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목회를 하면 할수록 배워 가는 것 같습니다. 담임이 되어서는 더욱더 실감하고요. 제가 말하는 것을 제 자신이 지켜야 하니... 더욱 말의 무게를 느끼기도 합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것도 작은 말에서 시작합니다.
잘한 말과 잘 못 한 말 다 부메랑이 되어 나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말은 인생을 살면서 더욱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깨어진 공동체의 특징은 지도자와 리더들 언어의 온도가 차갑습니다.
건강한 공동체의 특징은 지도자와 리더들 언어의 온도가 따듯합니다.
특히, 목회자는 말로 메시지를 전하는데요
그런데 강단 위에서 성도를 치는 칼로 둔갑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치는 말에 목회자의 신념이, 믿음, 철학이 들어 있지만, 같이 예배하는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차갑고, 사랑 없는 율법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런 표적 설교를 들으면, 성도들은 공동체에 있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말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고, 더 나아가 우울과 절망에 빠진 영혼을 구출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말로 축복을 누리기도 합니다.
고려 때 거란 소손녕은 고려에 침입하였습니다. 그 침략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첫째는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거란 자기네의 소유인데, 고려가 침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 둘째로는 고려는 거란 자기 나라와 접경하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건너 송(宋)을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고려 서희는 말로 강동 6주를 말로 되찾아 왔습니다.
1) 첫째, 고려는 고구려를 옛 터전으로 하였으므로 고려라 이름을 짓고 평양에 도읍했다고 하였습니다.
2) 둘째 고려가 거란과 국교를 맺지 못한 것은 압록강 안팎에 완악하고 간사한 짓을 하는 여진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들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는다면 거란과 국교를 맺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하며,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을 내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고려는 강동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996년에는 여진을 복속시키고, 동시에 강동 6주를 확보하였습니다.
오늘 나는 말로 어떤 축복을 누리면 좋을까요?
#사무엘상 25장 23~35절, #김영한,#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P.S.: 본문 내용과 더 많은 묵상 자료는 아래 참고:
https://blog.naver.com/menofgod09302/223325998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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