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없는 공장은 테헤란로보다 압구정동에 많다
- 고광헌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네거리
지하철 3호선 분당 방향 오른쪽 출입구로 나오면
이곳저곳
의란성(醫卵性)* 쌍둥이자매들 인사에 기분 나쁘지 않다
첫 시간, 시작하려는데 스마트 폰 진동. 새벽에 끝난 알바, 자명
종 소리 못 들어 택시 안이란다. 쉬는 시간, 부은 얼굴에 대고 왜
늦은 알바냐? 언니를 위하여, 알바 두 개! 저는 공부 못해 지방으
로 왔지만 언니는 스카이 출신, 면접낙방 중이라 얼굴 조금 고쳐야
한다. 깎은 수술비 3백만 원, 엄마 2백만 원, 저 1백만 원. 언니는
공부에 전념, 알바 뛰면 안 된다. 악마의 꽃은 압구정동에서 핀다. 중
고생 땐 8학군 1등급 위해 깔아주더니, 이젠 8학군 의사들 주머니 채
우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받쳐주는, 그렇지 동족끼리면 식민지백성은
아니지. 학생들은 새벽까지 알반데, 학교는 지각엔 마이너스 점수타령
이라고 쓸데없이 중얼거리다, 기어코 압구정동에 8학군에 이용당하고
세 모녀 마음도 속이는 일이라고 선생질했다.
엊그제 시술한 화학물질이 근섬유 속에서
덜어 내고 들어 올린 웃음을 얼굴 안으로 구겨 넣는다
쏟아지는 눈물을 받아 내지 못하는
초극세 피부세포의 슬픔
눈 쌓인 날 제일 먼저 강의실에 나와 활짝 웃는 그녀
* 성형수술을 통해 비슷비슷하게 ‘규격화’한 얼굴로 바뀐 성형미인을 일컫는 은어.
ㅡ『유심』(2015,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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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88' 시리즈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복고풍 상업주의였습니다
현실이 암담하고 미래가 회색이라는 것이어서 인기를 끌었고, 누구에게는 돈이 되었습니다
설이라고 고향을 다니러 온 친척의 얼굴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본디 얼굴이 어땠는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의란성(醫卵性)* 쌍둥이"들이 전국방방곡곡으로 흩어졌습니다
'수저론' 이 설 민심일 수야 없겠지만, 어제 저녁상에는 녹슬지 않는 스텐레스 수저를 썼습니다
활짝은 아니어도 웃으며 2015년과 새해 한 달을 마무리했습니다
얼굴 곳곳에 드러나는 검버섯을 레이져로 없애버린다는 소식을 집사람이 전합니다만
그냥 이대로 살면, 깨끗하게 지워도 뭐가 다를까 싶어서 그냥 웃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