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에서 하나, 둘, 셋을 ein zwei drei(아인 쯔바이 드라이)라고 세는데 둘의 쯔바이가
같은 인도듀럽어인 인도에서 '드바이트'라고 발음 합니다. 인도 사람이 영어에 거부감이
덜 한 것은 같은 친족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앵글로 색슨은 게르만 족 언어,
히틀러는 영국이 독일과 같은 게르만 혈연에 같은 게르만 언어라고 처음에 상당히 호의적으로 느꼈음)
인도어에서 'A 아'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Not 이니다'라는 부정접두어 입니다. 영어에서도 'a'가
부정접두어로 많이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Atheism 같은 말이 있지요.
그래서 "Not Two'라는 말은 '둘이 아니다' 라는 뜻이고 이걸 좀 더 첨언하여 '불이일원파' 라고 합니다.
불교의 곳곳에도 '불이'와 '일원'의 사상이 저변에 흐르고 있지요. 그래서 불교와 아드바이트 종파의
주장은 서로가 무척 닮아 있는 면이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힌두교 종파 내에서 아드바이트 파의 위상과 위치인데요. 제가 느끼기로 샹카라 후기에
나온 매우 고등한 철학과 사상의 한 지류로, 상당히 고난이도의 논설이기에 어쩔 수 없이 즈나나(지혜)
계열에서 높은 위치에 차지 합니다. 인도에서 즈나나(지혜계열)은 사랑과 헌신을 위주로 하는 박티와
매우 대조적 위상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드바이트 에서는 박티를 부차적, 부수적, 보조적으로만
인정할 뿐이지 메인 스트림에서는 넣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드바이트는 인도 내에서도 무신론적
경향이 상당히 다분합니다. 박티 계열은 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기에 어쩔 수 없이 매우 강한 유신론과
특히 신의 인격성을 견지 합니다.
불교는 공식적으로 표방하기를 하느님에 대한 관념(언어)이 필요 없다는 방향과 시작점으로 출발합니다.
그래서 신에 대한 관념을 지우는 작업을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신과 인간'을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 개념으로 '붓다'를 제 3의 방향성으로 제시 합니다. 그래서 무신론적 경향을 강하게 띄우는 것입니다.
그럼 '신'을 대신 하는 자리에 그것이 있다 함을 나타내기 위한 기로로서 불교는 '마음' '법'을
내세우지요. 그리고 불교도 철저히 즈나나 계열 방향으로 전진 합니다.
물론 아드바이트파도 힌두교 내부에서 발원하여 독자적으로 성장했기에 '아트만'이란 전제가 있습니다.
이게 불교와는 전제가 다르고, 또 다르게 보입니다. 하지만 아드바이트에서 의미하는 아트만은
대단히 유동적 개념으로 이후에 서서히 그것은 '의식, 마음, 법, 진리'라고 표출되기도 합니다.
또 결국에 아트만은 '신'의 또 다른 명칭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불교와 아드바이트는 기본 노선과 방향이 유사하기에, 그 논조가 서로 닮아 있고
또 언어라는 관념을 탈색하여 보면 같은 주장도 많습니다. 아드바이트는 대승불교 사상을 기조로
그 방법론은 대단히 禪적인 분위기를 띄우지요.
라마나는 자기 스스로 아드바이트라 하지 않았지만 그 얼개가 같다고 보아 사람들이 아드바이트로
분류하고, 마하라지 문파에서는 자신들이 아드바이트 법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하여
분명히 아드바이트 파 임을 표방하지요.
라마나와 마하라지 문파의 언설은 둘 다 불이일원파이기 때문에, 이 말 자체가 통합론입니다.
정반대로 보이는 모순을 하나로 합쳐서 보는 쪽이라는데서 통합적 언사는 모순형용처럼
보이지요. 그래서 이쪽은 신에 대한 관념이나 찬양을 엄청나게 거부하고 부정하면서도
또 한 바퀴 뺑 돌아서면 신에 대한 긍정과 찬미로 가득 하지요.
특히 라마나는 너희들이 찾고 믿고 말하는 신은 거저 관념일 뿐이다, 신을 찾지 말고
차라리 너 자신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라고 말하면서도, 또 그 다음 페이지에는
일체가 바로 신입니다. 신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라면 금방 깨닫습니다 라는 말이
그 다음 페이지에 바로 나옵니다. 앞 페이지 말과 뒤 페이지 말이 전혀 다릅니다.
불교와 아드바이트는 소의경전이 바가바드기타에 있지 않고 우파니샤트에 근거하지요.
우파니샤트는 신은 너의 마음 바깥에 없다는 것이 주안점입니다. 신은 너 안에, 마음 속에'
존재하기에 내적 명상으로 발견하거나 바로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불교는 '신'으로 출발하지 않고 그 관념을 부정했기에 불교적 술어로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There is nothing without the mind)" 같은 방식을 찾아내었겠지요.
뭘 그것을 한자로 표현하면 심외무불이지만요......
첫댓글 정신사적 궤적 또는 문화적 흐름으로 보면 1980년대 한국에 처음으로 요가난다, 라즈니쉬,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봇물 처럼 들어왔고 학내 캠퍼스에도 인도의 산야신이 방문하여 비밀스러운 요가 클럽이 생겨났지요. 첫 인상은 전혀 새로운 조류를 만났다는 흥분과 기대감, 이것이 인도구나 하고 여겼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전통적 인도 문화가 들어왔다기 보다는 변종이 우선 수입되었습니다. 유지는 의외로 소수자에게만 알려졌지만 지두와 유지는 대단히 비전통적 비주류입니다. 신지학회가 주로 미국, 영국, 러시아, 이집트 같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다분히 인터내셔늘한 짬뽕 분위기란 걸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요.
그리고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인도로 유학가서(신라 승려가 천축국을 방문 한 것 처럼) 본격적으로 힌두교와 빨리어, 산스크리스트어를 습득한 지적 인사들이 직구 형태로서 원전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초기불교를 거의 생략한 채 대승, 밀교, 선불교만 받아들였다가, 고리타분한 한자 번역본만 보다 상당히 리얼하고 구체적인 원시, 초기 불교를 보니, 이게 진짜 불교구나 하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런 지식인들이 기존, 전통적 불교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했고 한국의 화두선도 흔들렸습니다. 다만 초기불교가 지식인과 인문철학, 또 이게 과학이란 착각이 들어 기성 불교를 과도하게 비난한 측면이 있습니다.
제 3차 물결은 마하라지가 라즈니쉬, 지두를 밀어내고 웅장하고 교묘한 화법으로 재차 깨달음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 영향력도 막강했습니다. 더불어 아루나찰라 전서가 꾸준히 번역되어 라마나 전집이 완성되어 갔구요. 우리와 너무 멀었던 라마크리슈나에 대한 자료도 꾸준히 증가 되었습니다. 일명 아드바이트 성자들의 출현인 셈이지요.
그리고 소수자는 힌두교의 원류를 알고 싶다고 하여 우파니샤트와 비가바드기타를 읽었습니다. 이 두 종류의 경전이 워낙 방대하여 한국에 소개된 것은 일부이겠지만, 우파니샤트는 즈나나 지혜 계열의 경전이고, 바가바드기타는 사랑과 헌신의 박티 계열입니다. 이것도 사이클 처럼 추처럼 한 물결 가면 그 다음 물결 오는 것 같이, 인도에서 처음에 박티로 시작한 것이 즈나나로 교체 되었고, 즈나나 계열이 지식과 이성을 엄밀히 따지다 보니 골치가 아픈 것이고, 감정이란게 이것저것 따지는 걸 싫어하여 후기에 바가바드기타가 종장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불교도 지극한 끄트머리에서 바가바드기타 같은 물결이 거세어 집니다.
일본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변천사를 보면 불교의 크리스천화가 후기에 강해지는 것 처럼 '다치고 염불' 아니면 '부처 이름 한 번 부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다된다는 종이 번성하는 것은 역사적 전개 같습니다.
시중에 인도 종교와 문화 관련 책을 보면 대부분이 여행기나 수필류, 아니면 긴가민가를 밝히지 않는 영성류 같은 책이 대부분을 차지 하는데 표피적 껍데기만 쪼매 소개 된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큼 인도는 차도보다 더 먼 나라였는데 한국은 인도 문화를 아직 수용, 소화할 게제는 아닌 것 같구요. 인도는 한 마디로 카레의 나라이지요. 인도인이 한국과 일본에서 카레를 먹어면 이게 카레냐고 생각하기는 하죠. 전통 카레는 향신료가 일본, 영국, 한국보다 열개, 스물개 더 이상 들어가 더 복잡하고 오묘하고 진한 것을 인도 카레라 생각합니다. 한국은 한 민족 한 언어 한 문화라는 단일한 문화권인데 인도는 초장부터 지금까지 온갖
잡다한 것이 뒤범벅 된 문화이지요. 라마나의 어릴적, 청년 사진을 보면 인도인으로 보이기 보다 아프리카 흑인에 더 가깝게 보이지요. 라마나는 남인도의 문화를 대표합니다. 여기 사람은 피부가 까맣고 성격이 온순하고 명석하면서 명상에 강합니다. 저는 아리안 북방 인도인이 조로아스트(짜라투스트라) 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이들은 현대의 이란, 이라크 인 처럼 백인처럼 피부가 희고 서구적 이목구비로 또렷합니다. 고타마는 북인도적 문화가 강하게 스며있지요. 브라만 , 크샤트리아 인들이 많고. 이런 외래 중동지역의 강한 신관을 믿는 북인도와 똘망똘망한 남인도의 명상 기류가 융합되어 두 축으로 인도 문화가 형성된 것 같아요.
중동과 인도 문화의 공통점이 시와 시인을 대단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특히 인도인은 워낙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기질이 강하기에, 그네들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을 때 언제나 춤과 노래를 갈구 합니다. 어찌보면 신화와 설화 구조란게 뮤지컬 드라마 이지요. 그래서 인도인은 인터미션으로 항상 춤과 노래가 끼어야 몸이 풀리기에, 이것 빼면 시체지요. 시는 다름 아닌 음률이고 리듬이죠. 불교에서 게송 이라고 하는데, 고타마도 자신의 설법을 요약하고 정리할 때 이것을 일종의 시적 노래로 박자와 리듬을 넣고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또 기하학적 문양이나 무늬에 중동과 인도인이 제법 끌리고 강한 면모를 보이는데 기하학적 도안이나 문양이란게 일종의 중첩된 수학의 알고리즘 같이 '무한성'을 표출합니다. 이게 티베트로 건너가 만다라도 된 것 같구요. 기하학적 도안이란게 자연계에 없습니다. 자연은 밋밋합니다. 사람들은 기하학적 문양을 보고 여기에 뭔가 비밀이나 진리가 있나 보다 하고 호기심이나 경외감을 가지지요. 인도유럽피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매우 수학적 기질이 농후했다고 합니다. 중동과 인도 수학자들이 옛날에 최고였다고 합니다.
관념이란게 생각의 뭉치인데요. 고타마가 '신의 관념'을 거부한 것은 사람들이 내가 믿고 생각하는 '신'이 있다면 이게 정답이라 여기고 너가 믿고 생각하는 '신'은 오답이라고 여기는 것 조차 생각인데, 사람들이 자꾸 이 생각의 차이 가지고 끊임없이 분열하고 투쟁하는 게 워낙 마뜩치 않아 사람들에게 축을 '신'보다 '너 자신'으로 바꾸기 위한(향아설위 이기도 하죠) 고육지책 내지 방법론입니다.
여하튼 불교에서 제3의 방법론으로 '신'을 지우고 그 자리에 '붓다'를 새겨 넣은 것은 일종의 단지 관념으로서만의 '신'을 부정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 당시에 인도인이 이 신 만들고 저 신 만들고,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생각으로 신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봉헌과 헌사를 많이 하면 좋다는 식이 팽배해 있지 않았을까요. 즉 마음 밖에 생각으로 신을 만들어 놓고 이걸 우상처럼 섬기는 것에서 비판적이였을 것입니다. 이천년이 지나도 불교에서 염려했던 것 처럼 지금 사람도 유대교의 신, 기독교의 신, 이슬람의 신이 서로 다르다고 살인과 폭력이 자행되는 꼴을 보면, 불교가 불가피하게 방향을 튼 것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보면 결국 방법론의 차이, 언어의 레테르의 다름 뿐입니다. '신'을 곱하기 하고 '부처'을 동그라미 했다고 하여 둘이 서로 다른가? 종국에는 같은 지칭어일 뿐입니다. 동북아시안인은 이걸 일찍 간파하여 신불을 같은 것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분쟁을 없앴어요. 양쪽 다 공평하게 똑같은 것으로 본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지요. 또 중국인 입장에서 보면 결국 '신'이나 '부처'는 수입산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