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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116회
그때 사섭(士燮)의 아들 사개(士匃)는 나이가 16세였는데, 장수들의 의논이 분분하여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중군으로 달려와 난서(欒書)에게 말했다.
“원수께서는 진을 벌릴 땅이 없어서 근심하십니까? 그건 쉬운 일입니다.”
난서가 말했다.
“자네에게 무슨 계책이 있는가?”
사개가 말했다.
“영문을 굳게 지키면서, 군사들로 하여금 영채 안의 아궁이들을 흙으로 덮어 평평하게 하고 우물은 널빤지로 덮게 하십시오. 그러면 반 시간이면 진을 펼칠 수 있는 땅이 마련될 것입니다. 영채 안에서 진을 펼친 다음 영문을 열고 나가서 싸우면 됩니다. 楚軍이 우리를 어찌하겠습니까?”
“우물과 아궁이는 군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인데, 아궁이와 우물을 덮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밥을 먹고 물을 마실 수 있겠는가?”
“각 군에 먼저 명령을 내려, 하루 이틀 분량의 마른 식량과 마실 물을 준비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진을 다 펼친 후에 노약자들로 하여금 영채 뒤편에 따로 우물과 아궁이를 마련하게 하면 됩니다.”
사섭은 본래 싸우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아들이 계책을 내놓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전쟁의 승부는 천명에 달려 있는데, 어린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혓바닥을 놀리느냐?”
사섭을 창을 들어 아들을 찌르려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사섭을 끌어안고 말리는 틈에 사개는 달아났다.
난서가 웃으며 말했다.
“아들의 지혜가 아버지가 낫습니다.”
난서는 사개의 계책을 따라, 각 부대에 마른 식량을 준비하게 하고 아궁이를 메우고 우물을 덮어 진을 펼쳤다. 그리하여 다음 날 교전할 준비를 마쳤다.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읊었다.
軍中列陣本奇謀 영채 내에 진을 펼친 것은 기막힌 계책이었는데
士燮抽戈若寇仇 사섭은 창을 들어 마치 원수를 대하듯 했다.
豈是心機遜童子 어찌 그 지혜가 어린 아들보다 못했겠는가?
老成憂國有深籌 나라를 근심한 늙은이의 깊은 생각이었네.
한편, 초공왕(楚共王)은 晉軍 영채 바로 앞까지 압박하여 진을 펼치고서 말했다.
“이번 우리의 진격은 출기불의(出其不意)이니, 적들은 필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晉軍 영채는 적막하기만 할 뿐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공왕이 태재 백주리(伯州犁)에게 물었다.
“晉軍은 영채를 굳게 지키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소. 그대는 晉나라 사람이니, 필시 그 사정을 알 것이오.”
[백주리는 晉나라의 모신 백종의 아들이다. 제115회에 백종이 진여공에게 간언을 하다 죽음을 당하고, 백주리는 楚나라로 망명했었다.]
백주리가 말했다.
“왕께서는 신과 함께 초거(轈車)에 올라가 살펴보십시오.”
[‘초거(轈車)’는 망루가 설치된 병거이다.]
공왕은 백주리와 함께 초거에 올라가 晉軍 영채를 바라보며 물었다.
“晉軍이 혹은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달리고 있는데, 무슨 까닭이오?”
백주리가 대답했다.
“군리(軍吏)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또 중군에 여러 사람이 모이고 있소.”
“모여서 회의하려는 것입니다.”
공왕이 또 한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갑자기 장막을 펼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선군(先君)께 경건하게 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또 장막을 걷고 있소.”
“군령을 발하려는 것입니다.”
“군중이 시끄럽고 먼지가 날리고 있는데?”
“저들이 진을 펼칠 수가 없으니까, 우물을 덮고 아궁이를 메워 진을 펼칠 땅을 만드는 것입니다.”
“병거에 말을 매고 장병들이 병거에 오르고 있소.”
“진을 펼치는 것입니다.”
공왕이 또 한동안 바라보다가 물었다.
“병거에 올랐던 자들이 다시 내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싸우기 전에 신에게 기도하려는 것입니다.”
“중군의 기세가 매우 강성한 것 같은데, 晉君은 어디 있소?”
“난씨(欒氏)와 범씨(范氏) 종족들이 晉君을 호위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제111회에, 사회(士會)가 적적(赤狄)을 평정하고 돌아와 범(范) 땅에 봉해져 범씨(范氏)의 시조가 되었다. 따라서 사씨가 곧 범씨이다.]
공왕은 晉軍의 사정을 살펴본 후, 내일 교전할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군중에 명을 내렸다.
한편, 楚나라의 항장(降將) 묘분황(苗賁皇)은 진여공(晉厲公)을 곁에서 모시고 있다가 계책을 내놓았다.
“楚나라는 영윤 손숙오(孫叔敖)가 죽은 후 군정(軍政)이 질서가 없고 양광(兩廣)의 정예병도 오랫동안 교체하지 않아 늙어서 전투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게다가 좌군과 우군의 장수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 일전에 楚軍을 패퇴시킬 수 있습니다.”
염옹(髯翁)이 시를 읊었다.
楚用州犁本晉良 楚에서 등용한 백주리는 본래 晉의 훌륭한 신하였고
晉人用楚是賁皇 晉에서 등용한 묘분황은 楚의 장수였다.
人才難得須珍重 인재는 얻기 어려우니 마땅히 소중히 여겨
莫把謀臣借外邦 지모 있는 신하를 다른 나라로 보내서는 안 되리라.
그날 양군은 각기 영채를 지키면서 대치한 채 싸우지 않았다.
楚나라 장수 반당(潘黨)이 영채 뒤편에서 궁술 시합을 하여, 연달아 화살 세 대가 홍심(紅心)에 적중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칭찬하였다.
[‘홍심(紅心)’은 과녁의 가운데 붉은 칠을 한 동그란 부분이다.]
그때 마침 양유기(養繇基)가 오는 것을 보고, 장수들이 말했다.
“신전장군(神箭將軍)이 왔다!”
[제102회에,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양유기는 청하교 다리 위에서 활로 싸워 투월초를 쏘아 죽였다.]
반당이 노하여 말했다.
“내 활솜씨가 어찌하여 양숙(養叔)보다 못하단 말입니까?”
양유기가 말했다.
“그대는 단지 홍심을 맞힐 수 있을 뿐이니, 기이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오. 나는 백보천양(百步穿楊)을 할 수 있소.”
여러 장수들이 물었다.
“백보천양이 무엇입니까?”
양유기가 말했다.
“내가 예전에 버드나무 잎사귀가 적장 얼굴인 줄 알고 백보 밖에서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잎사귀 중심을 꿰뚫었습니다. 그래서 백보 밖에서 버들잎을 뚫었다고 하여, 사람들이 ‘백보천양’이라고 했습니다.”
장수들이 말했다.
“여기도 버드나무가 있으니, 한번 쏴 보시지요?”
양유기가 말했다.
“안 될 것 없지요.”
장수들이 기뻐하며 말했다.
“오늘 양숙의 신전(神箭)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장수들은 버들잎 하나를 까맣게 칠해 놓고, 양유기로 하여금 백보 밖에서 활을 쏘게 하였다. 양유기가 쏜 화살이 날아가기는 했는데, 워낙 빨라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장수들이 다가가서 보았더니, 화살은 버드나무 가지에 박혀 있는데 그 화살촉이 버들잎 가운데를 꿰뚫고 있었다.
반당이 말했다.
“한 발은 우연히 맞았을 뿐입니다. 내 생각에는, 화살 세 대를 쏘아 다 맞혀야 비로소 고수(高手)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유기가 말했다.
“자신할 수는 없지만, 한번 쏴 보지요.”
반당은 높이가 다른 곳에 있는 버들잎 세 개에 각각 ‘一’·‘二’·‘三’ 숫자를 써놓았다. 양유기는 버들잎을 확인한 다음 백보 밖으로 물러서서, 화살에도 각각 ‘一’·‘二’·‘三’ 숫자를 썼다. 그리고 차례대로 세 발을 쏘았는데, 추호도 어긋남이 없이 세 발 모두 차례대로 버들잎을 꿰뚫었다. 장수들은 모두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양숙은 진정 신인(神人)입니다!”
반당은 속으로는 감탄했지만, 끝내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서 양유기에게 말했다.
“양숙의 활솜씨는 과연 훌륭합니다. 하지만 적을 죽이려면 기교보다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갑옷 여러 개를 겹쳐 놓고서도 뚫을 수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서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장수들이 모두 말했다.
“한번 보여주시오.”
반당은 군사들에게 갑옷을 벗어서 겹쳐 놓게 했는데, 갑옷 다섯 벌이 겹쳐졌다. 장수들이 말했다.
“그만 하면 됐습니다.”
반당은 다시 갑옷 두 벌을 더 겹쳐 놓게 하여, 모두 일곱 벌이 겹쳐졌다. 장수들이 말했다.
“갑옷 일곱 벌의 두께는 거의 한 자나 되는데, 어떻게 화살이 뚫을 수 있단 말인가?”
반당은 일곱 벌의 갑옷을 과녁 위에 묶어 놓게 하고서, 백보 밖에 서서 이리 이빨처럼 생긴 낭아전(狼牙箭)을 활에 메겼다. 왼손으로는 마치 태산을 받치듯 활을 굳건하게 잡고, 오른손으로는 마치 갓난아이를 안 듯 부드럽게 화살을 잡고 시위를 당겼다. 힘을 다해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다음 과녁을 조준하여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갑옷에 박히는 소리가 나자, 반당이 외쳤다.
“맞았다!”
장수들이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더니, 일제히 갈채하며 말했다.
“명궁이다, 명궁!”
화살은 일곱 벌의 갑옷을 꿰뚫어 마치 못을 박은 듯 단단히 꽂혀 있어, 뽑으려 해도 뽑히지 않았다. 반당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군사들에게 화살이 박힌 채로 갑옷들을 가지고 오게 하였다. 영내를 돌면서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양유기가 말했다.
“그냥 놔둬라!” 나도 한번 쏘아 보겠다.“
장수들이 말했다.
“양숙의 신력(神力)이 어떤지 보자.”
양유기가 활을 들고 쏘려다가, 다시 활을 내렸다. 장수들이 말했다.
“양숙께서는 어찌하여 쏘지 않으십니까?”
양유기가 말했다.
“앞서 쏜 사람의 과녁을 따라서 맞히는 것은 기이하다고 할 수 없소. 내가 앞사람의 화살을 밀어내는 송전(送箭)의 법을 보여주겠소.”
말을 마치자 양유기가 쏜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장수들이 소리쳤다.
“맞았다!”
장수들이 다가가서 보니, 양유기가 쏜 화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앞서 반당이 쏜 화살을 맞혀서 과녁 뒤편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그걸 본 장수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반당도 비로소 심복(心服)하여 찬탄하며 말했다.
“양숙의 묘수(妙手)는 내가 미칠 수가 없도다!”
사서(史書)에 이런 기록이 있다.
“楚王이 형산(荊山)에 사냥하러 갔는데, 산 위에 통비원(通臂猿)이 살고 있었는데 날아오는 화살을 잘 잡는다고 하였다. 楚軍이 몇 겹으로 포위하고 화살을 쏘았는데, 원숭이는 다 잡아냈다. 그러자 초왕이 양유기를 불렀다. 원숭이는 ‘양유기’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슬피 울부짖었다. 양유기가 와서 화살 한 발로 원숭이의 심장을 꿰뚫었다.”
양유기는 과연 춘추시대 제일의 사수(射手)로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통비원(通臂猿)’은 팔을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는 전설상의 원숭이이다.]
잠연(潛淵) 선생이 시를 읊었다.
落烏貫蝨名無偶 나는 새를 떨어뜨리고 이[蝨]를 관통한 명궁이 있었지만
百步穿楊更罕有 백보천양의 경지는 또한 다시없는 명궁이었네.
穿札將軍未足奇 과녁을 맞히고 갑옷을 뚫는 솜씨도 그리 신기하지 않으니
強中更有強中手 강궁 속에 더 뛰어난 강궁이 있었네!
[‘이[蝨]’은 사람 몸에 붙어사는 벼룩이나 빈대 같은 기생충을 말한다. 옛날에 기창(紀昌)이라는 사람이 이를 매달아 놓고 멀리서 활을 쏘아 이의 가슴을 맞혔다고 한다. 그런 활솜씨를 ‘관슬지기(貫蝨之技)’라고 한다.]
여러 장수들이 말했다.
“晉과 楚가 대치하고 있는 이때야말로, 우리 왕께는 유용한 인재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제 이런 신전(神箭)을 쏘는 두 분 장군이 있으니, 마땅히 왕께 아뢰어야 합니다. 미옥(美玉)은 궤 속에 감추어 두어서는 안 됩니다.”
[논어(論語)에 이런 대화가 있다.
자공(子貢)이 말했다. “여기에 미옥(美玉)이 있는데, 궤 속에 감추어 간직해야 합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구하여 팔아야 합니까?”
공자가 말씀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장수들은 화살이 꽂힌 갑옷을 가지고 양유기·반당과 함께 초공왕에게 가서, 두 사람의 활솜씨를 자세히 아뢰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신전장군들이 있으니, 晉軍이 비록 백만이라 하더라도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공왕이 크게 노하며 말했다.
“장수는 지모(智謀)로써 승전해야지, 어찌 화살 한 대로 요행을 바란단 말이오? 그대들이 그런 재주만 믿고 있다가는 훗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공왕은 양유기의 화살을 모두 몰수하여 다시는 활을 쏘지 못하게 하였다. 양유기는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다음 날 새벽, 양군은 각각 북을 울리며 진격하였다. 晉나라 상군원수 극기(郤錡)는 楚나라 좌군을 공격하여 공자 영제(嬰齊)와 대적하고, 하군원수 한궐(韓厥)은 楚나라 우군을 공격하여 공자 임부(壬夫)와 대적하기로 하였다. 난서와 사섭은 각각 본부군을 거느리고 중군의 어가를 호위하면서 초공왕과 공자 측(側)을 대적하기로 하였다. 진여공은 극의(郤毅)를 어자로 삼고, 난침(欒鍼)을 차우장군으로 삼았다. 극지(郤至)는 신군(新軍)을 거느리고 후대가 되어 접응하기로 하였다.
楚軍은 본래 오전에는 우광(右廣)이 출전할 차례였는데, 우광의 대장은 양유기였다. 초공왕은 양유기가 궁술에 대해 허풍만 떠는 자로 생각하여, 우광이 아닌 좌광을 거느리고 출전하였다. 그리고 팽명(彭名)을 어자로 삼고, 굴탕(屈蕩)을 차우장군으로 삼았다. 정성공(鄭成公)은 본국의 군대를 거느리고 후대가 되어 접응하기로 하였다.
한편, 진여공은 머리에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봉의 날개를 형상화한 충천봉시(沖天鳳翅) 투구를 쓰고, 몸에는 똬리를 틀고 있는 용을 새긴 붉은 비단전포를 입었다. 허리에는 보검을 차고, 손에는 방천대극(方天大戟)을 들고, 금빛 철판을 두른 융로(戎輅)를 탔다. 오른쪽에는 난서, 왼쪽에는 사섭을 거느리고, 군문을 열고 楚軍 진영으로 돌진하였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晉軍 진영 앞에는 진흙탕 웅덩이가 있었는데, 아직 날이 밝기 전이라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극의가 융로를 몰고 용감하게 달리다가, 공교롭게도 진흙탕 웅덩이에 빠지는 바람에 말들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초공왕의 아들 웅패(熊茷)는 소년이었는데 용맹하였다. 전대(前隊)를 거느리고 오던 웅패는 晉侯의 병거가 웅덩이에 빠진 것을 보고 병거를 나는 듯이 몰아 달려왔다. 차우 난침이 황급히 융로에서 뛰어 내려 진흙탕 속에서 평생의 기력을 발휘하여 두 손으로 융로의 바퀴를 들어 올렸다. 융로가 들리자 말들이 움직이면서, 한 발짝씩 진흙탕 속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웅패의 선봉대가 다가왔는데, 마침 난서가 거느린 군마도 당도하였다. 난서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린놈이 무례하구나!”
웅패는 깃발에 쓰인 ‘중군원수’라는 글자를 보고, 대군임을 알고서 깜짝 놀라 병거를 돌려 달아났지만 추격해 온 난서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楚軍은 웅패가 사로잡히는 것을 보고, 웅패를 구하기 위해 일제히 돌격해 왔다. 그 순간 사섭이 병력을 이끌고 달려오고, 후대의 극지도 달려왔다. 楚軍은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 병력을 돌려 본영으로 돌아갔다. 晉軍 역시 추격하지 않고 본영으로 돌아갔다.
초마(哨馬)가 달려와 진여공에게 보고하였다.
“楚나라 좌군이 출전하지 않아 상군은 교전하지 않았고, 하군은 楚나라 우군과 20여 합을 싸웠는데 상호간에 얼마간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승부는 나지 않아 내일 다시 싸우기로 약정했다고 합니다.”
난서가 웅패를 끌고 와 바치자, 진여공은 참수하려 하였다. 묘분황이 아뢰었다.
“楚王이, 아들이 사로잡혔다는 것을 들으면, 내일 필시 친히 출전할 것입니다. 웅패를 함거에 가두어 진 앞에 놓고서 楚王을 유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여공이 말했다.
“좋소.”
그날 밤은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난서는 영문을 열고 나가 싸움을 걸었다. 대장 위기(魏錡)가 난서에게 말했다.
“제가 어젯밤 꿈에,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향해 활을 쏘아 가운데를 맞혔습니다. 그러자 달에서 한 줄기 금빛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제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영채 앞의 진흙탕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것이 무슨 징조이겠습니까?”
난서가 말했다.
“주왕실과 동성(同姓)은 태양이고 이성(異姓)은 달입니다. 달을 쏘아 맞힌 것은 필시 楚君이겠지만, 진흙탕은 천양(泉壤) 가운데를 말하는 것이니, 진흙탕에 빠졌다는 것은 길조가 아닙니다. 장군은 조심하시오!”
[‘천양(泉壤)’은 땅 밑으로, 저승을 뜻한다. 구천(九泉)이나 황천(黃泉)과 같다.]
위기가 말했다.
“楚軍을 격파할 수만 있다면,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난서는 위기에게 적진을 공격할 것을 허락하였다. 楚軍 진영에서는 장수 공윤양(工尹襄)이 출전하였다. 두 장수가 몇 합 싸우지도 않았는데, 晉軍 쪽에서 함거를 끌고 나와 진 앞에서 왔다 갔다 하였다.
초공왕은 아들 웅패가 함거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가슴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공왕은 급히 팽명(彭名)을 불러 말에 채찍질을 하여 함거를 탈취하기 위해 돌격하게 하였다. 위기는 楚王의 병거를 보자, 공윤양을 내버리고 楚王을 추격하면서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공왕의 왼쪽 눈에 적중하였다. 반당(潘黨)이 힘껏 싸워 공왕을 보호하면서 병거를 돌렸다.
공왕이 아픔을 참고 화살을 뽑았는데, 화살촉에 박힌 눈알이 함께 뽑혀 나왔다. 공왕이 화살을 땅바닥에 내던지자, 한 군졸이 눈알을 주워서 바치며 말했다.
“이건 용정(龍睛)이니, 함부로 버리시면 안 됩니다.”
공왕은 눈알을 받아 전대(箭袋) 속에 넣었다.
晉軍은 위기가 승전하는 것을 보고 일제히 돌격하였다. 공자 측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죽을힘을 다해 晉軍을 막아내고 공왕을 구출하였다.
극지는 정성공을 포위하였다. 그때 정성공의 어자가 왕의 깃발을 활을 넣어두는 자루 속에 감추었기 때문에, 정성공 역시 탈출할 수 있었다.
초공왕은 노하여 신전장군 양유기를 급히 불러 어가를 구하라고 명하였다. 양유기는 왕의 부름을 받고 급히 달려왔지만, 화살을 하나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앞서 초공왕이 양유기의 화살을 모두 몰수했었다. 허풍을 떤다고 야단친 사람에게 이제는 복수해 달라고 부탁한다.]
공왕이 자신의 전통에서 화살 두 대를 뽑아 건네면서 분부하였다.
“과인을 쏜 놈은 푸른 전포를 입고 수염이 꼬불꼬불한 놈이오. 장군이 과인을 위해 원수를 갚아 주시오. 장군은 신묘한 재주를 지녔으니, 많은 화살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양유기는 화살을 받고 병거를 몰아 나는 듯이 晉軍 진영 속으로 달려갔다. 마침 푸른 전포를 입고 수염이 꼬불꼬불한 자를 만났는데, 바로 위기였다. 양유기가 위기를 보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필부가 어찌 감히 우리 왕에게 활을 쏘았느냐?”
위기가 막 대답하려는 찰나 양유기가 쏜 화살이 위기의 목에 명중하였다. 위기는 병거 위에서 쓰러져 죽었다. 난서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위기의 시신을 수습하여 돌아갔다.
양유기는 돌아와 남은 화살 한 대를 공왕에게 바치며 아뢰었다.
“대왕의 위엄 덕분에 푸른 전포를 입은 수염이 꼬불꼬불한 적장을 쏘아 죽였습니다.”
공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비단전포를 벗어 낭아전 백 개와 함께 하사하였다. 군중에서는 양유기를 ‘양일전(養一箭)’이라 불렀으니, 두 번째 화살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鞭馬飛車虎下山 말을 채찍질하여 병거를 타고 호랑이처럼 달려가니
晉兵一見膽生寒 晉兵이 한 번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도다.
萬人叢里誅名將 만인 가운데서 명장을 활로 쏘아 죽이니
一矢成功奏凱還 화살 한 개로 공을 이루고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왔네.
한편, 晉軍은 楚軍을 바짝 추격하다가 양유기가 진 앞에 서서 화살을 날려 하나씩 쏘아 죽이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였다. 초나라 장수 영제와 임부는 楚王이 화살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접응하러 달려왔다. 晉軍은 楚軍과 한바탕 혼전을 벌인 후 퇴각하였다.
난침은 영윤의 깃발을 보고 공자 영제의 군대임을 알고서, 진여공에게 말했다.
“신이 전에 楚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楚나라 영윤 자중(子重)이 晉나라의 용병하는 법에 대해 물었는데, 신은 ‘정(整)’·‘가(暇)’ 두 글자로 대답했었습니다. 지금 혼전하느라 ‘整’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각기 퇴각하느라 ‘暇’를 보여주지도 못했습니다. 신이 楚軍에 술을 보내 지난날 했던 말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난침과 공자 영제의 대화는 제115회에 있었다.]
진여공이 말했다.
“좋소.”
난침은 군사를 시켜 술 한 통을 영제의 군중에게 가서 바치고 말을 전하게 했다.
“과군께서는 인재가 부족하여 이 난침을 차우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뵙고 위문할 수 없어 대신 술 한 잔을 바칩니다.”
영제는 지난날 난침이 말했던 ‘整暇’를 기억해 내고 탄식하며 말했다.
“소장군은 기억을 잘 하는구나!”
영제는 술을 받아 한 잔 마시고는 사자에게 말했다.
“내일 진 앞에서 대면하여 사례하겠네.”
사자가 돌아가 영제의 말을 전하자, 난침이 말했다.
“楚君이 화살에 맞고서도 후퇴할 생각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묘분황이 말했다.
“병거를 점검하고 군사를 보충한 다음, 말을 배불리 먹이고 군사를 격려하며 진을 수리하십시오. 날이 밝으면 배불리 먹고서 결사전을 벌인다면, 어찌 楚軍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때 魯나라와 衛나라에 병력을 요청하러 갔던 극주(郤犨)와 난염(欒黶)이 돌아와, 두 나라에서 각기 군대를 일으켜 이미 20리 밖에 당도했다고 말했다.
[제115회에, 극주를 魯·衛에 보내 병력을 요청하게 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난염이 추가되었다. 난염은 난서의 아들로서 난침의 형이다.]
楚나라 첩자가 그 사실을 탐지하여 초공왕에게 보고하였다. 공왕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晉軍도 이미 많은데, 魯軍과 衛軍이 또 온다니 어찌하면 좋은가?”
공왕은 즉시 중군원수 공자 측을 불러 상의하였다.
첫댓글 초가 사면초가에 몰렸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