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년∼1804년)
도덕적 관념론의 창시자 칸트에 있어서 보편적이며 합리적인 이해를 위해서 그의 사상을 분야별로 조목조목 들여다보면서 비교적 꼼꼼하게 다루어 보는 계기(契機)가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년∼1804년)는 데카르트로(René Descartes, 1596년∼1650년)부터 이어지는 합리주의(合理主義)와 존 로크(John Locke, 1632년∼1704년)로부터 이어지는 경험주의(經驗主義)를 종합하였으며,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년∼1778년)의 계몽주의(啓蒙主義)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인식론(認識論), 형이상학(形而上學), 윤리학(倫理學), 미학(美學, Aesthetics)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서양철학의 전 분야에 걸쳐서 커다란 족적(足跡)을 남긴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칸트의 철학을 일반인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언어의 사변적(思辨的) 혼용(混用)으로 인해 그 표현에 있어 모호하고 언어적으로 명료(明瞭), 명징(明徵)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어리석은 본인의 깜냥으로 볼 때 당장에 칸트가 주장하는 바를 명확(明確)히 하면서 무난(無難)하게 이해하고 증득(證得)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난맥(亂脈)들을 시간을 두고 헤아려서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는 심정으로, 차분한 마음으로 시간을 두고 사유(思惟)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여러 가지 자료를 두루 살펴보고, 검색과 검증을 통하여 비교분석(比較分析)하여 발견되어지는 보편적(普遍的)이고, 합리적(合理的) 심안(心眼)으로 명제(命題)가 올바르게 이해되어 질 수 있도록 추론(推論)을 도출(導出)하여 결과적으로 칸트가 추구하는 의중(意中)이 논리적으로 합당하고 적절한 언어로 쉽게 반영(反映)되도록 표현(表現)에 있어 신중(愼重)함에 심혈(心血)을 기울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칸트는 근세이후 철학사상에서 보이는 보다 높은 차원의 도덕적이고 선험적(先驗的)인 관념론(觀念論)을 제시함으로써 감히 석가모니 부처님과 더불어 서양철학에 있어서 사람이 존엄(尊嚴)해지는 올바른 길을 성정(性情)과 이성이 기초하는 실천력과 판단력에 근거하여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따라 행해야 함을 양심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 - 칸트 (우리문화연구 김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