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이희국
섬으로 가는 다리가 놓이고
사람들은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어린 시절 그런 대교 같은 선생님은
나의 다리였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시던 부모님
나는 어둑할 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읽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던 날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
국어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집으로 데려가주셨다
외진 구석에 피어있던 꽃, 어루만지며
목말까지 태워 주신 사랑은
겨울에서 봄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창밖에는 그날처럼 눈이 내리고
꼬리를 문 차들이 어둠을 밝히며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다
바닷물 위에 길이 환하다.
새벽바다
이희국
유람선에서 내려다보는 밤바다
검은 물결 위에 오래전 감동이 반짝인다
공장에서 손이 절단된 아버지
반신마비 되어 누운 어머니
탁상행정을 넘어 가족을 돕다가 시말서 쓴 공무원
한겨울 맨발의 2남3여 이야기를 바람이 전해주었다
온갖 풍랑에 겹겹이 난 생채기를 안고
출렁이는 파도에 찢긴 채 떠다니는
작은 배 한 척
구명동의라도 사 입히고자 열여섯 살 장남에게 물었다
제일 힘든 게 뭐니?
힘든 것 하나도 없어요
아버지 일하다 다쳤고 어머니 밤낮으로 일하다 쓰러졌는데
제가 일할 차례가 되어 너무 기뻐요!
어설픈 동정의 뒤통수를 바람의 회초리가 철썩 쳤다
칠흑 같은 바다 좌표 없는 남루한 배 위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힘차게 노를 젓고 있던 소년
파도가 부스럭거리며 구겨지던 바다
저 멀리서
환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이희국 시인
1960년 서울 출생
시집『자작나무 풍경』『다리』『파랑새는 떠났다』
약사.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