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책 132쪽 표는 내가 다음에 낼 책에서 수정을 할 예정입니다.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신대왕은 표에 태조대왕 아들설 이라고 했는데, 차대왕 아들설이 맞습니다. 오타입니다. 계속 고친다고 하면서 못 고친 부분입니다. (후한서 동이전 고구려조에 나오는 것이지요)
신대왕의 본래 출생연도인 89년(표에 90년은 잘못. 이것도 수정해야 됨)에서 109년이라고 해도, 여전히 차대왕이 39세에 자식을 본 것이니 역시 늦은 것은 마찬가지고, 신대왕이 57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역시 늦게 왕이 된 셈이지요.
고구려 왕계보에서 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 계보는 삼국사기가 확실히 의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김부식이 태조대왕 94년조 주석에서 강력하게 해동고기의 기록을 들어 주장하는 터라, 쉽게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고구려 당시에 계보조작이 완비된 것이라고 봅니다.
또 고국천왕과 산상왕은 표에도 설명했듯이 우씨왕후와의 관계를 고려해 쓴 것입니다. 그런데 고국천왕은 왕이 된 후에 왕비와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할 때에 나이가 너무 많아도 안된다는 것 때문에 30살로 추정을 한 것이지요.
그래도 우씨왕후는 매우 어린 나이였다고 하더라도, 19년이 지난 후에 다시 산상왕과 결혼을 하는 것도 고려했지요.
더 일찍 태어난 것도 고려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다시 산상왕과의 문제도 걸리게 됩니다.
이 문제는 역시 앞서 3명의 왕과 다시 걸리는 문제입니다.
중천왕의 경우는 나의 추정이 별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가장 빠른 시점을 기준으로 나이를 선정한 것이지요. 다만 -10살 정도는 추가할 수 있겟군요.
서천왕의 경우도 중천왕이 결혼한 해가 248년 10월 이므로, 첫째 아들이 249년, 둘째 서천왕이 250년으로 가장
빠르게 본 것에는 이상이 없지요.
문제는 미천왕인데, 돌고가 13살에 아이를 낳은 것이 됩니다. 이것이 좀 빠르다고 볼 수는 있지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고민할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삼국사기에 왕계보가 왕비의 적장자만으로 이어졌는가 하는 문제가 걸립니다.
또 하나는 태자비였다가 다시 왕비로 다시 임명받느냐는 문제가 걸립니다.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다가, 결국 왕비가 있는 경우는 왕비와 결혼한 다음 해를 가장 빨리 2세가 태어난 시점으로 본 것입니다.
이것마저 흔들어 놓으면 나이를 추정할 근거가 약해지기 때문에, 표 작성 당시에는 나름대로 삼았던 기준입니다.
이 표에서 고구려 왕들의 가장 나이가 많은 경우는 58세라고 한 것은 고구려 왕들의 최대 수명 수치로서 값은 일정한 추정치로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대신 마이너스가 문제인데, 오차범위를 5세 정도로 했는데, 이 보다 더 크게 주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은 합니다.
표의 여러 문제들은 다음 책에서 다시금 수정을 할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오차 범위를 더 넓게 주는 것이 적당하고 봅니다.
님의 지적 감사합니다.
첫댓글 와! 정말 빨리 답변 올려주셨네요..감사합니다..이제서야 카페 들어와서 확인하는..^^ 허접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많은 도움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