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 3걸
사이고 다카모리(1827~1877)
호 난슈[南洲], 兒名 기치노스케[吉之助]가고시마현[鹿兒島縣] 하급 士族 집안 출생, 성장하면 정치적 수완 발휘 明治維新 가장 중심인물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시대 종결, 천황 중심 王政復古 성공. 절대적 역할.
메이지 신정부 요직 참여, 征韓論 주창/정부 불수용/관직에서 물러나 귀향. 그 후 사립학교 경영/ 후진 양성. 그러나 중앙정부와의 대립이 격화되어 1877년 세이난[西南]전쟁을 일으켰으나 패하여 자결. 사후 官爵 복권
*오쿠보 도시미치(1830~1878)
사쓰마번[薩摩藩] 무사 출신. 藩主 나리아키라[齊彬] 밑에서 사이고 등과 뜻을 같이하며 개혁파 도막(倒幕:막부 타도)운동 중심인물
1866년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와 제휴, 무력으로 幕府정권 타도 새 유신정권 수립, 參議-판적봉환(版籍奉還)·廢藩置縣 등 과감한 제도개혁 단행. 征韓論派인 사이고 일파가 하야한 뒤는 유신정부 중심인물 地祖제도 개혁·殖産振興策 등 추진, 부국강병 기틀마련.
이것이 '오쿠보 정권'으로 불린 일본 최초 절대주의 통일 정권체제. 세이난전쟁 진압 후인 1878년 도쿄 기오이자카[紀尾伊坂]에서 시마다 이치로[島田一郞] 일당에게 암살.
*키도 다카요시(1833~1877)
본명 가쓰라 고고로[桂小五郞]. 호 쇼키쿠[松菊]. 조슈번[長州藩:지금의 야마구치현] 출생.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문하생, 1862년 영주에게 쇄국정책을 진언하였다가, 곧 개국·도막(倒幕:에도막부를 쓰러뜨림) 정책으로 전환, 동지규합 도막운동 추진. 메이지 신정부가 수립되자 정책강령 發布, 제도개혁, 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법전 편찬, 東京에의 遷都 등 신정부의 巨頭로서 정책결정에 강한 영향력 행사.
1871년 서양 여러 나라를 순방, 內治 긴급성 통감 征韓論에 반대, 입헌정체 필요성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