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연구학교, 잘 운영되고 있나요?
고교학점제란?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운영 제도예요. 대학생처럼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시간표를 짤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한 취지로 시행되고 있어요. 현재 전국에 300여 개의 연구학교(특성화고 포함)가 시행 2-3년차를 맞고 있고, 올해 시도교육청이 새로 지정한 선도학교가 600여 군데 있어요. 교육부와 교육청의 노력에 비해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미약한 고교학점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성과가 있는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연구학교를 점검해 봤어요.
(2020년 1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신경민의원실·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주최 토론회)
국가는 고교학점제를 취지에 맞게 잘 안내하고 있을까
- 신동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책임연구원)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 별로 1개 학교를 임의로 선정해서 운영 현황을 살펴봤어요. 교육부나 교육청은 학생이 자신의 흥미, 적성에 따라 진로에 맞는 24개 과목을 ‘선택’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수강신청을 잘 할 수 있도록 안내서 등을 제작 보급해 안내하고 있어요. 희망 전공에 대한 선택과목도 추천하고 있고요.
선택과목이 우리 학교에 없으면?
학생들이 원하는 선택 과목이 모두 개설되어 있는 학교는 당연히 없어요. 자기 학교에 없는 과목은 지역간 학교끼리 과목을 연합하거나, 거점학교에 가서 듣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게 돼 있죠. 특히 교양과목 개설학교가 별로 없어요. 수능과 무관한 과목이니까요. 담당교사가 없는 문제도 큰 숙제예요. 고교학점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교원 확충이 필수적인데, 학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으니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과목을 선택했다면 최소한의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낙제생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에 대한 운영안도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아직 연구중이에요. 연구학교에서도 이수/미이수 문제는 기준을 세우기가 어려워 시도조차 못하고 있거든요.
학생들이 고1때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진로가 아닌 흥미에 따라 선택한다면 쉬운 과목만 선택할 수도 있고요. 학생이 주도적으로 학업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상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예요. 교원 수급 대책이 가장 시급한 문제!
연구학교는 완성형 모델이 아니다
- 김혜림(교육부 고교학사제도 혁신팀장)
현재 운영되고 있는 연구학교들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며 이들을 통해 고교학점제의 부족한 점이 발견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에는 일단 수긍이 돼요.(흠!) 연구학교에 문제점이 드러나면 개선해서 우수한 모델을 만드는 게 본래 역할이니까요.
교원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미흡하고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력도 천차만별이라 올해 대학원 과정을 통해 진로전담교사 200명을 양성해 1개 학교에 1명씩 배치하는 것을 추진한다고 해요. 이수/미이수 기준도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 해당교사가 개별 학생들에게 보충수업 여부와 성취 수준을 판단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어요.
이렇게 정리돼야 할 쟁점이 많은 고교학점제에 대한 종합추진계획이 연말까지 수립돼서 2025년까지 단계별로 시행될 예정이라니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을 듯 싶죠?
서울시 교사 210명에게 ‘교육과정 설계 전문가(CDA) 양성과정' 실시
- 이정재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교원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치구의 인근학교 3-4개가 정규 교육시간을 공동운영하는 ‘공유 캠퍼스’ 도입 계획을 소개했어요. 기존의 거점학교나 온라인 수업을 통한 교원 수급 해결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안이죠.
중3 학생들의 고교 입학 전 시기에 고교학점제에 대해 미리 고민할 수 있도록 워크북과 유튜브 영상을 보급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답니다.
특히 올해 기존 교사들에게 CDA연수(Curriculum Design Advisor)를 실시해 교육과정 설계 전문가 역할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음을 강조했어요.
(서울시교육감의 포부는 “한 학교당 진로상담교사 10명은 있어야 한다!”)
연구학교의 ‘Before & After'를 비교해보자
- 김진숙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고교학점제지원센터 연구위원)
김진숙 연구위원은 연구학교의 모습은 이미 설정된 것이 아니며, 해당 학교에서 학점제 시행 전과 후를 비교하여 변화에 대한 노력을 평가하자고 당부했어요. 고1 학생의 진로는 언제든지 바뀌는 것이 당연한데 ‘진로’만을 선택 기준으로 삼아야하는가 질문을 던지면서요. 고교학점제를 선택하는 많은 나라들도 필수 과목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고 해요. 학점의 이수/미이수 기준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기초학력’과 관련한 ‘최소성취수준 미달학생’과 연계해 정책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니, 평가원에서 기준을 도출하리라 기대해봅니다.
부족한 교원 대책은 현직 교사들에게도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중등교사 양성시 제2전공 습득을 의무화하는 등 대다수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것처럼 교사의 ‘다교과 지도’를 제안했어요.
고1때부터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의 모습이 가장 큰 변화
- 이승민 (동북고등학교 수학과 교사, 고교학점제 TF팀 총괄)
가장 궁금했던 연구학교 현장 교사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매우 긍정적이었어요. 고민했던 많은 문제들이 대부분은 해결되었거나,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면서요. 다만 교사들이 여러 교과를 지도하려 해도 연수 기회 자체가 부족한 점, 강사풀 구축이 미흡한 점, 학생들의 과목 선택이 보안상의 문제로 나이스와 쉽게 연동되지 못하는데서 오는 업무 과중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교사들의 수업 시수를 줄이거나, 행정 업무 담당자를 증원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예민한 쟁점인 이수/미이수 기준에 있어서도, 학점제를 시행하는 미국을 예로 들며 학생들이 미이수에 이르기 전에 별도의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학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한다고 해요. 예를 들어, 목표가 없어서 공부를 안하는 학생들에게 진로체험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될 경우 학업과 진로에 대한 동기가 생겨 변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니, 수포자가 반드시 수학교과만을 재이수하거나 보충학습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갖게 돼요.
입시에 얽매이지 않아야 의미있는 수업이 될 수 있어
- 오디세이학교 2기 수료생 채은주
마지막 토론자는 2017년에 오디세이학교를 다닌 학생이에요. 이 학교의 학생들은 스스로 짠 시간표에 의해 학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죠. 과목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수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상세한 수업계획서, 충실한 OT 등), 50분 제약에서 벗어난 2시간 정도의 자유로운 수업형식, 지식전달형의 기존 교사들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수업 등이 제공돼야 한다고 제안했어요. 무엇보다 이 과정이 의미있는 활동이 될 수 있었던 건 대학 입시에 얽매이지 않고 수업 과정 자체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고요.
청중으로 참석한 현장교사는 절대평가가 도입되지 않는 한 고교학점제는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을 분명히 경고했어요. 상대평가 체제 아래에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면서요. 고급물리나 고급화학이 개설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소인수과목은 상대평가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문제를 개선하면서 고교학점제는 과연
우리 아이들의 고등학교 교육을 변화시킬 구원투수가 되어줄까요?
정밀한 진단과 보완책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는 계속됩니다.
[다음 토론회 일정]
* 일시 : 2020년 1월 22일 오후3시
* 장소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세미나실
* 주제 : 해외 사례를 통해 고교학점제의 핵심요소를 탐색한다
* 발제자
- 노진아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싱가포르)
- 임광국 (우리교육연구소 사무국장, 미국)
- 정수정 (서경대 인성교양대학 연구원, 독일)
이상 정책언니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