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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나 왔어!”
“은..은구슬! 너 당장 이리 안와?”
“으악! 할아버지! 왜!!!!!!!”
즐거운 토요일, 학교에서 일찍 마치자마자 집으로 뛰어오는 길인데 할아버지가 불같이 화내시며 구슬을 닦달하셨다. 또 무슨 잘못을 들킨건지 걱정이 된다. 어차피 할아버지 몰래 저지른 잘못은 많으니 그걸 들키지 않는게 늘 은구슬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너!!! 장롱 밑에 있던 성적표가 뭐야!!”
“아! 난 또 머라고~ㅎㅎ 할아버지~이번 기말고사 어려워서 얘들 다 못쳤어~괜찮아 괜찮아^^ 2학기 중간고사때 잘치지 머?ㅎㅎ”
“내년이면 수험생이.........너 일로 와!”
올해 나이 62세인 은구슬 할아버지는 참으로 정정하신 몸을 이끌고 18살의 꽃다운 은구슬을 뛰어 쫓아갔다.
원래 약간 촌에 위치하는 동네라 공기도 맑은데다 구슬이 집은 특히 더 산쪽에 있어서 등하교는 기본이고, 라면을 사거나, 아이스크림을 사거나, 친구를 만날때나 언제나 산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등산이 몸에 얼마나 좋은지는 할아버지를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요즘 나이에 62세면 아직 청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60대인데.... 허리도 참 꼿꼿하시고 어디 가서 아버지라 해도 믿을 정도셨다.
집을 뛰쳐나와 마구 달리던 구슬은 이내 베프인 시현을 만나 멈췄다. 이런 촌동네에서 보기 드문 얼굴이라고 다들 칭찬 일색인 우리 시현이....그런 시현이와 꼭 붙어다니는 구슬을 남자애들은 늘 놀려댔다. 물론 시현이가 특출나게 예쁘긴 하지만 구슬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다. 동그란 얼굴에 땡글땡글한 눈이 귀염상이였던 것이다.
시현은 늘 그렇듯 경쾌하게 구슬을 불렀다.
“어! 구슬아~잘됐다~안그래도 너 만나려고 갈 참이었는데~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빨랑 말해~나 도망쳐야 되니깐...”
“헤헤, 지지배, 급하기는!”
오늘따라 시현이 기분이 유난히 좋아보였다. 한껏 들뜬 표정은 안그래도 예쁜 얼굴을 더욱 눈부시게 해주었다.
“나... 스타엔터테인먼트에 1차 서류오디션 합격했어!! 이번주 주말에 서울 본사에서 2차 오디션 있는데 그중 한 명은 바로 합격해서 연습생으로 들어간대!!!! 긍까 우리 서울에 같이 가자? 응? 그날갔다가 그 날 바로 오는 거야!!!응? 응??ㅎㅎ”
“은구슬!!!!!!!!!!!”
“하, 할아버지!”
목 뒷덜미를 잡힌 은구슬이었다.
“감히 할아버지를 뛰게 해!! 안 그래도 성적도 못 나온 것이, 숨기지를 않나, 뻔뻔하게 변명이나 하지 않나, 갑자기 도망을 치지나
않나!”
“할아버지, 진정해,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눈치 없는 건지, 해맑은 건지 시현은 할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ㅎㅎ 아! 전에 할아버지께서 맛있으시다던 식혜, 이번에 엄마가 좀 더 만드셨는데 또 갔다 드리까요?”
식혜 생각에 기분이 풀리신듯한 단순한 할아버지는 바로 구슬이를 놓으며 웃으셨다.
“허허, 이거 그래도 되려나? 고맙구나^^”
“아! 할아버지! 그리고 제가 이번에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됏어요! 그럼 서울에 꼭 가야 하는데 길치인데다 이렇게 미녀인 제가 혼자 서울까지 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아무도 넘보지 않을 든든한 보디가드가 한 명 필요한데, 이번 주말에 구슬이랑 저랑 서울 좀 다녀오면 안돼요? 늦어도 9시 전으론 올 거에요! 부탁드릴게요!”
이미 식혜에 넘어가신 순수한 할아버지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좋게좋게 집에 보내드린뒤, 구슬과 시현은 나란히 걸었다.
“내가 왜 니 보디가드냐?--”
“어머, 아까 하는 말 못 들었어? 길치인데다가 미녀인 나 혼자 가기에 서울은 너무 위험하니깐 성격드럽고 드세면서 얼굴도 못생겨서 아무도 넘보지 않을 든든한 보디가드가 필요하다니깐?ㅎㅎ”
“긍까 보디가드 하려면 키크고 힘센 남자애를 데꼬 가거나 적어도 너보단 힘센 얘를 데꼬 가라구!! 왜 날 데려 가냐?”
160의 아담한 키를 자랑하는 은구슬은 늘 167의 늘씬한 시현의 옆에서 비교되는게 억울했다. 근데....지금은 시현보다 못생기고 성
격 드러우니깐 보디가드를 해라는게 아닌가?
“미안미안~^^ 우리 구슬이 삐져쪄요? ㅎㅎ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내가 믿을만한 친구가 너밖에 더 있냐??ㅎㅎ 이참에 우리 서울 나들이도 하자는 거지!! 너 할아버지께서 밖에 외출도 잘 안 시켜주시잖아! 같이 놀러도 가고 좋지 멀 그래?”
---------주말/in 서울----------------------------------------------
“오랜만에 동네를 벗어났더니 기분이 짱 좋아^^ㅎ”
“그나저나 구슬아, 빨리 스타 엔터테인먼트부터 가자! 오늘 12시에 바로 오디션이란 말이야!!ㅎ”
“지금 11시니깐... 한시간 안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11시 50분 엔터테인먼트 도착했다.
이상한 건, 버스에서 내릴때까지 상쾌했던 마음이 여기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왜 이렇게 무겁게 변하는 걸까? 구슬은 오면 안 될 것
같은 곳에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휴~시간 맞춰서 왔네~ 빨리 준비해야겠다^^”
“와~김지윤이다! 실물로 보니깐 더 예쁜데?”
“진짜 동안이다. 누가 30대로 보겠어?”
구슬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다. 만나지 말아야 했던 사람을 만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에 여기는 구슬이 오지 말았어야 할 곳이었다.
“!”
“구....슬...”
지윤은 작게 중얼거린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마치 아침에 학교에 잘 가라고 배웅해줬던 엄마가 학교에서 다녀온 딸에게 잘 다녀왔냐는 듯이 지윤은 그렇게 구슬을 보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구슬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엄마....
수도없이 되뇌였던 그 말....
할 수도 없었고, 해서도 안 됐었던 그 말...
6살이었나?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갔던 때가.....한번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날 갑자기 할아버지께 버려두고 갔던 것처럼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날 데려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밤마다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엄마란 말을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할아버지의 꾸지람뿐이었다.
“네 엄마 김지윤, 너 버리고 갔어. 배우하겠다고 너 버리고 간 나쁜 엄마니깐 너도 이제 엄마 잊고 이 할아버지랑 살자. 응?”
어릴 적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지윤은 조용히 구슬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인다.
“구슬아...그대로네...보고싶었어...”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구슬은 그대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디션을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들은 그저 배경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슬이....오디션 보러 온 거야? 엄마 있는 곳 알고 일부로 여기 온거야?”
웃기지마...난 당신이 이 엔터테인먼트인지도 몰랐다구...그냥 친구를 따라 잠깐 왔다가 운나쁘게 당신을 만난 것 뿐이라고...하지만 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왈칵 나오려는 찰나였다.
“근데, 구슬아...미안한데...엄마라고 부르지 마~정말 나쁜 엄마인 거 아는데...이것만 부탁할게...엄마라고 부르면 안돼...알았지?”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 나 혼자 그동안 엄마 미치도록 그리워했단 걸 인정하는 꼴이 되버리니깐...참았다. 그렇게 구슬은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속으로 수도 없이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지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구슬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채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구슬이, 어디 가서 이모랑 같이 차나 한 잔 마시자.”
이모....당신은 그 말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군요....이모라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구슬은 엄마..아니 지윤과 둘이 엔터테인먼트 내부의 작은 방에 테이블 하나를
두고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인데...다시 보면 꼭 안겨서 엄마라고 울고불고 싶었는데...지금 지윤과 구슬 사이에 이 테이블은 너무나 커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구슬이, 가수가 되고 싶어서 온 거야, 배우가 되고 싶어 온거야? 아님 뭐 모델이나, MC?, 개그우먼 이런 쪽인가? 호호”
지윤은 웃었다.
“전...연예인이 되지 않아요.”
“그래? 그럼 여긴 왜 왔어?”
“친구따라 온 거에요. 응원 할겸요.”
“그렇구나...그럼 이쪽으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구?”
“당연...하잖아요?”
“당연하다니?”
배우가 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을 버려두고, 그 딸이 매일밤 울게 내버려두고 그랬던 엄마 때문에 한 아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그리워했는데....내가 이 방면으로 나갈 리가 없잖아요...
구슬은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한마디라도 더 하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 문이 덜컥 열리고 샤방샤방한 꽃돌이 5명이 들어왔다.
평상시 할아버지는 배우인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혹시라도 구슬이 보고 엄마를 찾을까봐 집에 텔레비전도 치우고, 컴퓨터도 치웠다. 원래 연예 쪽으론 무관심했던 구슬이라 친구들이 아이돌그룹, 드라마 얘기를 할때도 늘 시큰둥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 다섯명은 왠지 알 것 같다. 알고 싶지 않아도 많은 여자애들이 불러대서 알게 된 그 이름, pearl. 듣고 싶지 않아도 많은 여자애들이 불러대서 알게 되는 pearl 의 많은 노래.
물론 구슬은 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는 다 알지 못했다.
다만 구슬은 여기서 빠져나가야할 것만 같았다. 신경 써 주고 싶진 않지만 왠지 여기 남아있으면 지윤이 굉장히 당황스러워질 것만 같았다.
“어? 웬 꼬맹이네?”
pearl에서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이연두가 생글거리면서 다가왔다.
구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문을 향해 내달렸다.
탁!
한 남자아이랑 부딪히고 그 아이가 들고 있던 음료수는 쏟겨져 무대의상인 듯 보이는 옷에 잔뜩 묻어 있었다.
“아..죄..송..”
“아..씨..뭐야?”
사과하려고 했는데 그.딴.식.으로 욕을 하다니....구슬은 기분이 나빠졌다.
“죄송하다구요...!”
“죄송하다하면 다냐?”
처음부터 반말이네....물론 앞도 안보고 달려간 내 잘못도 있으니....이건 넘어가주겠어...
구슬은 그냥 지나가려고 나가는데 그 싸가지 성우현이 구슬의 팔을 잡았다.
“그냥 가게? 사람치고, 음료수 엎질러서 옷 버리게 한 다음에 죄송하다 한 마디 하고 그냥 가게?”
“야~우현아, 너 처음보는 숙녀한테 왜 그래? 이해하세요~얘가 왜이러지...그래도 나쁜 얘는 아니에요^^”
옆에 있던 민주하가 말했다. 구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보통 이 또래 여학생들 우리 보면 완전 열광하고 이러지 않나?ㅎ”
연두가 말했다.
“제가...왜요?”
“야, 너 설마 오디션 보러 온 거 아니지? 너랑 같은 소속사에 있는 건 정말 최악이니깐 오디션 같은 거 볼 생각이었다면 당장 버리고 집으로 가서 발이나 닦고 자라.”
성우현이었다.
“제가 오디션을 보든 안 보든 그건 제 마음이거든요? 힘들여 서울까지 올라온 사람 그쪽이 뭔데 오라가라에요?”
구슬은 최대한 바락바락 대들었다. 우현은 그저 어이없다는 듯 구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얼굴도 못.생.긴.게. 노래는 잘 하냐? 우리만큼 잘해? 춤은? 연기는?”
우현도 스스로가 조금은 놀랐다. 이렇게까지 화낼 필요도 없는 일인데...왜이렇게 까칠하게 구는거지...옷 좀 더러워졌다고 별로 화가 나지도 않았다. 조금은 이 아이한테 흥미가 갔다. 인기배우 김지유랑 단 둘이 방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이 아이가....우리를 보고도 전혀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던 이 아이가....우리가 들어오자 놀란 듯이 뛰쳐나가려는 이 아이가....그저 흥미로웠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뭐하는거니? 그만해.”
지윤이었다.
“구슬아. 생각있으면 오디션 쳐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해^^ 기대할게..”
“기대..하지..마세요..”
그대로 구슬은 뛰쳐나왔다. 다시 오디션 준비를 하는 사람들 사이로 돌아왔다. 아니, 친구 시현의 곁으로 돌아왔다.
“너 어떻게 된 거야? 김지윤이랑 아는 사이야? 우아~ 대단해^^나 좀 소개시켜주라~헤헷”
“미안....나 좀 피곤해...오디션은 봤어?”
“아니..아직..ㅠㅠ. 왜 그래..ㅠㅠ..”
“아냐^^ 언제 니 차례야?”
“이제 2명만 더 하면 돼^^ 떨린다...ㅠ”
구슬은 아무렇지 않은 척 시현을 응원해주었다. 당장 집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안겨 울고 싶었다.
드디어 시현의 차례가 되고 시현은 온갖 깨방정은 다 떨면서 오디션장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오디션장에서 한 아가씨가 나오더니
“정시현씨 친구분 계시나요?”
“네? 제가 시현이 친구인데요? 왜요?”
“아~이번에 특별히 친구 도움으로 오디션에 가산점을 붙는 규칙이 생겨서요~혹시 친구 도와주실 생각 있으시다면 들어와 주시겠
어요?”
첨 듣는 규칙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떨던 시현을 생각하며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구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디션장으로 들어
갔다. 정장을 빼입은 멋쟁이 아저씨, 눈매가 날카로운 한 아줌마, 한 가운데 부드럽게 웃고 있는 지윤....엄마였다...분명히 엄마가
날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 옆엔 아까봤던 우현과 또 배우같아 보이는 남자가 한명 더 있었다.
우현은 뜻밖에 다시 보게 된 구슬이 이상하게 반가워 자기도 모르게 미소지어졌지만 애써 참으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소개 해주시겠어요?”
지윤이 미소지었다.
“이름 은구슬, 나이 18, 정시현을 응원하러 왔습니다.”
“끝인가요?”
카리스마 아줌마가 물었다.
“구슬양, 친구로 인해 가산점을 줄 수도 있는데 친구를 위해서 그정도 밖에 못해주나요? 좀 더 인상은 펴 주겠어요? 노래든 연기든
하나 보여주시겠어요?”
지윤이었다. 우현 앞에서 하기 창피했다. 나보고 오디션같은 거 보지 말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제대로 해야만 했다. 구슬은 옆에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시현과 앞에서 도도하게 바라보는 우현을 번갈아 보며 침을 삼켰다.
“노래...해볼게요..”
지윤이 박수를 쳤다. 심사위원 다섯명이 모두 박수를 쳤다.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 아버지는 나에게 꽃을 안겨주시고~”
아는 노래가 옛날 노래뿐이었다. 엄마앞에서 왠지 이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지윤의 표정은 약간 굳어 있었다.
“그 옛날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노래를 끝냈다. 우현은 눈을 감고 듣고 있다 박수를 쳤다. 그렇게 뛰어난 노래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슬펐다. 애절한 느낌이 들
었다. 원래 약간은 부드러운 구슬의 목소리가 다만 좀 더 감미롭게 들렸다. 잘 부르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닌 목소리였다.
시현과 구슬은 그렇게 오디션장을 빠져나왔다.
“아~구슬아~완전 고마워~내가 만약 합격하면 이건 다 네 덕택이야^^”
시현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집에 가?”
“아니, 6시에 바로 발표한대~ 그것만 듣고 가자^^ 지금 5시니깐 한 한 시간정도 남았어. 밖에 나가서 뭐 좀 먹고 올래? 배고프지
않아?”
“아니...생각없어^^”
시현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왜..그렇게 쳐다봐?”
“너...아까 김지윤이랑 들어갔다 오고 난 다음부터 이상해졌어...무슨 일 있었지? 무슨 일인데? 말해줘 말해줘~”
“아..아무것도 아냐.. 걍 배가아파서..ㅠㅠ 진짜야..ㅠㅠ”
“알았다 뭐~ 나도 친구가 말하기 싫다는 거 억지로 캐낼 생각도 없어^^”
시현은 사람좋은 웃음 한번 씩 보여주고는 계단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시간을 보냈다. 한시간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기다리는 사람은 두 사람말고도 많았다.
약속한 6시가 되었다.
문에 종이가 붙였다.
‘은 구 슬’
분명히 은구슬이었다. 한 명 뽑는 오디션에서 신청을 하지도 않았던 구슬이 뽑힌 것이었다. 시현은 실망하였지만 곧 희망을 가지고
“혹시 난데 네 이름으로 착각한 거 아냐? 넌 신청도 안 했잖아? 그지?”
그럴 일은 없다...틀림없이 엄마가 한 일이다...
이런 건 어차피 할 생각도 없었는데...괜히 시현에게 미안해졌다.
구슬은 아무말도 못하고 시현의 손목을 잡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지윤이 씁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참을 걸은 뒤 시현은 이 분위기를 자기가 먼저 깨야할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구슬이는 잘못한 게 없으니깐....날 위해 노래까지 불러주었고...
"야! 은구슬~ 배고프당~ㅎㅎ 밥 좀 먹자~너 돈 얼마 들고 왔어?"
"정시현...."
"응응??>.<"
"미안....."
"............."
바보...왜 니가 미안하다 그래...
"장난해? 니가 날 떨어뜨린거였어? 요거요거~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드니?ㅎㅎ
그럼 벌로 오늘 저녁 니가 사라!!ㅎㅎ"
구슬은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시현이 그저 고마웠다. 모든 걸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시현은 하나뿐인 단짝이니깐...내베프
니깐...
"알았어! 지갑 줘봐~"
"지갑이라니?"
"나 오늘 지갑만 들고 왔는데 주머니가 작아서 니 가방에 넣어놓기로 했잖아? 장난치지말....너...가방은?"
"..........."
"!"
"가방!!!!!!!!!!!!!!!!!!!!!!!!!!!!!!"
두 사람은 다시 미친듯이 엔터테인먼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이랑 지갑, 집으로 돌아가는 차표까지 다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어떡하지..구슬아? 어떡해..."
"일단 처음부터 잘 생각해보자...엔터테인먼트에 오디션 볼때 가방 있었어?"
"아니...없었어..."
"엥? 그럼 그 전에 잃어버렸단 말야??"
"그런 것 같네...혹시 버스에 두고 내렸나..?"
"음......생각해 보니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오늘 니 가방을 본 기억이 별로 없어...."
이거이거...심각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에겐 땡전 한푼, 핸드폰 하나 없는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할 길도, 집에 돌아갈 길도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자~구슬아~^^전에 텔레비전 보니깐 시간당 사천원인가 그정도 주던데?ㅎㅎ여기는 일거리도 많을 테니깐 대충 일 쫌 하면 금방 집으로 돌아갈 돈은 벌 수 있을거야^^"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구슬은 한 걱정 덜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지금 일자리 찾아봐야 돼?"
"에이..지금 이 시간에 무슨 일자리를 찾냐? 어차피 여름이라 춥지도 않은데 잠은 아무데서나 자고, 낼 아침에 생각하면 되지^^ 저기 보니깐 길에서 자는 사람들 있던데? 그 틈에 끼자^^"
두 사람은 그렇게 일거리가 아닌 잘 곳을 찾아 길거리를 헤맸다.
"아, 도저히 안 되겠어..아무리 그래도 다 큰 숙녀가 길거리에서 잔다는 건 너무 위험해..."
"그럼 어떡해? 그럼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잘까??헤헷^^"
"안전한 곳?"
"응! 저기 방송국 앞에 벤치에서 자자! 저긴 새벽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경비아저씨도 있고 하니깐 치안 문제는 없을거야^^"
시현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어차피 시간도 늦어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방송국 주변의 한 벤치에
머리를 마주하고 쪼그리고 누웠다.
"헤헷~구슬아^^ 미안하구 고마워^^"
괜히 시큰거렸다...자기때문에 시현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머가...."
"나때문에 여기까지 와주구.....나때문에 노래도 불러주구...나때문에...이런데서 자구^^"
"나, 잔다! 말 걸지마!"
애써 괜찮은 척 하는 시현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 구슬은 대충 둘러대고 눈을 감았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일까? 쉽사리 잠이 올 것 같진 않았다. 근데...근데...정신이...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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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빛나는 Pearl, with 은구슬 이란 제목으로 씨앗연재 방에 올렸었던 건데 어쩌다 친구들이 알게 돼서 계속 놀리는 바람에 걍 지우고 마침 정회원도 됐겠다, 소설 제목을 살짝 바꿔서 다시 올려요~읽어주실 분은 있을지 모르겠지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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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재밌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