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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고통의 상상력
김경호(시인)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 현상. 광물과 생물이 같은 원소를 사용하며 생물이 존재해서 그러한가. 우리 인간의 몸은 분자 단위로 들어가면 매 순간, 매 초 단위로 작동하는 광물이라고 한다. 물속에도 우리 몸속을 흐르는 핏속의 수많은 원소들이 녹아 흐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예민한 촉수를 가진 시인들은, 그가 떠나온 시원始原을 그리워하며 끝없이 찾아가 노래하고 사색하는 것인가.
이 시집을 관통하고 흐르는 최삼용 시인의 물을 향한 끌림은 무엇인가? 한 시인의 첫 시집의 본향을 찾아가는 일은 그 시인의 살아온 세계, 켜켜이 쌓인 생의 지층의 단면을 들여다 보며 탐색하는 일이다. 최삼용 시인의 시 세계의 출발은 바로 물가에 있다. 보이는 대상, 그 너머에 있는 원형의 세계에 대한 사유. 시인은 바다 가까이 끝없이 다가가 바다를 건져 올리며 탐구한다. 쉬지않고 유동하며 울렁이는 바다를 보며 시인은 척박한 현실에 대하여 저항하며 내적 고통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세속적 일상의 늪은 도처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시인을 유혹한다. 이러한 고통과 외로움에서 출발하여 시인은 물가에서 사는 작은 생명체에 대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노래의 첫 소절을 시작하고 있다. 이 시인의 시 세계의 지층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상상력은 물(= 바다)을 매개로 하여 어둠과 삶의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멸과 비상의 변주로 나타난다. 그 소멸은 궁극적으로 비상을 위하여 열려 있고, 생명을 잉태하고 꽃으로 피어나는 놀라운 시적 발견으로 이어진다. 자연에서 식물이 ‘피워 낸’ 꽃이 아닌 ‘바다’와 ‘바위’라는 자연이 내어주는 상승하는 생명 현상, 즉 새로운 시각의 ‘꽃花’을 즉 끈질긴 생명력을 도처에서 발견하 기에 이른다. 아래의 시를 보자.
파도 밭에 살다 보니
무늬 또한 파도를 닮았다
간만의 차이가 커질수록
인고의 시간 버티어 탱탱해진 속살은
더 진한 갯내 물고
꽃같이 어여쁜 자태를 갈구해
석화라 이름 붙여진 걸까
희끗한 등에 날카로운 꽃잎 달고
짠물 들이켜며 장미가 바다에서 산다
남겨진 빈 껍질은
먹이기 위해 제 것을 파 주어
쪼그라든 어미의 젖가슴 같다
화석조차 될 수 없어
갯돌에 새겨진 벽화
간조에 비린내를 하얗게 말리고 있다
—「석화」 전문
다소 어눌해 보이기도 하는 어투의 이 시에서 석화石花는 우리말로는 굴이라고 불린다. 돌에 피는 꽃. 조수 간만의 차를 견디며 바위에 붙어 온몸으로 바다를 들이마시고 밀물을 기다려 보이지 않게 몸집을 키우는 석화. 얼마나 기다려야 꽃으 로 피어나는지. 시적 화자는 석화를 바다에 사는 장미라고 노 래하기에 이른다. 채취하고 난 후의 석화는 모든 것 다 내주고 텅 빈 모성, “쪼그라든 어미의 젖가슴”을 연상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리 잡고 보이지 않게 “인고의 시간”을 견딘 ‘모성’이 화석에서 더 나아가 “갯돌에 새겨진 벽화”가 되는 긴 시간. 시인은 언제나 ‘시어’를 찾아, 바다를 품고 바다에 떠돌기도 하고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의 아픔을 직시하고 있다. 석화가 바위에 핀 꽃이라면 아래의 시는 또 다른 물의 꽃花인 소금꽃 즉 염화鹽花를 노래하고 있다.
천만번 볕뉘로 살을 빚고
천만번의 바람 들여 뼈를 길렀다
갯물 졸아 염화로 피운 싸라기 소금들이
오늘도 하오 볕받이로 눈부시다
몸에 열꽃 몰려 스스로 재운 소금기는
드디어 물의 꽃이
아, 아니 물의 씨앗이 되었는가
그 거룩한 변이變異
맺힌 땀에 젖은 노동의 기억들을
써레질로 지우던 늙은 염부는
맛이 간 제 청춘 염장이나 하려는 듯
흘러간 유행가 한가락에 휘파람 간주로
싱싱한 그 시절을 밑간하고 있다
—「소금꽃」 전문
저 중국의 변방 ‘차마고도’에서 생산되는 최고의 소금으로 치는 첫 소금은 도화염桃花鹽이라고 한다.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평지에 염전을 만들 수 없어 비탈진 곳에 나무를 세워 바닥을 흙으로 다져 층층이 만든 계단식 염전. 수십 미터 떨 어진 지하 염정鹽井에서 길어 올린 붉은 소금물을 햇볕에 졸이면서 나오는 계단식 염전. 염전 아래 천장에 맺혀서 피는 귀한 소금처럼 염부의 노동의 결과는 “물의 꽃”으로 재탄생 하여 피어나게 된다. “천만번 볕뉘로 살을 빚고 / 천만번의 바람 들여 뼈를 길”러 한 줌의 소금을 얻기까지 염부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평범한 바닷물이 염전에서 소금이 되 는 ‘살’과 ‘뼈’의 시간이 시인의 눈에 포착된다. 써레질의 고 단함을 휘파람 간주로 지우며 “싱싱한 그 시절”을 뒤돌아보 며 염장하는 고된 노동의 일상을 노래한 이 시편은 이 시인 의 시를 향해 나아가는 절제된 자세와 고투를 절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간혹 삶이 부담스러워
한 번쯤 길을 잃고 싶은 날 있다면
별발이 바다로 마구 쏟아지는 가왕도로 가자
드러누운 묘혈 자리에서 별 헤는 망자의 삭은 가슴 닮아
언제나 침묵한 채 바다를 지키는 작은 섬
은둔이나 칩거를 핑계 삼지 않더라도
인적 떠나 시간까지 멈춘 그 섬에 들면
온통 코발트 빛 눈부심만 낭자하게 춤을 추리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면
오늘의 곤궁 또한 풍요의 척도가 되겠지만
겨울이 창창한 햇살 발라 추위를 말리는 갯가에
빨간 입술을 벌린 채 동백꽃이 바다와 살고
최신형 네비게이션을 켜도 뭍에서 끝난 지도에서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수 없어
말품 발품 다 팔아야 하네
그래서 적당히 두고 온 걱정 삭혀 두고
오늘은 나 여기서 이만 길을 잃으려 하네
—「가왕도 가는 길」 전문
“오늘은 나 여기서 이만 길을 잃”고 싶은 그런 날들을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가왕도加 王島(가오리섬)는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속한 섬으로 거제도 기준 남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으며, 한려해 상국립공원에 속하고 섬 이름은 섬의 모양새가 가오리를 닮은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내비게이션도 길을 찾아 주지 못하는 섬으로의 도피. 온 걱정을 삭여 줄, 어머니의 배속같이 편안한, 나만의 피난처인 섬을 누구든 갖고 싶지 않으랴. ‘은둔’ 과 ‘칩거’를 핑계 대지 말고 무작정 달려가 안기고픈 시인의 심정을 따라가 보면 그곳에는 “동백꽃이 바다와 살고” “겨울 이 창창한 햇살 발라 추위를 말리는 갯가”가 거기 늘 기다려 주고 있다. 밤이면 “별발이 바다로 마구 쏟아지”고 “온통 코 발트 빛 눈부심만 낭자하게 춤추”는 그곳 ‘가왕도’는 시인이 꿈꾸는 무릉도원의 다른 이름이리라. 이처럼 시인은 핏속을 흐르고 있는 소금기의 원류를 찾아 오늘도 물가를 끝없이 떠돌고 있다. 눈길을 끄는 다음 시편에서도 그가 떠나지 못하는 ‘물가’의 이미지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통통배가 겨드랑이 간질이자
파도로 넘겨지는 바다의 책장에
바람이 서술하고 물결이 필사하는
히브리어 같은 굴절 문장들
무엇을 쓰시는지 지금도 필사적이다
바람까지 바다를 빌려 파문 만들며
고인 울음통 비우려
해변에다 몸 뒤집어 파도로 우는데
바람과 바다는 같은 돌림자 쓰는 형제인지
바람 불면 바다가 일고
바람 자면 바다도 따라 잠들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랑도 받침 하나 차이라
떼지 못할 관계를 맺는지 모르지만
입춘 넘긴 꽃 절기라 눈부신 햇살은
바다 위에 온통 빛꽃을 피워 문 채
부드러운 파도로 갯돌을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그날 만난 봄 바다」 전문
‘바다’와 ‘바람’은 서로 밀고 당기며 조응하는 관계이다. 바 람이 바다의 물결을 밀어 올리면 (상승 작용) 물결은 “바다 위에 온통 빛꽃을 피워 문 채” 갯바위를 쓰다듬고 있다. 여기 에서도 시인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다시 한 번 ‘꽃’ 즉 자연 이 내려 준 ‘빛의 꽃(=윤슬)’을 시인의 사유는 자연스럽게 형상화하고 있다. ‘사람’과 ‘사랑’은 또 어떤 관계인가. 우리 ‘사 람’의 모두는 ‘사랑’의 존재이다. ‘사랑’은 모든 생명의 원천 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랑도 받침 하나 차이라”서 사람은 사랑을 하고 대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자연스런 발현으로 시인의 정서에 남은 애틋한 사랑의 언어들은 아래의 시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독자들의 가슴에 젖어든다. 또한 ‘바다’와 ‘바람’ ‘사람’과 ‘사랑’ ‘필사必死’와 ‘필사筆寫’라는 문장 속에 서 하나의 리듬을 형성하면서 경쾌한 음보로 작용하여 시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새로운 작법을 구사하고 있다.
삶이 힘든 날 가슴에는
바다가 그리운 고래 한 마리 헤엄친다
목말라 물을 찾듯 물 같은 술 퍼마시고는
고래도 못 되면서 고래고래 고함치기도 하고
간혹 딸꾹질을 교신처럼 날리다 잠들면
오늘만은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된 암고래는
내가 뱉은 음파 대신 밤하늘 뜬 별 보며
뜬눈으로 항로를 감지하나 보다
술이 술을 불러 술고래 되는 날이면
아내 가슴에서 홧병들 싸라기 별 되어
저리 뜨겁게 반짝이는지 알 수 없지만
땡볕 받은 호박순처럼 술 덜 깬 아침
헛구역질해 대며 타는 목구멍을
찬물로 달래기도 전
내가 부리던 지난밤 암고래는 포경선 선장 되어
곱지 않은 눈총을 작살로 꽂아 온다
—「바다 잃은 고래」 전문
어느 시인의 아내가, 아내와 가족보다 시가 먼저인 시인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외롭고 쓸쓸한 날은 “바다가 그리운” “한 마리” “고래”로 현실을 도피하겠지만 “뜬눈으로 항로를 감지”해야 하는 시인의 아내는 무슨 죄인 가? “오늘만은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고 싶은 순진한 아내 는 “뜬눈으로 항로를” 잃지 않기 위해, 즉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눈물겨운 현실과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술고래’가 된 시적 화자가 ‘고래고함’을 치며 술고래가 되는 모습을 바라 보는 시인의 아내는 결국 견디다 못하면 “포경선 선장 되어 / 곱지 않은 눈총을 작살로 꽂아” 오는 시인의 고통과 비애의 일상을 이 시는 쓸쓸하게 노래하고 있다.
파도의 꼬리에 물꽃 송이들이
창백한 색깔을 피워 문 여기는 통영항
들물 돌아 벼루 뛰기에 바쁜 숭어만큼
어부의 꿈도 튼실하다
잔잔한 물굽이에 몸 맡긴 채
함께 넘실거리는 고깃배 사이로
억센 톤으로 바람을 찢는 경상도 사투리
골수까지 밴 짠 내 때문에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사내들이
오전 내내 물결의 무늬를 더듬다가
선창에 정든 이 웃음 남겨 두고
출항 등을 켠다
—「통영항」 부분
우리나라의 ‘나폴리’라 불리는 낭만의 항구 통영항은 관광 객에게는 ‘꿈의 항구’이겠지만 바다를 누비는 어부에게는 파도와 어획량과 싸우는 전쟁터이다. 언제나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 넘실거리는 바다의 일터가 싫을 때도 있지만 “골수까지 밴 짠 내 때문에 /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사내들”은 오늘도 출항 등을 켠다. 거친 파도와 싸우다 육지로 돌아와 가족들의 안부에 안도하며 긴장을 풀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순간에는 바람 불고 장대비가 시원하게 쏟아져도 좋으리라. 바다에 의지해 삶을 살지만 바다에 나가면 떠나온 육지를 그리워 하는 운명을 어부들은 타고났다. 파도 머리에 피어나는 ‘꽃’ 인 ‘물꽃’을 바라보며 “들물 돌아 벼루 뛰기에 바쁜 숭어만큼 / 어부의 꿈도 튼실”한 바다를 꿈꾸는 시인이 지향하는 꿈은 건강하고 역동적이다.
평택 시내에서 차로 십오 분 남짓
안중에도 없던 안중 땅에
내 안중에 송두리째 넣어도 아니 아플
숲 그늘 같은 여자 하나 살고 있다네
안성 땅 이웃 두고 안성맞춤 같이 살고 싶어
밤이나 낮이나 가슴 저미던
포승 항구에 밥줄 걸고
행담도 넘나들던 돛배 같은 사람
까짓거 질끈 눈 감고 내 자리에 닻이나 놓으시지
꺽다리 코스모스 바람에 흔들리듯
이 풍진세상에 흔들리다 흔들리다
쓸쓸한 날에는 소주 한잔에
유행가 한 자락 불러도 밉지 않을 여자길래
이제 평택 땅 깡촌 여자야
아름다워지기 위한 변신은 무죄
제발 서해대교 가로등처럼 멋지게 살아 다오
—「평택 여자」 전문
평택 여자는 시인이 꿈꾸는 건강한 사랑이다. 시인은 ‘평택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또 내숭떠는 ‘낱말놀이’를 한다. “안중에도 없던 안중 땅” “안성 땅 이웃 두고 안성맞춤” “포 승 항구에 밥줄”에서처럼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농담을 주고 받으며, 이 여인은 안성맞춤처럼 귀한 여인임을 단박에 눈치 채고, 포승 항구에 밥줄 걸 듯 여인의 마음을 꽁꽁 묶어 둠을 행간에 숨기며 다가가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 바람에 “꺽다리 코스모스 바람에 흔들리”겠지만 “서해대교 가로등 처럼” 훤칠하고 건강하게, 시인과 함께 살아 보자고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인의 삶도 언제나 녹록치 않다.
시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남자
시를 벗으면 얼어 죽을 남자
시 때문에 잠 깨는 남자
그래서 시로 밥 바꿔 먹고픈 남자
- 중략 -
맨날 시 쓴답시고 아내의 속은
날계란 터지듯 터져도
돈은 시를 알아도
시는 돈을 몰라 다행이라며
오늘도 빈 지갑에 시를 구겨 넣는 남자
—「나는 나쁜 남자」 부분
그런 건강한 평택 여자도 ‘나쁜 남자’를 만나 운명이 되어 버린 시인의 아내가 되고 말았다. 시인이랍시고 시를 쓰지만 ‘원고료’ 한 푼 받아 온 적 없는 이름은 있으나 아내만 알아주 는 시인. “돈은 시를 알아도 / 시는 돈을 몰라 다행이라며 / 오늘도 빈 지갑에 시를 구겨 넣는 남자” 는 결국 ‘나쁜 남편’ 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최삼용의 시는 현학적이지 않고, 평범한 사유로 보이지만 소시민의 애환을 외면하지 않고 경험하는 현재를 다양한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다. 아래의 시편을 보자.
심장에 남항南港 물색 닮은 푸른 멍울 안고
썩은 속 짠물에 헹구며
오가던 배가 일으켜 세운 물결같이
이리저리 부대끼어 부서져 봐도
그놈의 바다는 항상 수평선을 업고 먼 산만 본다
천하의 한량인 이모부
풍문에 들리길 여자보다 노름을 더 좋아한다 했는데
아뿔싸 길 건너 룸살롱 작부와 눈 맞았단다
이모의 어깨가 들썩대다
파도처럼 어물전에 뒤집어져도
자기 삶은 차마 뒤엎지 못해
손님 빠진 파장인데 전 못접고 파리만 쫓고 있다
청춘을 비린내 찌든 자갈치시장에서
물 간 고등어 내장 벅벅 긁어냈고
제 속인 양 소금에 밑간하다 화딱지 나면
바다로 헤엄쳐 나가고 싶었겠지만
딸린 부표가 있어 아직도 저렇게 지린 좌판대를
떠날 줄 모르신다, 옥이 엄마, 우리 이모!
—「옥이 엄마, 우리 막내 이모」 전문
시적 화자에게 ‘옥이 엄마’이기도 한 이모는 그 가난한 ‘개발도상국’ 시절, 학교 가방보다 먼저 ‘꽃 같은 청춘’을 “비린 내 찌든 자갈치시장에서” “물 간 고등어 내장 벅벅 긁어”내 면서 가난을 버티어 이겨냈다. 하지만 “한량인 이모부”를 만 나 ‘고등어 내장’ 긁어내던 그 시절의 심정을 다시 한 번 맛보게 되는 소시민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파도처럼 어물전에 뒤집어져도 / 자기 삶은 차마 뒤엎지 못해 / 손님 빠진 파 장인데 전 못접고 파리만 쫓고 있”는 그 시절 ‘이모’의 억척 스런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등어 내장’을 파내 고 ‘소금’으로 밑간하며, 때로는 ‘좌판대’ 들어 엎어 버리고 싶은 삶을 “딸린 부표”를 생각하며 견디고 지키는 ‘옥이 엄마’는 지나간 우리 시대의 쓸쓸한 이웃들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바닷가를 삶의 터전으로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현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어 이겨내며 마침내 ‘꽃’으로 피어나는 시 「석화」처럼 강인한 생명력의 승리를 그려내고 있어 오래 독자의 시심을 붙잡는다.
향기를 위하여 커피가 있고
휴식을 위하여 쉼터가 있어야 한다면 오세요
분위기는 좋지만 그대들 사이만큼 좋지 않고
커피는 뜨겁지만
그대들 사랑만큼 뜨겁지는 않을게요
파스텔 톤이지만 차가운 파랑과 정열의 빨강이
대비색이지만 묘하게 어울리고
세월이 눌러앉은 먼지 낀 음악 앞에서
갯바람 버무린 빵과 진한 커피가 익고 있어요
그러나 커피 향이 빵 냄새보다
좋고 입구를 지키는 꽃향기보다 갯내가 좋다면
샹들리에 불빛이 당돌하게 투신하는 여기
오선지에 올리지 못한 파도의 음표 몇 개쯤 걷어
1분 동안 33과 3분의 1회전 하는 턴테이블에 얹어 두고
음악보다 더 음악 같은 해조음에 귀를 열게요
아! 분위기에 취하는 이 심미적 황홀!
—「카페 아데초이(Salon de the A'de Choi)」 전문
최삼용 시인은 낭만파 시인이다. 아직도 우리 곁엔 “시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남자”라고 당당히 지껄이는 미친(?) 시인이 있는 것이 동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이 시집에서 보기 드문 편안한 시 한 편을 얹으며 최삼용 시인의 시의 지층 탐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원두커피가 생각나면 ‘아데초이’로 가자. 그곳엔 우리들의 젊은 시절 ‘뜨거 운 사랑’이 넘쳐나고 “차가운 파랑과 정열의 빨강” 배경이 너 무 잘 어울리는 바다가 있다. 오래된 레코드가 들려주는 지지직거리는 낭만의 옛 노래들이 있고, “음악보다 더 음악 같은 해조음”이 있는 ‘그곳’에는 낭만을 즐기는 시인들이 우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한 시인의 시의 골짜기를 더듬으며 생의 지층에 퇴적된 흔적을 거칠게 돌아보았다. 켜켜이 쌓여 굳어지는 시간 동안 시인이 방황한 흔적은 오롯이 시로 남았다. 최삼용 시인의 시편들은 결코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다. 일상의 주변에서 건져낸 소시민의 아픔을 간과하지 않고 함께 아파 하면서도 때로는 경쾌하게 새로운 각도의 서정으로 풀어내는 미덕이 있다. 그저 자연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물가의 사물’들을 불러와 ‘꽃’을 피우고 향기를 맡으며 생명의 화음으로 더욱 선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길고 지난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이처럼 아름다운 첫 시집을 선보이는 시인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시를 향한 변함없는 ‘미친 걸음’으로, 더 깊고 풍요로운 시적 풍경을 우리 시단에 선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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