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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와, 10주 연속 1위라니. 이거 처음 있는 일 아닌가요? 정말 대단하죠? 벌써부터 팬들의 열기로 뜨거운데요. 그럼 한번 불러볼까요? 무서운 신인 ‘Zest’의 'Bir…
시끄러운 TV소리에 눈이 뜨였다. 아이돌이 10주 연속 1위를 한건 나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무미건조한 눈으로 브라운관 속에서 요란한 춤을 추는 그들을 흘끗 보고 채널을 돌려버렸다. 거기서 거기인 아이돌. 그래도 요즘은 예전처럼 립싱크가 난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아이돌에게 있어서 중요한건 1순위는 외모이며, 2순위는 춤이었고 3순위는 버라이어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몸개그와 말재주랄까? 이건 내 주관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실상을 파고들어도 큰 차이는 없다. 어쨌든 이게 현실이니까.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파고들자면 머리아프지만 딱히 아이돌만 탓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바꿔 생각하면 그들은 자본주의 현실의 희생자들 일수도 있으니…….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다른 프로그램도 재미없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 이리저리 흩어져 나뒹구는 종이들과 쓰레기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거실의 진풍경이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청소를 안 한지 며칠이나 됐지?
“…정리…해야 겠지?”
오랜만에 드는 기특한 생각에 바로 몸을 움직였다. 지금이 아니면 분명 이 거실이 쓰레기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때 쯤 되어야 치울 생각이 들게 분명하니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거실이 제 모습을 드러낼 쯤 종이를 줍는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팔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어찌됐든 내가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한 절대로 지워지지도, 치유되지도 않을 상처 일테니까.
“아…재미없어…젠장…이런 건…정말 하나도…재미없다고…….”
애써 주운 종이들이 바닥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딱히 다시 주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부지런함은 여기까지다! 라며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멀쩡하게 움직이는 왼손으로 오
른팔을 들었다.
-쾅
있는 힘껏 책상에 내리친 오른팔은 그제야 감각이 돌아와 찌릿찌릿한 아픔을 선사했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지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나는 정신상태 제대로 박힌 멀쩡한 인간이었고, 마조히즘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건 당연한 이치랄까.
“하아, 오늘은 장이나 보고 복사나 해둬야 겠다.”
근처에 떨어져있던 모자를 주워들었다. 얼마나 방치되어있었는지 먼지가 쌓이고 색이 약간 바랜듯 싶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 한둘 내 몰골을 보고 욕한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겠는가. 나는 ‘내가 편하면 그만’이라는 매우 편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책상위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두툼한 종이뭉치를 한손에 들고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구겨 넣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겨울이네…”
쌀쌀함을 넘어서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다. 다시 들어가서 한 겹이라도 더 껴입을까 했지만 추위 따위는 내 귀찮음을 넘어설 수 없었다. 신발 선택의 미스로 맨발의 삼선쓰레빠를 끌고 나오긴 했지만……. 진정한 귀차니스트라면 이정도 쯤은 간단하게 클리어.
***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어야 제 맛이라는 말에 혹해서 사버렸지만 제법 그럴 듯 했기에 시린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빨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턱
무엇이 문제였을까. 땅바닥에 떨어진 지폐가 없을까 싶어 고개를 아래로 한 채 발걸음을 놀리던 것이 화근 이었는지 반대쪽에서 오던 상대와 부딪히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아이스크림. 삼분의 일도 채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 이었기에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 보다는 상실감이 더 컸다.
요즘 아이스크림을 50% 세일 한다지만 그래봤자 예전 가격이다. 세일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손해보는 것 같아서 유리 너머 바라만 보았던 아이스크림을 오늘에서야 손에 넣었는데…….
“지못미 아이스크림.”
“뭐?”
내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나에게 물어오는 상대였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건 처참하게 뭉개진 아이스크림 이었기에 나는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 아이스크림에게 애도를 표했다. 흙이 묻었지만 먹을 수 있을까? 땅바닥에 닿은 부분만 살짝 도려내면 가능 할 것도…….
“뭐 이런 또라이가 다있어? 야!”
“잔인한 녀석…”
땅바닥에 떨어지고 7초가 지났으니 이제 저 아이스크림은 세균덩어리겠구나……. 포기해야겠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상대를 마주보았…다기 보다는 상대가 키가 컸기 때문에 고개를 들었다. 여자 치곤 큰 키라 어디 가서 꿇리진 않았는데, 대한민국 평균 남성의 키를 훌쩍 넘어 루저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기럭지에 기분이 나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겨울이다’라는 걸 온몸으로 광고하는 것인지 긴 롱코트에 니트모, 거기에 검은색 마스크. 단 하나 의아한건 겨울이라는 계절감에 맞지 않는 선글라스 였는데 그것 보다 중요한 건 내 눈앞에 이 사람은…
“살인자.”
“…뭐라고?”
“아이스크림을 살해한 나쁜 녀석.”
눈앞에 걸리적 거리는 방해물을 치우듯이 남자를 옆으로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뭐라고 시끄럽게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 정도 소음은 마음씨 넓은 내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거칠 것 없이 발걸음을 놀렸다.
“야! 야! 와- 저! 씨!”
요즘 개는 인간의 말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뛰어나서 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던가. 별 영양가 없는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집에 도착했다. 뭔가 허전 함을 느꼈지만, 아까 떨어뜨린 아이스크림 탓이라 치부하고 현관에 들어섰다.
“…아이스크림…맛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어야 더 맛있다는 교훈을 얻은 날. 이 날이 귀차니즘으로 뒹굴거리던 나의 앞날을 스펙타클하고 서스펜스하게 뒤바꿔 놓을 줄 알았더라면 난 그날…밖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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