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사막 3 / 마종기
고비 사막을 헤매다보면 한 것도 없는데 금방 힘이 달려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둘러본다.
날이 저물녘 다가오는 세 사람의 젊은 여인을 만났다.
꼭 한국 여인같이 아름다운 분, 반가워 말을 걸었다.
한국분이세요? 답이 없고 내 아래위를 본다. 내가 무례를
저질렀구나. 정중하게 다시 물었다. 한국서 오셨나요?
여자들은 웃지도 않고 고개를 저으면서 나를 피해 갔다.
언뜻 머릿결 날려 보이는 한 여자의 넓은 이마, 아, 몽골여자였구나.
한데 한국어를 모르겠다는 표정이 꼭 장난 같기만 하네.
표정과 냄새가 확실히 눈에 익은데……
몽골이 원나라였던 고려 말, 수십 년 동안 매해 공녀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붙잡혀 북쪽으로 끌려온 수천, 수만의
젊은 한국 처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몇 달씩 걸어서 기진해
외로움과 공포 속에서 많이는 사막 쪽으로 도망치다 죽었다는데,
혹은 흉노족 군인에게 평생을 감시 당하며 아이만 낳았다는데,
그 잘난 고려의 왕들은 해실거리며 궁궐 깊숙이 숨어 나 몰라라
제 식솔만 챙겼다지. 그 무슨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등의 이름은 아직 책마다 등장해 펄펄 설치는데
고비까지 끌려와 모래 바닥에 아이 낳고 꺼이꺼이 울던
한국 여인들, 참다가 터지는 그 울음이 그대로 이상한 가성의
몽골 노래가 되었네.
어느 역사책에도 이름은 커녕 쓸려 죽은 숫자도 헤아려 주지
않았던 한 서린 들꽃들. 고비 사막에 섞여 있는 고려 여인의
피가 보일까 봐 여인들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너무 닮은 모습에
가슴이 내려 앉기도 했다. 사막의 저녁 바람 소리에도 고려의
말이 들려 귀를 막고 비켜가기만 했다. 사막을 걷다가 우연히
작은 뼈 쪼가리 하나를 주웠는데 뼈 쪼가리가 문득 먼데를
보면서 부끄러워한다. 그럼 고려 여인의 것이었을까. 반갑고
미안한 조그만 뼛조각. 가이드는 사막의 들짐승 것이라지만
그 옛날의 뼈를 몇 개 주머니에 넣을 때마다 나는 온몸이
편안하고 따뜻해졌다.
[출처] 마종기 시인 2|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