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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줄에...총(?)을 든 병사들의 복장이 젤 주목됍니다.
터키에서 유래했으나...현재는 이집트에서 더 유행하는 모자인 따르부쉬를 조선 총포병들이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발도 몽골이나 아랍&이집트& 터키식...즉,중앙아나 서아시아식이지...근세 동국 조선식이 아님이 주목됍니다.
백제왕이 전쟁때 말 위에서 신었다 해석돼고 있는... 철못이 달린 금동제 스파이크와도 형태가 비슷합니다.
그러기에 ...고종과 브라운양의 결혼식 오보(?) 기사 그림에도...
그래,당연히 몽골&터키식 군사모자와 관리모자가 그대로 묘사됀 겁니다.
따르부쉬 : 원통형의 모자로 터키에서 유래된 의상이다. 보통 검은 술이 달린 빨간색 모자이다.
역시 챙이 없고, 이집트에서는 흔히 관리나 화이트-칼라 층이 사용한다.
그러나 이 관습은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중동에서 차츰 사라졌고,
그 이후 이 모자를 쓰는 사람은 가난한 구식의 사람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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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의 맨 가장자리 창이 안 달린 봉(작대기)를 든 고깔 쓴 병사들은...나장(羅長)들의 뒤를 따르니...나졸(羅卒)들이겠고...
나졸은 현대의 무술경찰...나장은 그 지휘관 이 되는 격입니다.
저자거리에 꽉찬 구경꾼 민간인들을 통재하는 역할이니...치명적 무기를 들지 않고...방망이만 든 현대의 전경들과 흡사한 역할입니다.
이들은 몽골식 부츠나 터키식 가죽신발을 않신은 것으로보아...신분이 상대적으로 낮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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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의 4째줄...붉은 도포에 초립을 쓴 병사들...
이들이 우리가 흔하게 알던 동국조선 하층계급의 모자를 썼군여...
봉에 사슬 같은게 달린듯 보이니...철퇴인듯 싶습니다.
대열의 안쪽으로 갈수록...가마 주인과 각별한 신분들였을 것이고...상대적으로 직급도 높았으라라 보이는데...
이들도 가죽부츠가 없이 짚신을 신었습니다...?
역시, 우리가 흔히 알던 동국조선식 복장의 전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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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의 젤 안쪽...
별감(別監)들의 뒤를 따르는 무예별감들...
우리가 알던 동국조선 선비들의 전형적 복색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우리가 풍속화에서 보던 그 선비갓과 좀 다릅니다...상투만 갸오 끼울수 있는 좁고 긴 모자 모냥이 다릅니다.
마치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강호의 거시기들 쓰는 갓...
상투부분이 선비조선 갓에 비해 턱없이 짧긴하나...왜노들이나 중원남방족들식 삿갓을 연상시킵니다.
별감은 말 그대로...특별 감시원...즉,격호관이란 말이 돼는 것이고...
무예별감은...무술경호원들이란 얘기가 됍니다.
재미있는건...
동국조선식 선비들인 무예별감(武藝別監)들여...무기가 않 보입니다...?
아마도 가마주인에게서 젤 가까운 위치의 포진들이기에...역으로 그 중 내부의 변절자객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한 조치같습니다.
맨손무예에 달인들이고...비상신 무기없이도 몸으로 자객이나 대열내에 위장잔입(변절)한 병사들을 육탄으로 막는 역할인듯 합니다.
더 재미있는건...
모든 무사들 중...가장 안쪽의 중요한 자리에 포진됀 직책임에 무기도 없음과 함께...
모든 병사들 중...유일한게 그 직급을 표기해 준 걸로 보아...병사들 중 가장 직급이 높거나...아예 장교급들인데...
정작 총포병들이 신은 짧은 가죽단화도 신질 못하고...짚신을 신은 겁니다.
전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기동력...즉,민첩성을 요하기에 짚신이다.
실제...짚신과 몽골이나 우리 고관들식 가죽부츠를 신고 달리기를 하면...아마 짚신이 단연 앞설 것이라 예상합니다.
왜노들 검도의 시원자란 미아모토무사시란 자를 소재로한 왜노들 소설에도 보면...
사무라이애들 진검승부때는...기동력이 생명이라... 반듯이 물에 적신 짚신을 착용하는 이유와 동일해 보입니다.
그나 저나...임난때의 전투기록화에 나오는 왜병들...조선통신사 따르던 그 기저귀도 않 찾던 왜노 사무라이애들은...
게다짝신고...제대로 싸움질이나 했을지 의심스럽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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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다시,말탄 나장(羅長)들여...
화살통과 활을 착용한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가 아는 청조나 동국조선장수들 식이긴 한데...
아무리 봐도...그 투구형식은...몽골&청조 관리들 모자와 가장 닮았습니다...?
정작...현대의 몽골인들이 징기스칸 대에도 썼다 주장하는 가장 몽골군적인 투구는...
오히려 우리 동국조선식이라 알고있던 투구와 한치의 차도 없고...
저런 투구모습은 흔치않은것도 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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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만 권의 해석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수도 있는 사서들보단...직접 표현한 그림이 역사진실 규명에 소중하다 보이며...
개 중...특히나 그 나라의 자주권을 상징하는 군사들의 복장은...그 나라나 민족의 정체성을 구별하는 중요 잣대라 생각합니다.
동국조선 의례도감으로만 보면...
조선중반 부턴...아마... 병자호란 이후부턴...조선엔 뭔 이윤지...각 대륙의 복장들이 대거 혼용됐던 겁니다.
그래, 날 잡아...기록화의 조선병사들과...타 민족 전통군복들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기대하여 주서여...
첫댓글 예리한 눈에는 무엇인가 보인다.
격려 감사합니다...최선생님.
전통복식 검색이 너무 힘들고 오래 걸려...오후에 마저 글 작성하겠습니다.
그림만으로도 대조선이 유라시아를 지배한 흔적이 보입니다.
역으로...유라시아 각 민족들이...대륙조선의 동부 동국조선으로 밀려났거나 자연 유입됀 정황으로 해석됄 수도 있다 하겠습니다.
위 그림 자료, 잘 보았습니다. 사람이 눈(目)을 가지고 있고, 실명(失明)한 상태가 아니라면, 누구나 비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학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강단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없습니까? 무엇이라고 해석하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고정관념을 갖고 보다보면...아주 상식적인 의문도..그저 잘 못 그렸겠지...아님, 그저 다양한 디자인 중 하나였겠지..로 넘길 수 있는게 보통사람들의 시각이니...제가 쫌 섬세하다 자위해 봅니다.
일반인의 시각이 중요한 게 아니고, 관련 학자들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티무르(帖木兒; Timur) 제국, 대명(大明) 제국, 조선(朝鮮) 제국이라는 세 황조(皇朝)의 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진영 선생님의 훌륭한 발견을 제가 폄하하려는 게 아닙니다. 강단 역사학자들은 세 황조(皇朝)의 초기 인물들에 관한 역사기록이 거의 일치한다는 내용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세계사(世界史) 연표(年表)를 작성하면 당연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김선생님이 좀 작성해 주실수 없으신가 제안합니다...제가 뭔 도표나 가계부 계산같은 걸...상노동보다 버거워하는 머리라서여...
세계사(世界史) 연표(年表)는 역사학자들이 작성한 것이 있습니다. 직접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역사연구를 생업(生業)으로 하는 전문가(프로)는 아닙니다.
그런데, <대륙사관>을 따르는 연구자는 "이성계=중앙아시아의 티무르"라는 과감한 주장을 하는데, <반도사관>을 따르는 대다수 강단 학자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합니다. 그만큼 <사관(史觀)>의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강단 학자들이 매우 멍청하여 그런 주장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사관(史觀)>을 마치 종교(宗敎)처럼 숭배(崇拜)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저 또한 예전처럼 <대륙사관>을 알고 있지 않았을 때와 비슷합니다. 지금은 관련 정보가 축적되어, 저와 같은 아마추어도 요즘에 등장하는 <대륙사관>의 여러 학설(?)이나 주장들을 검토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우연의 일치가 너무 많거나 디테일 하다면...그건 필연이며...하나인 이유라 하겠습니다...사관이나 해석차이가 아니져...
"우연"의 일치가 너무 많다면 "필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티무르(帖木兒; Timur) 제국, 대명(大明) 제국, 조선(朝鮮) 제국이라는 세 황조(皇朝)의 비교에서는 그 확률이 극히 작다고 홍진영 선생님이 주장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 황조(皇朝)의 일치는 필연입니까? 우연입니까? 다시 정리하면, "필연"은 그 가능성과 확률이 큰 것이고, "우연"은 그 가능성과 확률이 작은 것입니다. 따라서, "필연"은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필연"을 다르게 표현하면 "십중팔구"(十中八九)입니다.
사관(史觀)이나 해석(解釋/解析)의 차이가 아니라는 주장은 홍진영 선생님의 개인적 생각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또한 그 주장은 결국 홍진영 선생님 나름대로의 특별한 사관(史觀)이나 해석(解釋/解析)이라고 봅니다. "필연"이 하나의 "이유"라고 한다면, 그것은 객관적 사실(Fact)과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부정(否定)할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떻습니까?
<사관(史觀)>은 '역사학'(歷史學)에서 "대전제"(大前提; major premise)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어느 누가 함부로 쉽게 바꾸거나 대체(代替)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객관적 "자료"와 정교한 "논리"로 역사를 연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가급적 <반도사관>과 <대륙사관>이라는 양쪽 입장에서 검토하려고 합니다. 지금의 단계에서는, 둘 다 나름대로 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중은 당연히 <대륙사관>에 두지만, 그렇다고 <반도사관>을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반도사관 대륙사관 서역조선사관...다 문제가 있다 하겠습니다...동이족의 역사강역은...한반도부터 이집트까지고...중세 동국조선부터 구한말까지만 해도...한반도 서부와 요동반도 북경 산동반도로 이어진 단일 문명권였단 정황들이 많았는데...이를 각자의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연구한 지역만 조선이라 우기는게 문제겠지여...
제가 언급한 <대륙사관>은, 편의상, <반도사관>을 제외한 모든 <사관(史觀)>을 가리킵니다. 홍진영 선생님은 "정황"이라는 단어를 늘 사용하시는데... 저도 무슨 취지인지는 알고 있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주장하시면 '한계'에 도달합니다. <반도사관>이든 <대륙사관>이든, 마치 종교(宗敎)처럼 숭배(崇拜)하기 마련인 <사관(史觀)>의 특성을 언급하였고,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제가 주장하였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어제 밤에 글을 마무리진다 하고선...졸음이 하도 쏟아진 연유로...정작,이재서야 겨우 글을 마쳤습이다...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해석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수도 있는 사서(史書)들보다, 직접 표현한 그림이 역사진실의 규명에 소중하다"고 홍진영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물론 "그림" 또한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그 중요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림"의 특성상 직접 비교에 용이하므로 그 '장점'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느 쪽이 더 소중하다고 할만큼, 서로 우위를 비교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상호 보완"되는 차원이라고 봅니다.
글에서 구어체식 표현과 맞춤법에 어긋난 경우가 많이 줄었네요. 진영님의 자유로운 영혼에 족쇄를 채우는 듯한 느낌에 안타깝기도 합니다만, 진영님의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이 가벼운 글로 치부하여 무심히 넘길 가능성이 줄어드는만큼 반가운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닫는 말에 채찍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두 가지만 더 말씀 드려 봅니다. 1. "안"으로 써야 할 곳에 "않"으로 쓴 경우가 많은데요. "대열의 않쪽으로" <-여기에 안쪽을 않쪽으로 쓴 건 단순오타로 보이지만, "않됨을..", "않보입니다.." 등은 모두 "안됨을..", "안보입니다"로 써야 맞습니다.
"..않다"는 '아니하다'의 줄임말이므로, '되지 않음을', '보이지 않습니다'처럼 뒤쪽에서 수식할 때 쓰이죠. 그러므로, "낮지 않았나.."의 경우는 옳게 쓰셨습니다.
2. "되"가 옳은데 "돼"로 쓰신 경우가 많네요. "돼"는 '되어'의 줄임말입니다. 그래서, '..하면 돼', '..하게 됐어', '..하게 되어'에서처럼 문장의 끝부분에 주로 쓰이게 되죠. "주목됍니다", "묘사됀 겁니다", "돼는 격입니다", "이란 말이 돼는", "예기가 됍니다" 등은 주목됩니다, 묘사된, 되는, 얘기다 됩니다 등이 맞습니다. 물론, "혼용됐던 겁니다."의 경우에는 옳은 표현을 사용하셨구요.
"~되"와 "~돼"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실수로.... 따라서, 저는 가급적 "~돼"를 "~되어"라고 풀어서 씁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돼"로 씁니다. "~되어"라고 고쳐서 말하면 이상하고 어색한 경우에 "~되"로 써야 합니다.
두 선생님의 조언 고맙습니다...참고는 하겠는데...잘 될라나 의문입니다...?
제가 모든 않과 안을 않으로 통일하고...모든 돼와 되를 돼"로 통일함엔...나름대로의 과학적 이유가 있답니다...학창시절에...모르는 사지선다형 문제를 자신의 선입관을 적용해 마구 찍다보면...묘하게 답만 피해가는 기적이 발생함은...여러분들도 다들 뼈저리게 체험하셨을 겁니다...그래서 전 욕심을 버리고...모르는 문제들은....알고 쓴 사지선다 번호중...젤 적게 썼던 번호를 선택해 한 번호로만 모두 찍어 버렸습니다.
저의 그런 냉정하고 과학적인 사지선다 방식의 주체성땜인지는 몰라도...저보다 등수가 한 40등 위의 애들보담도...막상, 가장 중요한 학력고사점수는 많이 나올 수 있었음을 제 자랑같지만 공개합니다.
더군다나...모두 "않"으로...모두 "돼"로 찍었을 경우엔...그 적중확률이 50%나 되는데...그 유혹을 뿌리치기 심히 난감하다 하겠습니다.
진영님이 가장 빛나는 (보석의)원석인가 봅니다. 이렇게 주위에서 요구사항이 많은 걸 보면요^^ 앞으로도 글에서 틀린 표현은 두 가지 이내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큰 부담이 되지 않도록요.
그런데, 의복, 악기, 음식, 춤, 노래, 무술과 같은 문화적인 자료들은 비교적 적은 편인 것 같더군요. 구석구석 살펴서 글 올려 주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서정호 선생님, 여러 코멘트 훌륭합니다. "원석"은 잘 가공되어야 비로소 '부가가치'가 생깁니다. "원석"만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현재의 한국어 사용들의 문제는...저같은 표기의 부적절성도 있으나...밝음의 천편일률리 더 문제같단 말씀도 곁들입니다...않"이라 표기하는 말은...반듯이 ㅎ"이 묵음으로 발음되고...돼"라 표기해야하는 단어는...반듯이 ㅣ"와 ㅓ"를 복음으로 섞어 발음해야 저같이 들리는 대로 바다쓰기하는 자들이 헤깔리지 않을 것이라 호소해 봅니다.
심지어 근자엔...남방식(왜족)의 발음습관이 일제때 부터 습관이 돼서 그런지...멍멍이도 개" 꽃게도 개"...심지언 계장님도 개장님...이라 발음하는 현상(유행?)들...심히 저의 바다쓰기를 더 난해하게 만듭니다...비교적 어린 한국인들 대부분이...시땅님(실장님)"의 최지우가 돼 갑니다.
글을 수정하려다 보니...않과 안...돼와 되의 문제 보담은...무참이 난발한 오타들이 더 심각하군여...수정했어도 역시,마찬가지겠지만여...
홍진영 선생님, 글 속에서 "오타"가 너무 많으면 읽으시는 분들의 눈에 자꾸 거슬립니다. 평소 의식적으로 노력하시면 상당 부분을 고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리송한 경우에는 "사전"(辭典)을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 원석은 다듬어야 보석이 된(됀?)다시는 격언 감사합니다...다이아몬드 원석이 스스로 제 몸땡이를 거울보며 컷팅질하진 못하고...옥 원석이 자진해서 그라인더와 사포(삐빠)에 제 몽땡이를 비비질 못하는 격이니...원석(언감생신...)을 가공하는 역할은...여러 선생님들 몫이라 빠져나가 봅니다...저도 앞이마만 반짝이지 않고...지식자체가 빤짝이는 자이고 싶습니다...다듬어 주세여...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다른 연구자들도 "원석"을 다듬는 역할을 하여야 그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역할을 분담하여, 홍진영 선생님은 "원석"만을 발견하시고, 나머지 연구자들은 그 "가공"만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잘 관리되는 '조직'이라면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겠습니다. 따라서 "가공"의 일정한 부분을 홍진영 선생님이 해결하셔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엇을 "주장"하는 것과 동시에 완벽하게 "증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다툼"이 생기므로 "증명"의 문제가 남습니다. 대원칙(大原則)은 주장한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물증)를 채택하여 증명하는 것이고, 반론(反論)을 제기하는 사람은 주장하는 사람에게 불리한 증거(물증)를 채택하여 그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장하는 사람이 '먼저' 유리하게 증명하여야 합니다. 만약 주장한 사람이 그렇게 못한다면, 그 주장에 동조(同調)하는 사람이 증명하면 됩니다. 동조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취지는, 주장하는 사람도 동조하는 사람도 모두 그 증명을 게을리,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서 대원칙(大原則)을 언급한 것입니다. 증명하는 것 또한 연구의 과정이고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현상은, 박수치고 공감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겁니다. 어떤 주장들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 연구자들이 그 주장들을 역사자료의 분석에 자주, 많이 인용(引用) 또는 원용(援用)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동조(同調)하는 사람, 자기편(自己便)을 많이 만들어 보세요. 그래서, 평소의 언행(言行)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글에서 오타를 줄이고 젊잖은(?) 문체로 쓰려는 진영님의 노력이 있는 걸로 보여서 몇 마디 보태 본 것입니다만,
솔직히 제 개인적으로는 (유머와 재기가 넘치는)예전의 발랄한 문장을 더 좋아하긴 합니다.
요약하자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든지 간에 여전히 진영님을 사랑한다는..~
애독자들이 "유머"와 "오타"를 구분하지 못할까요? "유머"가 넘치는 문장은 저도 좋습니다. 저도 "유머"와 "개그"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오타"를 줄이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홍진영 선생님에게는 그것을 고치실 '의지'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 이러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시라고 홍진영 선생님에게 조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