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제가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여행을 갔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으로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묵상을 나누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정성을 다하여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2024년 6월 13일 목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노력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역사인식을 잘못하고 사는 것을 보면서 가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가해자였고, 우리는 피해자였기 때문에 가슴에 묻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평생 한 맺힌 사연을 어찌 알지 못하는 지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망언으로 과거의 역사를 지우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생체실험에 대해서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고 있으면서도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아무리 많은 항변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고 솔직하지 못한지 생각이 머물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새겨들어 보아도 지금 그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하느님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외면한 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실지 걱정됩니다. 무엇이 의로움인지 정말 그들이 모르는 것인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그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은 정치적이거나 국익을 위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을 것입니다.
형제에게 ‘바보’라고 했을 뿐인데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였을 뿐인데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는 오늘 복음말씀을 대하면서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의로움에 대한 권고의 말씀은 더욱 어렵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감히 하느님 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는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욕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하였으며, 바보라고 하거나 멍청이라고 한 적도 많이 있으니 불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 형제들에게 성을 낸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어째서 재판에 넘겨지고 지옥에 갈 수 있다고 하시는지 논리적으로 따져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형제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바보고 멍청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이나 형제를 하느님으로 보고 살아야 한다는 원리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살 때에 이웃을 보고 하느님께서 같이 사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별개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조심하라고 강조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이웃과 화해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가슴에 새겨두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옛 어른들도 제사를 지내기 전에 먼저 형제들과 화목하고 평안해야 조상이 제사에 오셔서 기쁘게 흠향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청소하고 좋은 옷 입고, 얼굴을 밝게 하고 웃는 얼굴로 제사에 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사에 참례할 때 이웃과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평안해야 미사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사랑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노력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렸다(야고 5,18 참조).>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8,41-46
그 무렵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니, 이제는 올라가셔서 음식을 드십시오.”
42 아합이 음식을 들려고 올라가자, 엘리야도 카르멜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으로 몸을 수그리고 얼굴을 양 무릎 사이에 묻었다.
43 엘리야는 자기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 쪽을 살펴보아라.” 하고 일렀다.
시종이 올라가 살펴보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엘리야는 일곱 번을 그렇게 다녀오라고 일렀다.
44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에 시종은 “바다에서 사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올라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야가 시종에게 일렀다. “아합에게 올라가서,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병거를 갖추어 내려가십시오.’ 하고 전하여라.”
45 그러는 동안 잠깐 사이에 하늘이 구름과 바람으로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합은 병거를 타고 이즈르엘로 갔다.
46 한편 엘리야는 주님의 손이 자기에게 내리자, 허리를 동여매고 아합을 앞질러 이즈르엘 어귀까지 뛰어갔다.
축일6월 13일 성 안토니오 (Anthony)
신분 : 신부, 교회학자, 설교가
활동 지역 : 파도바(Padova)
활동 연도 : 1195-1231
같은 이름 :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페르난도(Fernandus)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 기사의 아들이었다. 성 안토니우스는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리스본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15세 되는 해에 집 근처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212년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와 친척들을 피하고자 다시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참사 수도회로 옮겨 8년 동안 공부와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121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1220년 1월 16일 모로코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순교자들의 유해가 성 십자가 성당으로 옮겨져 왔는데, 이때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그해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그의 소망대로 무어인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모로코로 파견되었으나, 도착 직후 병으로 인하여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1221년의 아시시(Assisi)의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에서 개최된 작은 형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코임브라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던 그는 포를리(Forli) 근처의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코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Granziano) 신부와 함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를리로 갔는데, 마침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 성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설교가로서의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는 카타리파(Cathari)가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알비파(Albigenses)가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뛰어난 설교와 화술은 불같았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모여든 군중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군중들은 구름처럼 운집하였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설교직에 더욱 헌신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중 1226년 10월 3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 성인이 사망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 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파도바 전체를 완전히 개종시킨 그의 설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채무자,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1231년 그는 수종 등을 겸한 열병으로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갔으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회에서 선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그의 유해는 현재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946년에는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교회학자, 복음적인 박사로 선언되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수많은 기적 이야기와 설교 능력은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전설 중 하나가 되었고,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성 안토니우스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고 했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안토니우스 성인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생겼다. 이는 어느 수련자가 허락 없이 성인의 시편집을 가져갔다가 성인이 발현하여 돌려달라고 해서 그 시편집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일생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의 이름을 따서 19세기에 ‘안토니우스 성인의 빵’이라는 구호단체가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로 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그 이유는 한 방문자가 안토니우스 성인이 탈혼 중에 일어난 이 일을 기록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토니오 (Anthony)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감사합니다.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공사가 형제님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