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곳은 아니지만 산자락 골 진 곳에 집을 짓고 산지가 꽤 오래구나. (얼쑤!) 처음엔 대가족이었지만 지금은 혼자 사는 신세가 됐다. (지화자 좋다!) 본인이 꺼벙해서 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세상이 그렇게 물레방아 돌고 있고 그것을 멈출 수 없으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 개를 키웠다. 큰 개를 키우다가 작은 개로 바꾸면서. 그래서 사람인 나와 짐승이 가축화된 개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 짐승은 사람처럼 순화되고(내가 먹는 꼭 같은 밥도 먹고 좋아해주면 저가 사람인 줄 착각하고) 사람은 어쩔 땐 짐승만도 못한 일을 저지르면서. (짐승도 내게 벌벌 떨 때가 많다.)
여러 해를 살면서 이 개 저 개를 거쳤는데 모두 좋았다. 그래서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은 오케이 하지만 욕하는 말로서 '개 같은 놈'이란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개 같은 놈'은 칭찬하는 말이 돼야 된다. 개는 훌륭하다 이런 말이다. 나도 살다보면 남들에게 개만도 못한 놈이란 소리를 들을 때가 있지만 여러분도 한두 번 있을 것이다. 개 같은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야.
처음엔 똥개 비슷한 녀석을 키웠다. 그런데 똥개가 아니더라. 똑똑했다. 사실 요즘 똥개는 잘 없다. 말 그대로 똥 먹는 개가 어디 있겠니? 세상에 똥통이 다 사라졌으니까. 온통 수세식으로 변해서 똥은 태어나자마자 그 형태를 잃고 물에 섞여 멀고 먼 여행길에 오른다. 똥의 그 완벽한 나선형을 본지도 꽤 오래됐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그 놈의 광수생각이니 하는 만화가는 맨 나선형 똥만 그리고 있다. 똥이 나선형으로 내려오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도 관계가 있고 왼, 오른 손잽이를 통틀어서 소라 조개 모양 방향의 나선형이다.) 여행길의 최종목적은 바다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바다는 우리 인간들의 정화조이죠. 이러니 개가 좋아하는 온전한 모양과 냄새를 가진 똥을 구하기란 대단히 어렵게 됐습니다요. 그래서 똥을 먹는 개는 없어졌다. 자연히 똥개란 말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한편 똥개의 의미가 이것저것이 섞여있는 잡종이라는 것과 연결되고 했는데 그래서 좋지 않은 것처럼 됐었는데 이도 그렇지 않다. 잡종강세의 시대인 것이다. 하이브리드라고라! 요즘 모든 개들의 경우는 거의 순종의 곁가지들로 섞이고 섞이는 것이니까 순종 계열보다는 잡종끼리 섞인 것이 더 똑똑한 경우가 많다. 이건 사람들 따라하는 것이다. 담박에 우린 골프의 황제 '우즈'를 떠올리는 것이다. 우즈의 그 똥개성! 그것이 우즈를 지고의 스포츠맨으로 만들었다. 사람도 이런데 개를 순종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순종 운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그게 애완견업자들에게 돈이 되거든.
어쨌거나 처음엔 집터에 어울린 만한 큰개를 들여 났다. 진돗개 종자에서 약간 갈린 것으로 좀 큰 약간의 똥개 종류였었다. 이 녀석은 내가 기른 제 일호 개였었는데 녀석과 추억이 많다. 녀석의 충성심. 오리와 함께 한 집에서 키웠던 어린 시절. 그 오리를 좋아한다는 한 것이 거의 죽게 한 사건. 태풍이 올 때의 가출사건. 너구리를 잡아 한껏 폼 잡으면서 꼬리를 흔들고 서 있는 장면. 산에 올라가면 진달래 꽃술을 사람처럼 물고 다니는 모습! 생각해 보면 아름다웠다.
그러나 진(개의 이름)은 온전히 나랑 같이 수를 다하지 못했다. 동네의 압력 때문이었다. 큰개는 아무리 잘 간수하더라도 가끔 풀릴 수밖에 없다. 담이 완벽하게 쳐진 집에서는 풀려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은 담이라고 할 수 없는 담이다. 풀리면 녀석의 야성이 되살아났다. 풀린 진은 동네 사방천지를 쏘다녔다. 동네의 개가 있는 집은 모두 일차 방문한다. 개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카리스마를 행사했다. 수틀리면 마구 물었다. 동네 사람들의 항의가 있었다. 그러곤 동네 위쪽의 양계장을 갔다. 거기서 닭 한 마리를 잡아오는 것이다. 입가에 피를 묻혀서....... 녀석은 짐승이었지만 거의 가축화가 됐는데 아직은 짐승의 본능이 조금 남았다고 봐야했다.
내가 간혹 짐승 비스므리하게 돼서 녀석을 팰 때는 녀석은 충성을 하면서도 웅크리며 날 원망하는 눈빛이 있었고 어떨 땐 짐승의 스산한 눈빛을 보여 섬뜩할 때도 있었다. 왜 내가 팼겠니? 사람과 사람의 문제로 성질나서! 그래서 개를 패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개를 키우는 한 이유가 되겠는데 많은 사람들도 동의할 것이다.(함부로 했다가는 법에 걸린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개를 패야한다. 내가 사는 곳은 한적한 곳이다. 뭣이든 마음대로 팬다.) 그런데 내가 개를 패다가 나 스스로를 보면 진짜 이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완전히 짐승의 모습이었다는 얘기다. 이리저리로 발길질에다가 손으로 주먹질이며 어떨 땐 머리 박치기 할 때도 있었다. 정신이 들면 화들짝 놀래기도 했었다. "윽, 내가 왜 이러지!" 연쇄살인마의 시초는 애완동물을 구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혹, 내가 그렇게.......
이러던 중 동네 방송이 있었다. "요즘 큰 개가 한 마리 돌아다녀 여러 가지로 동네가 위협을 받고 있는데 한 번 더 개가 발견되면 즉시 발포하겠습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개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성질 팍팍 났다. 뭔 동네를 괴롭힌다고! 동네 인간들에게 증오를 날리고 싶었다. 나약한 인간들! 그러나 참았다. 동네를 더 시끄럽게 하기 전에 진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멀리 보낸 것이다. 가슴 아팠다. 무슨 총으로 발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총에 맞아 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24시간 개를 감시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개 한 마리 돌아다닌다고. 옛날엔 호랑이도 마구 돌아다녔었는데.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것은 게으름과 연관되는 일인데 큰 개는 똥도 크고 밥도 많이 먹고 개 줄도 커야한다. 당연히 똥치우은 일도 힘들고 사료도 진창 먹어댄다. 내가 일일이 하지는 않는다 해도 어느 정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또또 다른 이유로는 나의 잔혹성을 해소하는 스파링 파트너로 적당한 덩치를 없애는 것일 수도 있다. 녀석이 없어진다면 내 폭력성의 내면이 좀 수그러들지 않을 까 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숱한 추억 속으로 진은 사라졌다.
이윽고 받아들여 키운 것은 조그만 개였다. 이 녀석도 약간 잡종이었다. 조그만 녀석인데도 깡은 매우 좋았다. 이 집과 관계되지 않은 '자'에게는 무조건 발포했다. 그러니까 아래채에 사는 사람이 자신이 먹이를 매일 주었는데도 한동안 그 사람에게까지 짖었다는 얘긴데 내 개였지만 이렇게 까지 멍청한 것인지 주인에게 충성인 것인지 믿을 수 없다. 아침저녁으로 잠깐 보는 나보다도 훨씬 자주 보는 옆집 사람도 예외 없이 보기만 보면 마구 짖었다. 근데 짖는 것이 귀엽고 예뻤다. 웃기는 개다. 귀엽지만 오고 가면서 잽을 툭툭 한방씩 갈겨줬다. 작으니까 진처럼 마구 팰 수는 없는 것이고.
이 쪼그만 녀석의 이름은 똑똑이로 지어줬다. 내가 멍청하니까 개라도 똑똑하라고 지워줬는데 과연 내내 똑똑했다. 똑똑이의 짐승다운 야성은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을 보면 짖기는 짖어도 절대로 이를 드러내 으르렁 거리는 표정은 찾을 수 없다. 녀석이 야성이 있다면 새끼를 5-6마리를 한꺼번에 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도 여럿을 한꺼번에 놓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래서 사람보고 야성적이다 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새끼를 놓을 때 마다 여럿을 낳는 것에 좀 당황스러웠다. 새끼를 줄 곳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끼는 결국 모두 소화됐다. 물론 전에도 밝혔지만 연쇄살견마가 나타나 연속으로 두 마리의 새끼를 죽이고 또 한 마리는 불구로 만들었다가 녀석이 결국 빨리 죽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 연쇄살견마의 잔혹함이란!
어쨌거나 우리 조그만 똑똑이는 자신 있게 하루하루를 살아갔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늦은 퇴근길에 녀석이 피투성이로 나둥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열심히 살펴봤다. 이건 말이 아니었다. 목젖에서부터 녀석의 성기가 있는 부위 근처까지 살가죽이 완전히 날로 벗겨져 버렸다. 아주 예리한 칼로 도려낸 것이 아주 능숙한 도살자의 솜씨였다.
그것은 놀랍게도 바로 옆집 개의 솜씨였다. 똑똑이는 작았고 녀석은 매우 컸다. 녀석이 풀려서 똑똑이에게 와 한 방으로 물었을 때 똑똑이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몸을 방어했다. 그 결과는 어리석게도 살가죽이 완전히 날로 찢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나는 광분했다. 짐승의 성질이 끓어올랐다. 옆 집개를 골프채로 원샷했다. 녀석은 즉사했다. 너무 기뻤다. 연쇄살견마!(무섭지? 앞으로 내 앞에선 조심해야쥐!)
말하자면 개를 키우는 일들은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 일인 것으로 판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 듯했다. 이상하게 개가 있으면 내 폭력성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내 주위의 개들은 항상 불행해졌다. 아마도 얼마가 지나면 똑똑이도 죽을 것이다. 숱한 개의 피를 봤다.
곰곰 생각해 봤다.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이 떠오른다.(이 자는 독일학자다. 1983년 <냉소적 이성비판>이라는 954쪽 짜리 책을 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인간문화, 곧 모든 휴머니즘 문화는 동물로서 인간을 길들이기 위한 '사육'이지 않을까? 이것은 인간이 동물로서 살기에 실패했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인류는 늑대를 개로 만들었고 인간 자체를 인간에게 최선의 가축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자가 보편화되면서 인간의 사육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문학, 예술, 철학, 종교, 윤리 등등이 모두 인간의 사육화를 위한 방편이었다. "올바른 독서는 길 들인다"라는 말이 사육화의 핵심이었다. 이것이 서구 휴머니즘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사육화는 완전히 실패했다. 인간은 언제나 살인, 대량살육의 전쟁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동물보다 더 잔혹하게 서로를 착취하고 등에 칼을 꽂았다. 책보다는 언제나 원형경기장의 싸움을 좋아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제 '피빛놀이로 가득 찬 오락산업'에 모두들 환호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문자가 더 이상 주된 가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 모두는 점차 야만화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슬로터다이크의 바로 그 표본이다. 아무리 책을 잃고 음악감상을 하면서 더욱이 '개석무나'를 하면서 나를 인간화 시켜도 내 본성은 결국 야만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몇 마리의 개를 연속으로 죽게 만드는 거를 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보름날이 다가온다. 피냄새가 난다. 우우우!
첫댓글 피 냄새-우우우 우는 소리, 늑대~ 시라소니
픽션인가요 ? 하도 많이 속아싸서 ,,,,, 인간의 속성을 예리하게 개똥 철학과 접목시키는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농부가 되 볼꺼라고 다녔던 학교 텃밭에서는 자연 순환 유기농 농법으로 개똥이든 누구똥이든 상관없이 없어서..참 많이 귀하게 여기고 있고요 지금도 또 그렇게 모우고 모우는 중이랍니다... 결국 그것이 상치로 고추로 감자로..내입에 넣고 먹고 있답니다. 그 나선형을~~~
시대가 어느 땐데 이른 답글이 ? 에~그 더러버라 ~
개똥,사람똥,야성,원샷(술생각난다),개석무나,피냄새 얼반 죽이네......
우리집 말숙이, 그리도 흔들어 대는 꼬리에 말로 할 수 없는 신의가 있다고 하면 웃으실래나. 전 알지요. 개만큼만 올되게 살 수 있다면 , 그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특히, 말 못하는 미물이 아프면 제 마음도 찢어집니다.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