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 #1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냐?”
내가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다.
대개는 법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까...
그러나
특정한 경우에 있어서는 정말 공감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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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baceous cyst(피지샘낭종) 또는 epidermal inclusion cyst 라는 질환이 있다.
“우리 몸의 피부에는 피지샘이라는
피지를 만들어서 분비하는 샘이 있어요.
원래 정상적으로 있는 것이고,
여기서 피지가 만들어져서 밖으로 배출 되어야 하는데
밖으로 나오는 출구가 막히면서
안에서는 만들어 지고 밖으로 나오지를 못하니까 피지가 점점 쌓여서
맨 처음에는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콩알처럼 만져져요.
그럴 때 병원에 오시게 되면
완전히 절제를 하고 꿰매서 깔끔하게 제거가 되는데
이게 안 아프니까 환자분들이 병원에 안 오시거든요...
그러면 여기에 세균이 감염이 되게 되고
그러면 이 안에서 농양, 고름이 생기게 되는데
이걸 우리가 흔히 ‘종기’라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종기가 되면 아프니까 그제서야 병원에 오시는데
이때는 농양이 피하지방층에서 터져서 주변부로 염증이 파급된 상태라
완벽하게 제거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쭉 째서 고름 다 걷어내고 그 안에다 소독약 적신 거즈를 넣고
이걸 매일 매일 갈아주면서
안에서부터 살이 차 올라와서 이 공간을 메꾸게 되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피지샘낭종이 농양을 형성하여 병원에 온 환자들에게
내가 항상 설명하는 말이다. 토씨 하나 안 틀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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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피지샘 낭종은 등, 엉덩이, 사타구니 등에 많이 발생하는데
감염이 되지 않은, 즉 농양을 형성하지 않은 피지샘 낭종으로
병원에 내원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농양이 형성되어야 그제서야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국소마취하에 수술을 시행하는데
농양이 형성되지 않으면 수술 시 별로 통증이 없지만
일단 농양이 형성되면
아무리 국소마취를 한다고 해도
수술 시 환자는 어느 정도 통증을 느낀다.
통증은 염증이 심하고 범위가 넓을수록 더 심한데
‘종기’라고 해서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으나
과거 조선시대에는 이것을 ‘등창’이라고 하여
심지어 임금들도 이것으로 많이 죽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수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necrotizing fasciitis(괴사성 근막염)라는 심각한 질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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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샘 낭종을 절제하든, 농양을 절개 및 배농하든
그 크기가 크든, 작든
그 수가는 128,260원인데,
농양이 등이나 엉덩이에 있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환자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며 수술을 시행할 수 있지만
이 농양이 항문주위에 생긴 경우는
항문주변부는 신경이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수술 시 통증이 더 심하다.
(항문주위는 심지어 국소마취 주사를 놓을 때마저도 자지러지게 아프다.)
항문 주위에 피지샘 낭종에 의한 농양이 발생한 환자의 경우,
가뜩이나 농양으로 인해 띵띵 부은 상태라서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거기다 가 국소마취주사를 놓고
curette(큐렛:긁어내는 수술기구)으로 벅벅 긁어내게 되면
환자는 수술시간 동안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이 경우,
국소마취 하에 수술을 하는 것보다
아예 척추마취 하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
통증 측면에서는 환자에게 훨씬 좋은데
의사 입장에서도 환자의 비명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국소마취로 인한 농양주위 부종을 줄일 수 있어서
수술이 용이하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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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이 피지샘 낭종에 의한 농양의 경우
심평원에서 척추마취 하에 수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즉,
척추마취 하에서 피지샘 낭종이나 농양을 수술하게 되면
척추마취 시술료 자체가 모두 삭감된다는 것이다.
물론 척추마취 후에 병실에 6시간 이상 입원하는 입원료도
당연히 삭감이다.
환자에게도 좋고
의사에게도 좋은 방법이지만
환자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환부가 얼마나 큰 지도 모르며
수술을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고
그 때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도 모르는
수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책상머리에 앉아
모니터 화면이나 쳐다보고 있는 공무원(또는 준공무원)이 결정한 대로
환자는 고통 받고
의사는 수술을 해주면서도 미안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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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다시...
(Antonio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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