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았던 시대 16세기 조선,
조선의 역사 5백년 중에 가장 많은 별들이 솟아났던 16세기, 바로 그 시대가 정여립의 시대였다. 폭군으로 밀려난 연산군을 필두로 중종․인종․명종․선조로 이어지는 16세기는 혼란의 시대였지만,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을 발했던 뛰어난 인물들이 태어나고 사라져간 시대였다. 또한 그때는 마치 밤하늘에 운석이 쏟아지듯 한국사상사와 역사속에 자취를 남긴 천재들이 나타났던 시대였다.
왕도정치를 실현시키려다 실패한 조광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자리에는, 숲속의 대학자라 불리는 화담 서경덕이 자리를 잡았다. 우주와 인간, 우주와 만물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이론을 정립시킨 서경덕은, 박연폭포․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로 일컬어졌다. 그의 수제자 이구는 기일원론을 철저히 지키고 발전시켰으며 박순은 기축옥사로 희생된 곤재 정개청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서경덕이 개성 일대에서 그의 사상을 펼치고 있을 때 희재 이언적은 영남 사림을 이끌면서 조선조의 성리학을 정립한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서경덕과 마찬가지로 스승도 없이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확립하였으며, 퇴계의 성리학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퇴계는 이언적의 학설을 “이단의 사설을 물리치고 성리학의 본원을 바로 세웠다”고 평가하였다.
뒤를 이어 퇴계 이황과 더불어 도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남명 조식이 경상도 산청에서 실천유학의 장을 열었다. 동서 양당으로 갈리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김효원과 덕계 오건. 기축옥사 당시 희생당한 수우당 최영경과 곽재우, 정구 그리고 내암 정인홍 등이 그의 제자였다.
한편 경상도 안동에서는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세웠고 동방의 주자라고 일컬어진 퇴계 이황이 을사사화 후에 낙향하여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의 제자로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성일 등이 있다. 이황은 ‘인(仁)’ 곧 어짐을 받드는 학문을 하였고 남명은 의(義), 곧 의로움을 받드는 학문을 하였다.
경상도에서 남명과 퇴계가 그들의 사상을 펼치고 있을 때 전라도 장성에서는 하서 김인후와 일재 이항 그리고 고봉 기대승이 학풍을 크게 떨쳤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라는 시조를 지었던 김인후는 태극도설이라는 독자적인 학설을 내세웠던 빼어난 성리학자였고, 일재 이항은 태극과 무극. 인심과 도심에 이르기까지 이기의 학문을 강론하였다. 퇴계 이황은 일재를 가리켜 호남 성리학의 비조라 하였다.
그와 더불어 호남 학문을 널리 알린 고봉 기대승은 과거에 급제한 서른두 살에 서울에서 퇴계를 만나 8년 간의 논쟁을 시작했다. 인간 감정의 양상인 사단과 칠정을, 이기 개념으로 분석하고 선악의 계기를 검토했던 이 논쟁을 후세 사람들은 조선 시대 사상사의 빅뱅이라 일컬기도 한다.
퇴계가 고봉을 얼마나 아꼈는가는 선조와 나누었던 한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퇴계에게 선조가 물었다. “지금 나라 안의 학자 중 어떤 사람이 으뜸이요?” 이때 퇴계는 “기대승은 학식이 깊어 그와 견줄자가 드뭅니다. 내성하는 공부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이라고 말했다. 내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기대승의 평생 신념이었던 정(正) 즉 일(一) 즉 옳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신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무렵 퇴계 이황과 더불어 16세기를 대표하는 학자였던 율곡 이이가 사림의 정치화를 이끌면서 활동하였다. 기호학파로 분류된 이이와 성혼․박순 등이 서인이 되었고, 영남학파로 분류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동인으로 분류되면서 동서 양파로 갈리게 되었다.
이외에도 충주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 장군과 행주산성 싸움의 명장 권율, 진주성 싸움의 김천일, 청사에 길이 빛날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조헌․곽재우․고경명․김시민 등 기라성 같은 별들이 찬연히 빛을 발하였다. 또한 승병으로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당 유정․영규와 처영 등이 있고, 백사 이항복과 이덕형 그리고 기축옥사 당시 서인 모주로서 종횡무진 활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성리학자로 이름을 날린 구봉 송익필과 불세출의 시인이자 동인 백정이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송강 정철이 그시대의 인물이었다.
이산해․정언신․남언경․양사언․김장생과 동서분당의 핵심 인물인 심의겸과 김효원․정인홍․김우홍․정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아간 별들이었고, 이발․정여립 등은 그 중에서도 빼어난 빛을 발한 별 중의 별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 속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던 시대는 대부분 혼란과 암흑의 시대였다. 16세기 조선 역시 그러했다.
15세기 이탈리아가 그러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페트라르카 등 뛰어난 천재들이 그 시대의 인물들을 메디치가문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르네상스를 일구어 냈는데, 조선은 선조 임금이 자신의 왕권강화에만 힘쓰고 동인과 서인의 정권 다툼 끝에 결국 기축옥사가 일어났고, 3년 뒤에는 미증유의 국난이라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난세에 인물난다는 말은 옛말이고,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인물들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흠이 많은 잡범 같은 사람들이 설치는 시대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 무너지고,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고,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소인이다.’라는 말이 공식화된 이 시대, 가끔 할 말을 잃을 뿐이고, 가슴만 아프다.
2024년 3월 6일
서울 논현동에서 역사 아카데미 정여립과 정철 강연을 마치고, 김유홍 대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