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선생님께서 삼국사기 기록을 토대로 고구려왕의 수명을 쓰셨는데요..
항상 의문을 가지는 부분이지만 신대왕,서천왕,봉상왕,미천왕이 의심스럽더라고요..
신대왕은 기록상 89년생이지만 형인 태조왕과 무려 42세나 차이가 납니다..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죠..
거기에 아버지 재사가 유리왕의 아들이니 18년에 죽은 유리왕의 아들이라면 최소 19년에는 재사가 태어났을 거라 봅니다..
그럼 신대왕은 아버지 재사가 71세에 얻은 아들이라는 거죠..
물론 재사가 19년생이라는 것도 나이차를 줄여보려는 시도일 뿐 말이 안돼죠..
거기에 김용만 선생님께서는 신대왕의 나이를 줄여보시고자 태조왕의 아들설을 수용하시면서 신대왕의 나이를 20살을 줄이십니
다..
하지만 실상 태조왕과 신대왕이 42세차이니 저 나이도 무리인데 거기에 20살을 더하면 60세가 넘어서 가진 아이니 상당한 무리수
가 따른다고 봅니다..
거기에 신대왕의 아들들인 고국천왕과 산상왕의 나이는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150년경으로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89년생인 신대왕이 150년경에 태어난 아들들을 가진 것도 좀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
다음은 서천왕부터 미천왕까지인데요..
중천왕이 즉위한 해에 혼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천왕이 248년에 즉위했으니 그해 첫째를 낳고 이듬해에 둘째 서천왕을 낳았다는 견해시죠..
근데 여기서 문제가 있는 것이 중천왕이 즉위할 당시 나이가 25세입니다..
25세가 되도록 왕비가 없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43년 20세에 좀 늦게 태자가 되긴 했지만 왕자신분으로도 10세중반에는 혼인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역시 서천왕도 비슷한 견해인데요..
서천왕 역시 무슨 이유에서인지 즉위한 이듬해에 혼인을 합니다..
서천왕의 출생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견해대로면 249년생이니 271년에 혼인했으면 23세에 한 게 됩니다..
271년에 혼인한 게 되면서 손자인 미천왕의 나이가 또 이상하게 되는 겁니다..
293년 아버지 돌고의 죽음과 함께 피신한 미천왕은 이 시기에 적어도 걸을 수는 있는 나이였습니다..
최소단위를 대입해도 280년대 후반에는 태어났을 겁니다..
그럼 연대상의 혼란이 옵니다..
선생님께서는 봉상왕 271년생으로 보셨고 그 동생인 돌고가 272년생일 겁니다..
미천왕의 9세 출궁 추정으로 이유로 284년생으로 보셨는데 돌고가 미천왕을 가진 나이가 좀 이르다는 판단입니다..
김용만 선생님께서 이 글에 대한 답변 좀 해주셨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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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 선생님의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읽고 고구려왕 수명의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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