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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제1독서 : 2역대 24,18-22
제2독서 : 로마 5,1-5
복 음 : 마태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
-회개, 희망, 인내-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우리는 오늘 연중 제14주일에
한국 순교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미 순교의 죽음을 당하셨지만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갖게 하는 순교 성인입니다.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롭게’(ever old, ever new) 느껴지는 성인입니다.
마침 어제 써놓은 산나리 들꽃을 보며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늘 거기 그 자리
누가 보아 주든 말든
알아주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하루를 살아도
하늘님 가득 담고 영원을 사는
하늘님만으로 충만한 행복의 들꽃들인데!”-
하느님만으로 충만한 행복을 살았던 순교성인들입니다.
2세기 순교영성의 시대, 참으로 주님 사랑 때문에 순교를 갈망했던 무수한 사랑의 순교자들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얼마나’의 산 햇수가 아니라
‘어떻게’ 주님을 치열히 사랑하며 살았느냐가 관건임을 깨닫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고작 만25세에 순교하셨으니 얼마나 짧은 생애이셨는지요.
그러나 성인은 영원히 살아 있어 여전히 생생한 감동에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얼마 전 고통 중에도 깨끗한 죽음을 맞이한 어느 분을 운구한 분의 추도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워 나비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날아가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사주신 밥, 대략 70끼니가 넘는 것 같습니다. 밥 값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빈자리는 무엇으로 메꿔야 합니까?”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길게 살았던 짧게 살았던 얼마나의 삶의 양이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 누구나의 소원은 잘 죽는 것일 겁니다.
제 간절한 단 하나의 소원 역시 병원에서가 아닌 영적전쟁터인 내 삶의 자리에서
치열히 사랑하며 ‘주님의 전사戰士’로 살다가 영적전투 중에
조용히 전사戰死하여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전사戰死해야 전사戰士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의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얼마 전 거룩하게 살다가 선종한 어느 수녀님에 대한 일화도 생각납니다.
‘수녀님은 누가 보고 싶어요?’라고 임종 전 어느 수녀가 물었다 합니다.
“하느님이 보고 싶어요!”
평생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찾고 그리워하며 사셨던 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대로 한평생 순교적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의 ‘성 안드레아 김대건 노래’(성가287)는 언제 부르고 들어도 감동입니다.
성인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에 순교의 죽음입니다.
-“서라벌 옛 터전에 연꽃이 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에 짙어갈제
진리의 찬란한 빛 그 몸에 담뿍 안고, 한 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여
한강수 굽이굽이 노들이 복되도다, 열두칼 서슬아래 조찰히 흘리신 피
우리의 힘줄 안에 벅차게 뛰노느니, 타오른 가슴마다 하늘이 푸르러라
가신님 자국자국 남긴 피 뒤를 따라, 싸우며 끊임없이 이기며 가오리니
김대건 수선탁덕 양떼를 돌보소서, 거룩한 주의 나라 이 땅에 펴주소서.”
간절한 기도와 같은 성가가 심금을 울리며 우리 모두 순교적 삶을 살도록 북돋아 주며 고무합니다.
성인의 순교직전 마지막 장문의 옥중서간 역시 구구절절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고작 25세에 이런 편지를 썼다니 참 경이로울 뿐입니다.
임종을 앞뒀던 어느 분의 “인생무상人生無常, 이보다 진실이 없어요!”란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바로 인생무상에 대한 유일한 답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회개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첫째 조건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역대기 하권에서 착안했습니다.
요아스의 변절과 즈카르야의 살해에 관한 내용이 바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긴 죄로 인해
이들 유다와 예루살렘에 주님의 진노가 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즈카르야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즈카르야의 순교 직전의 임종어가 긴 여운으로 남아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참으로 반복되는 우상숭배의 변절의 인간들이요, 여전히 반복되는 순교의 죽음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하나뿐이 공동의 집인 지구도 위태합니다.
어느 생태전문가의 절실한 고백도 생각납니다.
“이 세계를 그냥 이대로 망해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될 것 같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참으로 생태적 회개는 물론 전방위적 내외적 영적 혁명의 철저한 회개가 화급, 절박한 때입니다.
멀리서가 아닌 지금 여기 나부터입니다. 생명과 사랑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삶입니다.
둘째, 희망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둘째 조건입니다. 바로 제2독서에서 착안했습니다.
회개할 때 비로소 참사람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사랑과 희망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회개를 통해 본래의 사랑과 희망의 회복입니다. 궁극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기에 자발적 사랑의 순교적 삶입니다.
이런 희망이 없어 혼란 복잡한 삶이요 타락에 인간성 상실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요 사람의 내면은 날로 황폐화되어 인성도 거칠어지고 사나워집니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의 제2독서 말씀은 오로지 희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이 바로 궁극의 진짜 참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고결하고 기품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 사랑에서 샘솟는 이런 희망입니다.
참으로 예언자들은 물론 성서의 모든 사람들이 희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새 이스라엘인 우리 모두를 향한 시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두어라.”(시편131,3).
셋째, 인내의 삶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의 셋째 조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착안했습니다. 희망이 있어 인내도 가능합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무한한 인내입니다. 참으로 희망이 있을 때 인내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걱정과 두려움 중에도 좌절함이 없이, 흔들림 없이 주님의 길을 가게 합니다.
요셉수도원 초장기 때 당시 원장수사와의 대화를 잊지 못합니다.
수도생활에 필요한 덕이 저는 ‘사랑’이라 대답했을 때 당시의 원장 수사는 ‘인내’라 대답했습니다.
정말 마지막 승리는 끝까지 희망을 지니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정주의 인내요 정주의 믿음입니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의 불암산에서 배운 것도 항구한 인내였습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다짐하며 요셉수도원에 정주한지 32년째입니다.
일희일비 반응하지 않고 담아두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주 다음 자작시를 되 뇌이며 미소짓곤 합니다.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산보다
더 좋은 깊고 고요한 산이예요”-
산 같은 정주요 인내의 믿음입니다.
인내하며 기다리다 보면 문제의 해결解決이 아닌 저절로 문제의 해소解消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유혹에 빠져 참지 못하고 행위 함으로 자초하는 화는 얼마나 많은지요.
성 베네딕도 역시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성규72,5)는
공동체 삶의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인내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
주님은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심기념미사 강론을 통해
거룩하고 아름다운 순교적 삶을 위한 귀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바로 회개의 삶, 희망의 삶, 인내의 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끝으로 아빌라 성녀의 기도의 선물로 강론을 마칩니다.
-“아무것도 너를 어지럽히지 않게(Nada te turbe)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마라(nada te espante)
모든 것이 다 지나가지만(Todo se pasa)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Dios no se muda)
인내가(la paciencia)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todo lo alcanza)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quien a Dios tiene)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nada le falta)
오직 하느님으로 넉넉하도다(solo Dios basta)”-아멘.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무엇일까요?
답은 ‘철부지’입니다. 이 단어를 유심히 보면 농경시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농경시대에 계절(철)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해(부지 不知)
농사를 망치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 것입니다.
농경시대의 이 단어가 지금에까지 전해져서
삶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농경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와 흐름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농사를 망쳐서 쫄쫄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변화와 흐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기쁘고 힘차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삶의 변화와 흐름은 항상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게 될 때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세상을, 그분의 뜻보다는
내 욕심과 이기심이라는 뜻을 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 철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그 철부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한국 최초의 사제로 1845년 8월 17일 사제서품을 받고서
그 다음해 9월 16일 한강 새넘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당시의 나이가 서른이 되지 않았으니, 너무 젊었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 할 수 있는 나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 것에 뜻을 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만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와 흐름을 주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주님 말씀에 굳은 믿음을 가지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지요.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철부지처럼 끊임없는 걱정 속에서만 살아가고,
조금이라고 어렵고 힘들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했던 것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주님께 불평불만을 던지면서
주님 곁을 떠나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했던 것이 아닐까요?
더는 철부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향하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 세상의 모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멀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신 철저히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제 김대건의 여정
류해욱 요셉 신부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대축일입니다.
오늘이 저에게는 서품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29 주년입니다. 부끄럽지요.
김대건 신부에게 어떤 칭호가 가장 적절할까요?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 순교자 집안의 아들?
간략하게 그의 사제가 되기까지의 긴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震厚)는 50세 때
먼저 교인이 된 아들 김택현의 권유로 입교(入敎)합니다.
1791년 첫 박해 이래 수차례 검거되어 고문을 받고 귀양을 가는 등의 고난을 겪다가
결국 1814년 충청남도 해미(海美) 옥중에서 순교합니다.
이에 김진후의 아들, 김대건 신부의 할아버지 김택현(澤鉉)은 솔뫼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합니다. 김대건은 이처럼 순교자의 집안에서 자랍니다.
1831년 조선교구 설정에 이어 1836년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의 방침에 따라
조선인 성직자를 양성하기로 하고 성소자를 물색합니다.
모방 신부에 의해 먼저 최양업(崔良業)과 최방제(崔方濟)가 뽑히게 되고
마지막으로 김대건이 선택됩니다.
모방 신부는 이들에게 성직자가 되는 기본소양과 라틴어를 가르칩니다.
15살의 세 소년들이 라틴어를 배우고 중국어와 프랑스어를 배운 후에
정식 철학과 신학을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때는 1836년. 모방 신부는 마침 귀국길에 오른 유방제(劉方濟) 신부 편에 이들을 마카오로 보냅니다.
모방 신부는 가장 늦게 부름을 받은 소년 김대건의 마음을 잘 몰라 처음에는 주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에 소년 김대건은 “저는 앞으로 조선성교회를 위하여 몸을 바치겠습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린 소년이 몸을 바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유방제 신부와 세 소년이 만주와 내몽골을 거쳐 중국을 통과하여 마카오에 도착한 것은
한양을 떠난 지 8개월이 넘게 걸리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들이 떠난 것은 추운 겨울. 미지의 땅을 향해 끝없이 걸어가야 하는 여정.
따뜻한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모포를 덮고 밤을 지새워야 했던 날이 많았겠지요!
그 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떠오르는 태양의 햇살에 녹이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여정에
성령의 이끄심이 없었다면, 그 여정 자체가 불가능이었겠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린 소년들이 걸망을 지고 낯선 이국땅에 들어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들은 마카오에 도착하여 파리 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東洋經理部)에서 정식 교육을 받게 됩니다.
지금은 예수회가 관리하고 있는 신학교라고 합니다.
이미 이들이 왔을 때도 몇몇 예수회 신부들이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지금 마카오의 세 소년들이 공부하던 신학교 성당 앞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세 소년은 아편 전쟁 때문에 마카오에서 필리핀으로 두 차례나 피난하여
거기서 공부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합니다.
필리핀에 김대건 신부가 머물던 망고 나무 아래에서 오래 기도한 적이 있지요.
그는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올 길을 모색합니다.
1842년 12월에는 압록강을 넘어 평안도에 진입했으나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다음해 1월 만주로 되돌아오고 맙니다.
그러다가 1844년에는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인 페레올(Ferréo) 주교의 주선으로
외국인 신부들의 조선입국을 위해 두만강을 넘어 조선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여전한 천주교 박해의 상황 아래 건강도 악화되어 다시 배편으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8월에 신품성사를 받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 탄생이었습니다.
그해 10월에는 배편으로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조선으로 향하여
천신만고 끝에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됩니다.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한양으로 잠입하여 전교를 합니다.
1846년 아직 만주에 머물고 있는 메스트르 신부 등의 입국을 위해
서해안 길을 개척하다가 6월에 순위도에서 체포됩니다.
옹진군 감옥을 거쳐 해주감옥에서 황해감사로부터 심문을 받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자기는 조선에서 출생하여 마카오로 가서 거기서 공부하고
조선에 천주교를 펴기 위해서 귀국했다고 말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한양으로 압송됩니다.
국가의 금령을 어기고 출국한 사실과 나라에서 금하는 사교인 천주교의 신부라는 사실에
조선 당국은 놀라움과 함께 회유를 권유합니다.
당시 김대건 신부의 해박한 지식에 경탄한 중신들의 부탁으로 세계지리의 개략을 책으로 만들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여 2벌의 지도를 채색하여 조정에 주기도 합니다.
간략하게 김대건 신부님의 여정을 살펴보며 참으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도대체 신앙이 무엇이관대, 15살의 어린 소년이 정든 어머니의 품을 떠나
이역만리의 낯선 타향을 향해 길을 떠나게 만들었는가?
도대체 신앙이 무엇이관대, 죽음 앞에서 그리 당당하고 초연할 수 있는가?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우리가 그분을 기리는 것은 그가 첫 사제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의 신앙과 교우들에 대한 사랑, 인간적인 면모는
참으로 놀랍고 마음으로부터 깊은 존경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순교하기 20일 전에 페레올 주교님에게 썼던
옥중 서한의 한 대목을 나누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가만히 두 손을 모읍니다.
“저는 감히 주교님께 저의 어머니 우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 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주교님께 간절히 바라건대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신심미사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이 미사는 우리나라의 첫 사제요,
한국 사제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신심미사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여 대대로 순교자를 낸
신심 깊은 집안에서 1821년 충남 당진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솔뫼는 그의 증조부(복자 김진후 비오), 부친(성 김제준 이냐시오)을 포함
4대 11명이 순교의 꽃을 피운 곳입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사위의 밀고로 체포되어,
아들을 국경을 넘겨 보낸 국사범으로서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에
서소문 밖에서 목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아들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성격, 진실한 신심을 드러냈던 신부님에 대해 모방 신부님은
“이 아이는 아마 천주께서 선택하신 아이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1836년, 열다섯 살 때에 세례를 받은 그는 모방 신부가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자,
“남의 영혼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고국을 떠나(1836.12)
육로로 마카오 신학교에 도착(1837.6)하여 4년간 철학과 신학 공부했습니다.
만주에 들른 그는 북경으로 가던 신자 김 프란치스코로부터
기해박해로 아버지는 참수를 당하고
어머니는 교우집을 떠돌아다니며 신세를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앵베르 주교가 기록했던 박해의 기록과 모방신부와 샤스탕 신부의 편지,
그리고 목자를 보내줄 것을 청한 교우들의 편지를 받고,
그 길로 조선에 있는 메스트르 신부를 만나기 위해 변문을 향했습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입국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장춘 소팔가자 성당에서 부제품을 받고서 선교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마침내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셨습니다.
그러나 홀로된 어머니도 뵙지도 못하고, 전교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다시 상해로 갔고,
1845년 8월 17일에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 후, ‘라파엘’ 호를 타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밤낮으로 열심히 사목하는 동시에 선교사제의 서해 입국 통로를 개척하다가,
1846년 6월 5일에 체포되셨습니다.
신부님은 당신의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학문을 아깝게 여긴 이들이
인재로 쓰려고 수차례 회유를 하지만,
“천주를 숭배해야만 한다. 이를 거절하면 죄를 면치 못한다.”고 답했으며,
교우의 이름을 대라 하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천주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신부님은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고 옥중편지를 통해 이렇게 신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천주를 알지 못하면 산 보람이 없습니다.
눈물로 씨 뿌린 농부가 추수하는 기쁨을 누리듯 신앙도 좋은 열매를 맺을 때 천국의 기쁨을 누립니다.
박해를 두려워 말고 천주를 섬기고, 순교자들을 기억합시다.
성인들의 발길을 따라 교회에 충실한 시민이 되고, 사랑의 일치로 주님 만나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1846년 9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한강가의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참수의 거룩한 순교의 빨마를 얻으셨습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긴 신앙의 씨앗은
여전히 한국의 신자들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조선대목구 제3대 대목구장인 페레올 주교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이면 어느 누구나 그의 열렬한 신앙심과 성실한 마음에
존경심과 사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일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고,
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1949년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정되셨고,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모진 핍박과 수난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임금으로부터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도
“임금 위에 또 천주께서 계시어 당신을 공경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니 그의 배반함은 큰 죄악이라,
임금의 명령이라도 옳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용감히 증거 했습니다.
참으로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만 살고, “예수님 때문에”만 죽으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처럼,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성인의 “옥중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으셨고, “예수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새남터에서의 마지막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으니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통한 건 오직 천주님과 교회를 위함입니다.
나는 죽으나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얻으시려면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참수될 당시, 칼로 여덟 번 목을 친 뒤에야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칼을 든 열두 회자수 망나니가 목을 치기 위해
무릎의 꿇려 머리를 잡아당긴 상황에서 신부님은 말합니다.
“이 모양으로 하고 있으면 칼로 치기가 쉽겠느냐? 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쳐라.”
성인께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참으로, 성인께서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셨습니다.’(로마 5,2-3).
이제 우리 역시, 다름 아닌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서, 매순간을 “순교”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증거”, 곧 우리의 “순교”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내년 2021년은 세계유네스코가 정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해’ 이고,
한국천주교회는 내년을 ‘한국교회의 희년’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2고린 4,10-11). 아멘.
-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 22)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한국 성직자들의
맨 앞자리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있습니다.
성직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소중한 직분입니다.
불충실한
저의 삶을
아프게 반성합니다.
성직의 길은
휘어진 곡선처럼
굽이굽이 고개를 넘습니다.
사랑에 빚진 삶이
바로
이 땅의
성직자들의 삶입니다.
고단함과 간절함까지
하느님께
내어주는 사람이
성직자입니다.
절박한 희망 안에서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고민과
아픈 기도와
대답 없는
수많은 물음들이 모여
이 땅의 기초가 됩니다.
적당히 살아가는 저에게
세속과 타협하는 저에게
진리를 저버리는 저에게
잊고 살아가는
성직의 본질을
다시 가르쳐주십니다.
삶과 죽음 속에서도
진리를 찾고
진리를 따르는 삶이
성직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성직자의 의복이 아니라
성직자의 올바른 삶에
목 메이며 울컥하는
이 땅의
목마른 신앙인들의 기도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십자가에서
다시 만나는 시간 되십시오.
이 땅의
모든 성직자들을 위해
빌어주소서.
비우면 채워지고, 채우면 비워진다.
전삼용 요셉 신부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은
‘요즘 현대의 청소년들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의 삶을 보며
자신도 그 삶을 따르고 싶어 할까?’입니다.
‘사제가 되어서 순교하는 삶이 정말 인기스타가 되는 것처럼 선망의 대상일까?’
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저에게 어떤 분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세요. 그래야 청소년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사제가 되고 싶어 하지요.”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사제가 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선망하는 사제의 삶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같은 순교의 삶인지,
아니면 좋은 차타고 고급 운동을 하러 다니는 사제의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부모님도 자녀가
사제나 수녀가 되어 순교의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나의 자녀들은 김대건 신부님처럼 젊은 나이에
고생만 하다가 순교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오늘 이 성인을 기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인들을 기념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삶이 부럽고 본받고 싶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인생 성공의 의미를
순교와 연결해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식이나 저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준비하는
순교의 삶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말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운’입니다.
일본 최고 납세자 ‘사이토 히토리’ 씨는
“운은 힘이 셉니다. 실력보다 힘이 셉니다.
그러니 운을 키운다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단지 운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운 없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을 운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공의 운이 모이게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절제’입니다. 모든 성공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다 이 ‘절제’를 말합니다.
미즈노 남보쿠는 ‘대일본’이란 칭호를 받았듯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은 사람입니다.
이분은 ‘비워야 채워진다.’라는 신념으로 ‘절제의 성공학’이란 책을 썼습니다.
자신이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술과 도박과 싸움을 일삼고 살다가
그렇게 수천 명의 제자까지 둔 인물이 되기까지 이끌어준 것이 바로 ‘절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별히 몸에 음식을 다 채우면 성공의 운이 다한다고 말합니다.
채워지면 비워지는 것만 남고, 가장 높이 뜬 태양은 떨어지는 일만 남기 때문입니다.
그가 18세 때 도둑질을 하다 감옥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감옥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인상이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인상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옥살이하고 관상가를 찾은 그는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운명이니 속히 절로 가서 출가를 청하시오.”라고 말해줍니다.
출가하기 위해 절에 갔더니 절의 주지 스님은
1년 동안 보리와 흰콩만으로 식사하고 오면 받아주겠다고 합니다.
1년 동안의 그렇게 절제된 식사를 마치고 절로 가는 길에 전의 그 관상가를 다시 찾았습니다.
남보쿠를 알아본 관상가는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군요. 어디서 큰 덕을 쌓았소, 아니면 사람의 목숨을 구했소?”
“생명을 구한 일은 없지만, 보리와 흰콩만 먹고 1년을 살았습니다.”
“식사를 절제한 것이 큰 음덕을 쌓았구려. 그것이 당신을 구했소!”
남보쿠는 출가보다는 운명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처음 3년은 머리 만지는 일 하며,
그다음 3년은 목욕탕에서 일하며, 마지막 3년은 화장터에서 인부로 일하며
얼굴과 몸과 골격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렇게 관상을 보니 처음엔 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죽을 운명이면서도 죽지 않고, 망할 운명이면서도 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생겨났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음식을 절제하며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병에 걸려 죽을 운명도 음식을 절제하니 그 빈 곳에 없던 운도 깃든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음식을 절제하고도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비워져야 하늘의 기운이 그 안에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보쿠는 노년에 거대한 저택에 큰 창고만 7동이 되었으나,
쌀은 물론 쌀로 만든 떡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3천 명이 넘는 제자들이 따랐고, 일본 조정에서 대일본이라는 파격적인 칭호까지 받았습니다.
어차피 먹고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평생 배고픈 삶을 산 남보쿠가 부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성공한 것처럼 좋은 차를 타고 술과 고기를 배부르게 먹는다면
그 사람의 운명은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다 채워졌기 때문에 이제 비워지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망할 때는 다 배부르게 먹고 마십니다. 이것이 국운도 좌우하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세계 최대 음식 가맹점을 성공시킨
김승호 회장도 같은 말을 합니다. 성공하려면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적게 먹고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 돈을 절대 쓰지 말라고 합니다. 사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월세나 전세 살면서 비싼 외제차 타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앞으로 성공할 것 같나요? 샴페인을 미리 터뜨리면 거기까지입니다.
성공한 이들을 부러워하여 자신을 절제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공할 것이고,
이미 성공한 것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은 항상 부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 넣어주신 법칙입니다.
이런 절제의 삶이 극에 달하면 ‘순교’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비우는 삶, 절제의 삶이 순교의 시작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신자들에게 쓴 유일한 편지에서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마음으로 사랑해서 잊지 못하는 신자 여러분,
이런 환난의 때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헛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돌보심을 빌어 삼구(三仇: 세속, 육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박해를 참아 받아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한 큰일을 도모하십시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는 한순간의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돈과 쾌락과 교만을 죽여 가며 사셨기 때문에 마
지막 순간에도 의연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비워졌다면 이 세상에서 비우는 사람들을 채워주시는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주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비워가던 이들이 받게 될 보상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충만한 생명을 채우려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산다면
저승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진시왕이나 카다피는 어떤 상을 받았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죽지 않으려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생명으로 다 채워졌으니 죽음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삶은 조금 비우는 삶입니다.
조금 비우니 이 세상에서조차 걱정거리도 없고 편안하고 심지어 존경도 받습니다.
그러면 많이 비우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의 명예를 모욕으로, 배부름을 배고픔으로, 소유를 가난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하늘의 모든 운을 끌어오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운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늘이 영원한 것처럼 그 운도 영원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채우는 삶이 아니라 비우고 비워서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은총의 공간을 넓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부터 이것을 받아들일 때 김대건 신부님을 따르겠다는 더 많은 지원자가 생겨날 것입니다.
재물이든, 명예든, 생명이든, 비워야 채워집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