 다 제기했던 위키사전같은 내용을 디리미시는 김선생님 위해...
다시 간단히 요약합니다.
*이성계와 티무르의 생몰년대가 몇 년 차 밖엔 않 난다.
고로,이성계에게 티무르란 당시 유행하던 몽골식 이름이 있었다 가정하면...당대엔 그 티무르였을 확률이 일단 젤 많다.
*티무르의 집안은...원나라(북원)과 차가타이한국(후대 무굴리스탄)의 사이를 줄타기했다.
이성계의 집안도 북권과 고려사일 줄타기 했고...이성계 맹확약시절엔 명나라(무굴?)과 고려사일 줄타기했다.
*티무르나 이성계 공히...배신의 대가들로 역사에 기록됐다.
배신자는 역사에 널널하다 또 위키백과를 펼처드실까봐...당대 똑같은 시기 동서를 통치하던 강력한 권력자 들중의 비교임 인지해 주기길 바라겠습니다.
*이성계를 실질적으로 이은 후계자는 4째 아들(5째 일 수도...)인데...
티무르의 경우도 5째 아들(4째 일 수도...)아들이 실질적 후계자가 됀다.
*이성계를 이은 막내벌 아들 이방원은...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들을 몰아내고...이성계가 내세운 맏형의 자식(조카)을 몰아낸다.
티무르의 아들 쇼호르가 왕자의 난을 일으킨 건...티무르가 첫째 아들(형)의 어린 장자(맏조카)를 황태자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동 시대 주원장의 명나라 왕자의 난과도 시기와 이유가 딱.맞아 떨어진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을 이은 세종이 역사에 기록됀 과학과 문학의 성왕이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쇼호르를 이은 울르그벡은...아랍역사에 과학과 문학의 성황으로 기록됐다.
이게 명나란 영락대제때로 기록됌은...
세종대왕(울르그벡?) 치세 상당기간에...이방원이 상왕으로 뒤를 받치고 있었기에...명 성종의 업적과 섞여 해석됀 것이다.
사실 울르그벡은...세종 본인이라기 보단...세종이 서역(이조의 고향)에 파견한 제후 안평였을 것이다란 제 예상도 들어 보셨을 줄 압니다.
*이성계는...황산(荒山)일대의 금사강에서 아기발도와 싸운 생에 최고의 전적인 황산대첩을 후손들이 자랑하는데...
이때, 다리와 애마에 심각한 화살 관통상을 입었으나...전투분위기상 치료도 않하고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고로,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제때 치료를 못 받은 무릅 관통상은...심각각한 후유증으로 말년까지 다릴 약깐 절게 만들었을 수 있다.
이성계는 황제추대 전에도...낙마사고를 격어 정치적 위기를 맞는데...
이게 이성계가 다친 공식적 기록의 전부니...낙마사고나 부상을 입어 다리를 절었을 확률이 많은건 흔한 유목족들 습성이니 참고할 사항 없다 함은...좀 억지일까 합니다.
말 많이 타는 현 몽골족들에도 젊름발인 별반 드물거든여...
티무르의 경우도...시스탄(금사강?)전투에서 다리 관통상(낙마라고도 함)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적들이나 후세 양이들에게 그의 별명인 티무르 랭 으로 불리웠으나...
정작,그의 예명이 주어진 전투였던 그 시스탄 전투는...그저, 이란등에서 치룬 전투라 대충 기록했을 뿐...
전장의 자세한 설명이 없음은...
그 시스탄이 중아아가 아닌 중원 사천성 남부 황산(黃山)이라고도 불리는 형산주변 금사강(금천=새텬=`시스탄?)이였기 때문일 가능성 많다.
*이성계는 말년 권력을 잡을 결정적 순간에...낙마사고로 중상을 입어...정치적 위기에 몰렸으나...
막내뻘 아들 이방원이 ..병문안차 동태파악을 온 정몽주를 주살하는등...정적들을 제거함으로서 일생일대의 위기를 모면했다.
티무르도 말년에 부상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으나...막내뻘 아들 쇼호르의 맹활약으로 일생 일대의 위기를 모면했다.
그랬기에 그 이방원과 쇼호르...영락제 모두...자신이 아닌 조카에게 양위됌에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아주 똑같은 시기에...아시아 극서와 중원과 극동을 대표하던 세왕조에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막내뻘 아들들이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이게 우연에 일치로 어느 시대나 일치할 수 있다 보시는지여...?
*이 왕자의 난으로...이성계가 삐져 고향 함흥으로 돌아가...이방원이 보내는 사자를 활로 쏘아 죽이며 거부한다.
티무르도...쇼호르에게 아프칸(중원일 겁니다)일대의 통치를 맞기고...사마르칸트로 돌아와...동서 분할통치를 했으며...
쇼호르가 아프간(중원?)에서 보낸 사자를 죽였단 설이 있습니다.
대충 위의 역사가
같은 시대...각 지역에서 패권을 누리던 대표적 왕조들인...고려와 명나라 티무르제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그 원인도 같습니다.
이게 우연의 일치라면...그 확률이 얼마나 돼고...
흔한 역사의 반복이라면...극동과 중앙아를 대표하던 왕조들 중...
어느 시대 어느나라의 통치자와 그 집안내력이 이정도 동시대에 일치할 수 있는지 예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없으면서...
정확하고 직접적인 기존(왜곡됀)역사의 증거가 없으니...우연의 일치일 뿐... 아닐것이라 단정부터 한다면...
반대로, 일제가 검열해 첨삭(왜곡)을 했을 개연성이 많은 조선의 대표적 기록들은...대체적으로 젤 깔끔하고 장황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했으니...이에 반하는 내용이면...역사로서 연구할 가치가 없으니...
단군조선과 환국의 역사는 그저 신화일 뿐이고...조선은 내내 한반도에서만 지지고 볶았고....
정신대도 당대의 정식 통치자로 인정됄 일제의 기록엔 자발적 참가였다 대부분 기록됐으니...
강제동원 피해를 입었다.란 비공식적 학설들은...
연구할 가치가 별반 없는 그저 주장일 뿐이다...란 식의 설명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사료됍니다.
사설이 너무 늘어졌습니다.
이제 타이틀에 관련됀 사항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선생님 께선...
이성계를 나하추가 젊은 장수라 했단 기록 달랑 하나...
전 아직 공식문헌에선 못 찾았습니다만...김선생님 주장으론 아주 가끔 이성계가 아기바타르(아기장사,아기발도)라 표기됐단 정황으로...
이성계의 후손들이 이성계의 가장 큰 업적으로 선전하는 황산대첩의 적장이름인 아기발도가 이성계의 이름일 것이라 하시는데...
상식적으로 모순이 많습니다.
아기장사(아지발도)란 말은...소시적 힘 좀 쓰면 저같은 자도 들었던 별명입니다.
역사기록에 특별하리만치 애기장사란 이름만으로 기록됄 정도로...
그 행적이 어린장수로서 기록됐다면...장년의 활약상도 있었을 테고...공식이름이 기록됐을 겁니다...
아지발도(아기바타르)에게 그 장년의 이름이 없음은...아기발도로 이성계에게 화살맞아 죽은게 맞단 정황밖엔 않 돼는 겁니다.
이건 김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좋아하시는...정사의 기록입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김홍필 선생님.
제가 티무르와 이성계의 연관 정황들을 내 놓은게...
그저 정황의 일치이지...역사기록 원전에 정확히 티무르는 이성계라 명기하지 않는 내용이니...
그저 상상력으로 넘겨짚기로...무책임하게 글을 쓴 것이라면...
위에 제기하신 이성계는 아기발도일 것이란 김선생님의 주장...
제가 나름대로 제기한 여러 정황들에 비교하여...상대적으로 넘 무성이하고 허약하지 않습니까...?
어느 자손들이 어느 신하들이...
자신들의 시조& 군주 아명을...자신들의 시조&군주에게 유일 무이하게 심각한 부상까지 입혔던 적장에게 양보해 줄 생각을 할까여...?
더군다나...동방에선 야만, 미개,도둑의 대명사였던 왜노족 꼬마장사에게...자신들 시조의 아명을 양보한다...?
전주이씨들이 조선 사학자들이 봐보들였을까여...?
정확하고 명료하게 대답해 주십시여...김홍필 선생님...
이성계가 아지발도고...그 이름을 왜적 꼬마장수에게 덮어씌운 것이라면...
그런 기록이 역사의 어느 원전에 나오는지 정확히 명기해 주십시오.
저같이 여러 정황들만 제기하는건 역사 논법에 빈약하다 하셨으니...
위와같이 김선생님 주장에 스스로 모순됀...저보담 훨 못 미치는 나약하고 잛은 정황제시글 말고...
김선생님이 적어도 이정돈 돼야 주장할 수 있다 하신 기준인...명확한 역사기록을 제시해 주십시오.
간단하게 질문 합니다.
황산대첩에서 죽은 아지발도는...이성계의 당대 이름을 왜군장수에게 덮어씌운 것이란걸 증명할 구체적 역사 기록을 내 놓아 보십시오.
참고로...이성계는 당시 45살였고...아지발도는 16세 정도였답니다.
이런 본인의 주장관 영 다른...
저보다도 10배 가량 덤성덤성한 정황만으로 이성계는 아지발도일수 있다란..김선생님의 평소답지않은 무리수...
자칫하면 왜노들과 조선을 은근슬쩍 섞어 보려는 왜노들 심리의 대변이라 오인받을수 있으니...
김선생님 주장하신대로 분명한 역사의 증거기록을 내 놓아 주십시여.
꼭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셔야만 합니다.
김선생님...
피하시면 않 돼십니다.(김선생님의 어법을 도용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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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바투(阿其拔都; 아기발도)는 그 왜장(倭將)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추측입니다. 일본 측의 역사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없다면, 일본 측에서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주장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이름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왜노(倭奴)들의 역사왜곡 집단들과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쟁점과 무관하게... 계속 그렇게 주장하시면, 저의 "명예 훼손"으로 생각됩니다. 다시 경고합니다. 홍진영 선생님, 명심하세요.
김선생님의 변명으로 보이시는 이성계=아지발도 추정글엔...이성계가 "발도"...즉,영웅으로 불렸으니..애기발도(꼬마발도)라 불렸던 이성계는...당시 그 16세의 꼬마발도와 열전를 치뤘던 45세의 아저씨...옛날 같으면 손주를 두고도 남을 할아버지 이성계가 꼬마 영웅(아기발도)로 호칭됐단 무리수...받아 들이기 힘겹습니다.
그런식 억지 대입이면...소식적 힘 쭘 써서...동내 영웅으로 불이던 제 친구늠도..영웅(발도)로 불렸으니...아지발도(이성계와 싸웠던 ) 로 표기됀...이성계일 가능성 아주 많다 하겠네여...?
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이 "아기발도"(阿其拔都)라면, 나이 젊은 "이장군"(李將軍) 즉 이성계의 유아 또는 젊은 시절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역사기록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만약 그 이름이 "아기발도"(阿其拔都)가 아니라면, 적어도 "발도"(拔都)가 들어가는 이름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 근거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아기바투(阿其拔都; 아기발도)라는 이름은 유일한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그 이름으로 인물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 유행하였던 몽골식 이름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요즘의 영어 이름과 유사합니다.
"억지 대입"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습니다. i) "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은 아기바투(阿其拔都; 아기발도)일 수 있다는 주장과, ii) 아기바투(阿其拔都; 아기발도)는 모두 "이성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똑같은 논리가 아닙니다.
솔직히...양심적으로...제가 제기한 이성계=티무를 추정글에 비해...너무도 허약하고 엉성한 추리라 보이는데...제 주장도 어설픈 추정&대입이라 나무라시던 분의 주장치곤...너무 쌩뚱 맞으시다 생각지 않으시는지 여쭙고 싶어..무례한 댓그을 이어 갑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하여 보니까, 무례한 댓글이군요....
김선생님의 평소 소신관 너무나도 다르신 무리수...유독... 왜놈들을 조선에 연결시키려시려는 부분에서만 나타나시는 경향...김선생님은 알고 계신지 의문입니다...?
왜노(倭奴)와 이성계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제가 왜노(倭奴)를 조선(朝鮮)과 무엇으로 연결하였습니까? 무언가 오해하시고 계십니다. 아기바투(阿其拔都; 아기발도)는 그 왜장(倭將)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추측입니다. 그가 용맹하였기에, 그 당시 이성계의 군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제 글을 다시 한 번 정독하시길 바랍니다.
"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은 '아기발도'였다"는 주장은 제가 생각한 내용이 아닙니다. 저는 <위키백과(한국어)>와 <한겨례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으며, 의문이 생겨서 그 내용을 "검증"하고자 글을 올렸습니다. "이성계=아기바투(阿其拔都; 아기발도)"라는 내용은 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용비어천가>에 나온다고 하지만, 저는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내용을 언급하였다고 하여, 왜노(倭奴)를 조선(朝鮮)과 연결시키려고 한다고 비난하시면 곤란합니다.
일본의 전설에 기초한..... "미나모토 요시츠네"(源 義経; みなもとのよしつね; 源 義經, 1159년 출생~1189년 6월 15일 사망)가 몽골제국(蒙古帝國)의 초대(初代) 황제(皇帝) "칭기즈칸"(成吉思汗; 1162년? 출생~1227년 8월 18일 사망)과 똑같은 인물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름대로의 근거(根據)도 갖추고 있습니다. 왜노(倭奴)를 몽고(蒙古)와 연결하고 있습니다. 황당하지요? 현재,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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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몽골식 이름은 '아기발도'였다"는 주장은 제가 생각한 내용이 아닙니다. 저는 <위키백과(한국어)>와 <한겨례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으며,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검증에 실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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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바투(阿其拔都; 아기발도)라는 이름은 유일한 고유명사가 아니므로, 그 이름으로 인물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 유행하였던 몽골식 이름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성계"든 누구든 그 당시에 충분히 붙여질 수 있는 몽골식 이름입니다. 요즘의 영어식 이름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면... 이발도(李拔都), 이첩목아(李帖木兒).... James Lee, Alex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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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증이 아니라, 물증이 필요합니다. 재야 학자 황영희 선생님의 "고려 공민왕은 '백안첩목아'일 수 없다"는 주장을 떠받치고 있는 여러 근거 중의 하나... 즉, 반드시 '장남' 또는 '장손'에게만 "백안첩목아"라는 이름이 붙여진다는 내용이 틀렸음을, 제가 <위키백과>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증명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물증"에 해당됩니다. 그 "물증"의 진위 여부를 또 다시 검증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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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사관> 또는 <대륙조선사> 관련 "전문 학회"가 설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같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풍부한 (역사기록)자료와 분석 경험을 가지신 역사 전문가(프로; 생업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참여하는 "학회"를 기대합니다. 정치적 영향이 전혀 없는, 순수한 전문 연구자들의 모임,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학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분명한 것은...이성계를 티무르라 부른 역사기록은 전무합니다...이름..혹은 당시 흔히게 유행돼던 예명만 가지고 이성계를 중앙아 티무르라 하지 않았습니다....저는 이성계가 티무르라 칭해졌던 정사의 기록이 아직 전혀없다 해도...그 생몰연대...그 막강한 권력...그 가족내력...그 행적이 거의 일치하기에...동일인일 가능성 있다 했지...이름같고 티무르가 이성계라 하지 않았음을 명기합니다...다 ~~~똑 같으니 부질없는 짓들이란 ...물타기와 다를바 없으신 댓글..솔직히 쫌 삐집니더...ㅡ. .ㅡ
홍진영 선생님은 오직 "그의 당대 행적과 그의 가족내력"으로 추정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그래서, "이성계=중앙아시아의 티무르"의 증명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역사 연구의 "이정표", "마일스톤"이 될 수 있습니다.
제 주장의 결론은.... "이성계(李成桂)가 중앙아시아의 티무르(帖木兒, 1336년 출생~1405년 2월 19일 사망)와 똑같은 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설령 이성계(李成桂)가 몽골식 이름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하여도, 적어도 첩목아(帖木兒)라는 이름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첩목아(帖木兒)로 끝나는, 이성계(李成桂)의 몽골식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객관적"으로 찾아보자는 취지입니다.
이성계(李成桂)의 몽골식 이름은 "아미르 티무르"입니까? 그렇다면, "티무르"는 "帖木兒"라고 표기하는데, "아미르"는 무엇이라고 표기합니까? 한자(漢字)로...
"아미르"(Amir) 또는 "에미르"(Emir)는 "사령관", "총독"이라는 뜻의 "아라비아어"(아랍어)입니다. 원래 "몽고어"가 아닙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왕족과 귀족의 칭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출처=위키백과(한국어)] 따라서, 중앙아시아의 황제 "티무르"(몽골식 이름)에게 "아미르"라는 이름이 추가로 붙여진 것은, 결국 "이슬람교" 세력의 영향으로, "아라비아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징기스칸의 천호 제도에 있어서 십호부터 만호에까지 부대를 각각 통솔하던 대장들을 "베그"라고 하는데, 이를 해석한 말이 또한 "아미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어"에서 이들을 각각 십호장을 아미르 이 다하(Amir-i dahah), 백호장을 아미르 이 사다(Amir-i Sadah), 천호장을 아미르 일 하자라(Amir-i hazarah), 복수의 천호을 통솔한 만호장을 아미르 이 투만(Amir-i tuman)이라고 불렀다. [출처=위키백과(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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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진 선생님, 저의 평소 생각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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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 드립니다...티무르와 이성계는 말이 전혀 다릅니다...말로 맞춘게 아니라...저의 대부분 딴 글은 몰라도..티무르=이성계 관련설 하나는 그의 당대 행적과 그의 가족내력으로 추정한 겁니다...제 주장을 틀렸다 하셔도 제가 삐질일은 별반 없습니다만...발언 요지에 대해선 좀 분명히 구별해 주셨으면 합니다.
티무르(帖木兒; Timur) 제국, 대명(大明) 제국, 조선(朝鮮) 제국... 세 황조(皇朝)의 비교를 통하여 도출된 홍진영 선생님의 주장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필연"이라면, 어딘가에 관련 자료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느 쪽의 역사기록이 "진실"인지 규명하여야 합니다.
새벽에 급허게 쓰다 나간 글이라..지금보니 끔직한 오타 투성이 본문였군여...얼굴을 쥐구녕이에라도 드리밀고픈 심정입니다.
홍진영 선생님, 진심으로 조언합니다. "이성계=티무르"라는 홍선생님의 주장을 증명할 '직접적' 역사기록은 없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그의 당대 행적과 그의 가족내력"으로 추정하셨습니다. 저는 "이성계=중앙아시아의 티무르"라는 학설(?)이 직접적, 간접적, 우회적인 역사기록으로 "증명"된다면, 홍진영 선생님은 역사학계의 "티무르"가 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사 연구의 "기준점"을 바꿀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연구자들이 홍진영 선생님의 연구 결과를 앞다투어 자기 논문에 직접 "인용"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멋있겠죠?? 그래서, "이성계=중앙아시아의 티무르"의 증명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현재 시점에서... 99.9% "확신"(확실???)하시는 홍진영 선생님의 "이성계=중앙아시아의 티무르"라는 주장을 그 근거들과 함께, 어떤 역사 연구자들이 자기들의 연구 논문이나 책에 직접 인용하고 있는지? 우선,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인지를... 본 카페의 회원이신 서정호 선생님의 개인 블로그도 자주 등장합니다.
제가 위 댓글에 홍진영 선생님에게 여러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성계=티무르"라는 주장에 의거하여 답변하시길 바랍니다. 홍진영 선생님!!! 역사학계의 "티무르"가 되시고 싶으십니까?
그러고 보니...은근히 땡기는 데여...ㅡ. .ㅡ...여력돼는대로 열시미 해 보겠습니다.
조형진 선생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조형진 선생님, 그 호의(好意)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왜긴요. 제 블로그에 진영님 글을 다 퍼놔서 그렇죠. 우리역사의 비밀 싸이트에 좌계님, 이대진님 등의 글과 더불어 몇몇 분의 글을 제 블로그에 퍼 담았습니다. 며칠씩이나 걸렸는데, 언제 다 읽어 볼지는 다소 막막한 상태..~
서정호 선생님, 그것을 제가 몰라서 언급하였나요?? "이성계=중앙아시아의 티무르"라는 홍진영 선생님의 주장을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여 보면, 다른 연구자들이 자료 분석에 인용하는 게 아니고, 서정호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블로그나 카페에 퍼 담으신 것 밖에는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정실련> 웹사이트의 "궐한의 역사 이야기" 코너도 검색됩니다. 그 이외에는.... 서정호 선생님도 숙고(熟考)하셔서, 개인적 견해를 본 카페에 소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객관적 자료를 찾아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홍진영 선생님의 "이성계=중앙아시아의 티무르"라는 주장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최두환 선생님의 "이슬람교(백제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백제 무왕(마둥)"이라는 주장과 연결될 수 있으므로, 앞으로 철저한 검증 또는 증명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를 기대합니다.
아, 그런 뜻이었군요. "이성계 = 티무르"론과 "동/서 돌궐 = 고구려"론, "카스피해~대막 = 예전의 북해"론 등 홍진영님만의 독특한 주장 몇 가지에 대해서는 상호보완이 될만한 다른 분의 주장이 전무하긴 합니다. 여기와 우리역사의비밀 등 인터넷 싸이트 몇 곳을 정해 놓고 꾸준히 읽고 검토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어떤 분의 주장에 대해서도 50%만큼이라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야 김부식의 "삼국사"나 사마천의 "사기"를 원문과 대조하면서 지지부진한 속도로 읽어가기 시작하고 있고, '역사의 줄기가 어떤 식이겠구나..'하는 감도 못 잡은 상태에서 제 개인적 견해를 개진하기에는 이른 것 같구요.
단지, 홍진영님의 글들이 크게 개관하는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이 많고, 편견을 배제한 판단(이런 면이 많은 분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기도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보기 드문 장점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이 저와 유사한 스타일이기에 기본서처럼 활용할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정립이 되지 않은 지금 상태로 제 생각을 쓴다면, 저의 냉소적인 측면이 너무 많이 가미되어 논란만 부추기는 듯한 내용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 아직 지식이 일천한만큼, 질문 위주로는 가끔 글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정호 선생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제가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홍진영 선생님의 '장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서정호 선생님도 잘 아실 겁니다. 자칫하면, 그 장점이 '단점'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제가 홍진영 선생님에게 '인신공격'을 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갑론을박"이 없는 연구는 죽어 있는 겁니다. "논쟁"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이 얼마나 자주, 많이 홍진영 선생님의 주장들을 역사자료의 분석에 인용 또는 원용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 주장들의 "객관성"을 확보하게 되는 겁니다. 서정호 선생님도 계속 숙고(熟考)하시어 언젠가는 개인적 견해를 본 카페에 공개하시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평소에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 격려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토론/연구/보완하는 풍토에 다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