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12.화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1580-1623) 기념일
티토2,1-8.11-14 루카17,7-10
참 아름다운 주님의 종의 삶
“겸손, 순종, 섬김”
“주님만 바라고 선을 하라,
네 땅에 살면서 태평을 누리리라.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시편37,3-4)
오늘 종의 처지 비유가 짧지만 참 심오합니다.
참 아름다운 종의 삶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겸손히 섬기는 종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복음 내용이 소중해 전문을 다시 인용해 나눕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대로 다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바로 이 종처럼 사는 이가 참 아름다운 성인의 삶입니다.
묵묵히 자기 책무를 마땅히 다하는 순종과 겸손, 섬김의 자세입니다.
이런 복음의 종과 같은 이들이 의인들이며 오늘 화답송 후렴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시편37,39ㄱ)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아니라 종과 주인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해서 하느님께 보상을 계산하거나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도 이런 심정의 발로입니다.
“실상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게 자랑거리는 못됩니다.
그것은 내게 부과되는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불행합니다.”
감히 말하건데 매일 강론을 쓰는 제 심정도 이러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기에 전혀 자랑할 일이 못됩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무한히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갚는다 해도 극히 미미한 일부분일 것입니다.
사실 겸손히 주님을 섬기는 영적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오래전 "들꽃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란 시가 생각납니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기쁨이요 축복이다
물주지 않아도 거름주지 않아도 약치지 않아도
가난한 땅에서들 무리 이루어 잘도 자란다
작고 수수하나 한결같이 맑고 곱다
탈속의 아름다움이다
최소한의 자리, 양분, 소비의 가난이지만
하늘 바람에 유유히 휘날리는 샛노란 별무리 고들빼기꽃들
참 자유롭고 행복하다
가난한 부자다
들꽃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2001.5.20.>
그러니 이런 하느님 은혜를 생각한다면 불평이나 불만은, 원망이나 절망, 실망은
꿈에도 상상치 못할 것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책임을, 운명을 온마음, 온사랑으로 묵묵히 끝까지 감당할 것입니다.
저절로 겸손히 순종하고 섬기는 자세로 살 수 뿐이 없을 것이고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종다운 자세입니다.
바로 이런 심정을 대변하는 미사중 ‘연중 평일 감사송 4’입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우리가 아쉬워서, 필요해서,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이지 하느님은 전혀 우리에게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진인사대천명입니다.
정말 이런 겸손한 섬김과 순종의 삶에 항구할 때 하느님께서도 감동하시어 겸손히 우리를 섬기시고
순종하십니다.
옛 어른의 다음 말씀도 오늘 복음의 지혜와 일치합니다.
“초연함이란 욕망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다산>
주인과 종의 자세를 확고히 함이 바로 초연함의 비결이자,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아름다운 삶의 비결임을
깨닫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이를 일러 수신(修身)이라 하니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대학>
마음을 바르게 하는 수신이란 바로 주인과 종의 관계로 우리의 신원을 분명히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주인이신 하느님의 종으로서, 그 관계에 투철한 겸손과 순종, 섬김의 삶을 사는 이가
참 아름다운 성인입니다.
오늘 11월12일은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그 책무를 다하다 순교한 성인입니다.
성인은 1580년 우크라이나의 동방교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가톨릭 교육을 받았고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성인은 1618년 러시아의 비텝스코 주교로 착좌한 후 희랍정교회와 로마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다가 라틴화되어 가고 있다고 비난하는 아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말그대로 순교의 죽음이요, 1867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니
동방교회에서는 최초로 성인품에 오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묵묵히 섬김과 순종의 삶을 살다가 순교한 겸손한 성 요사팟 주교입니다.
하느님의 종답게 겸손히 섬기고 순종하며 성인다운 삶을 살 때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제1독서 티토의 고백 그대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 하시는 일입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줍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줍니다.”(티토2,13).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