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19.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묵시3,1-6.14-22 루카19,1-10
행복하여라
주님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
우리를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사랑의 하느님!
오늘은 이런저런 감동스런 일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일어나는 감동스런 사건을 발견합니다.
너무나 감동을 잊고,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감동도 능력입니다.
정말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이, 사랑의 사람들이 감동합니다.
무엇보다 찾고 키워야 할 감동의 능력입니다.
“수사님! 여자 손님 화장실이 크게 막혀 엉망입니다!
가능한 속히 손봐줘야 하겠습니다! 너무 불편하고 혐오스럽습니다! 속히 급합니다!”
끝기도후 화장실에 들리자 마자 수도형제에게 긴급 메시지를 발송했고 새벽 잠깨어 열어보니 오후8:30,
“되었습니다!”
답신 메시지가 도착했었고 신속한 조치에 감동했습니다.
늘 감동을 선사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수도형제입니다.
제 주변에는 감동을 선사하는 좋은 분들이 참 많습니다.
순수할 때 아름답고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우리를 정화합니다.
없는 돈, 없는 시간을 내어 꽃을 사들고 허리에 파스를 붙인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바람같이 수도원에 들려
꽃꽂이를 한 자매 역시 멧시지와 더불어 은은한 향기같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세상사 복잡하여 오늘 꽃시장에 들려 꽃을 삽니다. 마음이 험악하여 지기전에 다스려봅니다.”
옛 어른의 지혜도 우리에게 깨달음과 더불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살아가는데 급급해진다.
그러니 삶이 사납게 닥쳐올수록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다산>
다산 정약용 역시 감동의 현자입니다.
생각하는대로 살지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정말 깊이 공부하고 생각하여 스스로 분별의 지혜를,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굶주린 자는 달게 먹고, 목마른 자는 달게 마신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본래 맛을 가리기 때문이다.”<맹자>
진리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진정 행복합니다. 진리이신 주님맛을 비로소 알겠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5)란
주님 말씀이 귓전에 생생합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연중33주간 동안의 수도원 연피정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만추의 단풍과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고요와 침묵의 분위기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어제는 온종일 ‘감동’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만 생각하다가 후에 소스라친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바로 우리를 끊임없이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하느님을 잊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복음의 아름다운 예수님을 통해 얼마나 우리를 감동시키는지요!
감동의 하느님을 닮을수록 우리 또한 감동의 사람이 됩니다.
어제 하루는 19년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생각을 하며 많이 감동하고 회개한 날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평생 일상이 감동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서야 깨닫고 감동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한번도 매든 적 없고, 한번도 화낸 적 없고, 한번도 아버지와 싸우거나 다투거나 하는 것을
본 적도 없습니다.
삶이 고단한 탓이었던지 어머니 얼굴에 웃음은 거의 없었고 삶자체가 고요한 순종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쩌다 아버지와 다툴 때 보면 어머니는 안방에서 아버지는 윗방에서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싸웠습니다.
험악하게 다투거나 싸우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가정폭력은 한번도 목격하지 못한 두분은 참 지혜롭고 인내심 많고 젊잖은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부족했어도 어머니는 절대 아버지에 대해 늘 두둔하셨지 부정적으로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지금 생각하건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며 신뢰했던 것입니다.
간혹 제가 아버지에 대해 불평하면 “네가 아버지없이 어디서 나왔느냐?”한 마디로 저의 입을 닫았습니다.
지금서야 어머니의 한없이 강인하며 부드럽고 깊고 고요한 마음을, 사랑과 지혜를 깨닫고 감동합니다.
성경은 주님을 감동시킨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의 일화로 가득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가난한 과부의 기도가 주님을 감동시켰고, 어제는 눈먼 걸인의 간절한 갈망이,
오늘 복음에서는 자캐오의 기발한 행동의 연속이 주님은 물론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습니다.
이런 감동이 저절로 회개로 이끕니다.
참으로 주님은 물론 우리를 즐겁고 행복한 감동에 젖게 하는 자캐오입니다.
복음의 정수요 요약같은 오늘 주님과 자캐오의 만남입니다.
자캐오뿐 아니라 예수님의 아름다운 사랑도 우리를 감동하게 합니다.
사실 시편들은 거의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에 감동한 시인들이 들려준 노래들입니다.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 사랑에 감동을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은혜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것도 배우고 훈련하고 습관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넘어 자캐오의 순수한 아름다운 행위에 감동한 주님은
돌무화과나무위에서 자기를 보고 있는 자캐오를 쳐다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정말 전무후무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정말 이심전심 두분간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마음과 마음의, 눈길과 눈빛의 만남입니다.
이어지는 두 분간의 대화는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이니 환대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이런 자캐오처럼 기쁘게 환대의 사랑으로 미사중 주님을 마음 깊이 모셔야 함을 배웁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 군.” 투덜 거리는 참 딱한 철부지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한 자캐오는 환대의 사랑에 이어 재산을 아낌없이 나눌 것을 선언하니
회개의 진정성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의 회개에 감동한 주님의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엄한 구원의 선언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자캐오는 물론 예수님이,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이 우리에게 끝없는, 한량없는 기쁨의 감동을,
아름다운 감동을, 구원의 감동을 선사합니다.
자캐오에 감동한 예수님이요 예수님께 감동한 자캐오입니다.
주님께 참으로 본능적으로 기민하게 응답한 자캐오는 참 행복한 은총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묵시록의 주님의 초대에 참으로 멋지게 응답한 자캐오요 우리 모두 자캐오처럼 회개의 응답으로 실현되는
축복의 미사잔치임을 깨닫습니다.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바꿔주는 주님의 참 아름다운 감동의 미사잔치 은총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3,20).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동적인 말씀 감사합니다