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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초췌한 사진 모습이지만 여전히 건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은 국회 환란조사특위 청문회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1999년 2월
4일 증언을 마치고 휠체어에 탄 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 머물고 있다. 기자는 이미 2008년 그가 카자흐스탄에 있다는 사실과 2010년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이웃나라 키르기스스탄으로 은신처를 옮긴 사실을 특종한 바 있다.
키르기스스탄 서북부 탈라스는 수도
비슈케크에서 남서쪽으로 190km 떨어진 탈라스강 연변에 있는 주(州)다. 이 땅은 우리와 관계가 깊다. 당나라 시대 고구려인 장수였던 고선지가 서역 대원정에 나섰던 곳이기 때문이다.
고선지는 탈라스에서 751년
티베트와 함께 동맹을 맺고 이슬람 압바스 왕조를 상대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건 일전을 벌였다. 지금의 탈라스강은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양국 국경을 가른다.
그런 이곳에서 재기를 꿈꾸는 기업인이 있다. 바로
정태수(鄭泰守·90) 전(前) 한보그룹 회장이다. 정씨는 현재 키르기스스탄 금광 사업에 참여하면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정씨가 머물고 있는 곳은 키르기스스탄 서북부 탈라스지역이다. 그동안 정씨는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을 오가며 자원·건설 관련 프로젝트 참여를 모색해왔다.
그는 전부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유전과 가스전 확보, 건설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그의 움직임이 공개되고 우리
법무부가 카자흐스탄에 신병인도를 요구하자 2008년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2003년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한 상태지만 키르기스스탄과는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기에 활동에 부담이 덜하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정씨는 2006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횡령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했으며,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5월 지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중앙아시아로 도피했다.
탈라스는 제루이 금광 등 대규모 금광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키르기스스탄는 소련 붕괴 후 금광 개발이 중단됐거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최근 외국인 투자가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금광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 두번째로 큰 제루이 금광도 캐나다 금광업체 센테라 골드 계열사 KOC가 운영하면서 연간 6억5000만달러의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씨도 이곳에서 금광을 인수해 채굴에 나서고 있다.
정씨의 금광은 소련 시대 매장량이 확인됐지만 채굴작업이 중단된 곳이다. 이 지역은 아직도 대통령과 주변 인맥들을 동원한 금광 개발이나 지분 확보가 가능해 투기자본과 한탕을 노린 업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키르기스스탄 한 언론인은 "키르기스스탄 금광은 소련시대부터 유명했다"며 "금광 개발사업 배경에는 특정 정치인과 인맥들이 존재하며 지역 단체장까지 금광 소유권 분쟁에 말려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중앙아시아의 에너지와 광산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뒤 정부와 '빅딜'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러시아 이르쿠츠크 코빅딘스크 가스전 지분 인수를 한 뒤 지분을 매각했던 경험을 살린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정씨는 러시아를 오가며 재기를 모색했다. 코빅딘스크 지분 인수 당시 도움을 줬던 알렉산드르 쇼힌 전(前) 경제장관, 비탈리 이그나텐코 이타르타스통신 사장 등 정·관계 인사를 만난 것도 본지 확인 결과 드러났다.
정씨를 만났던 발레리 아나톨리예비치 루시아 석유(RP) 사장은 "정씨가 러시아 에너지사업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빅딘스크 가스전의 러시아측 파트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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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실시된 1995년 12월 18일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회장이 휠체어를 탄채 서울지법에 출두하고 있다.
정씨의 도피 자금과 사업 자금은 당시 가스전 지분 매각 대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정씨 주변에는 최측근으로 알려진 남 모씨가 전면에 나서 국내 지인들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정씨는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소치 동계올림픽 관련 건설 프로젝트와 원전(原電) 프로젝트에 참여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한국측 관계자들과 접촉을 남씨가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수감생활을 경험한 정씨는 귀국 즉시 재판을 받아야 할 상황에다 법정 구속될 것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선뜻 귀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위에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