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道論道談
 
 
 
 

친구 카페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불교와 힌두교 아드바이트 종파
이강 추천 0 조회 95 17.04.19 14:52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17.04.19 16:08

    첫댓글 정신사적 궤적 또는 문화적 흐름으로 보면 1980년대 한국에 처음으로 요가난다, 라즈니쉬,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봇물 처럼 들어왔고 학내 캠퍼스에도 인도의 산야신이 방문하여 비밀스러운 요가 클럽이 생겨났지요. 첫 인상은 전혀 새로운 조류를 만났다는 흥분과 기대감, 이것이 인도구나 하고 여겼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전통적 인도 문화가 들어왔다기 보다는 변종이 우선 수입되었습니다. 유지는 의외로 소수자에게만 알려졌지만 지두와 유지는 대단히 비전통적 비주류입니다. 신지학회가 주로 미국, 영국, 러시아, 이집트 같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다분히 인터내셔늘한 짬뽕 분위기란 걸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요.

  • 작성자 17.04.19 16:13

    그리고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인도로 유학가서(신라 승려가 천축국을 방문 한 것 처럼) 본격적으로 힌두교와 빨리어, 산스크리스트어를 습득한 지적 인사들이 직구 형태로서 원전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초기불교를 거의 생략한 채 대승, 밀교, 선불교만 받아들였다가, 고리타분한 한자 번역본만 보다 상당히 리얼하고 구체적인 원시, 초기 불교를 보니, 이게 진짜 불교구나 하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런 지식인들이 기존, 전통적 불교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했고 한국의 화두선도 흔들렸습니다. 다만 초기불교가 지식인과 인문철학, 또 이게 과학이란 착각이 들어 기성 불교를 과도하게 비난한 측면이 있습니다.

  • 작성자 17.04.19 16:17

    제 3차 물결은 마하라지가 라즈니쉬, 지두를 밀어내고 웅장하고 교묘한 화법으로 재차 깨달음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 영향력도 막강했습니다. 더불어 아루나찰라 전서가 꾸준히 번역되어 라마나 전집이 완성되어 갔구요. 우리와 너무 멀었던 라마크리슈나에 대한 자료도 꾸준히 증가 되었습니다. 일명 아드바이트 성자들의 출현인 셈이지요.

  • 작성자 17.04.19 16:22

    그리고 소수자는 힌두교의 원류를 알고 싶다고 하여 우파니샤트와 비가바드기타를 읽었습니다. 이 두 종류의 경전이 워낙 방대하여 한국에 소개된 것은 일부이겠지만, 우파니샤트는 즈나나 지혜 계열의 경전이고, 바가바드기타는 사랑과 헌신의 박티 계열입니다. 이것도 사이클 처럼 추처럼 한 물결 가면 그 다음 물결 오는 것 같이, 인도에서 처음에 박티로 시작한 것이 즈나나로 교체 되었고, 즈나나 계열이 지식과 이성을 엄밀히 따지다 보니 골치가 아픈 것이고, 감정이란게 이것저것 따지는 걸 싫어하여 후기에 바가바드기타가 종장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불교도 지극한 끄트머리에서 바가바드기타 같은 물결이 거세어 집니다.

  • 작성자 17.04.19 16:25

    일본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변천사를 보면 불교의 크리스천화가 후기에 강해지는 것 처럼 '다치고 염불' 아니면 '부처 이름 한 번 부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다된다는 종이 번성하는 것은 역사적 전개 같습니다.

  • 작성자 17.04.19 16:30

    시중에 인도 종교와 문화 관련 책을 보면 대부분이 여행기나 수필류, 아니면 긴가민가를 밝히지 않는 영성류 같은 책이 대부분을 차지 하는데 표피적 껍데기만 쪼매 소개 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인도는 차도보다 더 먼 나라였는데 한국은 인도 문화를 아직 수용, 소화할 게제는 아닌 것 같구요. 인도는 한 마디로 카레의 나라이지요. 인도인이 한국과 일본에서 카레를 먹어면 이게 카레냐고 생각하기는 하죠. 전통 카레는 향신료가 일본, 영국, 한국보다 열개, 스물개 더 이상 들어가 더 복잡하고 오묘하고 진한 것을 인도 카레라 생각합니다. 한국은 한 민족 한 언어 한 문화라는 단일한 문화권인데 인도는 초장부터 지금까지 온갖

  • 작성자 17.04.19 16:38

    잡다한 것이 뒤범벅 된 문화이지요. 라마나의 어릴적, 청년 사진을 보면 인도인으로 보이기 보다 아프리카 흑인에 더 가깝게 보이지요. 라마나는 남인도의 문화를 대표합니다. 여기 사람은 피부가 까맣고 성격이 온순하고 명석하면서 명상에 강합니다. 저는 아리안 북방 인도인이 조로아스트(짜라투스트라) 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들은 현대의 이란, 이라크 인 처럼 백인처럼 피부가 희고 서구적 이목구비로 또렷합니다. 고타마는 북인도적 문화가 강하게 스며있지요. 브라만 , 크샤트리아 인들이 많고. 이런 외래 중동지역의 강한 신관을 믿는 북인도와 똘망똘망한 남인도의 명상 기류가 융합되어 두 축으로 인도 문화가 형성된 것 같아요.

  • 작성자 17.04.19 16:43

    중동과 인도 문화의 공통점이 시와 시인을 대단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특히 인도인은 워낙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기질이 강하기에, 그네들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을 때 언제나 춤과 노래를 갈구 합니다. 어찌보면 신화와 설화 구조란게 뮤지컬 드라마 이지요. 그래서 인도인은 인터미션으로 항상 춤과 노래가 끼어야 몸이 풀리기에, 이것 빼면 시체지요. 시는 다름 아닌 음률이고 리듬이죠. 불교에서 게송 이라고 하는데, 고타마도 자신의 설법을 요약하고 정리할 때 이것을 일종의 시적 노래로 박자와 리듬을 넣고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작성자 17.04.19 16:50

    또 기하학적 문양이나 무늬에 중동과 인도인이 제법 끌리고 강한 면모를 보이는데 기하학적 도안이나 문양이란게 일종의 중첩된 수학의 알고리즘 같이 '무한성'을 표출합니다. 이게 티베트로 건너가 만다라도 된 것 같구요. 기하학적 도안이란게 자연계에 없습니다. 자연은 밋밋합니다. 사람들은 기하학적 문양을 보고 여기에 뭔가 비밀이나 진리가 있나 보다 하고 호기심이나 경외감을 가지지요. 인도유럽피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매우 수학적 기질이 농후했다고 합니다. 중동과 인도 수학자들이 옛날에 최고였다고 합니다.

  • 작성자 17.04.19 17:06

    관념이란게 생각의 뭉치인데요. 고타마가 '신의 관념'을 거부한 것은 사람들이 내가 믿고 생각하는 '신'이 있다면 이게 정답이라 여기고 너가 믿고 생각하는 '신'은 오답이라고 여기는 것 조차 생각인데, 사람들이 자꾸 이 생각의 차이 가지고 끊임없이 분열하고 투쟁하는 게 워낙 마뜩치 않아 사람들에게 축을 '신'보다 '너 자신'으로 바꾸기 위한(향아설위 이기도 하죠) 고육지책 내지 방법론입니다.

  • 작성자 17.04.19 17:11

    여하튼 불교에서 제3의 방법론으로 '신'을 지우고 그 자리에 '붓다'를 새겨 넣은 것은 일종의 단지 관념으로서만의 '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 당시에 인도인이 이 신 만들고 저 신 만들고,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생각으로 신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봉헌과 헌사를 많이 하면 좋다는 식이 팽배해 있지 않았을까요. 즉 마음 밖에 생각으로 신을 만들어 놓고 이걸 우상처럼 섬기는 것에서 비판적이였을 것입니다. 이천년이 지나도 불교에서 염려했던 것 처럼 지금 사람도 유대교의 신, 기독교의 신, 이슬람의 신이 서로 다르다고 살인과 폭력이 자행되는 꼴을 보면, 불교가 불가피하게 방향을 튼 것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 작성자 17.04.19 17:15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보면 결국 방법론의 차이, 언어의 레테르의 다름 뿐입니다. '신'을 곱하기 하고 '부처'을 동그라미 했다고 하여 둘이 서로 다른가? 종국에는 같은 지칭어일 뿐입니다. 동북아시안인은 이걸 일찍 간파하여 신불을 같은 것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분쟁을 없앴어요. 양쪽 다 공평하게 똑같은 것으로 본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지요. 또 중국인 입장에서 보면 결국 '신'이나 '부처'는 수입산이였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